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개화(1)
“윤오야, 이것 좀 열어 줄래?”
생수병과 씨름하던 어머니는 결국 내게 도움을 청했다. 대단한 부탁도 아닌데, 무안해하는 표정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몇 년의 투병 끝에, 어머니의 고왔던 얼굴이 거칠어져 버렸다. 움푹 팬 볼과 깊어진 주름.
어머니는 요즘 들어 매일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얼마 전부터 처방이 바뀌어서 새 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지만, 그런 것치고도 컨디션이 너무 오래 저조했다.
병원에 따라갈 때마다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지만 허사였다. 돌아오는 것은 결국 이식이 필요하다는 대답이었고, 이식 대기 순서는 여전히 끔찍할 정도로 길게 남아 있었다.
“어…. 이거 생각보다 꽉 잠겨 있나 봐요. 잠시만요.”
어머니에게서 병을 넘겨받은 나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끙끙거린 뒤에야 뚜껑을 열 수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야 그렇다 치고, 다 큰 남자가 생수병 하나도 제대로 못 연다는 게 부끄러웠다.
“어쩜, 눈 밑이 거뭇하네. 아픈 거 아니니? 오늘은 집에서 쉬어.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에 머쓱하게 미소 지었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서툴게나마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시도할 정도의 힘은 있었는데, 이젠 어림도 없었다.
발현 탓인지 몸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피부는 매끄러워지고, 실루엣은 부드러워졌다. 새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의 근육이 흐물거리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미열은 여전하고, 간헐적으로 아랫배에서 싸르르한 통증이 올라왔다.
생경한 고통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이한의 집에서 보았던 오메가의 신체 구조도를 떠올렸다. 뻔히 보이는 현실에도, ‘그럴 리가 없어’ 하고 소스라쳐 고개를 젓곤 했다.
“저 어제 쓰러진 거 아니에요. 그냥 피곤해서 그랬던 거예요. 다크서클은… 어제 잠을 좀 설쳐서요.”
“그래도. 아무래도 네가 너무 애쓰는 거 같아서 그래.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정말 괜찮아요. 아픈 데도 없고. 엄마도 요새 저 얼굴 좋아졌다고 자주 그러셨잖아요.”
“아르바이트를 좀 줄이는 편이 낫지 않아? 엄마가 집에서 간단한 일이라도 할게.”
“아니에요. 엄마는 아픈데, 쉬셔야죠. 낫는 게 우선이잖아요.”
어머니는 눈에서 의심과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게 힘들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떨구었다.
“갈게요. 늦을 테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걱정이 되는데 어떡하니, 그럼. 늦게 다니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다 큰 아들이 뭐가 걱정이에요. 학교에서 소설책 빌려다 놨으니까 투석할 때는 책 보시고, 밤에는 일찍 주무세요.”
“동네도 워낙 어둡고 험해서…. 하긴 요새는, 그 친구가 있어서 안심이다. 오늘도 같이 일하니?”
“…….”
“엄마는 솔직히 네가 대학에서 번듯한 집 애들 사이에 기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듬직한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이야.”
“…듬직하긴요.”
“그런 말 마라. 어제도 그 친구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니.”
어머니가 말하는 ‘듬직한 친구’라는 건 다름 아닌 이한이었다. 그가 몇 번이고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말았다.
혼자 갈 수 있다고 말려도, 그는 굳이 집 앞까지 따라오곤 했다. ‘이 동네 맘에 들더라.’ 하는 무뚝뚝한 중얼거림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었다. 달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지, 내가 집에 들어간 뒤에도 매번 커다란 그림자는 한동안 낮은 담 너머를 지키고 있다.
급기야 그는 어젯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를 업고 집 안까지 들어오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집요하게 ‘그 키 크고 잘생긴 남학생’의 정체를 캐물었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같이하는 동기라고 둘러대고 말았다.
어머니는 나를 걱정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또래 아이가 나를 챙겨 집까지 업어 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한 눈치였다. 나에게 집에 데려올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없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어머니의 몸은 쇠약해졌지만, 나를 보는 눈만은 더욱 반짝였다. 앞으로는 내가 여태까지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걸까. 희망찬 눈빛 앞에 나는 몇 배는 죄스러운 기분이 되고 만다.
‘죄송해요, 엄마. 저는, 저는 요즘….’
입술을 달싹거려 보지만, 역시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여태까지 내 삶이 잔잔한 시궁창이었다면, 요즘은 몰아치는 격랑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고는, 도저히.
학교생활이 엉망이라거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되어 가고 있다거나, 몸에서 수컷을 꾀는 페로몬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서 엄마가 보았던 그 ‘친구’와 이런저런 질퍽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하나도 할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나를 배웅하는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무거운 어깨를 최대한 꼿꼿하게 들어 올렸다. 학교를 향하는 걸음은 무겁지만, 억지로라도 그쪽을 향해 걷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이한과 나 사이를, ‘친구’나 ‘우정’ 같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
며칠 사이 이한이 유난스레 내 곁을 따라다니기는 했다. 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처럼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서, 정문 밖에서는 거의 내내 붙어 다니는 정도였다. 지난 월요일, 과외를 마치고 과외 학생 집 앞에서 딱 마주쳤을 때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뭐, 뭐 해?”
나는 놀라서 그만 소리를 질렀다. 이한은 내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기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후드를 눌러쓰고 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커다란 남자가 어둠 속에서 소리도 없이 튀어나왔으니 말이다.
“무슨 과외를 그렇게 오래 해?”
그는 바닥에 쌓인 꽁초를 꾹꾹, 눌러 밟고는 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나 기다린 거야? 여긴 어떻게 알았는데?”
“알 거 없어. 어디 가는데? 또 아르바이트?”
“PC방 알바 있잖아.”
“그건 뭐 하루를 안 쉬어?”
“평일에는 매일….”
“시끄러워. 나도 네가 어디서 뭘 하는지는 다 알거든?”
시계를 수리점에 맡긴 지 열흘째. 등굣길에 그의 방에 들린 지는 일주일째였다. 그사이 나름대로 나의 동선을 파악했는지,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간혹 교내에서 시선이 느껴진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과외하는 곳까지 알아냈을 줄은 몰랐다.
“빨리 따라오기나 해. 나 저녁 먹어야 하니까.”
“…응?”
“밥 먹으러 가자고.”
“어? 나, 지금….”
“너 점심도 안 먹었잖아.”
시계를 수리점에 맡기고 난 뒤, 재단 출신 아이들은 나에게서 더 이상 문제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따돌림은 관성처럼 이어졌다. 이제는 무슨 짓을 해서 냄새를 없앤 거냐는 비아냥이 더해졌을 뿐이다.
애초에 냄새 같은 걸 문제 삼은 게 아니었던 일반고 출신 아이들은 당연히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내 모습 자체가 시빗거리였다. 결국, 나는 여전히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신세였다.
그날도 공강 시간 내내 숨어 있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새삼 생생해지는 허기를 모르는 척하며 웅얼웅얼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바로 PC방 가 봐야 해. 8시부터 시작인데 가는 데 20분은 걸려.”
“뭐? 좆같네, 진짜. 왜 시간을 그따위로 빡빡하게 잡아 놨어?”
“…….”
“그럼. 평소엔 아무것도 안 먹어?”
“그냥 적당히 때우거나….”
“너 바보야? 왜 그러고 살아? 그러니까 뼈다귀만 남아 있지.”
그는 다시 정곡을 찔렀고 나는 더 부끄러워졌다. 내가 몸을 축내 가며 궁상을 떠는 중인 건 맞다. 그러나 이한은 그런 궁상을 떨지 않고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삶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민망한 마음에 소맷부리를 당겨 뼈투성이 손목을 가렸다.
“…아무튼 난 일하러 가야 해. 미안. 저녁 맛있게 먹어.”
거절의 뜻이었는데, 그는 성큼성큼 내 뒤에 따라붙어 왔다. 못 알아들었거나 알아듣고도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흘끔흘끔 저를 보는 뾰족한 시선을 모른 체하고 핸드폰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야, 무슨 이 동네는 배달도 이렇게 구린 데밖에 없어? 존나 거지 같네.”
“…….”
“여기서 PC방까지 걸어서 20분 정도지? 지금 시키면 대충 시간 맞겠다.”
“…거기 가서 먹게?”
투덜거리면서 굳이 나를 뒤따라오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말끝이 그만 뾰족해졌는지, 그는 미간을 좁히며 나를 노려봤다.
“왜. 혼자 싸돌아다니다 또 험한 꼴 당하고 싶어서 그래?”
“…….”
“페로몬 관리도 안 되는 주제에 당당하다, 너? 그때 그 변태 알파한테 당할 뻔한 거 벌써 까먹었어? 그 사람, 네가 조금이라도 흘렸다간 바로 쫓아올 거리에 있다는 건 알지?”
그는 종종 나를 덮치려 했던 알파를 들먹이며 겁을 주었다. 지겹도록 반복된 말이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나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중이었고, 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었다.
