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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21/23)

Epilogue

“떨려.”

일요일 오전,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신우는 그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게 분명한 신우의 태도에 차를 운전하던 한은 왼손으로 핸들을 쥔 채 오른손으로 신우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자아, 릴렉스. 괜찮아. 그냥 어머니 뵈러 가는 거야.”

“……그렇긴 한데, 20년 만이라 긴장돼. 엄마가 나 못 알아보면 어쩌지?”

“그럴 리가 없다니까. 너랑 너희 어머니 많이 닮았어. 보는 순간 알아볼걸. 저번에 그 딸도 너 보자마자 알아봤다며?”

“그렇기는 한데…….”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전화로만 통화했음에도 그녀는 정확히 자신의 앞으로 와 ‘연신우 씨 맞으시죠?’하고 물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그녀가 특별히 눈썰미가 좋아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카페 안에 혼자 앉아 있던 사람이 자신 하나뿐이라 쉽게 알아본 걸 수도 있다.

어떻게 자신을 달래도 쉽게 가시지 않는 불안함에 초조한 듯 입술을 달싹거리자 왼손을 꽉 잡은 한이 손에 깍지를 끼며 들어 올렸다.

“걱정 마.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날 믿어.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주 기분이 좋고 날씨도 상쾌한 게 좋은 일만 줄줄이 생길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그러니까 긴장하지 마. 무조건 날 믿어.”

박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감이 좋은 녀석의 위로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이 녀석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다. 그게 맞다.

한이 하는 말이라면 믿어도 된다.

“네 말 들으니, 그나마 안심된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제 다 왔어. 너무 떨지 마.”

“응.”

느긋하게 왼손으로 핸들을 돌린 한이 코너를 돌아 골목길로 차를 몰자 차 안의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 근처입니다.’라는 안내가 울려 왔다.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시각을 확인하자 아직 11시 40분이다.

“너무 일찍 온 거 아냐? 거기 한정식집이라며?”

“괜찮아. 내가 부탁해서 문 좀 일찍 열어 달라고 했으니까.”

“원래 몇 시 오픈인데?”

“그런 가게는 조찬 시간에 잠깐, 그리고 오후에만 열지. 말이 한정식집이지 거의 요정 같은 데라 높은 분들이 오시는 데거든.”

“그런 데서 가게를 미리 열어 줘?”

“괜찮아. 어차피 우리 할아버지 가게니까. 아, 넌 온 적 없지? 난 이런 데는 너무 거창해서 별론데 요리는 좋아. 예전에 우리 집에서 일하시던 아줌마가 직접 요리하시거든. 그 아줌마는 궁중 요리 전문가.”

처음 듣는 그 이야기에 조금 목소리가 높아졌다.

“할아버지 음식점도 갖고 계셔?”

“그렇게 요리 좋아하시는데 음식점이 없을 리가 없지. 한정식집 몇 개 갖고 계셔. 아, 그러니까 생각났다. 그중에 떡갈비 맛있는 집 있는데 다음 주말엔 거기 가자. 경기도 외곽이라 좀 가야 하는데 거기 떡갈비 진짜 맛있어. 전국 맛집으로 유명해.”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와 맛집이라니 너무 잘 어울린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이 또다시 내비게이션 안에서 안내음이 났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바로 눈앞에 활짝 열린 문이 보였다. 그 너머로 펼쳐진 푸른 잔디밭을 보며 본능적으로 한의 손을 세게 쥐자 단정한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문 앞으로 나와 섰다. 직원인 듯한 그를 본 한은 곧장 차를 멈추곤 손을 꼭 잡아 왔다.

“네 이름으로 예약해 놨으니 안쪽 건물로 가면 직원이 안내해 줄 거야. 연못 낀 제일 조용한 방으로 잡아 놨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들어가서 천천히 얘기해. 그리고 아무리 기뻐도 울지는 마라. 너 눈 빨개져서 나오면 마음 안 좋을 것 같으니까.”

“……넌? 같이 안 들어가?”

“난 옆방에서 기다릴게. 얘기 끝나면 전화해.”

“왜?”

“왜긴? 나랑 같이 들어가긴 그렇잖아. 20년 만의 상봉인데.”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근 2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면서 남자를 애인이라고 데리고 나타나는 건 좀 그렇다. 바로 그게 한이 자기 어머님께 한 짓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한이 같이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함께 있으려고 같이 나왔던 거다.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시든, 꼭 이 녀석이 옆에 있어 줬으면 했다.

