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적당한 객잔을 찾아 들어와 몸을 녹이는 내내 연진은 아까와 같은 표정을 유지했다.
해월은 연진이 원래 말도 붙이기 어렵게 생긴 인상이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다. 저를 볼 때면 대체로 표정이 유순해져서 한동안 잊고 지냈었다.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던 해월이 짐을 정리하고 있는 연진의 옷깃을 쥐고 이리저리 당겼다.
그런데도 연진은 해월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괘씸한 마음에 미간을 찡그렸으나 연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연진이 냉랭하게 구는 이유를 알기 힘들었다.
이럴 때면 연진은 해월에게 너무나 어려운 사람이었다.
아까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초라한 물음들이 다시 차올랐다.
‘뒤늦게라도 나한테 실망했나.’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히 변명거리를 떠올리는 일로 넘어가게 되었다.
‘여명이는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아이라고 말할까. 그것도 무책임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인가.’
어째 되뇌는 물음들이 아까보다 더 볼품없었다. 자괴감이 일어서 공연히 시무룩해졌다.
포기하기는 싫었다. 나잇값 못 하는 응석처럼 보여도 상관없다.
“연진아. 강연지이인.”
저를 볼 때까지 옷자락을 계속 잡아당기며 팔랑거렸더니 그제야 연진이 고개를 돌렸다.
돌아본 얼굴이 어쩐지 붉어 보였다. 화가 났나?
“왜 화났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연진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거의 땅이 꺼지게 할 기세라 조금 움찔했다.
“그… 나한테 실망한 거래도 어쩔 수 없어. 여명이는 어차피 똑똑한 애니까 자기 갈 길을 금방 찾을 거야.”
그러니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제 마음을 놓이게 하는 데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변명하려 했다.
내용이 무엇이든 변명은 변명이다. 추해 보이기 쉬웠다.
“저는 그 아이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건 제가 말을 얹을 자격도 없는 일입니다.”
“그럼 왜 화났는데…?”
독심술 같은 건 할 줄 모른다. 타인의 의중을 파악하는 건 표정이나 태도로 미루어 보는 수밖에 없다.
해월은 제가 그런 일에 능숙하다고 여겼는데 연진에게만큼은 어려웠다. 같이 지내 온 시간이 있으니 이전보다는 쉽게 그의 기분을 알 것 같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그의 속내는 그가 되어 보기 전까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일 것이다.
“사부와 저를 떼어 놓고 생각하는 거요. 그게 마음에 안 듭니다.”
“내가 널 떼어 놓고 생각했다고?”
“늘 그러고 계십니다.”
“…….”
그럴 리가. 저는 항상 연진과 같이 있는 미래를 상상한다. 제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늘 함께할 생각뿐이었다.
혹시 ‘숨이 붙어 있는 한’이라고. 제멋대로 제약을 거는 바람에 그게 은연중에 드러났나.
연진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제가 사라져도 문제없을 정도로 연진이 성장하길 바랐고 거기에 걸림돌이 없길 원했다.
그에게 서운하지 않게 하려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노력과 결과는 늘 궤를 달리하나 보다.
“미안. 미안해.”
“…사과를 받으려 꺼낸 말이 아니에요.”
“그래도 그냥 받아. 그게 내 마음이 편해.”
몸이 불편한 것보다 마음이 불편한 게 더 괴롭다고 생각한다.
해월은 연진의 뺨을 감싸고 제 쪽으로 살짝 당긴 후에 가볍게 입바람을 불었다.
“…….”
“화 좀 식히라고.”
분위기도 풀어 볼 겸 장난친 것인데 역효과였나. 어쩐지 아까보다 더 얼굴이 붉어 보였다.
그래도 표정은 전보다 확실히 풀어진 듯 보여서 해월은 안심했다.
***
잠을 청한 뒤에 본 것은 과거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그해에 처음으로 귀향한 날. 제가 돌아오자 여느 귀향 때처럼 여명이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문을 열자마자 토도도 달려 나오는 그 아이의 작은 발이 귀여워서 번쩍 안아 들고 잘 지냈느냐고 묻자 거의 일 년간 보지 못해 하고픈 말이 쌓였을 텐데도 그 애는 응, 이라고 힘차게 답하기만 했다.
마을에 또래도 많이 없고 여러모로 심심할 텐데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불만의 기색이 없었다.
