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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귀-122화 (122/124)
  • 2화

    도적 떼들의 습격을 받고 폐허가 되었던 단곡. 그 참혹한 현장을 수습하던 관리와 인부들 사이에서 한 사내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시체와 집채를 태웠던 잿더미를 뒤적거리는 그 사내는 잠도 자지 않는 건지 밤낮으로 나타났다. 유족인가 보다 싶어 냅두었더니 시체를 태우려는 인부들을 때려눕히질 않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질 않나. 여러모로 곤란하게 하여 결국 무력으로 쫓아냈다.

    기세가 강하던 그 사내는 며칠 사이에 수척해져서 자신을 쫓아내는 이들을 막지 못했다.

    그 사내, 강연진은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관리의 무릎에 매달려 애원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초췌한 몰골의 사내는 대체 어디서 힘이 또 난 건지 관리의 옷자락을 거의 쥐어뜯을 듯이 힘을 썼다.

    “살아 있을지 몰라… 그만… 태우지 마….”

    “아이참! 이 마을 사람들 죄다 죽었다니깐. 쯧.”

    말은 그리해도 관리 역시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시신은 하나같이 처참했으며 겨울 추위로 인해 기괴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현장에 나온 사람들 전부 그 참혹한 현장을 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위에서는 애초에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죄인들이나 망국 출신이니 부정 탄다며 얼른 소각하란 명을 내렸다. 게다가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해 일체 언급을 금하란 명까지 받았다. 해서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도적 떼들에게 침입당한 것 치고는 훔쳐 간 물건이 없어 뵈고, 시신 또한 꼭 몸싸움을 한 것처럼 훼손이 심하다는 의문을.

    “거 이 지방 높으신 나리들께서 부정 탄다 하여 금언하란 명을 내렸으니 조심하시오. 어디 가서 입도 벙끗하지 않는 게 자네에게도 좋을 터. 자네가 누굴 그리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시신들을 다 태워 그 잿가루도 땅에 파묻었소. 자네가 찾는 사람도 이미 흙으로 돌아갔을 것이오.”

    “아니야… 그 사람은, 그리 허무하게 죽지 않아….”

    관리가 아무리 설명해 줘도 연진은 결코 믿지 않았다. 해월은 그런 식으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강했다. 올곧은 성정과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연진은 손안에 쥐고 있던 선초를 내려다보았다. 이 선초를 받았을 때, 해월은 진정으로 기뻐했다. 해서, 앞으로도 아름답고 귀한 것이 보이거든 해월에게 전부 안겨 주고 싶었다.

    죽음.

    그 단어만큼 해월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을까. 연진이 해월에게 감화되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해월이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그저 부유하는 공기처럼 살던 자신과 달리 목표를 향해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경애했다.

    나아갈 진(進)이라는 글자를 받아야 하는 건 제가 아니라 해월이었다. 저는 지금도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한심한 인사다.

    해월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 믿었다.

    그 순간, 흐리멍텅했던 연진의 눈동자에 일순 빛이 감돌았다.

    “어, 어디 가시오? 이보게!”

    연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만일 해월이 크게 다쳐서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면, 몸을 숨겨야 해서 저를 찾지 못하는 것이라면 있을 곳은 하나였다. 바로 이웃한 마을의 촌장의 집. 제가 그곳을 떠올렸듯 해월도 그곳을 떠올렸겠지.

    며칠 동안 먹은 것도 없고 잠도 자지 않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연진은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도착한 촌장의 집 앞에서 연진은 겨우 목에 힘을 주고 문을 두들기며 외쳤다.

    “촌장님! 안에 계십니까! 사부! 제가, 제가 왔습니다!”

    이곳에 해월이 있으리라 맹신하고 있는 연진의 얼굴은 벌써부터 기쁨과 환희로 가득찼다.

    그 소란에 안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열렸다.

    끼이익.

    안에서 나온 인물을 확인한 연진의 표정은 박제된 미소만 남긴 채 일변하고 말았다.

    “누구십니까.”

    “…….”

    촌장도, 해월도 아닌 중년의 사내였다. 다른 집을 찾아온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촌장, 촌장님은 어디 있습니까.”

