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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귀-120화 (120/124)
  • 120화

    “네놈들을 이 자리에서 죽여 주마.”

    냉엄한 목소리가 겨울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해월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직감했다.

    설령 이 자리에서 저들을 모두 죽인다 해도, 자신은 살 수 없을 것이란 것을.

    싸늘한 시선이 정면을 응시했다. 서른 남짓한 자객들과 그 안에서 있는 수장 격의 인물.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낯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 이목구비를 눈에 새기고 뼈에 새겨서 저승길의 길동무로 삼고자 하였거늘.

    해월은 잇새를 짓씹었다.

    이미 온몸이 피비린내로 얼룩져서 입술에서 나오는 핏방울쯤은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소매에서 부적지를 꺼낸 해월은 손끝에 묻은 피로 빠르게 진언을 적었다.

    힘을 흘려 넣자 부적이 빳빳해졌다. 그것을 허공으로 날려 올렸다. 펑 하고 굉음과 함께 빛을 내며 부적이 터졌다.

    “으윽!”

    그 강렬한 빛에 다수가 눈을 찌푸린 사이 몸을 낮춰 달려든 해월은 순식간에 자객 셋의 목을 베었다.

    영안을 극도로 끌어 올린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반동으로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이내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으, 헉, 살, 살려, 줘…!”

    바닥에 널브러진 사내 하나를 거칠게 끌어당겨 그 눈에 칼을 겨누었다. 그리고 전방에 있는 묘령의 인물에게 말을 던졌다.

    “네 부하의 눈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고해야 할 것이다.”

    먹힐 거라고 기대한 협박은 아니었다. 역시나 그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적나라한 무반응이었다.

    할 수 없이 해월은 그대로 사내를 제 뒤편으로 던졌다. 그러자 굶주린 짐승이 먹이로 달려들 듯이 시신으로 만들어진 사병들이 사내에게로 달라붙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유혈이 낭자했다.

    그 잔혹한 모습을 목도한 적들의 눈빛이 공포로 일렁였다. 검술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그들도 제법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것 같지만, 죽음을 각오한 자의 결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해월은 한쪽으로 눈을 흘겼다. 거기에는 자신이 사술을 써서 만든 병사들이 있었다.

    한때는 평범하게 웃고, 울고, 숨쉬던 사람들이 시신이 되어서 살육을 저지른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해월의 명령과 의지에 따라 그들은 팔이 잘려 나가도, 다리가 분질러져도 앞으로 나아가 자객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자신이 지키지도 못했던 자들을 죽어서도 편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죄악감은, 적들의 목을 모두 내려친 다음에 느끼기로 결정을 내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오로지 한 가지의 목표가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리고 해월은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죽인다.’

    검이 맞붙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순식간에 여러 개의 술법을 동시에 써서인지 체력이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아까 공격을 받은 부위가 예사롭지 않은지 피가 울컥울컥 나오는 데다 거동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

    잠시 숨을 골랐다.

    검을 맞붙이고 있던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해월을 밀어붙였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던 해월은 이를 악물고 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또다시 빈틈을 허용했다. 상대가 해월의 검을 쳐냈다.

    검을 손에서 놓음과 동시에 해월은 그대로 몸을 낮게 수그려 공격을 피한 뒤 그를 넘어뜨렸다.

    상대의 몸이 완전히 땅으로 고꾸라지기도 전에, 허리춤에 있던 부채를 꺼내 들어 칼날 같은 바람을 날렸다.

    듣기 좋지 않은 신음과 함께 그는 숨이 끊겼다.

    “하…하….”

    바닥난 체력 덕에 몇 번이나 고전을 해야 했다. 몸도 성한 곳 하나 없이 자상을 입었다.

    ‘젠장.’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의식이 흐려질 지경이다.

    문득 해월은 쥐고 있는 부채를 보았다. 언젠가 연진이 그려 주었던 어여쁜 그림, 그리고 장신구가 달려 있는 부채였다.

    연진과 함께 웃으며 지냈던 시간이 꿈결같이 느껴졌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해월은 그것을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었다.

    그때, 멀리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식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퍽.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제게로 닿은 것은 다름 아닌 화살이었다.

    “……!”

    직전에 몸을 튼 덕에 급소에 맞지는 않았지만 팔뚝에 정통으로 박혔다.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이질적인 것의 존재를 느낀 해월이 헛웃음을 흘렸다.

    “…누구는 화살 못 쏘는 줄 아나.”

