소설리스트

27화 (27/137)

-27화-

“저택으로. 빨리.”

카시어스는 사납게 명령을 내리며 마차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마차는 재빠르게 튀어나갔고 카시어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품안에 안겨 있는 린델은 말 그대로 덜덜 떨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땀에 젖은 옆머리를 넘겨주며 안심시켜주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자극인 듯 린델이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약에 면역이 있는 카시어스는 미혼약이 끌어내는 고양감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육신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엿 같은 일인지는 너무 잘 알았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머리끝까지 화가 날 일이었다.

카시어스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미안.”

“으…….”

미안하다고 속삭이는 작은 숨결이 귓가에 닿는 것조차 린델은 참을 수 없어서 카시어스의 품에 머리를 박으며 눈을 감았다. 몸을 지배하는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을 정도였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카시어스와 늙은 의사 사이에 오간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자신이 미혼약에 중독되었다고 했다. 신전에서는 주로 열을 내리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초를 다뤘다. 그래도 본초학을 배우면서 온갖 약초의 효능을 배웠다.

미혼약. 남녀의 동침을 돕는 흥분제.

약이란 그 쓰임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되는 법이었다. 미혼약 역시 적당히 쓰지 않으면 숨이 끊어질 수도 있다고 잉그란이 말했다. 그리고 미혼약은 해독제가 없었다.

린델은 정말로 숨이 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이 오른 몸은 이제 아프기까지 했다. 특히 완전히 흥분해버린 성기는 말 그대로 터지기 직전이었다.

얼른 만져서 파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지만 카시어스에게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그런 꼴사나운 짓을 할 수가 없었다. 린델은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참았지만 헐떡임은 계속 새어나왔다.

“흐으…….”

너무나 괴로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하자 진짜 눈물이 흘렀다. 미칠 것 같은 기분에 카시어스의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저택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버티는데 카시어스의 손이 허벅지를 길게 쓸어왔다.

“헉.”

더운 숨결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그 와중에 카시어스의 손은 좀 더 은밀한 안쪽을 향했다. 말 그대로 혼이 나갈 것 같았다.

“참지 않아도 돼.”

카시어스의 숨결이 다시 귓가에 닿았다.

“싫……어.”

도리질을 치며 싫다고 몸을 뒤틀어보지만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옷 너머로 허벅지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더한 자극을 원하는 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괜찮아. 나밖에 없어.”

마치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는 카시어스와 자신뿐이었다. 그의 손길에 몸을 떨어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더 만져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머리 한쪽은 그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계속 말렸다.

“참을 수 있……. 흐읏.”

“이런 고집쟁이가.”

몸을 뒤로 물리려고 해도 카시어스가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은 발기한 성기를 잡아챘다. 또다시 몸이 튀었다.

“흐윽.”

“날 원망해.”

원망하라는 주문은 끔찍하게 달콤했지만, 손길은 무자비했다. 성기를 강하게 쥐어드는 손길에 파정은 순식간이었다. 안도를 느낄 새도 없이 카시어스의 손은 계속 성기를 잡고 계속 흔들었다.

옷을 입은 채로, 다른 사람의 손에 사정을 했다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린델의 머리에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계속되는 자극에 머릿속이 번쩍번쩍 거리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끝 모를 쾌락에 몸이 들썩거렸다.

“흐으. 읏. 아. 앗. 제발…….”

입에서 절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더 만져 달라는 애원인지, 놓아달라는 거부인지 린델도 알 수 없었다. 열이 오른 머릿속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왠지 모를 억울함과 민망함이 뒤범벅되면서 다시금 화려한 끝이 다가왔다. 린델은 멀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지 않았다.

“이런.”

축 쳐진 린델의 몸을 단단히 부여잡은 카시어스는 작게 혀를 찼다. 두 번이나 사정을 했는데도 린델의 성기는 흥분한 상태였다. 미혼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이라니 단순히 사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으……응…….”

린델은 정신을 잃은 채로도 계속 열을 내며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가련하고도 애처로워서 더욱 죄책감을 자극했다. 마차 안에서 농탕질은 린델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등을 쓸었다. 약한 애무에 린델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카시어스는 직접적인 자극 없이 린델의 몸을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마차가 멈췄다. 저책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카시어스는 다시 린델을 안아 들고 움직였다.

저택 현관에 들어서자 애쉰 부인이 나타났다.

“폐하? 도련님께서 어디 아프세요?”

“세투아를 불러. 미혼약에 중독되었다고 말해.”

카시어스는 뒤따르는 시종에게 명령을 내렸다. 치유 마법까지 쓸 수 있는 세투아는 의학까지도 정통했다. 특히 본초학에 조예가 깊어 병원을 차린다면 일가를 이룰 수 있을 정도였다.

미혼약이라는 단어에 놀란 것은 애쉰 부인이었다.

“세상에. 미혼약이요? 도련님께서요?”

“목욕물을 준비해 줘. 나중에 린델을 씻겨야 할 거야.”

“폐하. 그쪽은 도련님의 방이 아니에요.”

