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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귀-124화 (1부 완결) (124/124)
  • 4화

    차디찬 겨울의 밤.

    해월은 제 목숨을 대가로 선학경을 소생시키려 했다. 그런데 선학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술식을 다시 쓰고 안간힘을 내보아도, 주술은 발동되지 않았다.

    결국, 해월은 그를 되살리는 일을 포기했다.

    그리고 선학경으로부터 멀어졌다.

    제 과오로부터, 달아났다.

    공허를 품고 있는 흑청색 눈동자가 가만히 하늘을 응시했다.

    아름다운 만월의 겨울밤이었다. 하지만 해월은 달의 뒷면을 걷는 것처럼 쓸쓸했다.

    온몸이 돌덩이에 짓눌린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살짝 벌어진 잇새에서 나온 숨은 한겨울의 공기와 맞닿아 희뿌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얼어붙은 얼굴 위로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눈송이들은 그의 뺨에 닿자마자 그 형태를 잃고 녹아내렸다.

    눈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하늘이 선사하는 최후의 선물인가.

    “하, 하하….”

    해월은 이내 무언가 끈을 놓은 사람처럼 헛웃음을 터뜨렸다. 몇 번이고 자신의 최후를 상상했었지만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이렇게 죽게 될 줄은 몰랐다.

    선학경을 소생시키려 하였으나 주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생의 끝이었다.

    비참하다… 그런 감상이 들었으나 이내 픽 웃어 버렸다.

    “…….”

    시간이 더디게 가는 듯이 느껴졌다. 모든 슬픔, 아픔, 고통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전신을 잠식해갔다.

    “진아….”

    고뿔은 다 나았으려나. 잘 털고 일어났겠지. 그럼 누가 준 약을 먹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애가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뭐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도 대충 넘겼던 것 같은데 이리 궁금해질 줄 알았으면 깨워서라도 되물어볼 걸 그랬다. 그게 아쉬웠다.

    핏자국으로 엉망이 된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차올랐다. 칼날이 꿰뚫고 난 자리보다 심장이 더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애를 더 자세히 눈에 담고 올 것을. 한 번이라도 더 머리칼을 쓸어줄 것을….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지독한 후회를 끝으로 해월은 무거운 눈꺼풀을 감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숨이 끊긴 것은 그로부터 머지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엄혹한 추위가 도래한 어느 겨울날, 선해월은 그렇게 죽었다.

    ***

    참혹하고도 고요한 그곳에 인기척이 생긴 것은 새벽녘 무렵이었다.

    촌장은 해월의 경고를 듣고 난 후 안에서 집 안에서 숨어 있다가 결국 문을 박차고 어두운 산길을 올랐다. 날이 워낙에 춥고 몸 상태도 좋지 않은지라 힘이 들었다. 정녕 죽음의 그림자가 저를 드리웠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촌장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단곡에 도착한 뒤, 촌장은 초롱 불빛 근처로도 여실히 보이는 참혹한 광경에 그만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이런 참극이라니. 필시 예삿일이 아니었다. 해월이 제게 나오지 말라 경고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놀란 가슴을 내려앉히고 시신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른 시신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한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

    차갑게 굳어 있는 시신은 틀림없는 해월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짜증 나도록 반반한 낯짝, 고집스럽게 입던 백의는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촌장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잠시간 침묵했다.

    “이봐, 선해월이….”

    촌장의 부름에도 해월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해월의 코밑에 손을 대보았다. 손끝에 닿는 숨결은 없었다. 목을 짚어 맥을 재어 보아도 혈맥은 미동조차 없었다.

    정녕 숨이 멈추었음을 깨닫자 촌장은 주먹을 움켜쥐고 침음했다.

    예전부터 봐 왔던 망할 꼬맹이는 결국 저보다 먼저 죽었다. 그것이 우스워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해월의 몸은 온통 자상으로 인해 엉망이었고, 칠공에서 피를 흘려 얼굴에도 굳은 혈흔이 낭자했다.