저를 아버지라 부르며 따르는 존재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으나, 정말 호칭만 아버지일 뿐 진정으로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해 준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부담이 적기도 했다.
‘아버지는 왜 다른 누나나 형들처럼 결혼 안 해? 왜 안 떠나?’
무슨 애가 혼인 잔소리를 하나 싶어 퍽 우스웠다.
‘네가 뭘 몰라 그러는 모양인데 애 딸린 사내는 여인에게 매력적인 신랑감이 아니란다.’
‘……!’
농으로 던진 말에 여명은 세상 심각한 얼굴이 된 채로 고민에 빠졌다.
그게 웃겨서 웃었는데 여명은 계속 심각한 상태였다.
‘글쎄, 옛날에 여기 살았던 아가씨처럼 부잣집에 혼인하러 가거나 어디 팔려 가는 일이 없는 한 일단은 계속 있지 않을까.’
‘진짜?’
‘우리 성질 더러운 여명이가 잘 크는 건 봐야지.’
‘안 더럽거든!’
‘안 더럽기는. 내 너만큼 까탈스러운 녀석은 처음 보는데. 너 데리고 살려면 아주 대궐 같은 곳에 산해진미 대령하고 모시며 살아야겠어.’
장난기 어린 대화는 빠르게 기억 너머에 묻혔다.
결국 잠을 설친 해월이 새벽에 몸을 일으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가족다운 가족 노릇도 못 해 주고, 짐만 떠넘기고 버렸다.
매질만 안 했을 뿐이지. 이러면 제 아버지랑 뭐가 다른가.
아버지와도 제대로 끝을 못 맺은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엉망이 된 것 같았다.
“하아….”
한참을 죄 없는 창틈 사이의 달빛을 노려보는데 문득 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되십니까.”
대체 언제부터 깨어 있었는지 아니면 잠들지 않았던 건지. 의아한 것은 많았지만 심경이 복잡해서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깼구나, 미안.”
연진은 말을 돌리는 수법이 통할 리 없는 상대였다.
“후회되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를 안 데리고 온 것이요.”
그 올곧은 물음에 해월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아마 제가 비틀린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 마음에 걸리시면 앞으로 어딜 가든 걸음이 묶인 것과 다름없을 겁니다.”
마음이 얽매여 있는데 몸이 떠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연진의 말에 이렇다 할 반박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불만스러웠다.
“넌 관직이라도 하면 큰일 나겠다. 바른말 하다가 혀 썰리겠어.”
시선을 돌리며 괜한 농담으로 얼버무렸으나 연진이 팔을 붙잡고서 단호한 음성을 냈다.
“그 아이와 작별하시고 난 뒤에 사부의 얼굴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알 수 있을 리가.
해월은 스스로를 들여다볼 줄 모른다.
“아프고 슬퍼 보였습니다.”
아프고 슬펐다라. 그게 제게 어울리기나 한 말일까.
마음의 본체가 없는 것 같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제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다고 여겼다.
주위의 말에 설득당했는지, 정녕 그러했는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아닌 척하셔도 그 아이를 많이 아끼셨다는 걸 압니다.”
결은 다르지만 제게 말을 얹었던 주변 사람들처럼, 연진은 저를 설득하고 있었다.
거짓 없는 진실한 검은 눈동자를 보자 가슴속 어딘가가 따끔거렸다.
양심이라도 찔리는 건가. 자조적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끼기는. 가족 놀이에 장단 맞춰 준 것뿐이야.”
선학경도, 저도, 여명이도 같잖은 가족 놀이를 했던 건지도 모른다. 비어 버린 가족의 빈자리를 서투른 사람들끼리 채워 버린 게 화근이었다.
가족의 정을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시답지 않은 가족 놀이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 강한 힘과 이타심에 집착하는 선학경.
그런 그의 아래에서 자라난 자신.
비틀린 채 커 버린 제가 데려온 여명.
감히 헤아려 보자면 그들의 뿌리에는 거대한 불운이 있을 것이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정해진 세상의 풍파가 오랜 세월을 거쳐 제게까지도 불어온 거다.
“사부.”
연진은 어느샌가부터 제 양팔을 잡고 마주 본 채 회유하는 투로 이야기했다.
“아끼지 않는데 이름을 지어 주고,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허락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
“그 아이의 투정을 타박하면서도 전부 받아 주셨잖아요.”
“그건 그냥….”
