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가로등 불빛 아래
석희재는 이현의 몸을 제 품 안에 숨겨 안았다. 도로를 등지고, 이현의 등을 돌담 벽에 부드럽게 밀어붙인 채로 숨죽여 입을 맞췄다. 손안에 숨긴 그의 얼굴에서 달콤한 숨이 흘러나왔다.
입술을 떼고 나니 사위가 어둑해져서 보이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눈뿐이었다. 물기 어린 눈이 먼 가로등 빛에 가끔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석희재는 다시 그의 뺨과 턱을 붙잡고 조심스레 키스했다. 떨어지는 게 아쉬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입술을 입술로 물었다.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키스의 끝에, 둘은 한참 만에 걸음을 옮겼다. 느릿하게 걷던 아까보다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게 그다음 단계를 위해서라는 것이 너무 뻔해서 석희재는 조금 부끄러워했고 이현은 웃음을 삼켰다.
창덕궁의 긴 돌담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가로등 빛이 무색하도록 수풀이 울창하게 어둠을 드리우는 공원이다.
길의 방향을 틀어 먼저 그 안쪽으로 석희재의 손을 이끈 것은 이현이었다. 그에게 손이 잡힌 채로 순순히 이끌려 가던 석희재는 공원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훅 어두워진 시야에 멈칫거렸다.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주저되기 때문이었다.
“밖은 싫어?”
라며, 석희재의 멈칫거림을 다른 뜻으로 이해한 이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 미안… 이런 상황에.”
“…….”
“내가 또 너무 밝혔다.”
로맨틱한 걸 1분도 지속시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현이 머쓱해했다. 그리고 이현이 의도한 것을 알아챈 순간 석희재의 심장은 도리어 크게 뛰었다. 이 상황에서 석희재가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저 제 야맹증 때문에 이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한순간도 그의 표정과 반응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석희재는 다시 공원 초입으로 돌아서 나가려는 이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바닥을 조심스레 디디며 더욱 어두운 안쪽으로 이현을 이끌었다.
“형은 진짜 대담해.”
“…….”
“장소도 때도 안 가리고 할 줄 아는 거….”
잡은 손목 아래서 이현의 맥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나는 섹시하다고 생각해.”
가장 안쪽 벤치에 몸이 밀쳐졌다. 털썩 주저앉자마자 곧바로 제 허벅지 위에 이현이 타고 올라왔다. 이현이 제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석희재는 딱딱한 나무 등받이에 등이 부딪친 통증도 잊었다. 그에게 키스당했다. 돌담 벽에서 자신이 건넸던 부드러운 키스는 어린애 장난처럼 여겨질 정도로 난폭하고 노골적인 키스였다. 마치 잡아먹히듯, 혀 안쪽을 약탈당하듯 행하는 키스에 석희재는 금세 몽롱해졌다. 석희재는 순종적으로 그가 키스하는 방식에 따라 주며 그저 제 어떤 말이 그를 흥분하게 한 걸까 궁금했다.
키스 도중 잠시 입술이 떨어지면 이현은 석희재의 젖힌 목을 빨았다. 자연히 하늘을 향해 젖혀지는 얼굴에 길고 흰 목이 드러났다. 이현은 정신없이 석희재의 날카로운 턱선을 핥고 귓바퀴마저 삼키려 들었다. 원래도 욕망에 솔직한 편이기는 했지만 제 얼굴을 혀로 유린하는 기분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네가 너무 좋아. 희재야.”
이현이 석희재에게 꽉 안겨 들었다. 벌써 허벅지를 타고 오른 몸은 더 달라붙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전부 다 마셔 버리고 싶어.”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이현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호흡과 촉촉한 입술이 목의 예민한 피부로 틈 없이 전해져 왔다. 손을 가만히 들어 그의 셔츠 안쪽으로 손을 미끄러뜨리자 이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고작 그런 걸로 흥분하는 이현 때문에 석희재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하지만 밤에 약한 눈으로는 그의 얼굴을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이현은 제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학적인 행위 없이도 그저 제 존재만으로. 뺨과 광대 주변을 쉼 없이 더듬는 손길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현은 입을 작게 벌린 채로 쌍꺼풀이 깊게 접히는 우묵한 눈꺼풀과 눈썹 앞머리, 촘촘한 속눈썹을 차례대로 조심스레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석희재는 제 얼굴을 더듬던 이현의 손가락을 모아 쥐었다.
“내 얼굴이 좋아?”
“응….”
“날 보면 하고 싶어져?”
