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여명은 원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기질이 있던지라 종종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는 했다.
“못 들은 거 아니잖아. 패전국에서 살아남아 찌질하게 살면서 밥값도 제대로 못 하고 허송세월하는 건 아저씨들인데 왜 우리 아버지를 욕해.”
“저 쥐콩만 한 게 어딜 어른한테 반말을…!”
저보다는 한참 큰 사내가 언성을 높여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지금 여명의 곁에는 편을 들어 줄 어른이 또 있었다.
바로 난향댁이었다.
“여명이가 뭐 틀린 말 했소? 일생에 갚기도 어려운 은혜를 입어 놓고는 어찌 그리 말이 많어!”
“나, 나는 뭐 은혜를 공으로 입었나? 선가가 어릴 적에 다들 십시일반 도와줬잖나.”
난향댁의 기세에 밀린 그는 주춤하는 듯싶더니 변명을 내뱉었다.
“어릴 때 깔짝 챙겨준 것 가지고 유세 부리기는. 그래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게 아닌가.”
이방인들이 모여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인지라 서로 간 나무랄 입장이 못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자들은 흔히 미워할 대상을 찾게 된다. 자신을 미워하기에는 너무도 비참함으로 남을 탓하는 게 편한 것이다.
해월이 마을 사람들과 그다지 친밀하게 지내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귀한 힘을 다룰 줄 안다고 하여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흔하고 추한 자격지심이었다.
“자네 지금 말 다 했나?!”
“다 했소이다. 흉년으로 다 죽어가던 것을 살려준 것도 잊은 얼뜨기하고는 말 섞고 싶지 않소.”
“얼, 얼, 얼뜨기?!”
난향댁과 여명은 고래고래 고함치는 사내를 무시하며 돌아섰다.
***
해월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집을 보았다. 지금은 주인을 잃어 빈집이 된 데다 여기저기 땔감 삼아 헐은 흔적이 있어 집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
지금은 다 죽거나 멀리 떠나서 없는, 어릴 적에 같이 놀던 아이들이 있었다.
몇 없는 단곡의 어린아이들끼리 모였던 것이라 대단한 벗들도 아니었다. 같은 또래라서 잠시 잠깐 함께했을 뿐 그것을 벗이라 불러도 되는지도 의문이다.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먼 과거였다.
해월은 그 아이들이 나누는 희망찬 미래의 이야기나 유치한 놀이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대체로 소외당했었다.
다만 몇 없는, 그들과 같이했던 놀이 중 하나가 떠올랐다.
칠흑 같은 야음은 눈을 흐리게 하네.
서광을 찾아 더듬거리네.
등 뒤로 느껴지는 기운이 발을 묶네.
애써 양음을 분별하는 이 땅의 나그네.
가운데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눈을 가리고 있으면 그 주위를 빙 둘러 가며 아이들이 그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노래가 끝나고 등 뒤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맞추거나, 조금 변형하여 등 뒤에 몇 사람이 있는지 맞추는 식의 놀이였다.
그걸 귀신같이 잘 맞춘다는 이유로 해월은 늘 가운데에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가운데에 쪼그려 앉아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노래가 끝난 뒤 해월은 등 뒤에 아무도 없다고 느꼈다.
‘아무도 없어.’
짧게 말하고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예상과 달리 그곳에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뭐야. 월이 너도 틀릴 때가 있네.’
‘그러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나 봐.’
‘…분명 아무도 없었을 텐데.’
해월은 땅을 보고 조금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 뻔히 있는데.’
‘…….’
잠깐 저를 놀리던 아이들은 이내 다른 놀이에 빠졌다. 아무도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해월은 근심을 끌어안아야 했다.
여자아이의 얼굴에 있던 그을음 같은 흔적들은 죽음을 앞둔 자들이 가끔씩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아무도 없다고 느꼈던 것은 그 아이가 곧 아무 곳에도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늘 다른 사람을 돕는 데 힘쓰라고 했던 선학경의 말을 떠올리고, 다른 아이들이 다 가고 나서 그 애의 손을 붙잡았었다.
그 애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의아한 음성으로 물었다.