그가 내 곁을 서성거려 주는 것은 사실 고마운 일이었다. 나도 이한과 함께 있는 편이 안심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종종 그가 나를 돕기 위해서 쫓아오는 건지, 아니면 괴롭히거나 시비를 걸기 위해 그러는 건지 때때로 아리송해지곤 했다. 그의 말투는 늘 거칠었고 나를 보는 눈에는 주로 싸늘한 짜증이 어려 있었다.
그는 배달 어플로 무언가를 잔뜩 주문하는 눈치였다. ‘그때 그 변태 알파’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나의 마른 몸을 트집 잡으며 무언가를 먹으라고 성질을 부렸다.
지난 주말에도 굳이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으로 쫓아와 한 아름 음식을 사더니 가져갈 생각은 않고 나에게 먹으라고 했다. 나중에 먹겠다고 얼버무려도 제가 보는 앞에서 그 많은 걸 다 먹어 치우라고 고집을 피우는 통에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PC방의 좁은 카운터에 한가득 배달음식이 차려졌다. 대뜸 젓가락을 건네는 그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이 시킨 거 아냐?”
어머니와 나의 두 끼 식사보다도 많은 양의 음식을 늘어놓고도, 그는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게 뭐가 많아? 자, 이쪽 건 다 네 거야. 너 다 먹어.”
나는 난감함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많이는 못 먹는데.”
“이걸 못 먹어? 넌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냐?”
당연하다는 듯한 구박에 억울해졌다. 같이 밥을 먹자고 한 적도 없는데 왜 매일같이 찾아와 혼을 내는지.
“…밥은 왜 자꾸 사는 거야?”
“지난번엔 네가 먹을 거 줬잖아.”
“내가 언제?”
“컵라면.”
“그건 네가 계산하고 사 먹은 거잖아.”
“물 부어 줬잖아. 그거 원래는 네가 하는 거 아니라며.”
“뭐 그런 거 가지고 몇 번이나 밥을 사고….”
“됐으니까 먹기나 해.”
“신세 져도 갚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그러지. 안 그래도 너한테는 계속 민폐만….”
“아, 존나 땍땍거리네. 민폐인 줄 알면 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먹기나 하라고.”
내가 답답했는지, 그는 결국 사납게 언성을 높였다. 주눅 들어 버린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다 먹어 보려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그는 눈에 띄게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밥을 먹는 나를 보며 저렇게 흐뭇해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의 어머니뿐이었다. 그가 남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취미인 괴짜도 아닐 거고, 빼빼 마른 사람을 못 견디는 강박이 있는 것도 아닐 테니. 내 끼니를 챙겨 주려 애를 쓰는 마음은 결국 호의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거다.
‘어쩌면 그냥 말버릇이 퉁명스러운 것뿐인지도 몰라. 얼굴도 무표정하니까 그래 보이는 거지 딱히 나한테 화가 난 건 아닐지도….’
머리로는 아는데, 그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의 앞에 서면 어쩔 수 없이 긴장부터 하고 만다.
호의를 호의로 인식하는 것도 마음을 열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일에 아주 서툴렀다. 녹아내릴 듯 살갑고도 끈질기던 이준의 호의도 몇 개월이 지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을 정도였다. 변명하자면, 누가 나에게 잘해 준 적보다 상처 준 적이 많았던 탓이다.
그는 같은 말을 해도 퉁명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었고, 나는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답답하게 꼬아 생각하는 재주가 있었다.
“또 먹는 둥 마는 둥이야, 말도 존나 안 듣고.”
나는 최선을 다해 밥을 먹었지만 이번에도 식사가 끝날 때쯤 이한의 핀잔을 듣고 말았다. 그는 무겁게 눈을 흘기며 PC방의 구석의 고정석에 가 앉았다. 미국 주식을 한다던 대꾸가 사실인지는 몰라도, 일주일 내내 PC방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밤이 깊기 전까지, 그는 보통의 손님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따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것 같긴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공기가 달라지는 것은 손님이 뜸해진 시간이 된 이후였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전공 책을 들여다보던 나는 저 멀리에서 이한이 일어나는 기척을 느꼈다. 터덜터덜, 무심한 발소리와 함께 그가 다가왔다.
“한윤오.”
내 이름을 부르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카운터 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카운터 파티션 너머의 작은 소파는 CCTV의 사각지대였다.
그의 부름에 겁을 먹은 나는 느리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머뭇거려 봤자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별수 없었다.
괜스레 거리를 두고 앉으려 했지만, 곧바로 허리를 붙잡혔다. 그는 나를 훅 당겨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밀착된 자세만으로도 부끄러워 숨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이한은 떨구어지려는 내 턱을 들어 올렸다. 시선을 피하려 애쓰는 나를 나무라듯이 똑바로 들여다봤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흡….”
아래턱을 누르는 엄지손가락에 순응해 입을 열었다. 뜨거운 입술이 마주 닿고, 이내 더 뜨거운 그의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찌릿한 느낌이 피를 따라 퍼져 나갔다.
등굣길에 들르는 그의 집에서, 아무도 없는 밤의 PC방에서. 이한은 틈날 때마다 나를 끌어당겨 입술을 겹치고 몸을 어루만지곤 했다. 이렇게 자주 페로몬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냐는 질문은 무시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가 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주사를 맞기 전 숨을 꼭 참듯이 접촉의 순간을 견뎠지만, 몸은 마음보다 적응이 빨랐다. 연인도 아닌 사람과의 스킨십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에게 환멸이 들어도 별수 없었다.
솔직히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싫다기보다는, 가까이 다가온 그의 담배 냄새만 맡아도 반사적으로 호흡이 가빠 올 정도였다.
“하, 흐읏.”
이한의 혀가 내 입술과 입안의 점막을 핥아 내렸다. 단단하고 곧은 손이 나의 목덜미를 감싸 쥐는가 싶더니 손가락 끝이 스물스물 머리카락 틈으로 기어 올라왔다. 뒤섞이는 타액이 어지럽고, 몸이 무력해졌다.
그는 성적인 접촉이 페로몬을 가라앉힌다고 했지만, 그가 나를 만지고 핥을 때마다 나는 무언가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 두려워지곤 했다. 온몸이 중심을 잃고 일렁거리다 펑,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얽어진 혓바닥, 머리카락, 귓불. 그가 닿아 있는 모든 곳에서 저릿저릿 전류 같은 것이 일어났다. 살을 울리던 그것은 몸 안에 깊게 스며들어와 구석구석으로 퍼져 갔다.
처음에는 늘 느끼는 현기증인 줄 알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온몸의 핏줄이 오싹한 느낌을 흡수하며 비명을 질렀다. 모든 피가 아래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핫…!”
난생처음 겪어 보는 감각에 놀란 나는 몸부림쳐 입술을 떼어 냈다. 다시 나를 삼키려 드는 이한의 어깨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 그만….”
“…….”
“이상해. 나 지금, 뭔가….”
그는 더 집요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퍼릇한 안광은 언제나 손쉽게 나를 압도했다. 두 손으로 밀어내어 보려고 해도, 간격은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배가 아파. 아래가… 뭉쳐서….”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축축했다. 눈빛과 표정은 더 그랬을 거다.
“그게 뭐. 섰나 보네.”
마음으로는 심드렁한 대꾸가 야속했지만, 몸은 멋대로 움직였다. 그를 미는 듯하던 나의 손은 어느샌가 방향을 바꾸어 그를 붙잡아 매달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짚었던 손바닥이 조금씩 그의 어깨를 타고 올라갔다. 어설픈 유혹처럼 그의 목 뒤를 감싸 쥐었다.
“아, 아니야. 달라. 나, 나….”
모든 게 이상했다. 아랫배는 뜨겁게 꿈틀거리고, 머리는 빙빙 돌고, 입술은 말라붙었다. 숨이 섞이는 거리에 이한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움직임조차 없었지만, 나는 그가 나를 들쑤시고, 통제하고 있다고 느꼈다.
입술을 살짝 벌린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어느새 묘한 후회로 가득 찼다. 입술을 떼어 내는 게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혀를 내어 내 아랫입술을 훑었다. 내 입술에 남아 있던 그의 타액이 달고 차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진정시킬 방법이 무엇인지 본능으로 직감했다. 나는 화염에 휩싸여 있고, 품에 안은 남자는 검은 물 같았다. 몸을 던지듯이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하아아.”
다시 그에게서 날카로운 전류가 흘러왔다. 나를 적실 만큼 깊고 진한 그것은, 아마도 그의 페로몬이었을 거다. 기이하고 낯선 감각이지만, 받아들이는 편이 나았다. 입술을 떼어 내면 불같은 갈증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더, 조금 더. 애타는 기분에 부지런히 혀를 놀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허리를 달싹이고 있었다. 무릎을 뒤틀어 그에게 몸을 붙이고는, 두 볼기 사이를 그의 허벅지 위에 문질러댔다.
야릇하고 염치없는 움직임이었다. 자각한 순간 놀라 멈추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서툰 도발을 묵묵히 지켜보던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뜨거운 손바닥이 나의 등허리를 짚었다.
