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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귀-113화 (113/124)
  • 113화

    두 사람은 말없이 계속 걷다가 마을 어귀의 큰 바위에 걸터앉았다. 해월이 뒷덜미를 문질렀다.

    연진은 따로 기다리라고 할 걸 그랬나. 괜히 볼 꼴 못 볼 꼴 다 보여 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연진이 옆에 없으면 또 바보같이 굴 것 같아서. 나름 용기를 내고자 한 선택이었다.

    “야, 너 손… 괜찮냐?”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손등 위로 손자국이 훤히 보였다.

    “제 손만 손입니까. 사부의 손부터 보시지요.”

    “어? 언제 이렇게 됐지?”

    손등 위로 커다란 손자국이 나 있었다. 연진보다 피부가 하얘서 그런지 손자국이 더 눈에 띄었다.

    손자국이 우스운 건지 제가 우스운 건지 분별이 가지 않아 더욱 우스웠다. 그래서 해월은 헛웃음을 짓고는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나 진짜 바보 같아. 무슨 기대라도 했었나 봐.”

    자신은 마지막까지 기대했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여명과 연진을 데리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닐 때 멀리서부터 느껴지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선의 주인이 제 아버지라는 것을 해월이 모를 리 없었다.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은 분명 그도 무언가 할 얘기가 있는 까닭이라고 여겼다.

    저처럼 마음속에 담아둔 채 시간이라는 벽이 켜켜이 쌓여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어떤 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방금 그 확신이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차라리 다시 그때처럼 잡아 주기라도 바랐는지….”

    아버지에게는 제가 필요한 존재라고, 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진정 아들로서 아끼는 마음이 있었노라고.

    주는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먼저 받아들여 버린 제 꼴이 못마땅하고 거북했다.

    어찌 이리 하잘것없을 수 있는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연진의 앞에서 주절거리고 있는 것도 창피하지만 어디에라도 이 혼란스러움을 토로하지 않으면 속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근데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 것 같았어.”

    선학경은 끝내 침묵했다. 늘상 보던 굳은 표정과 굳게 다물린 입술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아마….”

    힘겹게 말을 시작했으나, 힘에 부쳐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해월이 그저 입술을 여닫기를 반복하자 연진은 해월을 안아 주었다.

    “더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따뜻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내려앉아 온몸을 물들였다.

    지금은 추운 겨울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핑계 삼아 해월은 연진을 꼭 끌어안았다.

    순간 해월은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면 저도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생각과 달리 눈가는 여전히 건조했다.

    해월은 울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울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게 슬퍼도 슬픈 감정에서 그쳤을 뿐 눈물이 난 적은 없었다. 아픔도 그저 아픔에서 그쳤다.

    몸의 고통이든, 마음의 고통이든 고통이 눈물로 이어지게 두지 않았다.

    가만히 얼굴을 묻고 있어서 그런지 연진은 제가 울고 싶어 한다고 판단했나 보다.

    “울고 싶으면 우셔도 됩니다.”

    그 상냥한 말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에는 어떠한 자조도 없었다.

    “그러다가 네 옷에 눈물 콧물 다 묻히면 어쩌려고 그러냐.”

    상상해 보니 여간 우스운 꼴이 아닌지라 계속해서 웃음이 샜다.

    “별로 상관없습니다.”

    “하, 속도 없는 놈.”

    이런 놈이 좋아서 마음으로 아끼게 된다는 점이 가장 우스운 점이었다.

    정이 들어도 너무 들어서 큰일이다.

    더 이상 정들지 말자고 다짐하기에는 이미 속절없이 정들어 버렸다.

    훗날을 위해 이제 정을 떼는 것도 익숙해져야 할 텐데 말이다. 어디다 연습을 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다. 지금 해월에게는 정을 떼야 할 사람이 더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시기적절하게 나타나 주었다.

    “아버, 헉… 아버지…!”

    “……!”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여명이 해월과 연진의 눈앞에 나타났다. 해월은 반사적으로 앉은 자세를 일으켰다.

    “여명아….”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불렀다.

    여명은 무릎을 꺾고 거친 숨을 내뱉다가 간신히 침을 꼴깍 삼키고는 물었다.

    “아버지, 진짜, 갈 거야…? 나만 두고 가는 거야?”

    그때 연진과 한 이야기를 다 들었구나. 듣길 바라는 마음 반, 듣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 반이었는데.

