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설귀-123화 (123/124)
  • 3화

    “안에 계십니까!”

    쾅쾅!

    “나 원 참… 여기가 맞냐고 물어도 대답도 없고.”

    사람 하나 옮기는 데 돈을 두둑히 얹어 주길래 운수 좋다 싶었더니만 문을 두들겨도 답 없는 저택과 말을 걸어도 답 없는 사람, 이 둘 때문에 마부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애초에 이런 산송장을 운반하는 일은 꺼림직하니 받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하기엔 받은 돈이 꽤 되었기에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었다. 무사히 데려다준 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잔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십니까. 누구신데 남의 저택 문을 그리 두들기세요.”

    한 소년이 나타나자 마부는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꼬맹이 넌 이 집 하인이냐?”

    “이 집 하인 맞는데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허면 네가 확인 좀 해다오. 저기 있는 저 공자, 이 댁 공자가 맞느냐?”

    “공자요…?”

    강석요와 강석철은 이미 죽고 상까지 치렀다. 이 가문은 손이 귀해서 사생아를 제외하고, 정식으로 강씨 성을 물려받은 공자는 현시점에 한 명밖에 없다.

    원복은 가지고 있던 짐꾸러미를 툭 떨어뜨리고 서둘러 마차로 향했다.

    거칠게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예전의 강건함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강연진이 있었다. 원복은 순간 재회의 기쁨보다, 기이함을 먼저 느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숨은 쉬고 있으나 꼭 죽은 것처럼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렇게 거칠게 문을 열었는데도 쳐다보는 법이 없었다.

    얼굴만 보면 자신이 알던 강연진이 맞지만, 안색과 몰골을 보면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병자를 보는 듯했다.

    “도, 도련님.”

    오랜만에 그 호칭을 입에 올렸다. 그제서야 뻣뻣하게 굳은 듯이 앉아 있던 연진도 고개를 움직여 원복을 보았다.

    “……원…복아….”

    버석하게 마른 목소리에 원복은 울컥하려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예, 도련님. 저 원복입니다.”

    “…여기는… 네가 왜 여기에….”

    “송구합니다. 떠나지 않고 이곳에 계속 남아 있었어요. 전 어차피 딱히 갈 곳도 없었는걸요. 그보다 도련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다 연진은 과거를 되뇌이기를 관두었다. 말없이 고개만 떨구었다.

    그제야 원복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본래라면 마땅히 곁에 있어야 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귀빈, 귀빈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주위를 둘러보지만 다른 마차는 없었다. 그렇다면 연진 홀로 왔다는 뜻이 된다.

    원복은 연진의 답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답을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배반된 감정과 긴 침묵 끝에 연진의 입술이 열렸다.

    “…그 사람은… 이제, 없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없다니요. 귀빈께서 혹 도련님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세상에, 더는 없어.”

    텅 빈 눈을 깜빡이던 그는 이내 무거운 피로에 몸을 맡긴 듯 허물어졌다.

    “도련님! 도련님!”

    원복이 몇 번을 크게 불렀지만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

    “도련님이 떠나시고 이런저런 소란이 있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위독하신 바람에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은 천운이라 할 만하나, 모두가 이 가문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떠나갔습니다. 문하생들도, 하인들도요. 하지만 저 원복과 장로님은 이곳에 남았습니다.”

    원복은 자리보전한 연진을 최선을 다해 간호했다. 남아 있는 유일한 장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있던 가문의 재산은 벌금의 명목으로 황실에 압수당했다. 그렇게 다 쓰러져 가는 이 가문에 그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연진과 그의 스승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연진뿐이었다.

    “도련님… 듣고 계십니까.”

    “…….”

    원복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연진에게 계속 말을 붙였다. 의원의 말로는 울증으로 인한 실어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경우 약을 쓰기보다는 본인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라 지금으로서는 달리 낫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사실 원복 역시 해월의 죽음 소식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연진 앞에서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살아 있으나 꼭 죽은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진을 차마 두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오늘도 원복은 그런 연진의 옆에서 여러 가지 말들을 했다. 물론 그중 연진의 귀에 제대로 들린 것은 없었다.

    원복은 서랍에서 발견했던 서책들을 꺼내 연진의 옆에 두었다. 연진은 독서를 즐기는 이였으니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이다.

    “저는 글자를 몰라 이 책들이 어떤 내용인지, 무슨 재미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도련님께서는 서책을 무척 좋아하시지 않았습니까. 심심하실 테니 읽으면서 무료함을 달래 보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서며 원복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홀로 남은 방 안.

    연진은 돌아온 별채에서 끝없이 해월을 생각했다.

    ‘진아!’

    ‘으, 이거 맛없어. 하나도 안 달다고.’

    ‘그렇게 책만 읽다 백면서생 되겠다. 밖에 나가 놀기도 해야지. 이리로 와서 같이 볕이나 쐬자. 오늘은 날이 참 좋아.’

    ‘이거 봐! 신기하지? 시전에서 가져온 건데….’

    여러 가지 말들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그 기억에 취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 언젠가 했던 대화가 머릿속을 울렸다.

    ‘세상에는 순리라는 게 있어. 그 길을 벗어나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때가 왔을 때, 너무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으면 해.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 풍파에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거기에 자책까지 하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어? 뭐, 내가 하기엔 우스운 말이긴 하다만….’