화인을 찍듯 선명한 온도에 나는 입속으로 흐느꼈다. 아래로, 아래로 더듬어 내려간 그의 손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벌을 주듯 강한 힘이었다.
“흐읏…!”
나는 물 위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몸을 파득거렸다. 쥐어뜯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몸이 떨리는 건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오메가로 발현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알파와 교접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아찔한 느낌에 의식을 놓아 버렸다.
* * *
한심하게도, 그 상황에서 잠든 것치고는 몹시 달게 잤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이한의 몸 위에 엎드려 있었다.
좁은 소파에 다 큰 남자 둘이 몸을 포갠 채 잠이 든 꼴이었다. 남의 품에 안긴 자세가 편했을 리 없는데. 일하는 곳에서 늘어지게 잠들어 버리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사이 누가 다녀간 건 아닌지, 몇 시나 된 건지 확인하고 싶은 기분에 초조해졌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등허리 뒤로 단단하게 그의 팔이 감겨 있었다.
“저기, 서이한….”
이한은 아무 대답이 없다. 손님이 없는지 PC방 안은 조용했다. 귓가에는 오로지 그의 심장 소리와 숨소리뿐이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새삼,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렇고, 나도. 하긴. 살아 있으니 이렇게 살아내기가 힘든 것이겠지, 하고도 생각했다.
힘들다는 생각까지 고요해질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가슴 아래 겹쳐진 이한의 몸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이내 그의 손이 내 등 가운데를 터억, 짚었다. 내 몸의 무게 따위 별거 아니라는 듯, 그는 나를 위에 얹은 채로 가볍게 상체를 바로 세웠다. 코알라처럼 품에 매달린 자세가 부끄러웠다.
“미, 미안해. 깜빡 잠들어서. 몇 시지, 지금?”
허둥거리는 나의 등 뒤에서 옷가지가 투욱, 떨어졌다. 저지 집업을 벗어 내 등에 덮어 두었던 모양인지 그는 반팔 티 차림이었다. 핏줄이 불툭거리는 굳센 팔을 보자 뼈다귀만 남았다며 나를 구박하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몸을 작게 옹송그리는데, 그는 내 귓가에서 코를 킁킁거렸다.
“너, 냄새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지금 나오고 있어? 아직 안 가라앉았어?”
나는 화들짝 상체를 뒤로 물렸다. 맡지도 못하는 냄새를 가려 보려고 셔츠 앞자락을 모아쥐는데, 그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너랑 있으면 이상하게 잠이 잘 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였다. 그 한마디에 마음의 밑바닥에 작은 진동이 일었다. 뭐라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그는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너 아까, 느꼈지?”
은밀한 감각을 들킨 기분에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붉어진 볼을 가리려 고개를 숙였지만, 귀 끝까지 새빨개져 버려서 별로 소용도 없었다.
“뭐, 뭘…?”
“페로몬에 반응하는 것 같던데.”
“…내릴래. 내려 줘.”
“왜? 대답이나 해.”
“이, 이것 좀 놔줘. 응?”
이한은 내 허리에 감은 손을 풀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웃옷을 주워들었다.
“맞네. 이제 느껴지나 보네.”
“…….”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내 말이 틀려? 지금 한번 시험해 봐? 어?”
“하, 하지 마. 나, 기운 하나도 없어.”
“말 돌리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맞아. 네 말이 맞으니까, 제발 좀 내려 줘…. 응?”
항복처럼 하는 말에 그는 한쪽 입꼬리를 비죽이 끌어 올리다가 도로 인상을 썼다.
“누가 잡아먹는대?”
잡아먹을 듯 사람을 괴롭혀 놓고는, 그는 면박을 주며 겨우 나를 풀어주었다. 내가 정산을 확인하기 위해 카운터를 살펴보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배울 수 있겠네. 닫는 방법.”
“…가르쳐 줄 거야?”
“그래. 내일 밤부터.”
“밤에? 아침엔?”
“미쳤어? 등교 전에 그랬다가 또 지각할 일 있어?”
어제도 나는 그의 앞에서 흥분에 까무러쳤었다. 핑계를 대자면,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는데도 그가 계속 몰아붙였던 탓이다.
정신을 차린 후에도 몸이 떨려서 오전 강의에 들어가지 못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왜 유난이냐며 투덜거리던 그는 축 늘어진 나를 제 방 소파 위에 내버려 둔 채로 저 혼자 학교에 다녀왔었다.
“어젠 네가 너무 심해서 그런 거잖아.”
“그럼, 오늘은?”
발끈해서 되받아쳤지만, 곧바로 이어진 역공에 할 말이 없어졌다. 오늘 나는 누가 봐도 이상하게 굴었다. 그만하라고 밀어내 놓고는 다시 달려들어 입을 맞춘 것도, 아래를 비벼 댄 것도, 그러다 제풀에 쓰러져 버린 것도 모두 나였다. 나는 낡은 셔츠 끝을 쥐어뜯으며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 그런데 여기서 자꾸 이러면 곤란해. 오늘도, 잠든 사이에 누가 오기라도 했으면….”
“뭐 어때.”
“일하는 곳이잖아. 사장님이 알면 해고당할 거야.”
“그럼 일 끝나고 해.”
“끝나면 새벽 2신데, 어디서 뭘 하자고.”
“내 집으로 가든지.”
“뭐?”
“잘됐네. 자고 가면 되겠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났는지 그는 미간에 깊게 주름을 잡았다.
“왜 그런 표정인데?”
“자고 가라니, 그게 무슨….”
“왜? 좁을까 봐?”
“그 얘기가 아니잖아.”
“내 집 넓어. 침대도 넓고. 둘이 살아도 충분해. 네 집보다 나을 텐데. 그 손바닥만 한….”
굳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나도 눈살을 찌푸렸다. 제 생각에도 실수다 싶었는지, 그는 주춤거렸다.
“어…. 그게 아니라, 내 집이 학교에서 더 가까우니까.”
“…….”
“그래. 거기서 자면 아침저녁으로 왔다 갔다 할 거 없이 편하겠네. 뭐가 문제야?”
“내 집 놔두고 왜 네 집에서 자? 어머니 때문에라도 안 돼, 그건.”
“다 큰 새끼가 엄마 타령이야? 그냥 친구 집에서 잔다고 해.”
“어머니가 아프셔. 같이 있어야 해.”
내 말에 이한은 순간 입술을 꼭 다물었다. 늘 굳게 치켜 올라가 있던 눈썹 끝이 기우뚱, 아래로 기울어졌다. 다시 입을 연 그는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했다. 꼭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프셔…? 어디가?”
“…신장이 안 좋으셔.”
“신장?”
“그래. 투석하신 지 좀 됐어. 계속 간호해야 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집은 못 비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몸이 흔들리니까 마음도 흔들리는지,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가 줄줄 입에서 새어 나왔다. 머쓱한 기분에 시계를 보니 어느덧 교대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시간 다 됐다. 나 마감해야 해. 오늘 고마웠어. 내일 봐.”
그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지만, 이한은 또 내 인사를 무시했다. 집까지 바래다줄 생각인지 PC방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나는 그의 고집을 말릴 재간이 없었다. 한숨을 쉬며 시제를 확인하는데,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요즘 바쁘구나.]
이준이었다. 확인해 보니 1시간 전에도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한이 밤늦도록 PC방에 있다 같이 집에 돌아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준에게 제때 대답하지 못하는 적이 많아졌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이준은 기분이 나빠 보였다. 늘 차분하던 메시지에서는 전에 없이 예민함과 울적함이 느껴지곤 했다. 언짢아할 일을 더 얹어 주고 싶지 않았는데, 또 답이 늦어 버리다니.
나는 다급하게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마음이 앞서 손가락이 더 버벅거리는데, 갑자기 출입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고개를 드니, 마음이 바뀐 건지 이한이 문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사를 다시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그가 휙, 고개를 돌려 나를 쏘아보았다. 말랑해졌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다시 싸늘하게 굳은 얼굴이다.
“야, 너 내일은 빨리 와.”
“응…?”
“아침에. 빨리 오라고.”
“아, 알았어.”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 씨발, 참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날카로운 눈빛만 남기고 문이 닫혔다. 냉랭한 태도에 한기가 돌 지경이었다. 문득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무얼 기대할 사이가 전혀 아닌데, 실망하는 기분이 되어 버렸던 순간을.
지금도 그랬다. 다정함 같은 걸 나눌 사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 봐도 그가 냉정하게 굴 때마다 마음은 자꾸 움츠러든다.
가늘게 어깨를 떨며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답장해야 했다. 이준은 나에게 다정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형’으로 친근해졌던 호칭이 어느새 다시 ‘선생님’이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유일한 기댈 곳인 그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죄송해요. 요즘 PC방에 손님이 많아졌어요.]
거짓말이었다. 원래도 손님이 많은 가게는 아니었지만, 이한이 오게 된 후로는 늦은 밤 시간의 손님이 아예 뚝 끊어져 버렸다. 이한이 이래저래 매출을 올려 주지 않았다면 사장님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준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처음의 하루 이틀을 망설이는 사이 더 많은 일들이 생겼고, 이제는 사실을 털어 놓기 더 어색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입단속을 시키던 이한의 으름장이 아니더라도, 말하기 곤란한 일투성이였다.
