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어른(2권) (6/27)
  • 6. 어른

    1년 전쯤의 일이다.

    이현을 만나기 전까지 석희재는 ‘어른’의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깨닫고 보니 자신이 상상하는 어른이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상, 하의 색이 완벽하게 맞는 슈트와 넥타이를 걸친 직장인의 모습, 언제나 이마가 드러나도록 깔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 감정 조절에 능숙하고 본인의 생각을 매끄럽게 내뱉을 수 있을 정도의 화술을 갖춘, 정신적, 경제적 독립체.

    그래서인지 만 18세가 넘어 성인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석희재는 길거리를 걷다 문득 쇼윈도에 스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괴리감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어른 같다고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경계였다. 정장을 입게 되면 어른처럼 보일까?

    그러나 그건 미디어로 접한 이미지일 뿐이다. 예를 들면 이현은 직장인이지만 양복을 갖춰 입지는 않는다. 물론 가끔 셔츠에 재킷 차림으로 집을 나설 때가 있었지만 넥타이를 매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연습과 공연 시즌에 돌입하면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옷과 백스테이지를 바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화를 고집했다. 그때의 이현은 원래도 어린 얼굴에 수수한 차림이 더해져 더더욱 어른 같지가 않았다.

    또한 이현은 자주 감정적이었으며 특히 상사에 대한 분노를 터뜨릴 때가 많았다. 석희재는 이현이 주로 욕하는 상사를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그 회사의 ‘대표’와 ‘이사’가 가장 문제라는 것만은 잘 알았다. 이현보다도 훨씬 어른일 그들은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것을 자기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직함에서만 찾는 것 같았다.

    석희재는 그런 건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이현이 회사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때였다. 이현 앞에서 어떻게든 성숙해 보이고 싶었던 석희재는 제 관념 속에 있던 어른의 모습을 떠올리며 답했다. 논리적으로, 또 감정을 배제한 어조로 어른스럽게 문제를 풀어 보라고 조언했다.

    그때 이현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오히려 철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유치한데. 다들 어른 아냐?’

    ‘이 세상에 나이만 먹은 어른이 얼마나 많은데. 말 절대 안 통해.’

    그러면서 이현은 쓰게 웃었다.

    ‘어른의 또 다른 단어는 꼰대야.’

    어느샌가 감정을 누그러뜨린 이현은 농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석희재는 이현을 통해 접하게 된 어른들의 면면이 고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진배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왜 어른에게 환상을 가졌던가. 석희재는 제 주변의 어른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았다.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내던진 어머니는 본인이 자유롭게 살 권리를 주장하며 항상 ‘철없는 행동’을 저지르곤 했다. 저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아들의 친구와 잠자리를 가지려고 호텔로 달려갔을 때, 석희재는 그녀에게 상식을 기대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건 아이 한 명의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희생시켜 친척들 간의 분란을 잠재운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제 부모를 설득하는 대신, 아직 자기 의견이 없는 어린아이였던 석희재를 설득해 가며 왜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납득시켰다.

    그때 석희재는 부모의 슬픈 얼굴을 보기가 싫었기 때문에 자기가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에게 이해와 침묵을 강요하는 행동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모르고.

    가장 가까이 있었던 두 부모는 물론이고, 대학 입학 전에 당연하다는 듯 거액의 사례비를 요구하던 음대 교수, 부정을 저지른 콩쿠르 심사위원들…. 게다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취객들, 다짜고짜 대중교통에서 욕설을 내뱉는 이들 모두 어른이었다.

    제대로 된 어른은 별로 본 적도 없으면서 왜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했을까.

    석희재가 그런 깨달음을 얻었던 날에, 이현은 비에 푹 젖어 새벽 2시에 퇴근했다.

    골목 안을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열자 머리부터 옷이 척척하게 젖은 이현이 품으로 굴러들었다.

    “왜 이렇게 비를 맞았어.”

    그렇게 말하며 석희재는 그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물비린내를 맡았다. 잘 삶은 깨끗한 면에서 나는 것 같은 부드러운 체취에는 도시의 비 냄새도 함께 배어 있었다.

    이현은 석희재의 가슴팍에 뺨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우산이 없었어.”

    “술 많이 마셨어?”

