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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귀-69화 (69/124)

69화

“응?”

“일전에 길에서 사부께 시비를 걸었던 그 무뢰배 말입니다.”

“아…. 나한테 기생오라비라고 했던.”

뒤늦게 기억을 떠올린 해월은 사내의 면상을 살피다가 이내 소매에서 종이를 꺼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주구였다. 팔랑거리는 얇은 종이 위에 피 흐르는 손으로 주문을 썼다.

해월은 빳빳해진 부적을 사내 셋의 가슴팍에 붙였다. 어느새 그들은 모두 숨이 끊겨있는 상태였다.

“산에서 도적질하다 우연히 나를 보고 복수할 요량이었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대뜸 화살부터 날리지는 않았을 터다.

“운이 안 좋게 됐군.”

그리 말하고는 해월은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사내들에게 붙어있던 부적의 붉은 글씨가 번쩍이더니 이내 빛을 잃었다.

“뭐 하는… 겁니까?”

해월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연진이 넌지시 물었다.

“혼백을 강제로 천도시키는 거야. 만에 하나 원귀가 되면 곤란하니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제가 죽인 자들이다. 그 원한이 제게 쌓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서둘러 보내주는 것이었다. 설령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다 해도 후환은 잘라두는 편이 좋으니까.

해월은 작게 미소 지으며 연진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죽이는 건 처음 봤겠구나.”

연진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전혀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 제 사부에게 냉정한 구석이 있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고 살인을 한 적 있다는 것도 이미 알았다.

그러나 직접 목도하는 것은 조금 다른 기분을 들게 했다. 이제 와서 그가 낯설어졌다거나 싫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자조가 섞인 해월의 미소와 음성이 거슬렸을 뿐이다. 그는 상처를 주면서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해월이 아니었다면 저도 분명 다쳤을 것이다. 그는 둘 모두를 지켰다. 본인이 그걸 아는지는 모르겠다만.

연진은 가만히 해월의 손을 잡았다. 화살을 맨손으로 잡는 바람에 찢어진 상처에서 여전히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연진은 손수건을 꺼내 그것을 해월의 손가락에 감아 묶어주었다.

이에 해월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피 안 통하겠다.”

“지혈하려면 이 정도는 묶어야 합니다. 잔말하지 마세요.”

“예, 예.”

해월은 대충 대꾸하며 제 손을 응시했다. 감긴 천의 감촉은 부드러웠다. 하얀 손수건은 핏물이 배어나 보기 안 좋아졌지만, 기분 탓인지 비릿한 피 냄새보다 평소 연진에게서 나던 시원한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연진은 아무 말 없이 짐을 챙겨 다시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해월은 이내 깨달았다.

‘네게는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보다 내 손이 다친 게 더 중요하구나.’

그제야 찢긴 살갗이 불에 데는 듯 아팠다.

뜨겁고, 간질거렸다.

***

해월이 죽음에 초연해진 건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선학경을 만나서 선해월이란 이름을 받기 전의 무렵. 그 시절의 기억은 흐렸지만 그럼에도 유독 또렷이 기억나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제대로 된 이름 한 번 불리지 못한 동생의 죽음이었다.

제 친부모는 짐승 같았다. 이성은 날아가고 본능만 남은 짐승처럼 정사를 나누었다.

그것은 해월이나 다른 자식들이 있는 자리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흡사 교미와 같은 그 행위의 끝은 불쌍한 생명의 탄생으로 직결되었다.

저 이전에 태어났던 형제들도, 이후에 태어난 형제들도 다 그런 식이었다. 물론 저 역시 포함해서.

어느 몹시 더운 날. 해월은 모친을 따라 산속에서 캔 나물들과 온갖 잡동사니를 팔러 시전에 나갔다. 스스로 쓰기에도 꺼림직할 만큼 질이 나쁜 물건들이 잘 팔릴 리는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자리 차지만 하고 있었는데, 제 모친이 갑작스레 배를 부여잡곤 주저앉았다. 복통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딱히 당황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산고를 겪는 모습이 익숙했으니까.

모친 역시 능숙하게 행동했다. 그녀는 물건을 올려놓은 작은 가판대 밑으로 들어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풀어헤친 앞섬을 입에 물고 고통을 참았다.

시전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열심히 호객하는 소리, 물건을 사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 온갖 물건들의 냄새가 뒤얽혀 쿰쿰하기 짝이 없는… 더럽고 혼란스러운 공간.

이런 곳의 구석에서 겨우 자리를 펴놓고 아이를 낳는 꼴이 참 우스웠다. 다행인 것은 주변이 워낙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덕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으읍, 하는 막힌 신음이 들렸다. 해월은 쪼그려 앉아 천으로 가려진 가판대 아래에서 아이를 낳는 어머니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한 시진쯤 지나자 엄청난 양의 피와 함께 아이가 태어났다.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경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해월은 태어나자마자 흙바닥에 드러눕게 된 핏덩이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그 핏덩이는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기는커녕 숨조차 쉬지 않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무조건 소리를 내지른다고 알고 있던 해월에게는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태어나고 나서 며칠 뒤에 죽은 적은 더러 있었지만, 죽은 채로 태어난 경우는 처음 보았다.