‘선생님. 저 오메가로 발현했어요. 선생님이 주신 시계를 잃어버려서 난감해졌어요. 저한테서 페로몬이 줄줄 새어 나온대요. 그걸 가라앉히려고 선생님의 이복동생과 매일 키스하고 있어요. 더 심한 스킨십도 하고요.’
그런 민망한 이야기뿐이라 참고는 있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말을 주고받다가도, 나는 문득 이준에게 묻고 싶어지곤 했다.
‘선생님은 왜 저에게 그 시계를 주었나요? 선생님은 내가 발현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그럼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나요? 날 위한 거였나요? 아니면, 아니면 혹시….’
여러 가지 의문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지만, 그뿐이었다. 부끄러움과 의문, 혼돈과 무력감이 뒤엉켜 나는 결국 무엇도 물을 수가 없다.
[그래? 별일은 없고?]
[네. 선생님은요?]
[여전하지 뭐. 귀국하고 싶은데 할아버지가 자꾸 붙잡으셔. 이번 학기 등록했던 것도 휴학해야 할 것 같고….]
그가 애초에 이야기했던 한 달은 이미 훌쩍 지나 있었다. 막연히 그가 돌아오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던 나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 돌아오냐는 질문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걸 물을 자격도 되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일은 많이 바쁜 거야? 학교 다니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큰일이네. 귀국해서 적응하는 거 도와주려고 했었는데 늦어져서 미안해.]
나는 그저 그가 보내 주는 따뜻한 말들에서 조각난 온기를 얻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 이상을 고민하거나 바라는 건 사치일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냥 평소보다 손님이 좀 많아서요.]
[무리하지 말고. 몸 상하면 안 되니까.]
[네.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응…. 빨리 돌아가서 만나고 싶다, 윤오야.]
또, 그는 이렇게 뜻도 모를 상냥한 말을 하고, 나는 그것에 안심했다. 손에 잡히지도 어깨를 기댈 수도 없는 메시지 따위가 나의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냉대하는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내게 따뜻하게 굴어 준다는 게 좋아서. 마음을 기댈 곳이 여기뿐인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러나 나는 문득 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검고 차갑고 긴 계단과 가로등 불, 시린 밤하늘이 오늘따라 쓸쓸했다.
아니, 사실은 늘 그랬다. 마음은 부풀었다가도 거품처럼 꺼부러지곤 했다. 잠자리에 누워 이준에게 인사말을 건네던 나는, 눅눅한 이불 속의 핸드폰 불빛이 성냥팔이 소녀가 바라보던 성냥불 같다고 생각했다. 따스하지만, 곧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무언가 같았다.
* * *
그렇게 잠든 밤이 지나고, 새벽이 어스름에 물들어갈 무렵이었다. 나는 배 속이 홧홧하게 당겨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입이 갈증으로 타는 것 같고, 방은 아직 어둑했다. 무언가 색정적인 꿈을 꾸었던 것 같기는 한데, 눈 뜬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문득 아랫도리에 축축함이 느낀 나는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옆의 이불에 누운 어머니는 아직 곤히 잠들어 깨어날 기색이 없었다.
머뭇머뭇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처음에는 몽정을 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달랐다. 앞쪽은 발기해 있지도 젖어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배출한 뒤의 후련함이 아니라 간질간질 몸이 달아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설마….’
기묘한 예감에 심장이 주저앉았다. 허리를 웅크리고 이불을 더 깊게 뒤집어썼다. 설마,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손을 빼서 허리 뒤로 넣었다. 골 사이를 더듬자 곧바로 질척한 습기가 느껴졌다. 손이 가까워진 것만으로 아래가 바르르 떨렸다.
“흐웃.”
저절로 새어 나오는 신음에 놀라 이불을 입에 물었다. 왜 이러지, 어떡하지. 패닉해 버린 머릿속과는 달리 손끝은 거침없이 안쪽으로, 안쪽으로 다가갔다. 이내 손가락이 아래의 구멍에 닿았다. 젖어 있을 리 없는 그곳이, 흠뻑 젖어 있었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끈적한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한의 책에서 보았던 오메가의 그곳을 떠올렸다. 경악보다 야릇한 기분이 먼저 올라왔다. 새로 깨어난 감각은 무서울 정도로 민감했다.
수음을 처음 해 봤을 때처럼 자신의 몸이 무섭고 궁금하고 갈급해졌다. 뭘 할 줄도 모르면서 손끝으로 입구를 둥그렇게 문질러 보았다. 애매한 손짓만으로 하반신이 죄다 팔딱거렸다. 축 늘어져 있던 페니스로도 피가 몰려갔다.
그 후로는 그저 본능의 영역이었다. 나는 몸속에서 누가 잡아끌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런 저항감 없이 두 마디가 빨려 들어갔다. 안쪽은 매끄럽고, 뜨겁고, 넘칠 만큼 흥건했다. 손이 들어간 자리만큼 왈칵. 구멍 밖으로 물이 밀려 나왔다.
내벽은 나를 재촉하듯 시끄럽게 맥박치고 있었다. 더 깊게 손가락을 넣고 안쪽을 더듬었지만, 이런 일에 익숙지 않은 손길은 어설프기만 했다.
‘분명 더 기분 좋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성에 차지 않는 기분에 다른 쪽 손을 앞쪽으로 가져갔다. 뒤쪽을 어루만지며 동시에 좆 기둥을 쥐고 흔들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겪어 본 적 없는 성감이 견딜 수 없이 짜릿했다. 허리가 멋대로 들썩거리고 발끝이 곱아들었다.
몰래 숨어 자위를 할 때마다 나는 시간에 쫓겨 빨리 사정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 일에 이제는 꽤 요령이 생겼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절정에 도달한 건 드문 일이었다. 사정을 하고 난 뒤에도 오싹한 쾌감이 잔열처럼 몸에 감돌았다.
휴지를 집어 들기 위해 이불을 걷어내자, 단칸방의 음울한 풍경이 내려앉았다. 퀴퀴하고 습한 냄새와, 내가 저지른 짓에 대한 섬뜩한 현실감도 함께.
방금 나는, 어머니와 함께 잠든 방에서 흥건하게 젖은 뒤쪽을 쑤시며 자위를 했다.
“하….”
너무 이상한 일이라 자괴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작게 한숨을 쉰 나는 휴지로 적당히 아래를 닦고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불쾌하리만치 선명했다. 씻지 않으면 다시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버석거리는 얄팍한 이불도 포근하지 않았지만, 새벽 공기는 더 냉랭했다. 욕실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자 쨍한 추위에 몸이 곤두섰다. 얇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용 욕실 안쪽은 밖보다 오히려 더 춥게 느껴졌다.
낡고 닳은 타일 위에 찬물이 떨어져 내리며 뽀얀 김을 일으켰다. 몸을 닦고 젖은 속옷을 빨았다. 스스로를 한심해하다가, 이내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한기에 생각마저 얼어붙었다. 나는 추위에 퍼렇게 질렸다가 붉게 물들어 오른 모양새로 욕실 밖을 나섰다.
“여어, 이게 누구야.”
잰 발걸음이 우뚝, 굳었다. 일주일 정도 잠잠하던 오 실장이 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못 본 척 돌아서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 머뭇거렸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다가왔다. 오늘도 예쁘다는 둥, 인사 좀 하라는 둥, 언제나처럼 기분 나쁜 말을 지분거리던 그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너, 시계 어쨌어?”
“…무슨 시계요?”
“시치미 떼지 마, 새꺄. 요새 선물 받아서 차고 다니던 거 있잖아.”
“이거 좀 놓고 말씀하세요.”
“씨팔, 어디 갔냐고, 멀쩡하게 있던 게!”
그는 제 물건을 도둑맞기라도 한 것처럼 난리를 피웠다. 우악스레 팔을 붙잡힌 것보다도, 그가 그 시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판자촌 안에서는 계속 외투 소매 안에 감추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눈여겨보았던 걸까.
“…집에 있어요. 씻는데 왜 시계를 차고 나와요?”
나는 어설프게 거짓말을 했다. 고장이 나 수리를 보냈다고 하면 그런 돈이 있었냐며 시비를 걸지 모른다.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뜯어보다가 겨우 손을 놓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는 다시 나를 불러세웠다.
“야, 잠깐만 있어 봐.”
추위 속에 사람을 세워 놓고는, 그는 담배를 꺼내물었다. 담배 한 개비가 반 너머 타들어 가도록 말도 없이 담배만 뻑뻑 피우다가 한다는 소리가 또 그 말이었다.
“너, 대학 진짜 다닐 거냐?”
나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목욕 가방을 꾹 움켜쥐었다.
“하실 얘기가 그거면 저 들어가 볼게요.”
“야, 사람 말을 좆으로 들어? 있어 보라니까.”
“…….”