“그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 아!”
눈을 내리깔며 손가락을 가볍게 물자 이현이 놀란 듯 신음을 흘렸다. 그의 숨이 쏟아지는 목덜미가 짜릿했다. 이현의 몸은 평소보다 훨씬 더 뜨겁게 느껴졌다. 바깥 공기 때문에? 아니면 흥분 때문에?
“나도 그래.”
심지어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숨소리만 들어도…
그렇게 말하며 석희재는 이현의 손을 제 앞섶에 가져다 댔다. 터질 듯이 발기한 것을 눈치챈 이현은 다급한 손길로 석희재의 바지 앞섶을 풀어 헤쳤다. 동시에 석희재는 이현의 등을 어루만지다 그의 바짓단에서 셔츠를 끄집어냈다. 그새 더 말랐는지 품이 넉넉해진 바짓단 안으로 손이 어렵지 않게 쑥 들어갔다. 속옷까지 한 번에 제치고 그의 엉덩이를 단숨에 쥐자 이현이 긴장하며 엉덩이를 바짝 조였다.
“빨리… 빨리 넣고 싶어.”
이현이 귓가에 흘린 말 때문에 앞이 저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갈증이 났다. 하지만 저마저 템포를 잃어버리면… 사위에서는 가끔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울창한 나무 뒤로는 간혹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스쳐 지나갔다. 석희재는 숨을 눌러 참으며 이현의 등허리를 단단히 끌어 올려 안았다. 골의 틈이 드러나도록 속옷을 조금만 내리자 이현이 무릎으로 서며 입구에 제 것을 맞춘다.
“음, 으응….”
“불편해?”
“응, 각도가… 하으.”
“이렇게, 하면?”
석희재는 허리를 느슨히 하며 각도를 바꾸어 보았다. 그러자 완전히 발기한 성기는 도리어 골 사이로 튕겨 나갔다.
“아, 안 되겠다. 제대로 앉아 봐. 한 번만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이현이 끙끙거리며 다시금 발기한 성기를 한 손으로 덥석 쥐어 와서 석희재는 흑, 하고 미처 준비되지 못한 헛숨을 흘렸다.
야외의 소음,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조금 드러난 맨살에 닿는 차가운 공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초조함과 흥분이 뒤섞여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고, 더해서 영 보이는 게 없어 더더욱 샅에 닿는 감각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이현은 몇 번이고 삽입을 시도했는데 그건 꼭 회음으로 성기를 물고 앞뒤로 미끄러지듯 허리를 흔드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침착한 척 해 봤자 석희재 역시 한창 성욕이 무섭게 왕성한 이십 대 초반이었다. 이현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으로는 저도 모르게 그의 옷을 벗기고, 혼자 잠드는 밤에는 매일 그를 떠올리며 자위를 할 정도로.
심지어 안쪽의 감각을 아는데도 참으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입술이 새하얗게 질리도록 꾹 깨물며 신음을 참아 봤지만 먼저 한계에 다다른 것은 석희재 쪽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응?”
“형이 망봐.”
그 말을 내뱉자마자 석희재는 이현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그를 안고 단숨에 돌려 버렸다. 석희재를 의자 삼아 앉게 된 이현은, 제 엉덩이를 때리듯이 치고 미끄러진 뜨거운 성기에 놀라 신음을 흘렸다. 골 사이를 양손으로 잔뜩 벌리고 익숙한 위치에 귀두를 밀어 넣는 것은 순간이었다.
“아…!”
제대로 균형을 잡기도 전에 안쪽으로 굵은 기둥이 끝없이 밀고 들어왔다. 겨우 여기가 밖이라는 걸 자각한 이현은 가까스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덧없이 팔로 석희재의 허벅지를 밀며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도리어 뒤에서 팔까지 한 번에 끌어안는 바람에 제 체중과 함께 주저앉게 된다.
“아, 씨… 너무 커서 토할 것 같아.”
“씨, 뭐? 욕하려고 했어?”
석희재가 갈라진 목소리로 이현의 귓가에 대고 중얼거렸다. 말을 흘리는 발음이 조금 뭉개져 있어 이현은 석희재 역시 적잖이 흥분했다는 것을 알았다.
“넣고 조금만 있어, 괜찮아지면 움직일 테니까….”
“어떻게 그렇게 예고도 없이.”
이현이 투덜거리자 석희재가 ‘그러게’ 하고 맞장구쳤다.
“나도 놀랐어.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까 느낌상으로, 감각만으로….”
“…느낌? 감각?”