    아니다. 여명은 예전부터 서서히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해월은 이전부터 조금씩 여명에게 그러한 신호를 보냈다. 자신은 곧 떠날 것이니, 네가 남은 사람들을 챙겨 주라고. 그렇게 부담을 주었다.

    사람은 제가 겪은 불운을 답습한다고 했던가. 제가 딱 그 짝이었다.

    그리고 여명은 어른 공경할 줄 모르고 까다로울 뿐이지 눈치가 없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도, 나도 데려가. 절대 방해 안 할게. 칭얼거리지도 않을 거고 말도 잘 들을게.”

    “여명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선여명.”

    낮은 음성으로 여명을 부르자 그 아이는 멈칫했다.

    “너랑 나랑 함께한 시간만 놓고 보면 고작해야 일 년도 안 돼.”

    해월은 거의 한 해 전부를 출타 중인 경우가 많았다.

    실질적으로 여명과 함께 보낸 시간은 길다고 볼 수 없었다.

    “처음에… 네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허락한 건 난 널 데려온 책임이 있으니까. 그래서 허락했을 뿐이지 정녕 네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쿵.

    그런 소리가 여명의 가슴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에게 냉랭한 말을 하고 있자니 해월도 적잖이 불편했다.

    연진은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여명은 주먹을 불끈 쥐고 발끈했다.

    “거짓말. 아버지가 내 이름도 지어 줬잖아! 나를… 나를 처음 봤을 때 새벽 여명이 그렇게 어여뻤다고, 그리 얘기했잖아.”

    하지만 말의 끝으로 갈수록 자신감이 사라졌다.

    여명의 말을 들은 해월이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언젠가 여명에게 지나가듯 그리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걸 아직도 기억할 줄은 몰랐던 탓이다.

    ‘널 처음 보고 안아 들었는데 너무 가벼워서 놀랐거든.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까 새벽 여명이 너무 고운 거야. 그래서 저 어여쁜 것의 이름을 따서 네 이름을 지어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 얘기는 누구라도 할 수 있어. 그건 너도 잘 알잖아.”

    “그럼… 그러면 있잖아. 아버지는 나를 가족으로 생각한 적 있어…?”

    해월은 잠시 머뭇거려야 했다. 제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이리 바로 돌려받게 될 줄이야. 꼭 복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내게는… 나의 삶이 있어. 난 멀리 떠나기로 했고. 너는 여기 있어야 해. 강해져서 많은 사람을 도우면서 살아.”

    여명을 단곡으로 데려온 장본인은 저였다. 설령 그게 온전한 저만의 선택은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한 저의 결정이었다.

    그러니까 이리 모진 말을 하고 너에게 상처 주는 나를…,

    “마음껏 원망해.”

    그 말을 끝으로 해월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윽고 아이의 두 눈은 스르륵 감겼다.

    수면술에 걸려 늘어진 아이의 목에 제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새벽이면 꼭 이 근처에서 산보를 하는 마을 사람이 있다. 아마 머지않아 여명을 발견할 것이다.

    그나마 겨울 찬기가 덜한 땅 위에 조심스레 아이를 눕힌 해월은 몸을 일으켰다.

    목이 휑해져서 그런지 한기가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해월은 이내 연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너머에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빛이 보였다.

    눈부신 여명(黎明)이었다.

    연진과 해월은 그 길로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나루터를 찾아 가장 빨리 가는 배를 탄 뒤에 가장 늦게 내렸다.

    그동안 특별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

    연진은 허전한 해월의 목에 제 목도리를 둘러 주려 했으나 해월은 사양했다. 이대로 있는 것이 좋았다.

    춥고 차가운 상태가 제게는 더 어울렸다.

    배를 타고 가는 내내 해월은 차가운 강물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배에서 내릴 때는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손이 얼어붙었지만, 차라리 이게 나았다.

    몸의 아픔이 있으면 다른 것을 잊기가 쉬웠다.

    연진은 별난 행동을 하는 저를 만류하거나 타박하지 않았다. 그저 내릴 때쯤 언 손을 따뜻하게 감싸 주고 녹여 줄 뿐이었다.

    너는 내가 매정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날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남에게 쉬이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보이지?

    형편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쌓였다.

    여명을 두고 연진에게로 갔을 때, 연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고요함이 고마웠다.