“그거, 꼭 다녀야 되겠냐고.”
“…네.”
“씨팔…. 환장하겠네.”
오 실장은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훑는 듯한 기분 나쁜 눈빛은 언제나처럼 그대로였다. 불편하고 긴 시간 끝에 그가 침을 퉤, 뱉었다.
“됐다, 하…. 네 맘대로 해.”
네까짓 게 무슨 대학이냐는 둥, 저와 일하면 돈을 긁어모을 텐데 미련을 떤다는 둥 또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그는 뜻밖에도 싱겁게 물러났다.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허전한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수리점에서는 다음 주 초에 수리가 마쳐진다고 했다.
문득, 시계를 되찾으면 더 이상 이한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기분에 심장이 무거워졌다. 후련할 일인데, 조금도 후련하지가 않았다. 습기처럼 나를 물들이는 감정은 어쩌면 아쉬움인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늘 그가 고맙지만, 고마운 만큼 무겁고 버거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쉬움을 느낄 만한 말랑한 감정이 내 안에 있었던 걸까.
심장이 쿵쿵 뛰어오르다가, 이내 신경이 팔딱팔딱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한을 떠올린 것만으로 몸이 떨려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내 감정의 이름은 두려움이 맞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에게 닿을수록 모든 것이 내 통제를 벗어나 뒤죽박죽이 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오늘도… 가야겠지, 그 집에.’
이한이 말했던 ‘닫는 방법’을 배운다는 게 뭔지는 몰라도, 만만한 일은 아닐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퇴로가 없는 길의 끝에 덫이 놓여 있을 것만 같았다.
* * *
그리고 나쁜 예감은 늘 그렇듯이, 틀림없이 맞아 들었다. 그다음 날, 손님이 모두 떠난 PC방. 그와의 ‘접촉’이 일어나는 카운터 뒤의 소파. 나는 또 고통인지 지나친 쾌락인지 모를 것에 흐느끼고 있었다.
“…반응하지 말라고 했지.”
“안 하고… 있잖아….”
반대편, 한 발짝쯤 떨어진 곳에 마주 앉은 이한은 나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있었다. 그저 살짝, 페로몬을 열어 두었을 뿐이다.
흐릿한 기운만으로도 파닥거리는 충동을 가눌 수가 없었다. 가슴이 들썩거리고, 아래가 욱신거렸다. 아랫배부터 엉덩이까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잘게 떨려 왔다. 몸의 변화를 가려 보려 두 다리를 바짝 오므렸지만, 몸에 닿는 내 피부가 간지러워 아래가 더 동했다.
“후우…. 마주 내뿜으면, 어쩌자는 건데….”
고막에 닿는 목소리마저도 자극적이었다. 자꾸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피부를 핥고 싶다거나, 끌어안고 단단한 등을 더듬고 싶다거나, 아래를 붙이고 비비고 싶다는.
머릿속의 음탕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는 필사적이었지만, 그는 그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응?”
“흐으….”
“씨발, 또 어제처럼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게 난리 피울 거면서, 왜 이러냐고.”
짜증스러운 그의 핀잔에, 지은 죄가 있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슷한 일이 이틀째 반복 중이었으니까.
전날, 새벽부터 자위를 했던 그 날의 아침에도, 나는 여지없이 혹독하게 시달리고 한심하게 울었다. 내가 그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이한은 방법을 보여 준다며 제 페로몬을 열겠다고 했다.
‘시범 삼아서 하는 거야. 딱히 유혹하려는 건 아니니까 엉뚱한 생각 하지 마.’
뜻 모를 말을 강조하고는, 그는 깊게 숨을 뱉었다. 그가 다시 눈을 들어 나를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몸은 굳었는데, 피는 불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오싹오싹 끓어올랐다.
그가 왜 유혹이 아니라는 말을 했는지를, 페로몬을 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이 없이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의식조차 못 한 채로 그에게 유혹되어 버렸으니까.
‘후읏.’
‘하으… 하, 아아….’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한과 나는 거실 소파에서 뒤엉켜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의 입술을 빨며 그에게 다리를 얽고 몸을 비벼대는 중이었다.
그도 제법 열중한 태도로 나에게 호응했다. 능숙한 손길로 등을 감싸 안더니 소파 위에 나를 눕혔다. 가슴 위로 그의 가슴이 겹치자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굵직한 손마디가 티셔츠 아래를 더듬어 들어오는 것도 야릇했다.
빨리. 더 빨리, 더 깊게. 본능이 속삭이는 소리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대로, 하게 되는 걸까? 어디까지?
허벅지에 닿은 그의 성기는 터질 듯이 부풀었고, 내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두면 물이 흘러가듯이 선을 넘어 버릴 것 같았다. 위기감이 솟아올라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안 돼, 더 이상은….’
‘뭐…?’
‘끄, 끝까지 하는 건… 싫어.’
나는 ‘아직은’이라는 끝말을 겨우 삼켰다. 숨을 할딱이면서도 한사코 고개를 젓는 나를 보고 그는 황당해했다. 찌푸려진 그의 얼굴이 두려워 몸을 바르작거리던 나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미안해….’
아마 하지 않는 편이 나은 말이었나 보다. 황당해하던 이한은 이내 분노하기 시작했다. 쥐고 있던 나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고는 욕지기를 뱉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흥분을 혼자 수습했는지, 그는 한참 후에야 다리 사이가 가라앉은 채로 거실로 나왔다.
그는 모욕당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변명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욕구를 해소하고 나온 그의 상황이 나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달아오른 몸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끙끙거리고만 있었다. 그는 싸늘한 눈으로 내 앞에 앉았다.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묻자, 칼날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가긴 어딜 가? 내가 건드리는 게 싫으면, 네가 직접 해보든지.’
‘그, 그러니까 화장실 좀….’
‘아니, 여기서 해. 내가 보는 앞에서.’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울음을 터뜨려 버릴 때까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단단히 기분이 상했는지 한나절 너머 내 앞에 나타나지 않던 그는 다음 날 오후쯤 연락해 왔다. 페로몬이 다시 새어 나가고 있을까 걱정하던 나는 뭐든 참고 배울 수 있으니 다시 와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각오는 말뿐이었고 나아진 건 없었다. 나가 여전히 내 몸을 조금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또 똑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야, 사람이 말을, 하면… 예의상 닫는 시늉이라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내가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게서 페로몬이 새어 나가고 있다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뭘 닫으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아가미로 숨을 쉬어 보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씨발, 이 냄새….”
‘냄새’를 언급하는 그의 말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그의 페로몬에 반응하고는 있지만, 나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페로몬을 ‘냄새’로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건 핏줄을 따라 흘러들어오는 짜릿한 전류, 그를 둘러싼 공기가 나를 애무하는 야릇한 느낌 같은 거였다.
“나, 나… 냄새나? 이상…해?”
헐떡이면서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더러운 냄새가 난다는 말로 한 달이나 시달림을 당한 탓에, 냄새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오그라들었다. 더구나 그도 내 페로몬을 ‘역겨운 암컷 냄새’라고 부른 적이 있었으니까.
그는 대답 없이 초조하게 혀끝으로 제 입술을 핥았다.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꼭 쥔 채였다. 깨끗하던 흰자위에 핏발이 올라왔다. 검은 눈동자에 어린 것은, 짜증과 괴로움, 그리고, 아마도… 정욕이었다.
혹시 그는 지금, 화가 난 게 아니라 흥분한 걸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두려움과 함께 찌릿한 희열이 밀려왔다.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훑는 사이, 그는 성큼 나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좁아진 거리만큼 열기는 더 가까워졌다.
“한윤오, 너는 정말….”
이한은 말끝을 흐리며 꿀꺽, 침을 삼켰다. 목울대의 움직임이 느리고도 관능적이었다. 내가 그랬듯 그도 나에게 유혹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나의 아래에서 축축한 것이 훅 비어져 나왔다. 아마도 나는 그 순간 아주 짙고 축축한 페로몬을 내뿜었을 것이다.
“아, 안 돼. 안 돼, 나….”
“…….”
“마, 만져 줘….”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나는 흐느끼듯 항복했다. 증기처럼 뜨거운 숨이 배 속을 다 태울 것 같았다. 온몸의 근육이 무력하게 녹아내려 몸이 떨렸다.
“이 덜떨어진, 새끼가…. 뭐 하자는, 건데….”
이한은 언제나처럼 이죽거리는 말투였다. 그러나 그의 눈가는 한껏 붉어져 있었다. 표정에서도 숨소리에서도 여유는 사라졌다. 그는 거칠게 내 턱을 잡아 올리고는 이를 악물었다.
“너, 씨발, 진짜….”
나에게 윽박지를 듯하던 입술 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도 꼭, 항복처럼 들렸다.
“후…. 어디를.”
그의 손은 금방이라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 나를 매만져 줄 듯 달싹였다. 나의 머릿속에는 끔찍하고 황홀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가 내 다리를 잡아 벌리고, 저 깊은 안쪽까지를 헤집어 내 안을 그로 가득 채우는 장면이. 나는 제풀에 놀라 고개를 저었다.