    숨을 내리누르며 집중력을 끌어 올리자 손안에 검은 사기(邪氣)로 만들어진 활이 생겨났다. 쏜 자에게 그대로 화살을 돌려주었다.

    풀숲에서 짤막한 비명이 퍼지고 장내는 더욱 공포로 물들었다.

    "사, 사람이 아니다…!"

    화살을 쏜 자는 해월을 볼 수 있었지만, 해월은 그를 볼 수 없을 터였다. 아주 어둡고 시린 겨울의 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정확히 한곳을 노려 쏘았다.

    그들의 의문을 알고 있는 해월은 그저 싱긋 웃었다.

    영력을 집중시킨 눈은 일반적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거리에 있어도, 짙은 어둠 속에 숨어도 전부 훤히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신들이 모시는 분은 수하들이 피 튀기게 싸우는 걸 구경해 주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는데 원망스럽지도 않으십니까. 왜 그렇잖아요. 나는 여기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내 노고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꼴이… 우습잖습니까.”

    지금 자객의 반 이상을 죽인 이가 할 말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것은 경악으로 물든 침묵뿐이었다.

    “…….”

    “제법 위험한 독을 쓰셨군요. 원래 저한테 이런 건 잘 안 통하는데.”

    독을 배운 적 있는 몸이라서, 미량의 독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한주에서 먹었던 독처럼 드물게 사용되는 것이나 강력한 독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지만.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속이 다 뜯긴 것처럼 아팠다.

    무리한 힘을 쓴 대가이겠지. 그 이상으로 더는 생각을 잇지 않았다.

    다시 부채를 펼쳐 정면으로 휘둘렀다. 강인한 바람에 적들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눈을 뜨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잠시 시간을 번 해월은 입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구역질이 올라왔고 속에 고여 있던 핏물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참을 피를 토하던 해월은 이내 입가를 손등으로 쓸었다.

    그때, 멀리서 빠른 뜀박질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가까워졌다.

    한순간 뒤를 돌아본 해월은 제게로 달려드는 자를 간신히 피했다.

    ‘빠르다.’

    가공할 만큼 빨랐다. 영력을 극도로 체화해서 오감이 예민해진 상태임에도 대응이 늦을 만큼.

    검이 몇 번이나 맞붙었다. 그런데 밀어붙이는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비단 해월이 지쳐서가 아니었다.

    잠시 뒤로 물러난 해월은 사태를 파악하려 했다. 몸이 아파서인지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순간 아득해진 머릿속을 비워 내려 눈을 찌푸렸는데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검게 피어나는 아지랑이. 사기(邪氣)였다.

    ‘아니, 이건….’

    무언가 달랐다. 자신이 다루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사특하고 악했다. 검고 깊은 진창속에 빠져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자세히 보니 자객의 눈에 이지가 없었다. 어찌나 힘을 쓰고 있는지 핏줄이 곳곳에 도드라져 있었다.

    그제야 해월은 제 눈앞에 있던 자객들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언젠가 몇 번 감지한 적이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빠른 속도로 제게 달려드는 자객의 등허리를 가볍게 쳤다. 자객은 허리를 숙이고 잠시 신음하더니 속을 게워내며 쓰러졌다.

    토사물 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 같은 작은 종이가 보였다.

    그 종이에는 이런 글자가 써 있었다.

    권속(眷屬)

    “……!”

    본 적 있는 글자였다. 남은 놈들을 상대하느라 스치듯 보긴 했지만 분명했다.

    산 사람을 권속으로 부린다니. 보통의 경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 없었다.

    시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데도 엄청난 힘이 필요시 된다. 그 반동으로 술자인 해월의 몸은 반쯤 죽음의 문턱에 걸려 있다.

    제게로 달려드는 자들의 몸놀림이 갑자기 향상된 것이 이해가 되었다.

    저런 힘으로 조종당하는 권속이 멀쩡할 리가 없다. 온몸이 부서질 터인데도 초인적인 힘을 내서 공격하는 거다.

    제 지친 몸으로 그런 힘을 내는 자들을, 그것도 다수를 대적하는 것은 무리였다.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등 뒤로 다가온 자객에게 칼을 휘둘렀다.

    자객은 곧바로 쓰러졌다.

    그런데 쓰러진 자객은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왜….”

    자객의 음성과 앳된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께름칙한 감각에 해월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 그렇게 자신을 부르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

    손끝이 심하게 떨려 왔다.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아버지!’

    “아버지….”

    “……!”