‘왜 그래…? 저기…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역시… 만져도 아무것도 안 느껴져.’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기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도 미약해서 제가 감지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졌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뭐? 무슨 소리야 그게?’
‘혹시 하고픈 것이 있으면 며칠 내로 전부 다 해. 그게 네게 이로울 거야.’
그 말을 하고 곧장 돌아가려는데 그 애가 대뜸 저를 불러 세웠다.
‘그, 그럼…사흘, 사흘 뒤에 우리 집 앞으로 와 줘. 같이 놀자…!’
해월은 여자아이들이 대체로 꽃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 아이의 집 앞에는 들꽃이 조금 피어 있었으니 같이 꽃놀이라도 할 요량일 듯하여 선뜻 수락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틀 뒤에 원인 모를 병환으로 급사했다.
해월은 그 애의 무덤에 들꽃을 놓아 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고자 한 일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소원하는 일을 품기만 하고 그저 기약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멀리 떠나 버릴 수 있다.
하지만 해월은 어쩔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살면서 깨달은 것이 많았지만 정작 그걸 바탕으로 살아가지는 못했다.
사람은 희망에 살 수 없고 현실에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억눌러 왔다.
지금은 과거의 날들에 비하면 홀가분한 편인데, 어째서인지 마음 한구석만큼은 여전히 무거웠다.
해월은 제 마음을 무겁게 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 무게를 어떻게 해서든 떨쳐 낼 생각이다. 설령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기게 될지라도.
***
그날, 연진은 악몽을 꾸었다.
눈을 뜨니 서책에서만 봐 왔던 푸르른 바다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이내 기억을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저는 해월과 함께 봄의 바다를 보러온 게 틀림없다.
연진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해월을 찾으려 했다. 이 드넓고 푸른 바다를 같이 보자고, 정말 바닷물은 짠맛이 나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그런 시시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해월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짧은 흑발에 어두운 푸른 눈을 하고, 깨끗한 백색의 옷을 입은 저의 사부가 없었다.
‘사부…!’
조금 소리를 높여 불러 보아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있다가 문득 바다를 쳐다보니 그곳에 해월이 우뚝 서 있었다.
‘사부, 왜 거기 서 계십니까.’
순간, 주위가 어두워지며 파도가 휘몰아쳤다. 거센 바람과 물보라에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해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진을 응시하다가 점점 뒤편으로 밀려났다. 연진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붙잡으려 발을 움직였으나 모래에 파묻힌 발은 조금의 움직임도 낼 수 없었다.
‘사부!!’
멀어져 가는 해월을, 연진은 그저 바라보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너… 괜찮….’
익숙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안도하자 다시 주위가 환해지고 이내 눈이 뜨여졌다.
어두웠던 시야가 트이자마자 보인 것은 걱정 어린 해월의 얼굴이었다.
“끙끙대고 자길래 겸사겸사 깨웠어. 무슨 악몽이라도 꾼 거야?”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얼굴이 이렇게 하얘졌는데. 나보다 더 하얘 보여.”
연진은 입술을 꾹 다물고 그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해월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말에는 힘이 있기에 언사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
그가 멀리 떠나 버리는 꿈을 꾸었다고 하면 그 말이 기단이 되어 정말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연진의 등을 잠시 토닥여 주던 해월이 재차 물었다.
“정말 괜찮아?”
“…정말 괜찮습니다.”
도로 잠들기는 힘들 것 같지만.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럼 지금 당장 떠나자.”
“예?”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에 조금 진정됐던 속이 다시금 놀랐다.
사실 그간의 해월의 언동을 고려했을 때, 그리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만. 이런 새벽에 떠날 것이라면 자기 전에 언질이라도 해 주는 것이 맞는 순서가 아니었겠는가.
본격적으로 황당해하기도 전에 해월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짐은 대충 싸 놨어. 넌 몸만 챙기면 돼.”
“…….”
연진은 옆방에서 자고 있을 난향댁과 여명을 떠올렸다.
그가 떠올리는 바를 쉬이 눈치챈 해월은 죄를 실토하는 죄수처럼 말했다.
“배신은 원래 갑작스러운 법이야.”