    그때, 멀찍이서 관원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으으, 춥다 추워. 이 새벽에 대체 누가 관아에 신고를 했다는 건지 모르겠네. 높으신 나리들께서도 참 유난이야.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가서 수습하라니,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나리들께서 수습하라면 수습해야지. 그게 우리의 일이거늘. 기름을 챙기라는 것을 보면 또 무슨 역병이 돌았으니 시신을 태우라는 건가 보지 뭐.”

    이야기를 들은 촌장은 흠칫했다.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지만 일단 지체할 순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깨달았다.

    촌장은 다급하게 축 늘어진 시신을 업고 관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음에도 서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해월의 몸을 깨끗하게 닦고 수의를 입혔다. 미안하지만 관까지 준비할 여력은 없었다.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해월을 묻어야 했다. 만일 시신 한 구를 빼돌린 것을 들켰다가는 어떤 곤욕을 치를지 몰랐다.

    촌장은 예전에 해월이 알려줬던 산자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날엔가 이 길목에서 해월이 얘기했던 적이 있다.

    ‘이쪽 땅은 기운이 어지러워 범인의 눈에 쉽게 띄지 않습니다. 마음을 곧게 먹지 않으면 길을 헤맬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난 한 번도 길 헤맨 적 없다.’

    ‘그거야 아저씨는 심지가 곧으시니 그런 거죠. 멋모르는 사람들은 이쪽 길로 들어섰다가 산을 헤매게 될 겁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내 무슨 상관이냐.’

    ‘촌장이시니 산을 타는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신경 쓰시라는 거죠.’

    그렇게 남의 안위를 신경 쓰던 놈이 결국 죽어서 왔다.

    “염병할 놈. 지 안위나 신경 쓸 것이지.”

    촌장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흐르는 것을 거칠게 닦아 내고, 해월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얼굴만 보면 꼭 잠이 든 것 같았다. 그간 촌장이 떠나보내야 했던 다른 가족들처럼.

    그는 터질 듯이 뛰어 대는 가슴을 몇 번 내리쳐서 진정시켰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나무막대기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땅이 얼어 제대로 팔 수가 없었다. 막대기가 안 되면 손으로, 손이 안 되면 다시 막대기로. 그렇게 한참을 파니 드디어 한 사람을 묻을 만한 공간이 나왔다. 어느새 촌장의 등 뒤로 동이 트고 있었다.

    그는 흙과 피가 묻은 손을 옷자락에 닦아 냈다. 한결 더러움이 가신 손으로 해월을 들었다.

    “관짝까진 바라지 마라 선해월. 이걸로 내기는 끝났어. 네가 이겼다.”

    상황이 급박해서 온전한 장례를 치르거나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잘 가라.”

    촌장은 그대로 해월을 흙으로 덮었다. 이윽고 평평해진 땅을 보고 촌장은 털썩 주저앉았다.

    지난날 그를 괴롭혔던 삶의 허무감이 다시금 도래했다. 가슴속이 답답하여 기침을 하자 붉은 피가 나왔다. 촌장은 몇 번을 닦아도 계속 흐르는 피를 더 이상 닦아 내지 않았다.

    촌장은 해월의 성격상 위험한 곳에 그의 제자를 데려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히 어딘가에 떼어 놓고 왔을 터, 제자라던 그 공자는 반드시 해월을 찾으러 올 것이다. 이곳에 해월을 묻었다는 말을 전해 줘야 하는데, 좋지 않은 예감이 두 가지 들었다.

    하나는 해월이 이 수상한 일에 대해 제자가 아는 것을 싫어할 것 같다는 예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제 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곧… 따라가겠구만….”

    허탈한 웃음을 지은 촌장이 숨을 거둔 것은 그 다음 날의 일이었다.