    “…아! 혹시 강 공자님 되십니까?”

    “예, 맞습니다. 제가 강연진입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연진은 그럴 시간이 없노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기운이 없어 그저 사내가 이끄는 대로 들어왔다. 집안을 살펴보았지만 해월은커녕 촌장의 모습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사내는 연진에게 따뜻한 물수건과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마치 이곳의 주인인 양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연진은 그것들을 받아들지 않고 가만히 고개만 숙였다.

    그러자 사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촌장님께선 며칠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이 집에 잠시 머물고 있는 거고요.”

    “…그렇군요.”

    충격적이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예견된 죽음이었기에 새삼스레 기함할 것도 없었다. 지난날, 해월과 자신은 촌장이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뿐이다. 지금 연진에게 중요한 것은 해월의 행방이었지 촌장이 아니었다.

    반면 연진의 담백한 반응에 사내는 내심 놀랐다. 촌장과 연진이 가까운 사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죽기 직전의 촌장이 그런 부탁을 했을 리 없으니까.

    “저기 실은, 촌장님께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제게요…? 혹, 혹시 퇴마사 선해월에 관한 얘깁니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사내가 어버버하는 사이 연진은 어느새 달려들 듯이 굴고 있었다.

    “촌장님이 죽기 전에 그 사람을 숨겨 준 것이 아닙니까!”

    “저, 일단, 일단 진정하십시오 공자님!”

    그 말에 연진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내리눌렀다. 이제는 정말 몸에 힘이 남아나지 않아서 쓰러질 듯한 몸을 간신히 세웠다. 사내는 그런 연진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촌장님께서 혹시라도 강가의 연진이라는 공자가 찾아오거든 말씀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저 들리는 것과는 또 다른 함의가 있는 중요한 말씀인 듯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말입니까.”

    “공자가 찾는 것은 내가 잘 묻었으니,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말고 그저 잊으시오. 그것이 그 멍청한 놈도 바라는 것일 테니… 라고 하셨사온데…?”

    “…….”

    그 순간, 연진은 눈앞의 세상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목구멍이 틀어막힌 듯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숨도 쉴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고 가슴속에 잿더미가 들이차는 것만 같았다. 의식이 빠르게 흐려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며칠 후.

    촌구석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꽃가마가 들어섰다. 그 안에 있는 여인의 이름은 송수련, 하련방의 행수이자 선해월의 친우였던 이다. 그녀가 단곡의 소식을 고위 관료의 술주정으로 주워들었을 때, 당연하게도 그녀는 해월의 걱정을 쌀 한 톨 만큼도 하지 않았다. 지옥 불에 빠뜨려도 살아남을 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마을에 대한 애정도 연민도 없었기에 그 소식이 슬프지도 않았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해월이 예전에 주었던 주구가 기능을 하지 않았을 때였다. 다른 퇴마사를 어렵게 불러와서 더 이상 주구에 남은 영력이 없으며, 이 경우 술자가 사망했거나 주술을 파훼한 것뿐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 후 송수련은 모든 일을 제쳐 둔 채 죽어도 다시 안 오리라 생각했던 고향 땅 지척까지 당도했다. 그녀 또한 촌장을 떠올리고 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하련방 행수의 방문을 새로운 촌장이 맞아 주었다.

    가뜩이나 해월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지끈한데 촌장의 소식까지 들은 송수련의 미간은 주름을 펴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맞아 준 것은 새 촌장뿐만이 아니었다. 산송장 꼴을 하고 있는 연진도 있었다.

    연진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허공만을 보았다.

    새 촌장의 말로는 그런 꼴을 하고 있는 이를 내쫓기도 뭐해서 자신이 돌보고는 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송수련은 발밑이 꺼진 듯이 휘청거릴 뻔한 몸을 억지로 다잡으며 백치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연진에게 다가갔다.

    “……공자님께서 이리 계시면 저는 어찌합니까. 천치는 어디에 두고, 왜 혼자 계신 겁니까.”

    “…….”

    눈앞에 송수련을 두고 있으면서도, 연진은 너머의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했다.