“난 너랑 같이 가고 싶어. 애인 있다는 건 얘기했으니까…… 내가 못된 걸지 몰라도 엄마한테 너 보여 주고 싶어.”

“……진짜?”

“응.”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다.

“그럼 가야지.”

그 말과 함께 안전띠를 푼 한이 먼저 차에서 내려서는 모습에 자신 역시 그를 따라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사이 바로 차 옆으로 다가온 남자에게 한이 차 키를 건넸다. 그러곤 보닛을 돌아 다가서며 슬쩍 말을 던졌다.

“사실은, 네 명 예약해 뒀어.”

애초에 같이 들어갈 생각이었다는 그 말에 역시나란 생각이 들어 웃음을 터트리자 한이 어깨를 안아 줬다.

“4인분 예약해 두고 네가 같이 들어가자고 안 하면 1인분은 옆방으로 갖다 달라고 하려고 했어. 그런데 막상 네가 진짜 같이 들어가자고 안 했으면 좀 삐쳤을 거야.”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어. 같이 안 들어갈 거면 같이 나오지도 않았지.”

“그렇지?”

“당연하지.”

싫다고 해도 당연히 끝까지 따라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런 면에서는 소극적인 한의 반응에 어깨로 그를 툭 치자 한이 웃으며 건물 안쪽으로 향했다.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쪽으로 가는데 마침 그 안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분이 나왔다.

그녀의 등장에 한이 자신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 진짜 오랜만에 보네, 한이. 옆에는 오늘 예약하신 손님?”

“네. 제 애인이요.”

역시나 이번에도 터져 나온, 망설임 없는 한의 커밍아웃에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회장님께 얘기 들었어. 자, 그럼 손님들이 먼저 와 계시니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말과 함께 차분하게 돌아서려는 그녀의 모습에 한이 놀라 되물었다.

“벌써요?”

“응. 방금 오셔서 안내해 드렸어.”

어머니와 혜진 씨가 벌써 와 있다는 말에 다시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요란한 그 박동 소리에 손을 들어 가슴을 누르자 이쪽을 힐끔 돌아본 한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방은 어딘지 아니 알아서 찾아갈게요. 그보다 따뜻한 차 좀 내주세요.”

“그래, 그럼. 바로 준비해 줄게.”

깍듯한 태도로 인사를 마친 그녀가 다른 건물로 향해 가자, 한이 다시 신우의 손을 잡아끌고는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문득 마주 잡은 손을 들어 올리고는 한숨을 내쉰다.

“너, 손 너무 차다. 얼굴도 창백하고.”

“……지금 심장이 너무 뛰어.”

“아, 겨우 안정시켜 놨는데 또 그러네. 심호흡해 봐.”

“숨도…… 못 쉬겠어.”

지금 심장이 가슴에서 뛰는 건지 머리에서 뛰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신우가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큰 건물을 지나 작은 별채 같은 건물 앞에 선 한이 마루 위로 올라서기 전에 신우의 두 손을 쥔 채 마주 보았다.

“자, 따라 해 봐.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유치원 선생님처럼 마주 잡은 손을 꽉 쥔 한이 그대로 따라 하라는 듯 턱짓하자 신우가 순순히 그 말을 그대로 되뇌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래.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오늘은 좋은 일만 있을 거야. 그러니 긴장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어. 내가 있는 곳에 나쁜 일은 안 생겨.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만드는 게 정한이라고. 그러니까 믿어. 믿고 긴장하지 마. 그냥 엄마 만나는 거야.”

마치 암시를 걸듯 한이 반복하는 말에 신우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엄마 만나는 거야.”

“그래. 올라가자. 어머니, 기다리시겠다.”

마지막 말을 마친 한이 먼저 마루 위로 올라서자 신우 역시 그를 따라 구두를 벗고 마루 위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숨을 길게 내뱉는 사이 한이 등을 쓸어 준다.

진정하라고 말하는 듯한 그 손길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어느새 두근거림도 잦아들어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진 기분에 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한이 복도 안쪽의 방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작게 말을 건넸다.

“여기야.”

“응.”

“문 열까?”

“응.”

망설임 없는 그 답에 한이 마음에 든다는 듯 눈웃음을 흘리며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작게 울리는 노크 소리 뒤로 고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조금 높은, 방금의 자신처럼 긴장한 듯 떨리는 그 목소리에 한이 천천히 문을 밀어 연다.

열리는 그 문 안에는 또 다른 자신의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끊어졌다 여겼던 인연이 그렇게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 Family Affair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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