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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귀-98화 (98/124)
  • 98화

    연진은 주먹을 말아 쥐며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일전에 해월과 잠시 쉬려고 들어섰던 동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내부였다.

    발톱 자국이 있는 돌 위에 정체 모를 뼛조각이 나뒹굴었고, 퀴퀴한 공기가 불쾌하게 코를 찔렀다. 천장에서 작은 물방울이 툭툭 아래로 떨어졌다. 낙하하는 물방울들을 잠시 응시하던 연진은 걸음을 이어 나갔다.

    걸으면 걸을수록 달빛은 등 뒤로 희미해져만 갔다.

    미약하지만 저 안쪽에서 귀기가 느껴졌다.

    그때, 어디선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넓은 동굴에서는 소리의 근원지를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연진은 고개를 돌리며 어느 곳에서 들려온 소리인지를 가늠해 보았다.

    혹시 해월이 저를 찾아왔을까 하여 입구 쪽을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누구 없습니까.”

    조심스러운 물음이 동굴 안을 울렸다.

    기분 탓인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소매로 코를 막은 연진의 귓가에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으….”

    “거기 누구 계십니까!”

    다급하게 외치자 이번엔 더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기 있습니다….”

    소리의 근원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중년의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연진은 황급히 부축하여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었으나, 이내 멈칫했다.

    “…….”

    사내에게는 두 다리가 없었다. 그러니 걸을 수도 없다.

    그는 통증이 심한지 연신 앓는 소리를 냈으며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럴 때는…어떻게 해야 하지?

    사내를 업고 산을 내려간다 한들 살 수 있을까. 창귀가 된 분이는 어디에 있는 건가. 이 사내가 분이의 아버지일까.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아득해지는 감각에 연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연진은 지혈을 하기 위해 묶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천을 다시 한번 묶어 주었다.

    “윽!”

    “일단 참으십시오. 여기서 나가야 해요.”

    연진은 그를 업으려 채비를 했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공자님으로 뵈는 분이 여기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어차피 죽을 겁니다 …괜히 욕보지 마시고 어서 달아나세요.”

    그는 연진마저 짐승들에게 당할까 봐 염려하는 듯했다.

    연진은 곧이어 운을 뗐다.

    “여식이 있으시지요.”

    “그걸 어떻게….”

    “혹시 그 여식의 이름이 분이입니까.”

    “어찌 아셨습니까…? 제 여식의 이름이 분이입니다.”

    “저는 분이에게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신을 구해 달라고요.”

    “부탁이라니…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왈칵 차오르는 사내의 눈물은 고통보다는 슬픔, 그보다는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연진의 소매를 붙잡았다.

    연진은 씁쓸한 눈을 한 채로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여길 나간 뒤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그 말 한마디에 환희가 섞여 있던 사내의 눈이 급격하게 빛을 잃어 갔다.

    순간, 달리 말하는 것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이 최선이었음을 알기에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콜록!”

    사내가 기침을 하자 검붉은 혈흔이 튀어나왔다.

    더불어 본래에도 거칠었던 호흡은 점점 더 급박해졌다.

    “헉…헉….”

    “정신 차려 보십시오!”

    연진은 금방이라도 혼절할 듯이 흔들리는 동공을 바로잡으려는 것처럼 소리쳤다.

    “공, 공자님…….”

    사내는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연진은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쪽에는 다른 또 다른 굴이 있었다.

    “저기, 저곳에… 사… 들이….”

    거친 숨소리가 섞인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그의 입가에 귀를 갖다 댔을 때, 사시나무처럼 떨렸던 그의 손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것이 사내의 마지막 말이었다.

    “…….”

    연진은 자세를 일으켜 사내의 안색을 살폈다.

    다리를 잃은 상태로 며칠을 이곳에 있었는지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음습한 이곳에서 절망감에 젖었던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곧바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도 사내가 계속 숨 쉴 수 있었던 것은 제 여식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으리라.

    제가 내뱉었던 말을 사내가 어찌 받아들였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숨을 거두기 직전만큼은 안식에 다다랐기를.

    “…편히 가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동굴 안은 다시금 적막으로 물들었다.

    연진은 침음하며 사내의 뜬 눈을 감겨 주었다.

    마지막에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정확히 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가리킨 방향에 무언가 있다는 것이다.

    연진은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 사내의 얼굴에 덮어 주었다.

    그리고 합장한 뒤, 그의 명복을 빌었다.

    ***

    나무 사이를 드나드는 찬 바람이 한기가 되어 피부에 스며들었다.

    해월은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산길을 걸었다.

    인시(寅時, 03시~05시) 즈음으로 짐작되는 시각인지라 아직 어스름했다.

    조금 전에 접질렸던 발목이 욱신거렸지만 지체할 수는 없었다.

    산군의 인내심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아마 잠시간은 제게 손을 대지 않을 테니 그사이에 얼른 연진을 찾고 일을 갈무리 지어야 했다.

    발목도 발목이지만 추위가 문제였다.

    분명히 작년과 비슷한 추위일 텐데 어째서인지 지난해보다 지금이 더 춥게 느껴졌다.

    혼자 있어서일까.