    깊은 한숨을 내쉰 송수련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보세요, 공자님. 나 선해월의 친우 송수련입니다.”

    “…선…해월….”

    그 이름에 반응하는 듯 연진의 텅 빈 눈동자에 미약한 빛이 감돌았다.

    이윽고 연진은 송수련을 알아보았다.

    “송 행수… 여긴 어떻게….”

    “공자님이야말로 예서 무얼 하고 계시는 겁니까. 꼴은 이게 또 뭐고요.”

    멀끔하던 안색이 다 죽어 가는 병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상해 있었다. 그 원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송수련은 말을 줄이려 했으나, 결국 참지 못한 의문이 튀어나왔다.

    “정녕, 정녕… 그 녀석이 죽었습니까…?”

    송수련은 해월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빈사 상태가 되어 촌장댁에 몸져누웠을 지언정, 숨이 끊어졌을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해월은 없었다. 해월 대신, 그가 아꼈던 제자만이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꼴을 한 채 있을 뿐이었다.

    연진은 송수련의 물음을 듣고도 곧바로 답하지 않다가 이내 답했다.

    “…죽지, 않았습니다. 사부께서는… 선해월은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몰라보게 야윈 연진은 말을 하는 것조차 버거운 듯했지만 그 말만큼은 어떻게든 분명히 하려 했다.

    연진은 굳건했다. 그 모습에 송수련은 차오르는 눈물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죽지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그것이 정녕 죽었다는 뜻임을, 그녀는 잘 알았다. 송수련은 지난날 해월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누구든 쉽게 날 원망하니까, 너 하나 더 보탠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그러니 그저 두었던 거야. 너야말로 더 이상은 스스로를 책망하지 마.’

    ‘미안하게 됐어.’

    자신과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도.

    ‘건강히 지내. 되도록이면 장수해서 행수 노릇 오래 해먹고.’

    ‘…그리 말 안 해도 난 너보다 장수할 거야. 이 바보천치 같은 놈아.’

    “하하… 진짜… 천치 같은 놈….”

    그녀는 울음 섞인 헛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해월은 꼭 그때부터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녀의 친우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친우가 남긴 제자가 남아 있다. 송수련 그녀가 선해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 제자를 살리는 일이었다.

    송수련은 그동안 연진을 돌봐 준 촌장에게 사례를 한 후, 연진을 하련방으로 데려왔다. 연진의 상태가 워낙 말이 아니었기에 객사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회복을 도왔다. 연진은 그런 보살핌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생명 없는 인형처럼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 후, 그녀는 연진을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작은 짐들을 그에게 쥐여 주었다.

    출발하기 전, 그녀는 여전히 넋이 나가 있는 연진을 붙들고서 단호하게 말했다.

    “객주가 공자님과 그놈의 물건을 보관해 두고 있었다더군요. 잘 챙겨 두세요. 다른 짐은 제가 가진 패물을 있는 대로 가져온 것이니 요긴하게 쓰십시오.”

    송수련도 풍문으로 들었기에, 한주 강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과 현재 연진의 위치 또한 알고 있었다. 연진을 달리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연고 없는 곳에서 지내기보다는 떠나왔던 고향이라도 되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 마차가… 공자님의 고향인 한주까지 데려다줄 것입니다.”

    “…….”

    “다 잊으십시오. 전부 잊고 새 삶을 사세요. 선해월도 그걸 바랄 겁니다.”

    “…….”

    연진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와중에 의아함을 느꼈다. 촌장도 그렇고, 송수련도 그렇고 왜 전부 해월이 바라는 것을 단정 짓고 있는 걸까. 그가 진정 무엇을 바랐는지는 그가 되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인데.

    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연진은 이대로 자신의 숨이 멎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해월이 바라는 것을 단정 짓는 이들을 비난하면서도, 연진 역시 그가 바라는 것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월은 제가 살길 바랄 것이다. 그 자신이 어떠한 역경에도 줄곧 살아 냈던 것처럼.

    이윽고 마차가 출발했다. 연진을 태운 마차는 길고 긴 길을 지나 그를 고향으로 인도했다.

    강연진은 귀환했다.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가문에.

    고향을 떠난 지 일 년 즈음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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