“하오나 말이라도 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아이가 상심할 것입니다.”
“그건 안 돼. 난 걔한테 아주 나쁜 짓을 해서 계속 볼 면목도 없어.”
제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떠넘기겠다는 사특한 마음을 품었다.
혹여 잘 풀리지 않더라도 시간을 벌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정말 이리 떠날 거면 왜 제게 일언반구 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해월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
연진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월은 어색하게 웃었다.
“가자."
“잠시만요.”
연진은 해월이 대충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정갈하게 다시 둘러주었다. 가뜩이나 추운 겨울날인데 새벽녘이라 그런지 더욱 추웠다. 단단히 여미는 편이 좋았다.
“이제 됐습니다.”
“…고마워."
먼저 신을 신은 해월이 예사스럽게 연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싱겁게 웃음을 지은 연진이 그 손을 잡고 신을 신었다.
해월은 그대로 연진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곧장 마을 밖으로 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연진의 예상과 달리 해월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어느 초가의 앞이었다.
선학경의 집이자 해월의 집이었던 곳이다.
“…….”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한때는 아파하며, 아주 찰나의 순간은 기뻐하며. 선해월이란 사람을 이뤄 낸 장소였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었다. 늘 저를 꿰뚫듯이 쳐다보며 엄하게 굴었던 모습만 생생히 떠올랐다.
자신이 태생적으로 붙임성이 좋고 쾌활한 아이였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싶었으나, 그래 보았자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이제는 저는 나이가 찼고, 아버지는 나이가 들었다.
“깨어 계실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문 앞에서 작은 한마디를 뱉자 끼익 문이 열리고 초가에서 선학경이 걸어 나왔다. 지팡이를 짚으며 다리를 저는 걸음새였다.
그러나 풍기는 기세가 고압적이었다.
해월은 연진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선학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참을 마주 보고 서 있는데도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선학경이었다.
“가는 거냐.”
단출한 물음에 단출한 답이 돌아왔다.
“예, 갈 겁니다.”
“오래전에 데려왔던 꼬맹이는 두고 가면서, 근자에 들인 제자는 데리고 가는구나.”
선학경이 해월의 옆에 있는 연진을 흘긋거리며 말했다. 딱히 조롱 조로 말한 것은 아니다. 선학경은 단면적인 감상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해월은 매서운 눈을 한 채로 차분하게 답했다.
“어차피 저는 그 애의 아버지 노릇을 할 만한 자격도 가치도 없습니다. 아버지와 비슷하죠.”
누군가의 세상을 지켜 줄 만한 이가 못 되면서도 어줍잖게 나선 걸 후회한다. 그걸 반복한 인생이었다. 선학경도 저를 들여놓고 자책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어 왔습니다.”
단호한 결의를 담은 음성이었다. 소매로 가려진 맞잡은 손으로 떨림이 느껴져서 연진은 가만히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정말… 정말 단 한 번도 미안하셨던 적 없으십니까.”
머지않아 답이 떨어졌다. 질문에 담긴 세월이 무색할 만큼이나 깔끔하게.
“그런 적 없다. 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 말을 들은 해월은 침을 어렵게 삼켰다. 남이 보기에는 냉담한 표정이었겠지만 연진은 그 안에 담긴 고통을 읽었다.
해월의 시선은 차가우면서도 고통에 찬 듯했으며 또한 집요했다.
아버지에게 이렇게나 도전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은 서툴렀고 어색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만큼은 분명히 알았다.
해월은 가장 오랫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질문을 입에 올렸다.
“저를, 당신의 자식으로 생각했습니까.”
“…….”
다시 침묵이 도래했다. 그 순간은 찰나 같기도 했으며 영원 같기도 했다.
결국 해월은 물러서야 했다.
사실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선학경에게 제가 어떤 존재였는지 말이다.
“…답은 잘 들었습니다.”
해월은 물러섰다.
“아버지한테 버려지는 것이 싫었어요. 날 버리지 않는 게 사랑받는 건 줄 알았거든요.”
“…….”
“제가, 아버지를 버리는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연진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그렇게 아버지와 멀어졌다.
이것으로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