이현이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역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한가 봐.”
그러면서 석희재는 형이 하도 후배위를 선호해서 뒤에서 삽입 각도를 맞추는 데 적응해 버려 그렇다며, 논리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을 웅얼거렸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이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제 등에 이마를 대고 애교 많은 짐승처럼 고개를 비비고 있는 석희재 때문에 별로 반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마에 쏟아진 머리카락을 훅, 하고 불어서 넘긴 이현은 석희재의 가슴에 천천히 등을 기댔다.
“응… 이제 흔들어도 돼.”
“…….”
석희재는 대답 없이 이현의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 마른 내벽이 조금 뻑뻑했지만 그만큼 그와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석희재는 이현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그를 품 안에 꽉 끌어안고 아주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얼핏 보면 그저 덩치 큰 한 사람이 앉은 것처럼 보이도록. 약간씩만 움직이며 이현의 안을 느리게 문질렀다. 이현은 단 한 순간도 빠져나가지 않고 꽉 채운 채로 비벼지는 것 때문에 허리를 떨어야 했다.
“나, 우리… 처음 했을 때 생각난다.”
석희재의 말에는 쉼표가 많았다. 마디마디가 전부 흥분을 억누르고 신음을 삼킨 호흡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으음… 처음?”
“응, 그때는 이렇게, 흣… 넣은 것만으로도 좋아서… 금방 가 버렸잖아.”
아, 그때 황당했지.
물건은 이렇게 튼실한데 조루인가 싶어서.
이현은 쿡쿡 웃으며 고개를 수그렸다.
“난 잠깐 사이에 별생각을 다 했는데. 외모에 키에, 목소리, 물건까지 다 갖췄는데 조루라니? 신이 약간은 공평한가, 그런 생각도….”
이현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다 건드려지지 않은 부분이 자극당하는 바람에 신음하며 다시 허리를 일으켰다.
“어때?”
“뭐가.
“나도 많이 늘었지?”
칭찬받고 싶어 하는 티가 역력한 게 귀여워서 이현은 흔쾌히 대답했다.
“응.”
그러고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석희재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때 석희재는 이현의 돌아보는 허리선에 시선을 빼앗긴 채였다. 굴곡 없이 마르기만 한 남자의 몸인데도 원색적으로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옴폭 파인 등줄기 옆으로 척주 기립근이 솟은 것도 그렇고, 문지르면 마찰에 금세 불긋해지는 피부색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석희재가 이현의 드러난 맨살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 때였다. 이현이 손을 한 번 튕겨 어딘가 혼이 나가 보이는 석희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석희재는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너, 나한테 배워서 다른 데 가서 써먹으면 안 된다.”
“뭐?”
“나 그러면 억울해서 관 뚜껑 발로 찰 거 같아.”
“…….”
맥락 없는 이현의 말에 침묵하던 석희재는 잠시 이현을 안은 채로 정지했다. 그러다 이현의 앞가슴을 더듬으며 약간 심술궂게 안을 쿡 찔렀다.
“아!”
불시에 몸이 흔들린 이현은 위 아랫니를 부딪치고 말았다.
“내 기분 알겠어?”
“뭐가!”
이현이 항의하듯 외쳤다. 석희재는 그를 단단히 안으며 그 억울한 뺨과 귓바퀴에 달래듯 입술을 꾹 묻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거, 상상만 해도 질투 나지?”
“말이라고 하냐.”
“난 질투로 벌써 속이 까맣게 탔어.”
말의 내용과 다르게 어투는 무척 다정했다. 이현은 석희재의 표정이 궁금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웃음기 한점 없는 석희재가 이현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짜야. 열어서 확인해 보면 심장이 아니라 숯 더미가 있을걸.”
“에이, 그걸 어떻게 열어….”
이현이 농담하며 말을 돌리려 하자 석희재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반응, 신음 소리, 표정.”
“…….”
“그리고 이 안쪽의… 감촉, 피부색. 그리고 어떨 때 조이고 신음하는지….”
“…….”
“그런 거 아는 놈이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가끔은 정말….”
너무 화가 나.