    ***

    달이 해보다 더 짙은 새벽. 원복은 조심스레 저택의 뒤뜰로 향했다. 그곳에 있으리라 여겼던 사내를 발견했다.

    “도련… 아니, 가주님. 무얼 하고 계십니까.”

    원복은 아직 입에 잘 붙지 않는 호칭으로 연진을 불렀다. 그가 돌아온 이후, 그는 곧바로 가주가 되었다. 가문 내에 제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니 연진이 가주가 되는 것을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다. 시기가 적절하다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황제가 붕어하였기에 백난국은 슬픔에 잠겨 있다. 해서 망조가 깃든 한주 강씨의 수장이 누가 됐든 상관할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흩어져 있던 가문의 장로들을 사로잡고 가문다운 구색을 다시 갖추기까지 시일이 걸리긴 했지만 연진에게 그런 것은 힘든 일도 아니었다.

    “잠시 기다리거라. 조금이면 된다.”

    “…….”

    연진은 맑은 정수를 떠 놓고 눈을 감은 채 마치 치성을 드리는 것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정수 위로 휘영청 뜬 보름달이 담겼다. 잠시 뒤, 연진이 입을 열었다.

    “이제 되었다.”

    “또… 기도를 올리고 계셨습니까.”

    연진은 대답 없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그마저도 금세 지워 냈다.

    “…그분께서 했던 말씀을 지키고 계시는군요.”

    “스승의 가르침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뿐이다.”

    원복은 어느 달밤에 해월과 연진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은 적이 있다.

    ‘소원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맑은 물을 떠놓고 달에게 치성을 드리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화가 있어.’

    ‘뭡니까. 그 어린아이 망상 같은 설화는. 그런다고 죄다 소원이 이뤄지면 세상에 소원 못 이룬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그러니 설화인 게지. 간절한 바람, 달의 자비, 약간의 운… 그것이 겹치는 날에 진짜 소원이 이뤄질지 누가 알아? 그리고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 너도 간절하게 바라는 소원이 생기면 한번 빌어 봐.’

    ‘그럴 일 없습니다.’

    그렇게 일갈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연진은 한주로 돌아와 머리칼을 잘라 낸 이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원복은 그 모습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무어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가만히 두었다.

    연진이 무슨 소원을 빌고 있을지도 묻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뒷짐을 지고 보름달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던 연진이 운을 뗐다.

    “난 가끔 사부가 오늘날까지의 일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은 날더러 가주가 되라고 했지.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시고 조정이 혼란스러울 때, 아무도 강씨 세가의 일에 신경 쓰지 않을 때 패권을 쥐라고…. 그땐 그 말이 헛되다 여겼는데 지금 보니 하나 틀린 것 없이 전부 이뤄졌어. 참으로 우습지 않더냐.”

    시기적으로 그리 길지 않은 차이를 두고 두 사내가 죽었다.

    한 사내는 천 년 역사를 이어온 백난국의 늙은 황제였고, 다른 한 사내는 이국인의 핏줄을 가진 젊은 퇴마사였다.

    평생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황제를 애도하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고 상복을 입었다. 그러나 젊은 퇴마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난 그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미 세상에 없는 이라고 여긴다. 모순이라 할 수 있지. 네 눈에 내 모습이 어찌 비춰질지 내 다 알고 있다. 하나 이해해다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원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리가 너무도 쉽게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 허무하고 덧없구나. 하나 지위를 가졌으나 이는 허울뿐이고, 앞으로 해야할 일이 태산이야.”

    “…저도, 최선을 다해 가주님을 돕겠습니다.”

    “그래,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연진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의 세계를 보며 그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을 떠올렸다. 제가 해월을 생각하듯, 해월도 저를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정녕 그 숨이 끊겼더라면, 그 마지막 순간에 저를 떠올려 주었을까. 기실 그것은 의문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진실이라는 것은 오직 달만이 아는 일이었다. 달은 자신이 아는 시간을 반추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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