    “연락했지. 미안해. 핸드폰 잃어버렸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이현은 사과부터 해 왔다.

    그 말을 들은 석희재는 선 채로 비틀거리는 이현의 품을 뒤져 보았다. 과연 재킷 주머니, 가방, 바지 주머니 그 어디에도 핸드폰이 없었다. 제 몸을 더듬는 석희재의 손길이 간지러웠는지 이현은 그 손길에서 미약하게 벗어나려 하면서도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너도 출근해야 하니까. 말해 주려고 했는데 핸드폰이 없어… 핸드폰이… 미안해.”

    “어쩌다 잊어버렸어?”

    바깥에는 여전히 바닥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현은 대답 없이 한숨만 쉬었다.

    “후….”

    석희재는 젖어서 거치적거리는 그의 옷을 벗기고 마른 수건으로 드러난 목과 등을 닦아 주었다. 그가 취해서 오면 이런 것이 좋았다. 그의 몸을 돌보고 싶은 배려를 숨기지 않아도 되니까.

    “어떤 자식이 내 핸드폰 던졌어… 던져서 물웅덩이에 빠졌는데 차가 밟고 가서.”

    “…….”

    “너한테 기다리지 말고 자라고 하려고 그랬는데….”

    이현은 깨진 핸드폰보다 그것만이 속상하다는 듯이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런 거 신경 안 써.”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려다 석희재는 말을 삼켰다. 연락 없이 늦게 돌아오는 이현이 조금 원망스러웠고, 그에게 자신은 내키는 대로 대해도 되는 존재인지 많이 생각했고, 같은 술자리에 있을 이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이현이 그런 석희재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타인을 일방적으로 기다리게 하는 것에 마음 쓰는 사람이었다.

    “씻을래?”

    “지금 씻으면 자빠질 것 같아.”

    이현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쿡쿡 웃었다. 아마도 욕실에서 자빠진 자기 모습을 상상한 듯했다. 흔들리는 상체가 벽에 기댄 채로 옆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석희재는 얼른 그를 바로 앉혔다.

    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석희재는 TV를 틀었다. 그의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적당히 마른 몸에 담요를 덮어 준 후, 이현이 항상 반복해서 보곤 하는 오래된 영화를 재생시켰다.

    그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지고 와서 손에 힘이 없는 그에게 물 잔을 쥐여 주는 대신, 이현의 옆자리에 앉아 그가 원할 때마다 조금씩 직접 물을 먹여 주었다.

    “핸드폰 물어 달라고 했어?”

    “아니.”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새로 사 줄 거야. 사 준다고 하고 나서 던졌거든.”

    “미친 자식들 아냐?”

    “맞아. 미친 것 같아….”

    “누군데?”

    “백… 아, 아니다. 말 안 할래.”

    “백 누구? 뭐 하는 인간이야.”

    석희재가 드물게 격양된 느낌으로 나지막하게 비난을 뱉자 이현이 피식 웃으며 눈을 마주쳐 왔다.

    “근데 왜 네가 화를 내냐.”

    그 말에 석희재는 미미하게 표정을 굳혔다.

    이현은 술에 취한 채로도 선 긋기를 하는 것인가 싶어서, 또 자신에게는 함께 비난할 자격도 주지 않는 건가 싶어서.

    그러나 이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 왔다.

    “나만 화낼게. 그냥… 나쁜 건 혼자만 느껴도 되잖아.”

    “…….”

    “표정 풀어. 나 호구 아냐. 나도 화나… 화났는데 오는 길에 다 풀렸어.”

    “…….”

    “왜냐면 밖에 비가 오잖아. <싱잉 인 더 레인> 생각나고 좋더라.”

    “…영화?”

    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이현은 작게 중얼거리면서 TV를 응시했다.

    이현이 매번 반복해서 보는 영화 중 하나가 <싱잉 인 더 레인>이었다. 이현이 좋아하는 영화를 외울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본 석희재는 그가 무슨 장면을 말하는지 금세 알아챘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자신 안에 피어난 감정을 깨닫고 비를 맞으며 벅찬 감정을 노래하는 장면.