하나 처음이었던 것은 해월뿐인 듯, 모친은 익숙하게 탯줄을 자르고 바닥에 낭자한 혈흔을 대충 흙으로 덮었다.

“죽었어.”

해월의 나지막한 말에 어머니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의 소득이 없다는 것과 재수 없게 산통을 겪었다는 것에 짜증 난 얼굴을 하고 있을 뿐.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지친 얼굴은 아이를 낳아 기쁜 산모의 모습이 아니었고, 아이를 사산하여 슬픈 산모의 모습도 아니었다.

내일에 대한 기대 없이 매일의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

해월은 자신이 짐승의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구역질이 났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귓가를 울려대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악취에 물들어버린 사람들은 아무도 이 거슬리는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해월도 그것이 익숙했다. 이 사람들은 어차피 가난하고 어리석으며 우매하다. 저 역시 그렇다. 그래서 그 핏덩이를 보자기에 싸서 근처에 있던 강물에 흘려보내 주었다.

있는 형제들과도 정을 쌓은 적 없는데 죽은 채로 태어난 동생에게 애정이 있을 리 없었다.

흔한 태명도 없었기에 명복을 빌어줄 때 쓰일 이름 역시 없었다. 그저 시신을 강물에 담그면 강의 신이 그 시신을 데리고 먼바다까지 데려다준다던 속설이 생각나서였다. 별 특별한 이유도 아니었다.

세상의 숨을 들이마셔 보지도 못한 그 아이의 다음 생이 없길 기도해주었다. 다시 이 세상에 나와봤자, 어차피 또 짐승의 자식으로 태어나 죽을 테니까.

그가 기억하는 죽음은 그랬다. 하잘것없이 쓰러져버리는 것. 그래서 아무 의미도 없이 사라지는 것.

해월의 주변에선 죽음이 흔했고, 그에게 죽음은 곧 ‘숨을 쉰다’와 같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사(死)를 생(生)과 같이 취급한다는 모순이었다. 슬퍼할 일도,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죽는 건 그냥 어떠한 현상에 불과하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살고 난 뒤에, 어떤 식으로 벌어질지 모르기에 두려운 것이다.

해월은 딱히 죽음에 대해 맹렬히 저항해본 적 없었다. 받아들이면 그만인 일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을 죽일 때도 거부감 따위는 없었다.

보통 죽은 자의 혼백은 금세 흩어진다. 때문에 악령에 의해 악몽에 시달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음기가 몸에 쌓여 가끔 정화의식을 해야만 했다.

그래, 그 정도의 일이다.

죽는 건 특별하지 않다. 그건 타인도, 자신도 마찬가지다. 생전에 아무리 고귀하고 천하다 한들 사후엔 그저 하나의 영혼일 뿐이니까.

하지만 연진은 아니겠지. 누군가 죽는 걸 보는 일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진아.”

“왜 부르십니까.”

산중에 있다 밤이 깊어지는 바람에 야영하게 된 두 사람은 모닥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었다.

얼굴 위로 붉은빛이 일렁였다. 상념에 잠겨있던 해월은 입을 열었다 닫으며 잠시간 망설였다. 괜한 질문을 해서 가뜩이나 심란할 연진을 더 불편하게 하면 어떡하나 싶어서였다.

그러다 이런 고민을 해서 무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저에겐 연진이 필요하다. 설령, 제 고독을 위해 연진을 이용하는 것일지라도. 그러니까 이건 그냥 묻는 말이다. 양심의 가책을 한 톨 정도 덜기 위한 위선이랄까.

“…너는 안 무서워?”

“뭐가 말입니까.”

연진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는 거 말이야.”

다소 추상적인 말이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함축한 질문이기도 했다.

해월은 보통 그러한 일이 있을 때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숨을 끊어놓는 편이었다. 잠시 연진을 의식하지 않고 저질러버린 행동이다. 어쩌면 의식해서 그리 한 걸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저 애에게 해가 될까 봐. 궂은일은 제가 하면 그만이니까.

연진은 작은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까만 눈동자엔 타오르는 불빛과 해월 단둘만이 비추어졌다.

“제게 죽음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닙니다.”

연진의 부모는 그가 어릴 때 죽었다. 그 뒤로 죽음은 그에게 가까이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어릴 때, 강석요가 되지도 않는 책을 잡아 무고한 이들을 매질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몇 번 말려보았으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체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죄책감마저 흐려졌다.

말았던 멍석이 풀리고 피범벅을 한 사람이 보인 순간, 강석요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강석요는 말없이 경고를 보냈다.

저런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죽은 듯이 지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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