2층 계단을 오른 카시어스가 왼쪽 복도로 향하자 애쉰 부인이 말렸다. 하지만 카시어스는 린델의 방이 아니라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시어스의 의도를 알아차린 애쉰 부인이 다급하게 말렸다. 

“그러시면 안 돼요. 미움받으실 거예요.”

그녀는 린델과 카시어스가 진짜 연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혼약에 정신이 없는 상대와 동침을 하는 건 진짜 연인들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어. 지금 숨이 넘어가고 있다고.”

“폐하.”

“세투아가 도착하면 불러.”

한껏 으르렁거린 카시어스는 애쉰 부인을 두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면서 문을 꽉 닫았다. 불이 켜지지 않는 방 안은 어두웠다. 카시어스는 개의치 않고 린델을 침대 위에 내려두고는 그대로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카시어스는 자신이 무뢰배나 할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꽤나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린델 혼자 앓게 내버려두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여자를 붙여주는 건 처음부터 논외였다.

“그러니까 용서해.”

정신이 없는 상대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카시어스는 최대한 다정하고 속삭였다. 코트를 벗기고, 베스트와 크라바트를 집어던졌다. 셔츠자락을 헤치며 맨살을 애무하자 린델이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바지와 속옷을 끌어내리자 발기한 성기가 튀어나왔다. 애액으로 잔뜩 젖은 성기는 린델이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카시어스는 직접적으로 성기를 만지는 대신에 허벅지부터 천천히 더듬어 쓸었다.

불을 켜지 않은 탓에 방 안을 밝히는 것은 달빛뿐이었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어둠 속에서 린델의 뺨과 목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날씬한 배를 살짝 매만지자 손 안에서 근육이 튀는 것이 느껴졌다. 신음 소리는 더욱 깊어졌다.

린델의 옆에 앉아 반쯤 위에서 끌어안고 있었던 카시어스는 감각이 주는 쾌락이 당혹스러웠다.

열에 들떠 신음하는 청년이 이렇게까지 매혹적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카시어스의 성욕은 담백한 편이었다. 하지만 고귀한 태생이었던 탓에 자신의 욕망을 애써 참은 적도 없었다. 하룻밤의 쾌락은 손쉬운 것이었고, 그리고 늘 상대는 여인이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육체를 가진 여인에게만 끌렸었지 사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워…….”

더위를 호소하는 린델의 연한 분홍색 입술에 시선을 잠시 빼앗긴 카시어스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린델의 몸에서 나는 체향은 땀과 열에 진해져 있었다. 향수가 아닌 진짜 살 냄새인데도 달콤했다.

맨살의 린델을 매만지는 행위가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디비티에였다. 살아 있는 마력 제어석. 그와의 접촉은 각성 효과를 가져왔다. 밝아진 머리가 온전히 쾌락을 인지했다.

“미쳤군.”

욕설이 탄식처럼 터져 나왔다. 이래서야 진짜 어린 피후견인을 희롱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카시어스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린델에게서 손을 뗐다. 이 상황에서 발정이라도 해버린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터였다.

그때 마침 작게 신음을 흘리던 린델이 긴 속눈썹을 펄럭거리며 눈을 떴다. 눈물이 맺힌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더워요.”

“그래.”

“못 참겠어.”

발음이 뭉개진 목소리는 열에 취해있었다. 바르작거리며 몸을 뒤척이던 린델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이 기어코 뺨을 따라 흘렀다. 카시어스는 홀린 듯 손으로 눈물이 닦으며 뺨을 쓸다가 쓴웃음을 삼켰다.

길고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천천히 정신을 일깨우던 린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새벽의 푸르스름함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창가에 화병이 아니라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봤었던 화병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커튼의 무늬도 달랐다. 애쉰 부인은 여름에는 초록이라며 방을 꾸몄다. 하지만 이곳은 푸른색이었다.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깨달음과 동시에 린델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냈다.

세상에.

린델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이 부어서 시야가 엉망이었지만 린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 잠옷처럼 입던 셔츠와 바지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면서 침대 반대편 의자에 앉아 있는 카시어스를 발견하고는 굳어버렸다.

“일어났군.”

“예…….”

대답하는 목소리가 스스로가 듣기에도 억양이 이상했다. 카시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과 다른 의복을 완벽하게 입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다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미혼약이 든 샴페인을 마시고 쓰러졌던 것부터, 마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있었던 일도 드문드문 머릿속을 스쳤다.

부끄럽다 못해 머리가 뻥 터질 것 같았다. 충격적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길에 사정한 것도 놀랄 일인데, 상대가 카시어스였다. 남자라는 것도 황제라는 것도 모두 감당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입으로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자꾸 생각나는 바람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카시어스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던 린델은 차마 그를 마주볼 수 없어서 슬쩍 옆으로 시선을 빗겼다. 그 사이에 카시어스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몸은 어때? 어지럽지는 않고?”

“괜찮아요.”

“날 보고 말해야지.”

린델은 어쩔 수 없이 카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민망하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의 손길에 몇 번이나 절정에 이른 것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린델은 목소리를 쥐어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