차분하게 읊조린 석희재의 말투는 평이해서, 도무지 화가 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현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직후, 삽입이 더 깊어지고 빨라졌다. 석희재는 자기 허리를 움직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이현의 허리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이현은 제 몸이 지나치게 쉽게 들리고 박힌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이 손으로 흑흑 울며 눈물을 찍어 낼 때는 그렇게 가녀려 보이더니, 지금은 핏줄이 불끈 솟은 손으로 허리가 아프도록 꽉 쥐고 마구 휘두르는 게 거의 <지킬 앤 하이드>급이었다. 게다가 체중과 속도가 더해지는 바람에 폐까지 둔하게 찔린다는 착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풀어 헤쳐진 벨트가 엉덩이에 배겨 아팠던 이현은 위아래로 흔들리면서도 자꾸만 팔로 어딘가를 짚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석희재는 그 손을 다정히 잡아 주었다. - 도움은 안 되었다. -
언제… 언제부터 이 녀석이 이렇게 내 취향의 섹스를 하게 된 거지.
아닌가, 내 취향이 석희재한테 맞춰진 건가.
이현은 풀린 눈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몰래 또 다른 결심을 했다.
아무튼 평생 조신하게 굴어야겠다.
괜히 과거로 자극하지 말고, 밝히는 척도 하지 말고… 평생.
어차피 허벅지의 타투 때문에 함부로 바람도 못 피운다. 낙인을 찍어 놓은 것은 아마도 이런 미래에 대한 예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이현은 픽, 하고 힘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때였다.
석희재가 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형, 근데 나… 이대로는 끝까지 못 가.”
“응… 하아, 학, 그럼, 어, 어떻게 해….”
“자세를 좀 바꾸자.”
석희재의 인도에 따라 이현은 위치를 바꾸었다. 바지를 겨우 추스르고 벤치 뒤쪽으로 걸어가는 짧은 사이에도 무릎에서 힘이 풀리려 했다.
“이거 잡고 버텨요.”
석희재가 벤치 등받이를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이현은 처음에는 그걸 손바닥으로 받쳤지만 나중에는 몸이 허물어져 팔꿈치까지 기대게 되었다. 거사가 벤치 뒤에서 이루어져서 그런지 석희재의 몸짓은 더 대담해졌다. 어느새 녹아든 안에서 철퍽철퍽 소리가 났다. 위 엉덩이가 흔들릴 정도로 세차게 박혔다.
뒤로 당하는 건 원래도 좋아하는 체위여서 이현은 넋을 잃고 흥분하고 말았다. 자꾸만 입을 틀어막은 손의 힘이 풀리고 무릎에서도 힘이 빠졌다. 석희재의 다정한 손이 수시로 허리를 추켜세워 주고, 가끔은 대신 이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미칠 듯이 좋기는 한데….
그간 외부 활동이 없었던 데다가 살까지 쏙 빠져서인지 이현은 영 기력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
‘아… 그런데 허리가 너무 아프다. 다리에 힘도 안 들어가고…. 얼른 한 번 빼고 집에 가서 누워서 했으면 좋겠다.’
결국 이현은 연하 애인의 체력에 먼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석희재는 첫 사정이 유독 긴 편인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제가 먼저 이곳으로 석희재를 이끌었으면서도 조금 후회해 버렸다.
“저기, 희재야! 나… 누가 올까 봐 무서워서.”
“응?”
무섭다는 이현의 말이 의외로웠는지 석희재가 눈을 크게 떴다.
“…사정이 안 될 것 같은데.”
“아… 정말? 미안해. 나만 흥분해서.”
석희재의 뺨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자기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이현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절륜해서 문제지.
“그니까 얼른 너만 한 발 빼고 가자. 너 입으로 해 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이현은 바지를 대강 추켜올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리고 다리고 일찌감치 힘이 풀려 있어서 앉으니 도리어 좀 나았다. 끙, 하는 신음을 흘리는 이현을 석희재가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괜찮겠어?”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릎을 세워 앉았다.
“형 바지 더러워져.”
앞은 무섭게 세워 놓고 바지를 걱정하는 석희재의 목소리에 이현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적당히 좀 다정하라고….
집에 빨리 가려면 차라리 도발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알잖아. 나 좆 빠는 거 좋아해.”
“…….”
대답 없이 내려다보는 석희재는 눈가가 붉었다. 이현은 스스로 흘린 프리컴으로 질척해진 석희재의 젖은 성기를 핥으면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위로 바짝 솟은 성기가 예뻐 보여서 저도 모르게 뺨에 비볐다. 석희재가 또 숨을 참으면서 아까 전의 이현처럼 벤치에 손을 기댔다.
석희재와 벤치 사이에 쪼그려 앉아 숨은 이현은 볼이 홀쭉해지도록 석희재의 것을 빨았다. 콘돔도 없으니까 내 목에 싸야 한다고 입에 넣은 채 웅얼거리자 석희재가 안광을 빛내면서 저를 노려보았다.
