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건 선학경과 마을 사람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단곡에 있는 이들 중 가장 능력이 출중한 선학경에게 매달려 사는 신세였고, 선학경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을 귀찮아하지도, 무시하지도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했다.
음기가 가득한 땅을 정화하기 위해 주구(呪具, 부적이나 주문 따위)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재물과 식량을 나누기도 했다. 그가 그의 고국에서 악명으로 자자했던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어울리지 않는 선(善)이었다.
제가 처음 선학경에게서 배운 것은 어쩌면 그런 위선일 지도 모른다.
자신은 선학경을 만나 어느새 소년과 아이 사이쯤 되는 나이로 자라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선학경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중 제일로 쓰임새가 좋은 것은 영력에 기인한 것들이었다.
영력을 깨우칠 때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눈앞이 아득했으나 깨우치고 나서는 제법 쓸만한 것이었다. 물론 그만큼 피곤한 일도 많았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이거나 어렴풋이 느껴지기만 하는 존재들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으니.
가령 이렇게 괴물을 마주칠 수도 있는 것이다.
휘이이.
기분 나쁠 정도로 음산한 휘파람 소리가 해월의 귓가를 찔러댔다. 이를 무시하고 계속 나아가려던 해월은 이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꿈틀거리는 나무뿌리가 그의 발목을 옭아맸기 때문이다. 약초를 캐기 위해 들고 온 물건들을 내려놓고 무심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 발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귀소목이었다.
“이거 놔. 나 돌아가야 돼.”
좋게 타일렀지만 그런다고 들으면 귀소목이 아니었다. 눈앞의 거대한 나무 기둥의 한 가운데가 일그러지더니 이내 사람의 얼굴 형상이 되었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어 징그러운 형태였지만 해월은 상관없다는 듯 행동했다.
“내 기를 먹고 싶은 거라면 먹어. 죽지 않을 정도라면 줄 수 있으니까.”
“배…고…파….”
귀소목은 깊은 허기를 느끼는 듯 험악하고도 절박한 얼굴을 했다.
순간, 귀소목의 몸통 위로 무언가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것을 본 해월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저건….
‘이 마을을 도망친 자들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는데….’
네가 다 잡아먹었구나. 나무 기둥 겉으로 드러났다가 사라진, 괴로운 표정의 얼굴들. 그것은 분명 제가 아는 얼굴이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다며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 단곡의 젊은이들이었다.
단곡에서 다른 마을로 갈 수 있는 길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다른 쪽 길목은 산세가 험하고 한참은 돌아서 가야 하기에, 조속히 떠나려거든 꼭 이 길을 거쳐야 했다.
일전에 이곳을 지나다닐 때부터 묘하게 꺼림직하다고 생각했는데 귀소목이 자리하고 있었을 줄이야. 아마 그동안 잠들어있다가 최근 들어 사람들이 자주 다니니 깨어난 것이 분명했다.
“읏!”
갑작스레 통증이 느껴져 시선을 내리자 나무뿌리가 발목을 찌른 것이 눈에 보였다.
“…아프잖아.”
찔린 발목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발목에 박힌 나무뿌리가 울컥울컥 움직이고 있었다. 피를 빨아 먹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대로라면 피를 모조리 빨려 말라 죽거나, 그대로 잡아먹혀 죽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고통스럽게 죽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지라, 해월은 나무뿌리를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형태로 영력을 흘려보내자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뿌리가 끊겼다.
발목에 박힌 나무뿌리를 우악스럽게 빼낸 후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쯤 관통당한 발목으로 빠르게 달릴 수는 없었다.
얼마 못 가 자리에 주저앉자 때를 놓치지 않은 귀소목이 제 전신을 옭아매어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뜻하지 않게 귀소목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해월은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옭아매는 탓에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컥…!”
잡아먹혀 죽기 전에 뼈가 으스러져 죽을 판이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며 지난 과거가 떠오르는 일 따위도 없었다. 그만큼 찰나의 순간에 해월은 어느새 귀소목의 거대한 입 앞에 놓인 가련한 식량이 되었다.
보나 마나 아플 것이 뻔해서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아아아악!”
기괴한 비명이 깊은 산골을 가득 울려댔다.
그건 제가 낸 소리가 아니었다. 깜짝 놀라 눈을 뜨자 괴로운 얼굴이 되어 몸통을 꼬고 있는 귀소목이 보였다.
스르륵, 몸을 두르고 있던 귀소목의 뿌리에서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무얼 하길래 안 오나 했더니, 고작 이런 목괴 하나를 상대 못해서는… 쯧.”
“아버지….”
선학경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품 안에서 부적을 더 꺼내어 귀소목에게 날렸다. 정확히 날아간 부적이 귀소목에게 달라붙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귀소목은 이내 사막의 묘목처럼 말라가기 시작하여 종국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그마저도 부서지듯 무너져 내렸다.
이 광경을 영문 모를 얼굴로 보던 해월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선학경 또한 다리를 절었지만, 그 강직함은 평범한 중년의 사내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는 해월에게 다가가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왜 가만히 있었어? 요괴한테 잡아먹히면 사멸한다고 안 가르쳐 줬나?”
사람은 죽으면 혼이 남는다. 그 혼은 이승에 머물며 귀신이 되거나, 천도하여 환생한다. 대부분은 후자의 경우에 속하겠지만 저런 요괴나 귀신에게 혼이 먹히는 날엔 혼 자체가 소멸한다. 다음 생이라는 기약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알고 있어요.”
해월도 이를 잘 알았다.
“근데… 어차피 사라져도 상관없잖아요. 다음 생이라고 더 나으리란 법도 없고. 세상이 뒤바뀌지 않는 한 다음 생도 이번 생과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요.”