    ‘어쨌든 간에 약조해 줬으면 해. 너는 순리에 마냥 순응하지도 반항하지도 않고 오로지 네 갈 길을 찾아 나아가겠다고. 그게 내가 스승으로서 너에게 가장 바라는 일이야.’

    웃으면서 하기에는 무거운 말이라 당시에는 그저 이상하게만 느껴졌었다.

    ‘내가 돌아오는 것이 순리였다면.’

    마땅히 가졌어야 할 가주의 자리를 돌려받길 원하지 않았고, 해월을 따라 세상을 떠돌고자 했던 것이 운명에 대한 반항이었다. 그 죄를 이렇게 받는 걸까.

    ‘그것은 나의 죄인데… 왜 그 사람이 세상에 없는 것인가.’

    갈 길을 찾아 나아가기엔 연진은 동력을 잃었다. 자신이 마땅히 따르고, 또 같은 길을 걷고 싶었던 이가 세상에 없으므로.

    연진은 그날부터 매일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 연진과 함께 온 패물들을 팔았기에 그나마 없는 살림에도 술값을 대고 있는 중이다. 연진이 술을 먹는 것이 좋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그가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그저 따랐다.

    스스로 낫기를 바라지 않아서 회복이 덜 된 몸에 술을 들이부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루 종일 구토를 하기도 했고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때론 헛것을 보는 듯 혼잣말을 늘어놓는 것도 목도하였다.

    원복은 새 술을 가져다주면서도 이것이 정녕 맞는 일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남은 이에겐 떠나간 이를 그리워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 긴 세월을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연진에게 해월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상실한 마음이 어떨지 원복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두고 가겠습니다.”

    연진은 원복이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병 입구에 입을 대고 쓴 액체를 삼켰다.

    술을 많이 마시는 이들의 마음을 평생 이해 못 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지금 연진은 그들을 누구보다 절실히 이해했다. 살아 있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 고통이었다. 제정신으로는 생의 시간들을 버텨 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면 좋은 일이 생겼다.

    빈 병을 내려놓자 옆에서 익숙한 말소리가 들렸다. 이 말소리를 듣기 위해서 연거푸 술병을 비워 낸 것이다. 연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야 너 술 냄새 장난 아니다. 왜 이런 꼴로 있어?

    “당신이… 내 곁에 없으니까요.”

    -뭐어?

    “나는 내가 환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만지려고 하면 사라질까 봐 연진은 차마 손도 뻗지 못한 채 눈으로 해월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청승 떨지 말고 네가 할 일을 해. 이러고 있으면 안 되잖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제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물며 당신조차 없어요.”

    -없으면 취하면 되지. 어려울 것이 있어?

    “……제 이름의 연 자에 무슨 글자를 쓰는지 아십니까.”

    뜬금없는 화제에 환영은 답 없이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리워할 연(戀)입니다. 제 부친은 사별한 제 모친을 그리워하며 그 자리에 매여 계셨지만, 저는 다르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아갈 진(進)이란 글자를 더하여 그리워하되, 그 마음이 지나치지 않기를…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러나 아버지는 틀렸다.

    “하나 부전자전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의 길을 아들도 걸어간다. 떠난 이를 미련하게 그리워하며 현재의 시간을 죽인다. 그것이 숙명처럼 느껴졌다.

    -멍청한 놈, 그렇게 계속 헛소리할 거면 그 옆에 책이나 읽어라.

    “…….”

    무기력이 온몸을 짓눌러서 손가락 까딱 하는 것도 지쳤지만 해월이 시키는데 안 할 수는 없었다. 연진은 느린 손길로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爲進書

    위진서.

    필체가 낯이 익었다. 턱에 저절로 힘이 풀리고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번졌다. 이것은 해월의 필체였다.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자 안에 있던 종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을 펼쳐 읽는 순간 연진은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네가 이걸 보게 된다면 아마 내가 떠났거나 네가 돌아왔다는 거겠지. 어느 쪽이든 너에게 그닥 좋은 일은 아닐 듯싶다. 이 책은 너를 위해서 쓴 거야. 급하게 써서 읽기에 힘들겠지만 내가 아는 것들을 적어 둔 것이니 꼭 배우고 익혀 둬. 분명히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서신은 온통 당부의 말들뿐이었다.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삼시 세끼 잘 챙겨 먹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살아서, 뜻을 이뤄라.

    해월이 이토록 제 생존을 염려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걸까.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더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진은 그대로 서신을 품에 끌어안고 엎드린 채 흐느꼈다.

    이 저택을 떠나기 전, 해월이 독을 먹고 팔가 연회를 망치기 전,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흐윽, 윽.”

    연진에게는 차마 해월에게 전하지 못하고 숨겼던 말이 있다. 그가 떠날까 봐 두려워서 차마 꺼내지 못하고 속에만 담아두었던 말이.

    “…연모합니다….”

    가 닿아야 할 곳을 잃은 말이 텅 빈 방안에 울려 퍼졌다. 연진을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해월이었다. 이제 연진은 그의 길을 알았다.

    연진은 술병을 깨뜨려 바닥에 있는 파편 하나를 집었다. 날카로운 파편이 손안에 멋대로 생채기를 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미 손은 화상으로 인해 엉망이었으니 더 이상 신경 쓸 것도 없었다. 그리고 연진은 망설임 없이 그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 냈다.

    잘린 머리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진은 단발(斷髮)이 되었다. 짧은 흑발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그의 사부와 같이.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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