조금도 무섭지 않은 이유는 저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너무 흥분해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를 숨겨 크게 삼키고 부드러운 혀끝으로 도드라진 핏줄을 더듬었다. 목구멍을 열어 목이 불룩해지도록 안쪽으로 밀어 넣은 뒤 넘어가는 숨을 꿀떡, 꿀떡 억지로 삼켰다. 그때마다 석희재가 숙인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턱 끝에서 땀이 뚝 떨어졌다.
올려다본 석희재의 촉촉한 속눈썹에 초롱초롱한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너무 느껴서, 혹은 당장 목구멍에 처박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느라 고인 눈물 같았다. 괴로워 보였다. 쾌락과 고통이 각각 빚어내는 얼굴들은 무척 닮았다.
‘이런 얼굴도 예쁘네.’
석희재를 만족시키는 기분이 황홀해서 이현의 앞도 젖어 들고 말았다.
‘아… 사정 안 된다고 거짓말했는데 어쩌지.’
저 얼굴 때문에 쌀 것 같다….
라고 생각한 이현이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읏….”
예고 없이 쏘아진 첫발이 뺨에 닿았다. 이현은 조금 당황하며 크게 입을 벌려 석희재의 것을 입 안에 얼른 담았다. 금세 혀 안에 꿀렁꿀렁 많은 양의 정액이 고였다.
“하, 하아….”
사정하면서 석희재는 눈을 떴다. 밤눈에 동공이 크게 확장된 새까만 눈이 이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저를 먹어 치우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눈이 낯설었다. 동시에 전신이 오싹한 느낌이 들도록 좋았다.
흥분이 가득한 예쁜 눈을 하고 제 입에 사정하는 석희재의 얼굴, 누가 그의 이런 순간을 독점할 수 있을까. TV에서 보던 정제된 표정과 반듯한 미소가 아니라 어딘가 거칠게 날이 선 달아오른 얼굴을… 만약 평생 저만 볼 수 있다면, 그건 구속도 아닐 것이다.
석희재의 사정하는 얼굴을 지켜보던 이현은 예기치 않은 절정에 다다르고 말았다.
“읏….”
숨기던 앞섶이 소리 없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기분에 이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성기가 입술을 비비며 입에서 빠져나가자마자 그는 고인 크림을 꿀꺽 삼켰다.
동시에 석희재는 사정의 여운이 남기고 간 잔열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만한 행동을 했다. 아직도 흥분이 죽지 않은 귀두를 저도 모르게 이현의 입술에 문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건 원래 석희재의 버릇이기도 했다. 뒤에 사정하고 나면 구멍 바깥으로 흐른 정액으로 입구를 문지르거나 덧그리곤 했으니까.
방금 사정한 상대의 구멍을 덧그리는 그 버릇을 눈앞에서 볼 줄이야. 그것도 꼭 저처럼 생긴 예쁜 좆으로.
이현은 뇌가 녹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런 부분까지도 황홀하게 제 취향이라서.
***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석희재는 이현을 집까지 업어 주겠다고 말했다. 등을 보인 채로 바닥에 꿇어앉아 업히라고 몇 번이나 손짓했지만 이현은 자꾸만 석희재를 일으키려 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가, 다시 바닥에 무릎 꿇기를 반복하기를 몇 차례. 결국은 석희재가 이겼다.
‘바지는 쉽게 내리면서 등에 업히는 건 왜 싫어해?’
그렇게 물었더니 할 말이 없어진 이현이 곧 순순해졌던 것이다.
석희재가 무릎을 전부 다 폈을 때에야 현의 긴 다리가 겨우 바닥에 끌리지 않았다. 등에 이현의 체중을 오롯이 지고 나서 석희재는 그의 가슴이 맞닿은 등이 따스하다고 느꼈다. 살짝 땀이 배어나는 날씨인데도 불쾌하지 않았다.
석희재는 이현이 지시하는 길로 굽이굽이 골목을 따라 걸었다. 근처에 역이 있고 대기업의 빌딩이 들어서 있어 그런지 이현의 집 근처로 가는 골목은 제법 붐볐다.
“잠시만.”
밝은 길목으로 진입하기 전에 이현은 석희재의 주머니를 대신 뒤져 마스크를 꺼냈다. 그리고 뒤에서 손을 뻗어 석희재의 귀에 마스크를 잘 고정해 걸어 주었다. 잘된 거 맞냐고 뺨을 토닥거리는 손길이 좋았기에 석희재는 마스크 안에서 웃어 버렸다.