    지금은 해월도 제 자신을 알 수 없었다. 그 혼란스러움을 연진에게까지 범람하게 둘 수도 없었다.

    제가 소원해 왔던 이별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은원을 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지는 것이 제가 바라던 이별이었다.

    무엇이라 말할까. 제가 한 것은 이별이 아니라 단순히 몸이 멀어지는 것뿐인 듯했다.

    애매하다. 무어라 규정하기가 힘들었다.

    여명이에게도 그렇게까지 상처를 주려던 것은 아니었다. 정을 떼려 하긴 했으나 모진 말을 내뱉고 억지로 잠재우면서까지 두고 가려던 것은 아니다.

    그냥 여명을 데리고 오는 편이 나았을까.

    해월은 가끔 제가 아주 뻔뻔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아니었나 보다.

    차라리 아주 간악한 자가 되어 철저하게 나쁜 짓만 하고 후일을 외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제 인생은 한결 더 편안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 애는 거기 있어야만 해.’

    처음부터 자신을 대체할 목적으로 데려왔던 녀석이다. 그러니 죄악감을 느끼는 것부터가 죄악이었다.

    그 아이가 저를 있는 힘껏 원망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멋대로 데려와 놓고서, 멋대로 버린다고.

    그렇게 돼먹지 못한 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속이 비틀린 인간.’

    해월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같잖고 하찮은 사람이라고.

    갈피를 쉬이 잡지 못하는 데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늘 잘못된 선택을 한다.

    해월은 문득 제 손을 꼭 쥐고 있는 연진을 보았다.

    지금껏 해 온 모든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면, 그는 그 선택 중 최선의 선택일 거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겨울을 어디서 나야 할지는 앞으로의 선택이었다.

    “사부와 함께라면 저는 어디든 좋습니다.”

    “그렇게 호부(好否) 안 가리다가 큰코다치지.”

    괜히 핀잔을 주긴 했지만, 사실은 연진이 제게 호부 없이 구는 게 좋았다. 그런 걸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과연 알기나 할까.

    기왕이면 모르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연진의 부담이 되기는 싫었던 까닭이다.

    “날이 많이 춥다. 곧 있으면 강이 얼겠어.”

    후, 하고 숨을 내쉬자 허연 입김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눈도 내릴지 모르겠네.”

    아직은 아무것도 내릴 준비가 안 되어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너무도 청명해서 어쩌면 여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정 가고픈 곳이 없으면 당분간 여기에 있자. 봄이 오기 전까지 있어도 좋고.”

    “한데… 촌장님께 들었습니다.”

    “무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쉬이 떠나기 어렵다고 하더이다. 발이 묶여 살아야 한다고….”

    “아아. 그거라면 괜찮아.”

    해월은 이미 그 지역 출신이라고 입적된 상태였다. 때문에 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세상에는 편법이 있으며, 협박이라는 효율 좋은 수단도 있다.

    지역 관리들의 비리 장부를 캐내어서 내밀거나, 아니면 영하를 부르기 어려운 곳을 정화해 주는 대가로 통행증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다만 지방민임을 나타내는 붉은색 통행증을 받기에, 여러모로 제약이 있었다. 붉은색 통행증을 인정하지 않는 곳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행증을 갖고 다니기는 하지만, 그냥 관문을 잘 피해 샛길로 돌아다니는 편법을 택했다.

    또한 다른 지방민들이 어리석어서 그러한 편법을 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샛길’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목을 내놓고 가는 것과 진배없었다.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짓이다. 엄연히 위법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요즘은 황제인지 뭔지가 위독하다고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관원들도 여러모로 풀어진 상태였다.

    이전보다 위법을 저지르기 쉬운 작금의 상황을 요긴하게 써먹을 생각이다.

    그 생각을 뒤늦게 읽어 낸 연진이 영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뭐 어때서. 이 근방 젊은이들 치고 도망 안 간 놈들 있나.”

    다들 잘 살고 싶어서, 척박한 땅에 갇혀 지내기 싫어서 멀리 떠나려 한다.

    설령 그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 어려운 선택을 하는 거다.

    “걱정하지 마. 혹시 걸려도 넌 관계없는 일이라고 할게.”

    “…….”

    화와 슬픔이 그득한 표정. 그러고 보니 연진은 저를 볼 때 자주 저런 얼굴이 되었다.

    왜 그런 건지. 당장은 물어보기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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