“읏, 미안, 나 모르겠어. 아으, 이, 이런 건 도저히….”
며칠간의 학습으로, 나는 사정해 버리는 것이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손이 슬그머니 내 바지 앞으로 향하자, 이한의 눈이 흔들렸다.
“야, 뭐 하게?”
“나, 나 그냥…. 미안….”
놀랍게도, 나는 그의 코앞에서 자위를 할 작정이었다. 나의 것은 이미 아플 정도로 발기해 있었고, 어차피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나에게 무리였다.
감당할 수 없는 욕정이 나를 다 집어삼키기 전에 달아나고 싶었다. 지금 달아나지 않으면 나는 분명 더 깊고 끈적한 수렁에 빠지고 말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출해 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나를 지배했다. 만지고 싶고, 도달해 버리고 싶었다. 실은 만져 주길 바라고, 도달할 수 있게 이끌어 주기를 바랐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일 같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 나 이거… 못 배울 거 같아. 흐으, 어차피, 곧 시계도 다 고쳐지니까. 응…? 못 하겠어.”
나는 뭔지도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바지와 속옷을 잡아 내렸다. 염치없게도 빳빳하게 일어난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성이 마비되어 부끄러움을 느낄 여력이 없었다. 느낄 수 있었다고 해도, 부끄러움이 충동보다 크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손을 뻗어 초라하게 발가벗은 나의 것을 쥐었다. 바짝 마른 사막에 몇 방울의 물이 떨어진 것처럼, 파스스, 욕구가 증발하며 몸을 더 끓게 했다.
발정 난 짐승처럼 제 성기를 잡고 흔들었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성감이 충족되지 않았다. 애타는 기분에 하반신이 덜덜 떨려 왔다. 코앞에서 그 꼴을 보고 있던 이한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미친 새끼가….”
그의 갈라진 목소리에서, 나는 불쾌감만큼이나 생생한 흥분감을 느꼈다. 입술을 짓씹던 그는 결국 손을 들었다. 스스로를 애무하던 내 손목을 잡아 비틀고는, 그의 손으로 내 것을 붙들어 주었다.
닿은 것만으로 사정감이 치솟았다. 길고 투박한 손가락이 기둥을 쓸자 현기증이 일었다. 더 깊게 닿고 싶다는 느낌에 목이 말랐다. 그의 가슴팍은 내가 신음하는 것보다도 더 빠른 박자로 들썩이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나는 그의 바지 앞으로 마주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것도 당연하다는 듯 뜨겁고 단단해져 있었다. 그것을 그러쥔 순간, 몸 안을 파고들던 전류 같은 기운이 나를 아예 꿰뚫어 버렸다.
홀린 것처럼 그의 페니스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기분 탓인지 그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 향기를 실컷 들이마시면 갈증이 다 사라질 것 같다. 핏줄이 툭 불거진 흉포한 성기를 보며,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했다.
‘빨고 싶어….’
입술을 작게 달싹거렸지만 차마 그곳으로 다가가지는 못했다. 나는 대신 그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겹쳤다. 내가 먼저 키스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런 걸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입술을 벌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밀려 들어왔다. 뜨끈한 체온과 매끄러운 감촉. 혀가 휘감기고 몸이 맞부딪쳤다. 더 느끼고 싶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웠다. 절정 직전의 쾌감 속에서 오로지 본능에 따라 손과 입술을 움직였다.
“아…!”
예상대로였다. 아찔한 절정이 나를 기쁘고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더 깊고 짙은 늪으로 잠겨 드는 느낌에, 나는 또 그대로 눈을 내리감았다.
* * *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나는 등과 어깨를 감싼 따스한 체온을 느꼈다. ‘그 애가 나를 안고 있나 봐’ 하고 생각했다. 나와 있으면 잠이 잘 온다던 그 애의 말도 떠올랐다.
기진맥진한 탓도 있겠지만, 의식을 잃었을 때 몇 번이나 그에게 안겨 잠들었던 걸 보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긴 잠에 빠져 있다가, 나를 감쌌던 온기가 가시고 난 뒤에야 깨어났다. 나는 카운터 뒤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 애의 너른 등이 눈앞에 보였다.
“뭐 해…?”
“교대 시간 아냐? 정산하고 있는데.”
이한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일주일간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 그러는지, 그는 능숙하게 마감 정산 업무를 처리했다. 기겁한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마, 마감 시간이라고? 나 얼마나 잔 거야?”
나는 허둥거리다가 와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뒤를 돌아본 이한은 취객처럼 주저앉은 나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나의 팔을 움켜쥐고 위로 들어 올리려 했지만, 흐물흐물해진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뭐 해?”
“…다리가 풀렸나 봐.”
“가지가지 하네, 진짜.”
이한은 다시, 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구박을 당할 거라는 생각에 겁을 집어먹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바람에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그가 나의 앞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는 걸.
“뭐 해? 업혀.”
스스럼없는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앞에서 자위를 해 버린 일이나, 지나친 흥분으로 기절한 것보다도 무심한 그 말이 더 부끄러웠다.
“아, 아냐. 괜찮아. 걸을 수 있어.”
몸을 옆으로 기울여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다 결국 휘청거렸다.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넘어지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귀찮게 굴지 말고 업히라니까.”
“그치만….”
“빨리. 시계 볼 줄 모르냐? 시간 다 됐다고, 벌써.”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PC방 출입구의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대를 위해 들어오던 사장님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장님은 교대 시간 무렵 몇 번 PC방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이한과 마주친 적이 있다. 나의 가정형편을 대충 알고 있는 사장님은 그를 질 나쁜 사채업자 정도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지금도 신고해야 하는 상황인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사장님. 이, 이쪽은 제 친구…예요. 여기 자주 놀러 와요. 이 친구가 주식을 해서. 어, 저기… 미국 주식이요.”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인데, 풉, 하고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한 웃음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그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린 건지 손 위로 올라온 눈에 당황한 빛과 웃음기가 뒤섞여 있다. 그가 웃는 걸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웃음이 아닌 맑은 웃음. 사나워 보이던 눈매가 살풋 휘어진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헛기침을 하고 표정을 가라앉힌 이한은 사장님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의외로 내가 얼버무린 말에 순순히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네. 윤오 친구예요. 얘, 지금 다리가 풀린 것 같아서 업어 주려고요. 가자. 빨리 업혀.”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친구’의 호의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부끄러워도 업히는 수밖에. 나는 머뭇거리며 그의 등 위에 내 몸을 얹었다.
그는 나를 가볍게 들어 올려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누군가에게 업혀 본 게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간만이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차라리 다시 기절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귀갓길에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그의 등에 얼굴을 깊게 묻었다. 넓고 반듯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등이었다. 그에게서 희미하게 나무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 진짜 주식해.”
한참을 타박, 타박 걷던 그는 불쑥 엉뚱한 말을 했다. 가만 보니 귓불이 조금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집 나오면서 내 명의로 돼 있던 재산들을 마음대로 다 현금화시켜 버렸거든. 목돈은 있는데 새로 돈 들어올 데는 없으니까 여기저기 돈도 굴리고 투자도 해. 가끔… 미국 주식도 하고.”
주절주절 늘어놓는 투가 변명 같기도 했다. 부잣집 애들은 반항도 유별나게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저 애도 허둥거릴 때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웅얼거리는 모양은 그냥 또래의 아이 같아서, 왠지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알았어.”
“아, 진짜라니까.”
“응. 알아.”
“…….”
“…….”
발자국 소리는 까만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이어졌다.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체온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그가 나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지 않아도 가슴에 닿은 체온이 멋대로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다. 온기에 멀미가 날 것 같아서, 나는 무엇이든 말하고 싶어졌다.
“저…. 사장님한테 마음대로 친구라고 해 버려서 기분 나빴지. 미안해.”
“…….”
“저기,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집 앞까지 네가 같이 와 줬던 걸 몇 번 보셔서…. 누군지 궁금해하시길래 어머니께도 비슷하게 말했었거든.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동기라고. 미안. 아니, 사실 그것만 미안한 게 아니라… 너한테는….”
“…….”
“어쩌다 보니 너무 많이 폐를 끼쳐 버려서 너무 미안해, 전부다. 시계만 찾으면 아마 더 번거롭게 구는 일은 없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줘.”
아마도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날 너무 싫어하지는 말아 줘’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부족한 말주변 탓에 말이 멀리에서부터 빙빙 돌았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해야 정말 하고 싶은 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건지 막막하기만 했다. 마른 입술을 꾹꾹 깨무는데, 그는 다시 퉁명스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미쳤어? 그 좆같은 걸 다시 차고 다닐 생각이야?”
“…왜?”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 줬잖아. 머리가 안 돌아가? 씨발, 선물이면 개 목줄이라도 좋다고 차고 다니겠다는 거야, 뭐야?”
심술궂은 목소리에 풀어졌던 마음이 도로 꽉 닫히는 기분이었다.
“그 시계 때문에 애들 사이에서 등신 취급은 있는 대로 받아놓고. 넌 무슨, 자존심도 없냐?”