    집으로 오는 길, 일부러 물웅덩이를 철벅철벅 밟아 대며 노래를 흥얼거렸을 이현이 눈에 그려져 석희재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 그런 식으로 구겨진 자존심과 기분 나쁜 감정을 비와 함께 물웅덩이에 흘려 버렸을 그가 무척 처량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새 술기운이 가셨는지 조금 또렷한 초점을 되찾은 이현이 중얼거렸다.

    “…아무튼 나 때문에 화내지 마.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고 그러니까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야. 너도 그렇잖아. 회사는 다 그래. 세상에 다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하고만 일할 수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려면 기존의 방식도 받아들여야 되니까.”

    “그래도 그 회사는 특별히 거지 같아.”

    석희재의 말에 이현은 갑작스레 흥분하며 동조했다. ‘맞아. 씨발 거지 같아!’

    그러더니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혁명가는 못 돼.”

    “…….”

    “자존심도 없고 비굴해.”

    “…….”

    “그래도 인내심은 조금 있어.”

    “…….”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만큼의 인내심은….”

    이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스르륵 고꾸라졌다. 졸다가 앞으로 꾸벅 엎어진 것 같았다. 그의 상체를 받아 든 석희재는 그의 몸을 조심스레 제 무릎 위로 눕혔다.

    그리고 그 순간에 석희재는 이현이 아주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제 관념 속 어른의 모습과는 멀리 동떨어진 이현인데도 그런 생각이 든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채우거나 과한 부분을 깎아 내면서 본인을 완성해 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죽어도 극복할 수 없는 자기 한계를 명확하게 알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사회에 자기를 맞춘다는 점이 기특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그러면서 여전히 꿈을 좇는 부분만은 소년 같다.

    사색을 좋아하는 석희재는 종종 궁금해하곤 했다. 소년과 어른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지금 이현을 통해서 그 희미한 회색지대를 찾은 것 같았다. 이현은 확실히 탈피를 거친 사람 같았다. 남들은 그저 물정을 모른다고, 순진하다고 손가락질할 만한 미성숙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석희재는 깨달았다.

    동시에 석희재는 그를 좋아하게 되어서 숭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빠질 만한 사람이기에 이만큼 좋아하게 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자?”

    석희재는 속삭이듯 물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벌린 입술 안에서 달콤한 호흡이 흘러나왔다.

    석희재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 자연스레 흘러내리고 이현의 코끝의 그의 날카로운 콧대가 쿡, 닿았다. 조심스레 단 호흡을 마시던 석희재는 이현의 입술을 핥았다. 부드러웠다.

    “참 예쁘다.”

    불쑥 흘러넘친 진심에 이현이 잠결에 미소 지었다.

    설마 들은 건가, 갑자기 무섭게 심장이 쿵쾅거려 석희재는 변명을 먼저 준비했다. 그러나 숨죽이고 기다려 봐도 이현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예쁘다는 말이 좋아?”

    석희재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더 해 줄게.”

    석희재의 마음속에 다소 소년 같은 망상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와 진짜 연인이 되어 서로 사랑의 단어를 주고받는 순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특히 이렇게 그를 품에 안고 말하고 있을 때면 당장 잡힐 듯한 현실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오늘처럼 이현이 나약해 보이거나 그에게도 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 때면 더욱더 그랬다. 마음이 지극히 깊어져 조금 괴로워질 정도로.

    “네가 원할 때에….”

    그리고 그날, 석희재는 자신이 ‘어른’이 된다면 이현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석희재가 어른의 필요충분조건 중 ‘인내’를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짝사랑의 결실 끝에 석희재는 어느샌가 어른이 되었다. 이현의 존재가 그를 어른으로 완성시켰다.

    다만 이현이 삭막한 일상 속에서 이제는 약간의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흑백 영화를 돌려 보며 최초의 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듯이, 석희재 역시 이현과 유지하는 거리감 사이에서도 그가 간혹 보여 주는 다정한 모습과 그의 속내를 보며 희망을 키웠다.

    현실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현 역시 마찬가지의 좌절을 겪었을까를 생각하면 참을 만했다. 돌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저 자신보다 제가 없던 날에 일터에서 혼자 채이고 채였을 이현을 떠올리는 게 더 가슴 아팠다.

    진실로 맹목적인 짝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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