    온몸이 거대한 파도를 맞은 것처럼 속절없이 흔들렸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니 시야가 일렁이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바라본 현실은 더욱 끔찍했다.

    “…여명아…?”

    쓰러져 있는 건 여명이었다. 쓰러뜨렸던 자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작은 여명의 모습만이 시야에 가득했다.

    환술이었다.

    스스로 환각임을 자각하자 허상의 세계가 완전히 깨졌다.

    해월은 굳어 버린 입술을 간신히 달싹였다.

    “네가,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보았던 시체들 속에서는 여명을 찾지 못했다. 혹시 도망갔거나 아직 잡히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을 부정하듯 여명이 흘린 피가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귓가에 비참한 통곡이 들렸다.

    누구의 목소리인고 하니, 다름 아닌 제 목소리였음을 깨달은 해월은 그제야 여명을 끌어안았다.

    “아니야. 안 돼. 이건 아니야.”

    “…….”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초조해진 해월은 여명의 작은 손을 매만졌다.

    “손, 손이 왜 이리 차. 동상 걸릴 수도 있으니까. 추운 날에 밖에서 눈 오래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

    “응? 여명아.”

    해월은 답이 없는 이를 향해 계속 말을 걸었다.

    내가 잘못했어. 이기적이었어. 나만 행복하고 싶어서 널 버리려 했어. 나도 버려졌던 주제에 네 고통을 외면해 버린 거야. 있잖아. 눈 좀 떠 봐. 앞으로는 무겁다고 안 업어 주는 일 없을 거야. 갖고 싶다고 했던 것들도 전부 사 줄게. 그러니까 제발.

    미친 사람처럼 말을 쏟아내는 해월의 등 뒤로 날카로운 날붙이가 꽂혔다.

    살을 가르는 차가운 날붙이. 찢겨진 혈맥의 아우성. 흐려지는 의식.

    잠깐의 시간이 지나, 해월은 여명을 안고 있던 팔의 힘을 풀었다. 그대로 쓰러졌다.

    차가운 겨울의 땅바닥이 뺨을 얼어붙게 하는데도 미약한 움직임조차 취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몸이 들리더니, 먹먹한 귓가에 제 상태를 확인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놔두어라.”

    “하오나 …께서 모두 확실히 죽이라 명하셨습니다.”

    “내 확인하였으니 …께서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아파. 피곤하다. 쉬고 싶어.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

    설령 상처 때문이 아니라 해도 이 추운 날에는 입이 돌아가 죽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말소리가 멀어진다.

    발소리도 멀어진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

    눈앞이 흐리다. 눈을 뜨고 있기는 한 건가. 차가운 공기 탓에 코가 아린데 제대로 숨은 쉬고 있나.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움직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

    사위가 고요하다.

    아픔에 못 이긴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수십 번 피를 토한 영향인지 목이 상해서 쉬어 버린 신음밖에 흘리지 못했다.

    제 손으로 여명이를 죽였다. 고작 환술 따위에 홀려서. 그 가엾은 아이의 숨을 끊어 놓았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손끝에 남은 감각이 여직 섬뜩했다.

    최악이었다.

    미약하게 숨을 쉴 때마다 몸 어딘가에서 울컥 피가 빠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죽음의 감각이 몸을 잠식했다. 생이 끝나가고 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인데 지금껏 걸어온 인생의 길을 되짚어 보아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나는 무얼 했지? 모친과 부친은 나를 버리고 어찌 살았을까?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형제들은? 아, 내 형제들은 이름이 다 같았지. 잠시 잊고 살았다. 어차피 흉년이 들었을 때 죄다 죽었을 것을. 뭣 하러 떠올렸나.

    그렇다면, 나를 키워 준 양아버지는?

    아, 죽었지. 차가운 시신이 되어 나를 맞이했지.

    ‘당신은 살아서 이 지옥을 봐야 하는데.’

    알량한 선심으로 지켰던 이 마을이 어찌 되었는지. 그 두 눈에 똑똑이 새겨 보게 해야 한다. 이 잔혹하고 공허한 광경을 말이다.

    “…….”

    해월은 이를 악물고 엎드린 채로 언 땅을 기었다. 마지막 남은 힘이었다.

    그렇게 기어간 곳은 선학경의 곁이었다.

    피는 충분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떨리는 손으로 술식을 적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주문을 욌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살아서 그 애를 볼 수 없다면.

    이 한 몸 바쳐 죽은 자를 살려내리라.

    “생자의 생을 바치니… 망자는 이승에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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