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그 말을 들은 뒤의 기억은 드문드문 끊겼다. 어머니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했고, 그 애를 붙잡고 늘어져 작은 얼굴에 몇 번이고 주먹질했다. 왜 죽였냐고 윽박질렀던 것도 같다.
그나마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그렇게 맞으면서도 한 번을 막지 않는 그놈의 태도였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놓인다면 얼마든지 때려도 좋다는, 그 눈빛에 더 화가 났었다.
이후로, 정신없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잿가루가 되어 무분별하게 땅에 묻히지 않은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치유술은 병과 같은 내상을 완벽히 다스릴 수 없고 단지 고통을 덜어 주거나 진행을 늦출 뿐이다.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병에 지친 자들은 차라리 죽음을 바란다. 치유술은 술자의 생명력을 담보로 쓰는 술법이다…, 같은 사실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아내까지 상을 치르고 아들까지 위독해졌을 무렵이었다.
그 애는, 선해월은 자신에게 맞았던 것은 개의치도 않는지 아니면 속이 없는 건지 그의 아내가 병에 시달릴 때 약을 챙겨 주었고 아들에게는 환술을 행해서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올 때마다 무시하고 냉대하고 심지어 또 때리기까지 했는데도 선해월은 꿋꿋했다. 그런 것을 감내하는 게 당연한 자신의 소임이라는 듯이.
고작 몇 달 사이에 가족을 모두 떠나보낸 상실감은 비대했다.
‘…다 어딜 가고 나만 남았나….’
아버지야 예전에 전쟁에서 죽어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은 기억에서 너무나 선명했다.
왜, 어째서 저일까. 가족 모두가 병에 걸렸을 때도 저만큼은 멀쩡했다. 이것이 과연 운이 좋은 것이라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가족이 모두 죽었는데?
어느 날엔가 그렇게 실의에 빠진 그에게 선해월이 다가왔다.
‘…네놈은 그렇게 처맞고도 나랑 얼굴 볼 마음이 드냐.’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해서요.’
미친놈이라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이대로 두면 아저씨가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역병도 비껴갈 만큼 운수를 타고 나셨는데 아깝잖아요. 또 아저씨는 재주가 많으니 쓰일 곳도 많지 않겠습니까.’
‘…정신 나간 새끼….’
딸을 기생집에 팔아넘겼던 송 씨를 죽였단 소문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저 작은 소년이 제 어머니를 죽이리란 것을.
그리고 제 처와 아들이 편히 갈 수 있도록 도우리라는 것을.
‘그렇게 하시면 돼요.’
‘뭘 그렇게 하란 소리야.’
선해월의 말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차마 희망을 품으란 얘기는 못 하겠고 방금처럼 원망하는 편이 나아요. 그게 아저씨를 더 살게 한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따뜻한 건지 차가운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말이 정말 그를 살게 했다. 작은 소년에 대한 원망이 속을 끓게 했고 그것이 그를 죽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분노에 휩싸여 외면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그에게 뜻을 전해 왔었다.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드러냈단 얘기다. 그걸 무시하고 억지로 살게 하여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저였다.
또한 그런 어머니를 편히 죽게 한 것이 해월이었다.
어머니에 이어서 병세를 보이는 아내에게 귀한 약초를 캐서 전해 주었다. 약재를 달여 준다면 독이라도 들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 약초만 그냥 드린다고 송구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직 어려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두려워하는 아들에게 환상을 보게 하여 웃으며 떠나게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전부 아들이자, 지아비이자, 아버지였던 제가 한 일이 아니라, 일개 소년이 한 일이라는 사실이 그를 초라하게 했다.
더 이상 초라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었다.
살다 보면 또 살아진다. 이 말을 믿지 않았던 때가 무색하리만큼 꽤 순탄하게 살았다.
사실 그가 순탄하게 살 수 있었던 데는 끊임없는 죽음의 덕이 컸다. 그가 하던 일이 바로 수의를 짓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 손으로 가족의 수의를 입혔을 때는 업에 대한 회의감이 짙었으나 하다 보니 다시 할 만하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재주가 많은 덕에, 아들이 죽고 도망치듯 떠나온 옆 마을에서 촌장 노릇까지 해 먹게 되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된 다음에 그는 해월에게 말했다.
‘죽을 날 받게 되면 말해라.’
‘죽을 날이라뇨?’
‘생각해 보니 네놈은 어차피 모가지 드러내 놓고 다니는 신세니, 시신이 온전할지는 모르겠구먼.’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얼굴이나 보려 들렀던 자리에서 재수 없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해월의 태도는 여상했다. 하는 말과 다르게 새삼스럽다는 반응도 아니었다. 죽음을 가까이한 채로 사는 자에게는 시시한 농담에 불과했겠지.
‘네놈 뒈지면 수의는 내가 지어 주마.’
‘대낮부터 불길한 소리 들으니 참 좋네요. 한데 저보다는 우리 촌장님이 먼저 세상 하직하지 않겠습니까.’