그렇게 석희재의 얼굴을 가려 준 이현은 너른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들지를 못했다. 이른 저녁부터 사지 멀쩡한 채로 업혀 가는 것이 부끄러워서 차라리 취객인 척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가끔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대부분 의미 없는 눈길만 보내고 스쳐 지나갔다. 가끔 모이는 시선도 보통 사람보다 키가 훌쩍 크고 두상이 유독 잘생긴, 얼굴이 조막만 한 남자의 실루엣이 신기해 바라보는 것이었을 뿐이다. 석희재의 존재감은 지나치게 유별나서 그가 누군가를 업고 있다는 것은 금방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쨌든 이현은 말없이 석희재의 가방이라도 된 양 그의 등에 딸려 갔다. 그렇게 한참 골목을 따라 걷자 어느 순간 방금 전의 번화함이 거짓말처럼 조용한 동네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현의 새로운 집은 옛집에서 길을 한 번 건넌 뒤 높지 않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간 곳에 있었다. 원래도 8시 이후에는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곳이었지만 이곳은 더욱 고즈넉한 침묵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다 왔어. 내려 줘.”
문 앞에 도착하자 이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석희재는 그의 말대로 하는 대신 그대로 이현을 업은 채로 뒤를 돌았다.
기분 좋은 밤바람이 석희재의 머리카락을 쓸고 갔다. 새집의 현관문은 집을 가리는 담벼락이나 계단조차 없이 1층 마당과 닿도록 낮은 위치에 걸려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앞으로는 쭉 뻗은 내리막길이다.
이현이 왜 굳이 이 집으로 왔는지 알 것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 무거워?”
이현이 물어 와서 석희재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어떻게 이런 집을 찾았어?”
석희재의 맥락 없는 질문에 이현이 픽 웃었다. 그는 이제야 겨우 고개를 들고 석희재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은 채다.
그렇게 둘은 북촌의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기와를 얹은 한옥 지붕들이 곡선을 그리는 저 너머로, 종각으로 이어진 가로등 불빛들이 보였다. 우정총국이 있는 조계사를 지날 즈음 청계천 변에 들어선 광화문의 키 큰 빌딩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별은 찾기 어려웠지만 대신 빌딩에 빼곡하게 불이 들어온 작은 창들이 아름답게 도시의 밤을 수놓았다.
“매일 오다가다 하면서 눈여겨봤지.”
“…….”
“나는 시골에서 와서 그런가 서울이 이렇게 보이는 게 좋더라.”
이현의 말에 석희재는 문득, 고개를 조금만 돌려 이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강남쪽도 서울인데, 하고.
사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되면 이현을 살살 꼬셔 보려고 했었다. 같이 살고 싶다고, 살림을 합치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재결합한 지 몇 시간 만에 급하게 동거 제안까지 하면 이현의 성격상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조금 숙고하던 참이었다. 물론 나름의 전략도 있긴 있었다. 스며드는 것은 석희재의 전문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이제 새 회사로 출근하게 되면 - 석희재는 이현이 당연히 제가 소속된 회사에 입사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통근이 힘들 테니까 제집에서 자고 가라고 넌지시 제안을 한다. 방이 하나 남지만 이현이 오기 전에 그곳은 짐을 가득 채워 창고로 둔갑시키고 무조건 제 방에서만 재울 것이다. 그렇게 자주 오게 만들어서 이현의 생필품이나 옷가지가 하나둘씩 쌓여 가면…. 아예 편하게 쓰라며 옷장이나 서랍을 들여 준다. 내친김에 이현의 어머니가 종종 보내 주시는 반찬들까지 그 집 주소로 받아 버려도 좋겠다.
석희재는 뇌 내 시나리오를 전개해 갔다. 물론 항상 순탄하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
예를 들면 그러던 어느 날, 이현이 뜻밖의 고백을 한다든가.
‘희재야. 나 집에 너무 안 가서 방에 거미줄이 생겼다….’
그러면서 이현은 이제 슬슬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한다. 내팽개쳤던 자기 집을 알뜰살뜰 돌보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그렇게 이현이 그의 집에 콕 박혀 버리려고 하면, 또 몇 가지 전략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없는 실력을 발휘해 직접 요리를 해 줄테니 주말에는 꼭 들르라고 그를 다시 초대한다거나. 하면, 이현은 성의를 봐서라도 들러 줄 것이다. 일부러 칼질을 서투르게 하면서 그를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요리하는 제게서 눈을 떼지도 못하게 하는 건 덤이다.