여명은 유별난 아이였다. 모든 안 좋은 것들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단곡 사람들과 달리, 좋은 옷과 좋은 잠자리 좋은 식사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였다.
그것이 전생에 대갓집 규수였을 거라느니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여명의 투정에 맞춰 주었던 건… 그래, 부채감 때문이었다.
“이대로 떠나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십니까.”
그 물음에 어딘가 북받친 해월이 조금 언성을 높였다.
“그러는 너는 나 없을 때 그 어린애 데리고 살 자신 있어?”
“…….”
“아직 의뢰를 받고 살기에는 넌 미숙하고, 다른 일을 해도 네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최선일 거야. 그런 상황에서 어린애를 데리고 방랑 생활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할…!"
뒤늦게 제 실수를 깨달은 해월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니야. 내가 실언했어.”
머리가 어지러웠다.
방금 제가 내뱉은 말은 모두 제가 없다는 걸 가정하고 한 말이다. 연진은 제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
기왕 입이 뚫린 김에 나중에 하려 했던 말을 지금 해야 할 것 같다는 기묘한 충동이 일었다.
“…네 숙부랑 사촌 형은 곧 죽을 거야.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
상황의 맥락에 부합하지 않는 얘기였다. 다만 언젠가는 해 주려 했던 말이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해월이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황제도 위독하다는 소문이 있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노인이니까 길어야 두어 해 정도일 거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연진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작금의 말을 반드시 기억하라는 뜻이었다.
“머리를 잃은 몸은 혼란에 빠지게 되어 있어. 역사적으로 늘 그래 왔고 이변은 없었어.”
해월은 앞뒤를 파악하기 어려운 설명을 계속 이어 나갔다.
모든 나라는 황제가 뒤바뀔 때 혼돈에 빠졌다. 그걸 얼마나 빠르게 휘어잡느냐가 새 황제의 역량을 증명해 주기도 했다.
설령 황제가 노환으로 죽어 적통 소생의 황태자가 차후 황제가 되는, 자연스러운 순리를 따라도 언제나 반발하는 세력은 있었고 그 때문에 황제가 조정의 안정을 꾀하다 보면 그 밖의 일에 소홀해지고는 한다.
흉년이나 홍수 같은 재해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고,
“황제가 죽어서 새 황제가 등극하고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누구도 너의 가문에 신경을 기울일 수 없을 때….”
기회는 그때다.
“그때, 돌아가서 네 자리를 찾아.”
연진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납덩이처럼 표정이 가라앉았다. 멍하니 살짝 벌어진 입술은 그 어떤 말도 담아내지 못했다.
그 표정을 똑바로 보기가 괴로워서 해월은 시선을 돌렸다.
“모진 소리로 들린다는 거 아는데,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거야. 그걸 뒤틀려고 하면 수렁에 빠지기 쉬워.”
제가 괄시받는 이국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국인의 양아들이 되어 남들은 흔히 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한 게 운명인 것처럼. 연진에게도 주어진 사명이 있다.
“제가….”
연진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렵다는 듯 몇 번이나 주저하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제가 한주로 돌아가는 게, 고작 그런 것이 제 운명이라는 겁니까.”
“귀한 피를 타고 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야. 네게 짊어진 짐으로부터 영원히 도망갈 수는 없어. 그렇게 도망간 곳이 아름다울 리도 없고.”
영원히 도망갈 수는 없다. 그건 해월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제 숨은 얼마 안 남았지 않은가. 도망친 것으로부터 잡히기 전에 이미 제 영혼은 허공에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기심이다. 나에게는 허락되지만 너는 그럴 수 없다는, 우습지도 않은 논리. 그리고 충고였다.
“저는 가문의 주인이 되길 바란 적이 없습니다. 모두들 숙부가 제 것을 빼앗았다고 하였으나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 자리의 주인으로 숙부가 적합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 또한 걸맞지 않은 자인 것은 다르지 않아요.”
진실하고 견고한 목소리. 제가 믿는 바를 타인에게 또렷하게 전달할 줄 아는 것은 지도력의 일환이다.
해월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수장의 자질을 타고난 주제에 무슨.’
아마 연진만 모르고 세상 전부가 알 거다.
“…….”
“제 조언은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진은 더 이상 여명을 데려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오나 저를 떼어 놓으려 하지 마세요. 그것만큼은 참기 힘듭니다.”
그것은 그날의 새벽에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