‘두고 봐라. 가는 데 순서 없다는 건 네놈이 제일 잘 알지 않느냐.’
‘…그래요. 좋습니다.’
해월은 흔쾌히 수락했다.
‘내친김에 치수 좀 재자. 미리 길이를 봐 놓아야 금방 지을 수 있지.’
‘아주 요절하라고 고사를 지내시는군요.’
해월은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치수를 재도록 몸을 대 주었다.
‘미리 만들어 둘 테니 나중에 입어.’
‘누가 보면 그냥 옷 짓는 줄 알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 하룻낮 장난 같은 대화였다.
***
“결국 내가 하고픈 얘기는….”
촌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고 그 뒤에 본론을 꺼냈다.
“그놈한테서 단물 빨아먹고 버릴 생각이걸랑 관두라는 뜻이오. 그건 여러모로 좋은 생각이 아니거든.”
연진이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촌장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가문까지 버리고 나온 공자한테 할 말은 아니지 참.”
“…….”
“그저 늙은이 헛소리라 생각해 주시오. 나이를 먹었는지 옛이야기가 하고 싶었다오.”
몸을 일으킨 촌장은 가볍게 몸을 털었다. 이어서 일어난 연진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촌장의 뒤를 따르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물었다.
“촌장께서는 사부를 원망하십니까.”
말없이 뒤돌아본 촌장은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연진이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자 이내 입을 열었다.
“치유술이 술자의 생명력을 소모하는 술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소?”
“예, 압니다.”
“선해월이 그놈은 단곡 사람들 대부분이 죽을 걸 이미 알고 있었다오. 그런데도 살려 달라고, 치료해 달라고 징징대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았지.”
“…사부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약자에게는 합리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되지 못한 해월을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간 모순된 사람이라 생각해 왔으나 어쩌면 그것조차 부족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그 바보를 어찌 원망하겠소.”
아무런 소용도 이득도 없는 일을 단지 타인을 위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알기에 촌장은 일찍이 원망을 접었다.
원망이 무너진 자리에는 연민이 쌓였을 뿐이다.
세를 내기 어려운 형편인 마을 사람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액의 의뢰를 수행하러 다닌 해월을 보며,
‘저놈은 저런 놈이구나.’
하고 깨달았으므로.
***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이상도 하지. 손끝에서부터 점차 힘이 돌아오는데 이전보다 더 움직이기 힘들고 만사가 귀찮게 느껴졌다. 기운이 쇠한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오래가지 않을 몸이라서 나중에 쓸 것을 생각 안 하고 행동했더니 확실히 축나긴 하는 모양이다.
해월은 눈을 데룩 굴려 방안을 살폈다.
예전에 이 방에서 뭔가 재미난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했더라.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떠오르기는커녕 더 아득해졌다.
“…….”
혼자 있다는 거… 생각보다 더 별로다.
고작 잠깐을 홀로 있는 것도 못 버티는데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아왔나. 새삼 신기했다.
이제 연진이 곁에 없는 순간이 못 견디게 어색했다. 그저 그 애가 빨리 돌아오길 바라게 되었다.
그동안 이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홀로 보낸 시간이 그토록 길었건만 고작 몇 개의 계절을 같이 보냈다 하여 혼자가 어색하다니. 제가 원래 이리 나약했나. 자괴감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정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경계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도 속절없이 정을 쌓아 버리고 만 것에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현듯 이 적막 속에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야, 무명.”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쪽팔리지만 혼자 있는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해월은 굴하지 않았다.
“듣고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올 거면 빨리 튀어나와.”
주위가 고요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무도 없으니까.
창피함을 딛고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한 해월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셋 셀 테니까 그사이에 나와라.”
말하면서도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나 싶어 괴로워졌다. 하지만 자신이 광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마음 졸이느니 차라리 대면하고 싶었다.
그걸 확인할 기회는 어쩌면 쉽게 오지 않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지금이 적격이었다.
“하나… 둘….”
해월은 숨을 내리눌렀다.
“셋.”
안타까운 일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무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역시 해월이 예상한 상황 중 하나였기에 흔들림은 없었다.
해월은 곧장 소매에 손을 넣어 단도를 꺼냈다. 그리고 제 목에 박을 기세로 날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목을 감싸 쥐는 작은 손길이 있었으니.
“야 미쳤냐. 너 아주 죽을 날 앞당기려고 작정했지?”
무명이 나타났다. 곧이어 해월은 단도를 내려놓았다.
“하….”
목숨을 건 도박이 통했다. 완전히 안도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성공해서 다행이다.
아무리 확신에 찬 일이라도 만일의 경우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안 그럴 때가 더 많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목숨을 아끼고 있는 쪽이라. 죽기는 싫었다.
죽으면, 더는 못 볼 테니까.
그 수에 당한 쪽인 무명은 꽤 분한 모양이지만, 제까짓 게 뭘 어쩌겠나.
이번 일로 해월은 확신했다.
“내가 죽으면 너도 사라지는 게 맞나 보네.”
그러니까 무명은, 어린 나는….
“너 내 분신(分身)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