일단 집에 불러들이고 나면 그다음은 쉽다.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주며 보다 가라고 집에 눌러 앉히고, 자정쯤 되면 술도 한잔하라고 맥주를 먹이고…. 새벽 한 시, 두 시가 넘어가 ‘이제 집에 가야겠다’라는 말이 나오면 그 몸을 밀어 눕혀 버린다. 키스하면서 정신이 쏙 빠지도록 섹스하면 이현은 ‘오늘도 집에 못 갔네’ 하면서도 지쳐 잠들어 버릴 테고….
완벽한 시나리오인데.
그렇게 제집에 머무르도록 만들면 이현도 ‘그냥 여기 사는 게 낫지 않나’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동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석희재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을 보니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밤 풍경 앞에서 저의 모든 전략은 그저 무색하게 여겨졌다.
이현이 상경한 이후로 쭉 이 동네에서만 살아왔던 이유는, 또 쉽게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첫사랑과의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무거워?”
“…….”
“내려 달라니까.”
이현이 내려오고 싶은지 업힌 채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하지만 석희재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은 후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새 도어록을 밀어 올리고 문을 열어 달라고 다시 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현이 숫자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번호 맞혀 봐.”
“내가 어떻게 알아?”
석희재는 반사적으로 말을 툭 내뱉었다.
하지만 히죽 웃고 있는 이현의 옆얼굴을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얼른. 너는 알아.”
“…힌트 좀.”
석희재가 머쓱하게 물었다.
“힌트? 아….”
이현이 말끝을 흐렸다. 주저하는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조금 머뭇거리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예전 집 번호가 그, 형… 생일이다.”
“…….”
“기분 나빠하지 마. 지나간 일이니까.”
“…….”
“로직은 똑같아.”
로직은 같다.
그 말에 석희재의 가슴이 한 번 세차게 박동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제 생일 네 자리를 누르니 명쾌한 알람과 함께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석희재의 귀에다 대고 이현이 헤헤 웃었다. 속도 없는 사람처럼. 석희재의 반응이 궁금한지 업힌 채로 목을 빼서 자꾸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희재 우는 거 아냐? 감격 먹어서… 으앗!”
이현의 두 다리에 땅에 닿자마자 석희재는 그의 등이 휘도록 과격하게 키스했다. 이가 부딪혀 입술이 얼얼했지만 잠깐이었다. 그의 허리를 한 팔로 꽉 죈 채로 깊이, 더 깊이 고개를 숙인다. 위태하게 휘청이던 이현이 등 뒤의 의자 등받이를 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결국에는 덮치는 사람의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릎부터 허물어졌다.
쓰러지는 순간 몸을 돌리며 석희재는 제 등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 가슴팍에 안긴 채로 석희재를 깔아뭉개게 된 이현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안 아파?”
“…….”
“소리 엄청 났는데….”
석희재는 아픈 것도 모르고 그저 이현의 입술만 홀린 듯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키스로 촉촉하게 젖은 입술이 탐스러워 보였다. 다시 그의 뒷머리를 끌어당겨 키스했다. 이현은 순순히 고개를 틀면서 적극적으로 키스에 응해 왔다.
등을 어루만지던 손을 미끄러뜨려 셔츠 안으로 넣었다. 손바닥에 달라붙는 살갗이 약간 차가웠다. 파인 등줄기를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는 것만으로 이현은 신음을 흘렸다. 더 아래로, 아래로. 바지 틈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엉덩이를 쥐자 입술을 떼고 학, 하는 짧은 신음을 흘린다. 키스의 경계선에서 갑자기 섹스의 함의를 담은 손짓으로 넘어가자마자 이현은 크게 흥분했다.
“이상하다. 넣는 것만 좋은 줄 알았는데.”
“…….”
“네가 만지는 것만으로도… 안이 간지러워.”
이현의 허스키한 중얼거림을 들은 순간, 석희재의 머릿속에 제어 불가능한 상상이 펼쳐졌다. 자극 없이도 조여드는 그의 안쪽, 벌어진 곳의 감촉 같은 것들이.
석희재는 무의식적으로 이현의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분홍빛 입술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이현의 귀가 확 붉어졌다.
확실했다. 이현은 섹스에 몰입한 제 표정을 좋아한다.
매일 보는 자신의 얼굴이 궁금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의 시선으로 보는 저만은 궁금했다.