“…요새도 똑같잖아. 어차피 그게 없다고 애들이 날 안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뭐.”
“아니, 애초에 그딴 걸 안 차고 다녔으면 걔네한테 찍힐 일도 없잖아. 서이준 그 또라이 새끼, 혹시 너 엿 먹으라고 준 거 아냐?”
“그게 없었으면 애들이 내가 오메가라는 걸 알았을 거라며.”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는 다른 트집을 잡았다.
“씨발, 그리고 너, 시계만 있으면 해결될 것 같아? 페로몬에 면역도 없으면서. 지나가던 알파가 찔끔 흘리기라도 해 봐, 네 쪽이 먼저 눈이 뒤집고 그 새끼한테 달려들 게 생겨놓고는, 무슨.”
트집이라기엔 너무 깊게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라,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히트 사이클은 어쩔 건데? 평소에는 똑바로 관리되던 사람들도 사이클 때는 페로몬이 주체가 안 되는 거 몰라? 너 같은 애는 정신도 못 차릴 텐데, 그 좆같은 시계 나부랭이로 그게 가려질 것 같아?”
“나, 나도 사이클…이 오는 거야?”
“그럼, 안 오겠어?”
“언제?”
“몰라. 돼 봐야 알지, 네 주기를 왜 나한테 물어봐?”
“…주기적으로 오는 거지?”
“주기적으로만 오면 그나마 다행이지. 근처에 러트 온 알파가 있으면 휘말려서 시작할 수도 있어. 너같이 조절도 못 하는 애들은 멀리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꼼짝없이 휘말릴걸. 그런 식으로 당한 오메가들이 한둘인 줄 알아?”
“…….”
“게다가 알파든 오메가든 첫 번째 사이클은 엄청 길고 세게 와. 약 먹고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 보통 오메가들은 첫 사이클 무렵엔 그냥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다고.”
“약이… 있어? 무슨 약?”
“…사이클 억제제.”
“그, 그건 어디서 구하는데?”
“재단에서 배급해 줘. 가문에 소속된 일족 사람들한테.”
“그럼, 나는….”
“넌 못 구한단 소리지. 그러니까 약 같은 건 신경 쓸 것도 없어.”
히트 사이클. 이한의 방에서 봤던 책에도 그 얘기가 쓰여 있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개념이지만, 그게 나한테 일어났을 때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산 너머에 있는 더 큰 산을 알게 된 기분에 말문이 막혔다. 이한의 목소리는 점점 더 퉁명스러워졌다.
“그러게 내가 아무 데도 나다니지 말고 틀어박혀 있으라고 했잖아. 좋은 꼴 볼 것도 아니면서 대체 왜 학교는 꾸역꾸역 다니는 거야?”
막막한 기분 속에서도 화부터 올라왔다. 학교는 왜 다니냐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
“하여간 이해가 안 된다니까. 괜한 억지 쓰지 말고 안전한 데에서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 그래, 안전한 데. 예를 들면….”
“네가 뭐라고 해도 난 학교 다닐 거야. 그러니까 그 얘긴 그만해.”
오래 쌓인 짜증 때문에, 내 생각보다 더 날카롭게 말이 나가고 말았다. 이한은 여지없이 발끈했다.
“뭐? 제 발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큰소리만 치면 다야?”
“…목소리 높이고 있는 건 너잖아. 나 걸을 수 있어. 내려 줘.”
“지랄하네. 까불다 넘어지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내려 달라니까.”
“아, 씨발, 뭐 하는 짓이야, 계단에서? 떨어뜨릴 뻔했잖아. 다치고 싶어서 환장했어?”
나를 업고 계단을 오르던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리겠다고 팔다리를 파닥거리던 나는 기가 죽어 얌전해졌다. 입을 닫고 있는 동안, 호흡도 잦아들고 기분도 가라앉았다.
싸우려던 건 아니었는데. 내가 그에게 대들 입장이 전혀 아닌데. 커다랗고 단단한 어깨에 볼을 기대고 있자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가 아무리 내게 화를 내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들러붙어 번거롭게 구는 것은 내 쪽이다.
그런 주제에 도움을 주려는 손길에 기겁하질 않나, 만져 달라고 징징거리다가 돌연 손대지 말아 달라고 뻗대질 않나. 닫는 방법을 배우겠다고 했다가, 다시 못 배우겠다며 울어 버리기까지 하고.
‘얘도 내가 귀찮겠지….’
‘훈련’이 절정일 무렵 내가 제풀에 나가떨어질 때마다, 그는 늘어진 나를 곱게 정돈해 놓곤 했다. 들쑤셔 놓은 페로몬과 흥분감을 저 혼자 수습할 때마다 그가 느꼈을 짜증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라던 그의 말이, 사실 다 맞는 거였다.
“…미안.”
“뭐가, 또.”
“그냥… 다. 전부 다.”
“씨발, 그놈의 미안하다는 소리 좀 그만해.”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는, 언성을 높일 때보다도 더 화가 난 것처럼 들렸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는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용기를 내 내려 달라고 말했지만, 그는 무시하고 나를 업은 채로 집 안까지 들어갔다.
어머니는 호들갑스레 내 몸을 부축하며 그에게 감사를 건넸다. 그는 어머니에게는 제법 예의 바른 태도로 인사했다. 그러곤 나에게는 언뜻 인사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명령에 가까운 말을 남겼다.
“아침에, 방에서 봐.”
“…내일 아침?”
“그럼 언제겠어? 일찍 와.”
언뜻 무던하게 들렸지만, 내려다보는 눈빛의 한기까지 더해져 나에게는 더없이 차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스치듯 보았던 웃음, 등에서 전해 오던 체온과의 격차 때문에 그 말이 더 춥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긴장이 풀린 몸에 올칵 설움이 밀려왔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어깨를 바들바들 떨다가 내일 아침 알람을 맞추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이준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것도 시간 차를 두고 여러 번.
[윤오야, 아르바이트 중?]
[자나 보네. 요즘 피곤한가 보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너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잘 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안 그래도 어둡게 가라앉은 마음속에서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미안함과 당혹감, 어리석은 절망감. 이한이 가 버린 후부터 계속 가슴을 짓눌러 온 갑갑함까지 다 뒤얽혔다.
마지막 메시지가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더 늦어 버리기 전에 답장을 보내야 했지만, 고민이 길어졌다. 적절한 말은 떠오르지 않고, 계속 계속 하고 싶던 말만 자꾸 맴돌았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말이지만 참기에는 너무 지쳐 버린 나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요. 모든 게 다 힘들어요.]
이준은 나의 푸념 같은 메시지를 곧바로 확인하지 않았다. 뉴욕은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그는 보통 이곳의 시간으로는 새벽, 그의 시간으로는 오전 나절에 나와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다음 일과 중에는 반짝거리고 화려한 일들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삭제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빨리 답장하지 못한 이유를 적당히 둘러대고, 그가 나에게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무언지 물으면 정리될 일이었다. 그런데 담장을 넘어간 감정은 또 멋대로 울컥거렸다. 기어이 더 꽁꽁 숨겨 왔던 한마디까지 덧붙여 버렸다.
[언제 돌아오시는 거예요? 가시기 전엔 금방 올 것처럼 말했잖아요. 벌써 4월이 다 되어 가는데.]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도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으면서 와 달라거나 힘들다는 투정을 부린 게 민망했다. 후련함보다 후회가 컸지만 여전히 메시지를 취소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생각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에게 묻고 싶지만 묻지 못한 것이 오래도록 가득했기 때문에.
재단의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입학 특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나조차 몰랐지만 내가 랑족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천랑대 입학을 제안했을 때. 뭔지 모를 냄새가 묻은 시계를 선물하고 타국으로 떠나 버렸을 때. 그는 어디까지를 예상했던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준을 의심하고 있었다. 나에게 한없는 도움을 주었던, 나의 유일한 기댈 곳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이준을 의심하다니. 그 사실 자체가 너무도 염치없고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이미 피어난 위화감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머릿속의 그늘이 아주 짙어졌을 때, 핸드폰 화면이 알람으로 반짝였다. 이준의 답장이었다.
[그동안은 왜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어?]
놀라 답장할 말을 생각하던 차에, 그는 연이어 말했다.
[힘들다고 말한 적 없잖아.]
그건 정말 서러운 말이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는 모르는 걸까.
[네. 갑자기 이런 말 해서 죄송해요. 그냥 저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냥 자겠다는 말을 입력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답해 왔다.
[너 힘들게 지내고 있을 거 다 아는데. 계속 말을 안 해 주니까 답답했어. 힘든 일이 있으면 꼭 나에게 말해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했는데도, 한 번도 얘기 안 했잖아.]
그 말에 이제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역시 그도 나의 일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정곡을 찔린 기분에.
[마음을 열 생각이 없는 거 아냐, 너는?]
그가 나의 일과를 물을 때마다 그 다정함이 괴롭고 부끄러웠다. 하소연하는 것보다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리는 게 편했다. 남에게 기댈 수도 없고 기댈 줄도 몰라서. 힘들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냥 숨을 죽이고 견디는 게 나은 것 같아서.
