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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귀-93화 (93/124)

93화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 해월의 삶에 존재했던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런 소리를 했다.

너는 우리와 달라. 너는 이상해.

처음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고를 할 수 있는 머리를 가졌고, 말을 할 줄 아는 입이 있다. 움직일 수 있는 팔이 달려 있고, 걸을 수 있는 다리가 붙어 있다. 그 모든 것을 망라하는 해월의 몸은 그들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르지 않아. 나도 당신들과 같아.

우리가 같다는 증좌는 이리도 많은데 어째서 그런 눈을 하는 걸까. 불결한 무언가를 보는 눈을 내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의 행태가 그들과 다르다고, 그것은 틀렸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분명 그럴 거다.

해월이 의문을 내비칠 때마다 선학경은 말했다.

‘네가 하는 언동은 정상이 아니야. 그러니 더 배우고 익혀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되거라.’

정상이 아니라니. 그럼 정상은 어떤 언동을 취한다는 걸까.

삶보다 죽음을 원하는 자에게 안식을 건네고.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인간의 숨을 끊고.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여 사는 게 잘못된 것이라면 그들도 전부 제대로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인간일 것이다.

농부도 잘 자랄 씨앗과 그렇지 않은 씨앗을 거르고 땅에 심는다. 그렇게 자라난 작물도 먹을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 짓는다.

그런 행동들과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 다 똑같은 삶이다.

그런데 왜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타인은 저를 책망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버지….’

다른 이에게는 한없이 베풀면서 제게는 엄혹하게 구는 아버지가 전혀 야속하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다만 그를 존중했다.

수십 년 세월이 만들어 낸 그를, 고작 자신이 몇 마디 한다고 해서 바뀌진 않을 테니까.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버린 성정을 쉽게 고칠 리 만무했다.

그저 매를 맞는 건 아팠고, 아프기는 싫을 뿐이다. 그래서 선학경의 가르침을 닳도록 외우고 또 외웠다.

이웃과 친절한 대화를 하는 법.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돕는 법. 평범한 미소를 짓는 법…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쓸 수 있는 처신법을 그렇게 배웠다.

가르침에 따라 해 본 이타적인 행동이 가져다준 성취가 제법 단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남은 의문이 있다.

‘정녕 이것이 절실히 원했던 바인가….’

그저 강요에 의해, 억지로 떠밀려 버린 선택은 아니었냐고. 머리가 울렸다.

선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반드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 깨달았다.

내 선의는 누군가에겐 악의가 된다.

선의가 선의로 이어지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까다롭고 피곤하다.

하여 외면했다. 일방적으로 행동하면 편해질 수 있었다.

태어나길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살아서 원하는 게 생길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릴없이 유수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살아가다 지금껏 살아온 모든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죽어 사라지자. 그리 결심했다.

그러나 마치 본능처럼, 원하지 않았던 삶에서도 바라는 바가 생겨났다.

‘평안하게… 그렇게 살고 싶어.’

탈 없이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것.

해월의 이상이자 소망. 일생의 소원은 그뿐이었다.

가까스로 찾은 목표를 제 손으로 어깃장 놓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언제든, 어디든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저를 아버지가 붙잡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떠나려 했다.

이제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릇을 잃어 잘못된 이에게 닿아 버린 송수련의 원망처럼, 제 소원도 그랬다.

영영 이룰 수 없게 되어 버렸단 것을 알게 되니, 더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타협하고 아쉬움을 갈무리해야만 했다.

‘내가 물러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기쁨과 슬픔.

은혜와 원한.

그 전부가 얽혀 헐어 버린 속에 파고든다.

기어코 병이 난다 한들, 해월은 그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

“근데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천하의 송수련한테 미안하단 말을 다 듣고.”

해월은 여직 그녀의 사과에 놀라워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원망을 품은 것도, 제게 미안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송수련은 자존심이 세고 도도한 성격이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래, 다행이지.”

송수련은 은명의 시신을 태워 산바람에 흘려보낼 것이라고 했다. 다시는 이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라는 의미로.

해월은 동의했다.

불에 태우면 시신에 남은 음기도 사라질 것이고, 혹여 남아 있을 사념도 바람결을 따라 흩날리겠지.

의문점은 여전히 해월의 머릿속 한구석을 괴롭혔지만 골몰해 보았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일단은 덮어 두기로 했다.

본래 문제라는 것들은 잊고 지낼 때쯤 해답이 주어지기도 하니까.

지나친 낙관일지 몰라도 해월의 지난 경험상 그런 경우가 많았다.

타오르는 모닥불에 추위를 달래던 해월은 무릎을 세우고 턱을 괬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연진은 가부좌를 틀고 마치 참선이라도 하는 것처럼 얌전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산을 넘어가다 해가 지는 바람에 이리 야영하게 된 것이다.

“한데 사부, 송 행수가 준 물건은 대체 무엇입니까.”

연진은 송 행수와 헤어지기 전에 그녀가 해월에게 주었던 봇짐을 떠올렸다.

해월은 조금 떨떠름한 낯으로 운을 뗐다.