그리고 제 얼굴을 바라보는 이 눈과,
몸이 고단할 때에도 언덕길을 걸어 올라와 서울의 밤거리를 내려다보았을 눈.
스물두 살, 불이 꺼진 객석에서 조명이 찬란한 무대를 바라보던 젖은 눈까지….
그의 눈으로 담는 세상은 모두 빠짐없이 궁금했다.
이삿짐 박스와 가구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로 방 여기저기 쌓여 올려진 집 안에서 두 사람은 급하게 몸을 섞었다.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던지고 급히 맨살을 겹쳤다. 맞닿은 서로의 체온이 너무나 따뜻해서 절로 몸이 떨려 왔다.
이현은 옷을 입히면 늘씬한 태가 나지만 벗기면 뼈가 부딪칠 정도로 말랐다. 석희재는 이현의 툭 튀어나온 쇄골이나 뾰족한 팔꿈치 같은 것을 안쓰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몸을 손 닿는 곳마다 전부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동시에 이현은 의아해했다. 객관적으로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제 몸을 어떻게 이토록 사랑스럽게 만져 주나 하고. 또, 손길만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했다.
석희재는 소중한 이현의 살이 바닥에 쓸리는 것조차 싫어서 그를 제 몸 위에 올린 채로 그의 안에 저를 깊이 파묻었다. 품 안에 가둬진 마른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 얼마나 떨고 있는지 무게감으로 낱낱이 전달되어 더 좋았다. 조금도 떨어지기 싫어서 그렇게 내내 꼭 끌어안은 채로 섹스했다.
동시에 이현은 제 아래 깔린 석희재의 목덜미와 흰 가슴팍을 세차게 빨면서 실컷 흔적을 남겼다. 조각 같은 몸을 독점하는 기분만으로도 황홀했고, 그걸 상대가 말리지 않고 방치한다는 게 더 좋았다.
너무나 잘나서 제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조차 갖지 않았던 남자인데….
“전부 내 거야, 내 거….”
이현이 중얼거리며 석희재의 뺨을 더듬고 단단한 목덜미를 꼭 껴안았다.
다른 자극도 아니고 그 솔직한 말로 석희재는 절정에 다다랐다. 흰 목을 천장을 향해 젖힌 채로 이현의 몸을 부서져라 끌어안으며.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의 갈증을 채우기에 밤은 너무나 짧았다. 안이 잔뜩 예민해진 이현은 석희재가 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끌어안고 안을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오르가슴을 느꼈다. 연달아 네 번 오르가슴을 느낀 뒤에는 정액이 아닌 물이 흘렀다. 그 직후, 이현은 완전히 탈진했다. 그러면서도 신음하느라 완전히 간 목소리로 석희재에게 그만두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잠든 후에도 안에 넣은 채로 있고 싶다고 속삭였다.
마침 막 사정한 채였던 석희재는 이현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안에서 다시 흥분하고 말았다. 이미 빠듯한 안쪽에서 다시금 단번에 팽창하는 감각에 이현은 흐느끼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완전히 맞물린 틈으로 정액이 겨우 비질비질 빠져나왔다.
이현의 바람대로 석희재는 그의 안에서 제 것을 빼지 않았다. 꼭 끌어안아 한 몸이 된 채로 조심스레 이부자리를 찾아 누웠다. 전쟁터처럼 살림이 난잡하게 쌓인 집 안에는 이현이 며칠 밤을 보낸 이불만이 작은 둥지처럼 펼쳐져 있었다. 바로 거기에 몸을 겹친 채로 두 사람은 좁은 이불 위에 작게 웅크리고 누웠다.
촉촉하게 땀에 젖은 이현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면서 석희재는 생각했다.
역시 같이 살아야겠다.
이렇게 자는 얼굴을 어떻게 두고 가.
그를 제집으로 들이는 것만이 방법은 아닐 것이다.
‘내가 들어오면 되지.’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 석희재는 고개를 들어 이현의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조금 좁지만 사실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좁은 만큼 그가 이 집 어디에 있든 단번에 알아챌 수 있고 어디서든 존재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내일부터 당장 여기 살겠다고 하면 싫어할까?
이삿짐 정리 도와주는 척하면서 붙어 있어야겠다.
첫날엔 힘드니까 자고 가겠다고 해야지.
둘째 날엔 도와줬으니까 술 사 달라고 하고.
셋째 날은 같이 집 꾸미자고… 내 베개도 하나 사 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넷째 날엔 감기 걸린 척하고 쓰러질까… 곧 여름이라 안 되나.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석희재는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