[나라고 좋아서 여기 있는 것도 아니야. 귀국해야 한다고 계속 어른들께 이야기하고는 있는데. 너도 내가 뭐가 힘든지는 모르잖아. 네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나도 내 얘길 할 수가 없다고.]
내 눈에는 마냥 달콤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던 그가 ‘힘들다’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게 이상했다.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고 한소리를 들은 직후에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먼저 묻고 말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잠시 머뭇거린 건지, 그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답을 보내 왔다.
[실은 내 정혼자가 지금 뉴욕에 있거든. 요즘 세상에 무슨 얘기인가 싶겠지만….]
TV에서나 듣던 단어가 낯설었다. 정혼자라니. 내가 아는 그 의미의 단어가 맞는 건가 싶었다.
[정혼자요?]
[그냥 집안에서 마음대로 결정한 거야. 큰 부상도 아닌데 할아버지가 날 부르신 게 그거 때문이었던 것 같아. 어떻게든 그 사람이랑 가까워지게 만들려고.]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이라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말에 그가 갑자기 훌쩍 멀게 느껴졌다.
[귀국하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말리시는데 집안 문제라 대놓고 마음대로 굴 수도 없고, 나도 난감해.]
답장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쩐지 멍해져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이준도 언젠가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겠지만, 막연한 미래라고 생각했던 일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게 얼떨떨해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럼 곧 결혼하시는 거예요?]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힘들다는 거잖아. 정말, 너한테는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유도 모르고 충격을 받은 나는, ‘나한테는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말에 대해서 곱씹어볼 여력이 없었다.
[신경 쓰지 마. 그냥 푸념한 거라고 생각해 줘. 내가 알아서 해결해 볼 테니까.]
[아니에요. 그냥, 처음 듣는 얘기라 조금 놀라서요.]
[그래…. 윤오 너는 뭐가 힘든데? 이제 말해 줄 마음이 들어?]
그가 제 이야기를 터놓았으니 나도 무언가 말할 차례 같았다. 너무 힘들다고 먼저 징징거린 것은 내 쪽이고, 힘든 일이 수도 없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일을 어떻게,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황을 정리하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던 이한의 말도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너무 복잡해서.]
발을 빼는 말에 다시 그가 서운해하지 않을지가 신경 쓰였지만, 그는 선선히 대답했다.
[그럴래?]
[죄송해요. 돌아오시면 얼굴 보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정도면 괜찮을까 싶은 긴장감에 나는 입술을 얕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꼬인 상황이 아니라도, 남과 가까워져 볼 기회 없이 늘 밀쳐내기만 해 왔던 나는 타인과의 간격을 조정하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
[응. 곧 돌아갈게. 윤오야. 혼자 둬서 미안해.]
이준은 언제나처럼 다정한 말을 했다. 한계까지 지쳐 버린 탓인지 그의 다정함은 오늘따라 마음 위를 겉돌기만 했다. 이한과의 다툼에, 뜻밖에 듣게 된 이준의 정혼에 관한 이야기까지 더해져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적당한 인사말로 대화를 마친 나는 자리에 누웠다. 이불을 푹 덮고 눈을 감고 있어도 통 잠이 오지 않았다. 유난히 긴 밤 동안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부딪쳐 달그락거렸다. 이준의 상냥함, 이한의 쌀쌀한 태도, 볼에 닿았던 체온. 알파와, 오메가.
* * *
그렇게 피로한 아침이었다. 어머니의 배웅을 뒤로한 채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목요일은 오전 수업이 없지만, 이한의 호출을 받았으니 일찌감치 출발해야 했다. 복잡한 기분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부른 건지 모르지만, 여태까지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거대한 해일을 향해, 끈적한 늪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이한의 방문 앞에서 습관처럼 심호흡했다. 언젠가 그의 방 비밀번호를 들은 적이 있지만, 불쑥 열고 들어가는 건 너무 친근하게 구는 것 같아 나는 매번 벨을 누르곤 했다.
그는 곧 문을 열어 주었다. 막 씻고 나왔는지 상의를 입지 않은 채였다. 머리칼도 피부도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새삼스럽게, 그야말로 새삼스럽게 볼에 홍조가 올랐다.
“뭐 해. 들어와.”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거실로 올라섰다. 나는 우물쭈물 그의 뒤를 따랐다.
“…늦잠 잤어? 오전 강의 있지 않아?”
내가 이한의 집에 들를 때마다 그는 늘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는 집 안으로 제대로 들어갈 틈도 없이 현관이나 거실의 초입에서 나를 적당히 만진 후 학교로 출발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그는 대꾸도 없이 성큼성큼, 한 번도 내가 가 본 적 없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낮고 넓은 침대 끄트머리에 앉더니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지만, 어디까지 따라 들어가도 될지 몰라서 그냥 문가에 서 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흘긋 보더니 물었다.
“얼굴은 왜 그 모양이야?”
“…잠을 잘 못 잤어.”
“잘 안 들려.”
드라이기 소리가 시끄러우니 말이 들릴 리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침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와 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서 다시 대답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그는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다시, 이번에는 꽤 긴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시선을 피하려고 해도, 헐벗은 그의 몸이 자꾸 신경 쓰였다. 보는 것만으로 힘이 느껴지는, 잘 조각된 단단한 몸.
“할 말 있어. 여기 앉아 봐.”
그는 무심한 손길로 제가 앉은 자리 옆을 탁탁, 두드렸다. 희고 정갈한 침대 시트에서는 어렴풋이 비누 향이 났다. 침대 위라는 공간 탓인지 맨살을 본 탓인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어색하게 걸터앉았다. 초대받았지만, 어쩐지 불청객이 된 기분에 몸을 빳빳이 굳힌 채로.
할 말이 있다고 해 놓고는, 그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침묵이 덥고 답답해 몸이 말라붙는 것 같았다. 아니, 축축하게 땀이 날 것 같았다.
가만히 숨을 죽이면 내 몸 안을 떠도는 페로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페로몬을 가라앉히는 것은 흥분을 참는 것과 비슷한 요령일 거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알파의 옆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발끝이 간지러운 나에게는 아직 무리였다.
충동은 잔잔히, 그러나 꾸준히 일렁거렸다. 따끔거리는 침묵이 충동을 더 부추겼다. 발끝만 내려다보던 나는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수, 수업… 안 가?”
“…….”
“…어제는, 미안했어. 아, 아니. 고마웠어. 집까지 그렇게… 바래다줘서.”
“너 말이야.”
“응…?”
“페로몬 닫는 거, 못 배울 거 같지?”
“아니야. 배울 수 있어. 배워 볼게. 미안. 아니, 그게 그러니까…. 어제는 그냥, 잠깐 힘들어서….”
“그래?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던데.”
“혹시 못 배우더라도…. 아, 아니 배울 거지만, 아무튼 시계도 곧 찾아올 거니까….”
내가 횡설수설해서인지, 차분하게 말을 꺼냈던 그는 또 왈칵 짜증을 부렸다.
“씨발, 그 좆같은 시계는 내다 버리라고, 그냥.”
그는 날이 선 한마디를 꺼내 놓고 또 한참 머뭇거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어떤 말을 이을지 알 수 없어서 다시 긴장감이 곤두섰다.
이한의 곁에 있으면 나는 내가 오메가라는 것을 무서울 정도로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휘청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똑바로 걷기 위해 애쓰던 여태까지의 삶이 송두리째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질색하지만, 나는 요 며칠 빨리 시계를 되찾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이미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시계에서 나는 악취 같은 건 상관없었다. 갈수록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느낌이 그런 냄새 따위보다 훨씬 더 두려웠다.
“그거 알아…? 랑족은 일족의 사람들끼리 결혼해. 바깥사람들이랑 피가 섞이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가문에서 정한 혼약이 있어. 알파는 알파끼리, 베타는 베타끼리.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기도 하고, 발현될 때 정해지기도 하고….”
우연인지 몰라도, 그가 한참 만에 꺼내놓은 것은 어제 이준에게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화제였다.
“나한테도 어른들이 누굴 엮어 놨을 수도 있어. 근데… 난 그딴 거 신경 안 써. 어차피 첩의 자식이고, 집안에서 내놓은 새끼거든.”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어색한지, 평소보다 느릿한 말투였다. 그는 또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질겅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난…. 내 아버지는 오메가야. 그러니까, 나를 낳은 아버지가.”
이한의 말끝이 살짝 떨렸다. 그답지 않게 서툰 목소리였다. 어쩌면 저 애도 서툰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아릿해졌다.
남자 오메가가 낳은 아이. 잘은 모르지만, 일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출생이 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나에게 제 나약한 부분을 내보인 걸지도 모른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그는 물기가 살짝 남은 제 뒷머리를 푸르르 흩어 버렸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나한테 짝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야.”
“…….”
“혹시 각인이라는 게… 뭔지 알아?”
“각인…?”
“그거, 내가 해 줄 수 있어, 너한테.”
<1권 끝. 다음 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