“아직 나도 안 봤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보고 싶지 않아.”

“불길한 예감이요?”

“그런 게 있어.”

예전에 하련방에 머물다가 떠나던 무렵에도 송 행수는 똑같이 선물이랍시고 물건을 건넨 적 있었다.

후에 그 물건을 확인하고서 해월은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에이 설마 그때랑 똑같은 걸 주겠어.’

그런 안일한 생각에 기대어 작금의 불길한 예감을 지워 내려 한다.

어쨌거나 그래도 받은 물건인데 함부로 버릴 수도 없고.

“일단은 가면서 생각할래.”

이런 예감은 덮어 두는 게 상책이다.

“내 고향은 벽촌이라서 앞으로 며칠은 더 가야 해. 우선 많이 자 둬. 너도 피곤한 거 아니야.”

연진이 제 간호를 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달리 피곤한 기색이 없어서 과연 젊은 놈은 체력이 좋긴 하구나 싶긴 했지만,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연진은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억지로 눕히기 전에 얼른 자라.”

해월의 으름장에도 연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어휴.”

가볍게 한숨을 쉰 해월은 벌떡 일어나 연진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연진의 머리를 끌어당겨 제 무릎을 베게 했다.

얼결에 눕혀진 연진은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해월이 이마를 눌러 순식간에 제지했다.

“어허. 재워 줄 때 주무시지요. 도련님.”

해월은 연진의 눈가를 손으로 덮고 단호하게 말했다.

시야가 차단당했지만, 연진은 굴하지 않았다.

“…사부가 깨어 있는데 제가 어찌 편히 잡니까.”

“난 많이 자 뒀잖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나는 깨어 있어야 돼. 전에도 말했지만, 산은 원혼들이 많아서 위험하단 말이야.”

“그리 위험하다면 둘이 깨어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연진의 말이 옳았다.

당연하게도,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의 전력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싫었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 때문에 구태여 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도. 잘해주기로 했으니까 잘해주는 거야.”

해월은 나름대로 적절한 핑계를 댔다. 잘 대해 주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었으니까.

연진은 제 눈가를 덮고 있는 해월의 손을 덥석 잡았다.

느닷없이 손이 잡히고, 벌어진 손 틈 사이로 연진의 눈빛이 보였다.

“왜 그래…?”

그 눈빛이 어딘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손이 성할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해월은 연진의 손을 쳐다보았다. 연진은 어이없는 투로 말했다.

“제 손 말고 사부의 손이요.”

“아.”

해월은 다시 시선을 옮겨 연진에게 잡힌 손을 보았다.

곳곳에 상흔들이 있긴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그런 의아함도 있었지만, 연진의 시선이 닿는 손의 마디마디가 간지러운 느낌이라 황급히 손을 뺐다.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냥 생채기인데.”

“자꾸 피를 내어 주술을 쓰시니 그렇죠.”

“인신의 일부를 제물로 바쳐야 강한 힘을 낼 수 있으니까 그렇지.”

해월은 조금 쭈뼛거리며 변명했다.

일전 연 씨 요괴처럼. 요괴를 사멸시키기 위해서는 요괴가 가진 힘을 압도하는 힘을 내야 한다. 그런 데는 혈(血)을 사용하는 것이 제격이다.

물론 요괴도 나름의 생명이란 것이 있는지라 찌르고, 베면 죽기는 한다. 쉽게 안 죽는 것이 문제지.

“…저는 어찌하여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까.”

“뭘?”

“사부가 쓰시는 주술 같은 것 말입니다.”

“바보야. 내가 쓰는 주술은 거의 다 사술이거든. 몸에 안 좋아.”

사술도 정술도 대부분 능히 다룰 수 있었지만 사술이 더 큰 위력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주로 그걸 사용하는 것이다.

육신과 정신을 갉아먹는 만큼, 혼백을 청정히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연진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백난국에서 사술에 대해 아는 이는 전무할 정도니 자세히 알 방법도 없을 테고.

“그리 몸에 안 좋으면 대체 그걸 왜 쓰는 겁니까.”

연진이 조금 욱한 듯 물었다.

“그게 빠르고 편하니까.”

너무도 태연한 답이 돌아오자 연진은 눈을 감고 잠시 침음했다.

그 모습을 곧 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해월은 연진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잘 자란 의미였다.

“…….”

연진이 느끼기에 해월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미워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짐작건대, 해월의 양아버지란 사람이 일조한 바가 클 것이라 예상되었다.

해월과 송 행수에게 들은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엄혹한 사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정말 해월의 고향에 가서 그자를 만나게 된다면 한 번쯤 묻고 싶었다.

깊이 애중해도 모자랄 해월을 어째서 그리 때리고, 냉혹하게 대했느냐고. 하얀 다리에 남았던 그 상처들을 어째서 남겼느냐고.

“…….”

연진은 지금보다 더 앳되었을 해월의 어린 시절을 그려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입매가 올라갔다.

호선을 그린 연진의 입가를 슬며시 본 해월이 중얼거렸다.

“좋은 꿈이라도 꾸나….”

해월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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