해월의 냉소적인 어투에 선학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아….”
제가 주워온 이 음침한 꼬맹이. 다시 말해 저의 양아들은 겉보기엔 멀쩡했으나 어딘가 결여 되어 있었다. 그 결여를 채워주기 위해 나름의 훈육을 시행했지만, 효과는 미비한 듯했다.
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 역시 이런 꼬마를 상대하는 일은 낯설었다.
도대체 이 꼬맹이는 몇 년을 키워도 그대로인 걸까.
매를 들면 나아질까 하였지만, 해월은 고통을 싫어하는 것일 뿐 자신이 왜 매를 맞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눈치를 볼 줄은 알아서 다음부턴 제가 지적하는 행위들을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타인에게 무관심하여 냉대하는 행위가 그에 해당했다.
최근엔 해월 또래의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봤다고 꾸짖었는데, 그때도 해월은 이렇게 말했다.
‘기근이라 먹을 것도 없는데 굶어 죽는 것보다 물에 빠져 죽는 게 그 아이가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보고 있던 거예요.’
선학경도 전쟁통에 보통의 상식이 무너지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지만, 이렇게 어린아이가 그러는 것은 본 적 없었다.
조금 전에도 보통의 아이였다면, 울며 부모를 부르짖거나 두려움에 질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해월은 귀소목에게 붙잡힌 와중에도 그저 눈을 감기만 했다.
게다가 생사를 오갔음에도 아무런 동요 없이 행동하는 모습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선학경을 쳐다보는 해월의 눈에는 공허가 담겨있었다. 어둑한 흑청색의 눈동자는 음산한 기운을 주기 충분했다. 그는 말없이 해월에게서 돌아섰다.
그러자 해월은 그의 옷소매를 붙들었다.
“나… 버릴 거예요?”
“뭐?”
뜬금없는 질문에 황당하다는 듯 반문하자 해월은 우물쭈물하다 중얼거리듯 말했다.
“방금… 나를 낳은 사람들이랑 똑같은 눈으로 날 봤잖아요.”
제 친부모는 저를 버리기로 작심하던 무렵, 불만과 회의가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낳아봤자 쓸데도 없네. 팔아넘기는 게 낫겠어. 등의 말을 소리를 내어 표현하기도, 소리 없이 표현하기도 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버려지는 것만큼은 싫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선학경에게서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이에 선학경은 무언가를 느끼고는 해월을 향해 자세를 낮추었다.
“…내게 버림받기 싫으면 지금의 너를 버려라.”
“…….”
“내가 시키는 대로 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돼. 그럼 넌 앞으로 누구에게도 버려지지 않을 거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뭐가 좋은데요.”
‘득’이 없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실’을 행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앞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보면 알 수 있어. 나도 그랬으니까.”
선학경은 그렇게 말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그 뒤로 몇 년이 지나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하였으나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해월은 희미하고도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은… 정말 끊기 힘들더라.”
선학경이 제시한 쓸모 있는 사람이란 곧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남을 위할 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사람. 처음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얻는 이득도 알지 못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깨닫게 되었다.
선의를 베풀었다는 만족감이 얼마나 중독적인지 말이다.
나를 희생시켜 남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느껴지는 묘한 감각은 가히 쾌락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것은 해월의 유일한 삶의 목표이자 일상이었다.
나룻터 구석에 쪼그려 앉은 해월은 혼잣말을 하듯 눈앞에 보이는 헛것이자 어린 자신에게 말을 붙였다.
“한데 말야… 넌 정말 정체가 뭐냐.”
“나? 몇 번을 말해야 해. 난 너라니까.”
“그걸 누가 몰라 묻나… 고향에 가면 아버지한테 여쭤봐야겠어.”
“왜 내가 귀신같아?”
해월은 피식 웃었다.
“귀신 안 같아. 그래서 문제야.”
음기도, 양기도 느껴지지 않는 어린 모습의 자신. 무어라 규정하기 애매해서 더욱 문제였다. 퇴마사로서의 자존심은 상하겠지만 차라리 귀신이 들린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과 이렇게 떠드는 것은 꼴이 너무 우습지 않은가.
“내 정체가 그리도 궁금해?”
“아니 이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그냥 제 무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겠지. 그리 생각되어 더는 궁금한 것이 없었다.
“싱겁기는….”
“아 근데 너 진이 있을 때 튀어나오지 마. 정신 사나우니까.”
“싫어, 내 마음대로 나올 거야. 그리고 네 제자가 내 제자인데 왜 튀어나오지 말래?”
“어딜 넘봐. 내 제자야.”
해월이 분명하게 선을 긋자 어린 해월이 볼을 부풀리며 불만스레 그를 째려보았다.
“뭘 째려봐 허상 주제에.”
퉁명스러운 말이 불만이었는지 어린 해월은 표정을 굳혔다.
“…나는 진짜야.”
“뭐…?”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선해월이고, 너야.”
“…….”
사뭇 진지한 말에 해월은 할 말이 없어졌다.
“부정하지 말라고, 피해 봤자 결국 넌 현실을 직면하게 되어있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 콩알만 한 게.”
지금도 체격이 다부진 편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의 자신은 확실히 작고 왜소했다.
“콩알… 여하튼 너의 불안을 유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단 소리야.”
“…그걸 누가 모를까.”
언젠가부터 줄곧 끌어안고 있던 죽음에 대한 불안감.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아이가 짜증 났지만,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기에 반박할 여지도 없었다.
결국, 이기적으로 굴려 한다. 내가 죽어서 남은 이들이 슬프든, 아쉬워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나만 생각하려 한다.
그래도 되지 않나. 이런 욕심쯤은 제게 허락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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