    문득 손안이 텅 빈 것만 같았다. 무언가 온기를 붙잡고 싶었지만, 해월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해월은 텅 빈 손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추위 때문에 작게 기침을 할 때마다 어깨 부근이 아파서 입술을 깨물게 되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대충 손등으로 닦아 낸 해월은 숨을 몰아쉬며 상의를 조금 벗어 상처 부위를 확인했다.

    “하아….”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바다가 이런 색일 것 같았다.

    산군에게 밟혔던 어깨 근처가 온통 새파랗게 멍들어 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바다를 품어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이지 우스웠다.

    동시에 이 상처를 연진에게 들켰다가는 또 그의 지나친 걱정을 살 것 같아서 두려워졌다.

    폭풍 같은 연진의 잔소리를 떠올리자 머릿속이 아찔했다.

    무조건 숨겨야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옷을 여민 해월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동굴 앞에 당도했다.

    “…….”

    척 보아도 느껴지는 음험한 기운에 표정을 굳힌 해월은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발에 채이는 정체불명의 사체나 뼈들은 해월에게 신경 쓸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거침없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해월은 연진이 이곳에 있으리란 확신에 차 있는 상태였다.

    “강연진, 너 어딨어.”

    한참을 음습한 동굴 속에서 헤매던 해월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다리가 없는 이의 시체였다.

    얼굴 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하얀 손수건이 덮여 있었다. 그 물건이 연진의 것임을 아는 해월의 확신은 견고해졌다.

    비단 연진이 있는 곳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분이야, 네 아버지랑 인사는 했니.”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적막한 물음에 발랄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잘생긴 오라버니는 모르던데.”

    “내가 귀신한테 속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서.”

    해월은 너스레를 떨었다.

    해월 앞에 분이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소녀는 웃고 있었다. 나이에 걸맞는 아주 천진한 웃음이었다.

    “아버지는 엄청 금방 사라졌어요. 그래도 마지막에는 날 봤어요.”

    “그랬구나. 다행이네.”

    “그래서… 이젠 괜찮아요. 기분 이상했던 것도 사라졌고.”

    그건 아마 산군이 분이에 대한 권능을 포기해서일 터. 지금의 분이는 그저 평범한 영혼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어지간히도 싫었나 보네.’

    저주에 걸린 자신과 엮이기 싫어하는 영물이 짜증스럽게 느껴졌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

    이만하면 매듭은 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거니.”

    분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오라버니한테도 인사하고 싶었는데… 괜히 고생시킨 것도 죄송하고….”

    “내가 전해 줄 테니 편히 가.”

    그 말에 분이는 정말로 안심하는 듯이 웃었다.

    “그럼 갈게요.”

    “잘 가. 내세에서 다시 만나자.”

    떠나는 영혼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인사. 해월은 활짝 웃는 분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곁을 지켰다.

    혼백이 잔재도 없이 사라졌을 때, 해월은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금방 다시 만나겠네.’

    저 하늘 너머의 세계에서.

    그런 짤막한 감상이 들었으나 지금은 연진을 찾아야만 했다.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얘는 어딨는 거야.’

    사방을 살펴보던 차에 작은 굴이 하나 더 보였다.

    동굴 전체에 만연했던 음습한 악취의 근원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해월은 소매로 코를 가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통로를 지날수록 악취는 점점 더 짙어졌다.

    ‘이건….’

    현실의 악취와 음기가 동시에 몸을 괴롭히는 것 같아 불쾌감이 일었다.

    머지않아 해월은 연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아.”

    차분한 얼굴이 된 해월이 그를 불렀으나 연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보지 못했다.

    “사, 부….”

    평소의 연진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너른 어깨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아챈 해월은 주저앉아 있는 연진의 등 뒤로 다가섰다.

    왼팔로 연진의 어깨를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연진의 눈을 가렸다.

    “보지 마.”

    “…….”

    그들이 있는 곳에는 온통 시체들이 즐비했다.

    한때는 살아 숨쉬던 것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토막 난 것이 아니라 산 채로 헤집어졌는지, 고통과 공포로 얼룩진 눈동자가 여직 남아 있는 시신도 있었다.

    잔혹. 그 단어 자체의 광경이었다.

    해월은 퇴마사 일을 하며 이런저런 험한 꼴에 익숙해져 있지만, 연진은 아니었다.

    이토록 참혹한 광경은 일반 사람이 목도하기 어렵다.

    해월은 연진의 상태를 곁눈으로 살폈다. 굳은 표정과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확실히 충격을 받은 듯싶었다.

    ‘한평생 이런 광경은 못 봤겠지.’

    해월이 작게 속삭였다. 마치 그들만의 밀어를 전하는 것처럼.

    “나 왔어. 그러니 괜찮아.”

    “사부… 소리가….”

    연진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해월은 더욱 강하게 속삭였다.

    “듣지 마.”

    음기가 가득한 이곳은 잡귀도 가득 모여 있었다.

    잡귀는 약해진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일에 능한 존재이다.

    “나한테 집중해. 그리고 천천히 숨 쉬어.”

    “…하아….”

    해월의 말에 연진은 서서히 제대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돼.”

    해월은 연진의 눈을 가리고 그렇게 몇 번을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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