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고 돌아 너-1화 (1/96)

#01

<소설 속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 중 한국어는 “ ”, 영어는 [ ]로 표기되었습니다.>

1. 이사

권성하

- 정리는 다 했어?

“어. 대충은. 이제 막 끝난 참이야.”

아무것도 없는 거실은 그저 휑하기만 했다. 어느 집에나 있을법한 소파나 선반 따위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텅 빈 거실을 지나 발코니 문을 열었다. 발코니라 해 봤자 겨우 서너 명 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였지만, 혼자서 담배를 피우기엔 적당했다.

- 이제 끝났다고?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짐은 별로 없는데 그 전에 청소하는 데 좀 걸렸어.”

- 아, 아. 그랬겠지. 내가 아는 권성하가 얼마나 대단한 앤데.

대단하다는 말과는 달리 상대의 말투는 잔뜩 꼬여있었다. 또 얼마나 쓸고 닦은 거냐는 핀잔도 따라왔다. 청소나 정리 정돈을 좋아하기는 해도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소라는 매번 내게 유난을 떤다고 말했다. 뭘 그렇게 깔끔을 떠냐고.

- 거기서 학교까지는 얼마나 걸려?

“강의 한 시간 반 전에는 출발해야 해.”

- 그렇게 일찍 출발해?

“거리는 20마일 정돈데 다운타운 쪽에 교통체증이 심하대서.”

- 거의 매일 왔다 갔다 하는데 괜찮겠냐.

“괜찮아. 나 운전하는 거 좋아하잖아.”

- 그래도 너무 멀다. 학교가 다운타운 안에 있으면 그냥 그쪽에 있는 데로 하지.

“여기가 조용하고 좋아.”

고심해서 고른 아파트는 상당히 괜찮은 곳이었다. 높은 건물 대신 나무가 많아 공기가 좋고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차만 있으면 움직이기 편한 곳으로 차 타고 5분 거리에 큰 마트도 있었고, 15분 이내에 한국 식당들도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가격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운타운 오피스텔이 고작 7평에 1,400불인데, 방 하나와 넓은 거실이 딸린 이 아파트는 크기가 두 배나 되는데도 보증금 2,000불에 월세가 850불밖에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학교와 가까운 거리를 포기하고 교외 쪽을 살펴본 것이 현명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정도도 만약 한국이었다면 대학생에게 월세 100만 원짜리 아파트가 무슨 호사냐며 욕을 먹겠지만, 이 정도 수준도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네 엄마가 올해부터는 자주 가겠다고 하더구나. 사는 곳은 적당히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구하거라.’

새아버지에게 시카고에 있는 대학에 붙었다고 하자 가장 먼저 돌아온 말이었다. 애초에 축하한다는 따뜻한 말은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학비를 대신 내줄 사람에게 내가 서운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쪽이 일 찾기도 쉬워.”

- 일? 학교 다니면서 언제 하게? 파트타임으로 하려고?

“화, 목, 금, 토. 나흘 동안 저녁에만.”

- 구체적이네. 벌써 구했어?

“어. 한국분이 하시는 일식당. 이번 주부터 하기로 했어.”

- 빨리도 구했다. 누가 집 청소도 하기 전에 일을 먼저 구하냐?

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 아, 시발. 갑자기 짜증 나네.

갑작스레 들려온 욕설에 놀라기보다는 웃음이 났다. 툭 하면 들리는 거친 욕이 너무나 익숙했다.

- 존나 망나니짓만 하는 그 새끼는 일주일에 몇천 불씩 막 쓰고 다니는데, 넌 왜 그렇게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냐.

“무슨 눈치. 눈치 보는데 이런 아파트 구했을까 봐? 여기 이 주변에서 그래도 꽤 괜찮은 아파트야.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 눈치 보니까 그런 데 골랐겠지. 내가 네 속을 모르겠냐? 새아버지한테 보여줘야 하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데는 골라야겠고, 도심 쪽은 너무 비싸고. 그래서 또 돈 걱정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거기로 한 거면서.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빨라.

내게 아버지가 생긴 건 12살 때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나는 늘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그 전까지는 다른 집 친구들처럼 쉬는 날에는 함께 목욕탕을 가는 다정한 아버지가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쉬는 날에도 대단한 분들과 골프장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목욕탕은커녕 바로 앞 슈퍼조차 함께 가지 못할 정도로 바쁜 사람. 그런 사람이 유일하게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쓰면서까지 최선을 다하는 상대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내게 엄마가 그 사람의 첫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정말인지 그 사람은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했다. 이미 8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엄마밖에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 사람이 사랑하는 건 엄마이지 내가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 나는, 엄마가 가져온 여러 개의 화장품 중 하나인 것처럼 그저 엄마에게 딸린 소유물에 불과했다.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존재. 그런 하찮은 존재가 매일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둘이 알콩달콩 살고 싶었던 꿈을 깨버린 걸 수도 있었다.

막 6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새아버지의 미국 출장을 따라갔다 온 엄마는 갑작스레 내게 유학을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성하야. 성하한테 형아 한 명 생겼다고 했던 거 기억나? 지금 미국에 있는데, 거기 가면 성하 좋아하는 거 되게 많대. 혹시 가고 싶니?’

그 사람에게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엄마는 아마도 완전 남이나 마찬가지인 형을 만나고 난 뒤 유학에 대한 로망이 생긴 듯했다. 대체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구슬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엄마는 내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며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전혀 원치 않았음에도 모든 사람의 부러움 속에 유학길에 올랐다.

당연하게도 미국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내가 일 년에 두 번 한국에 나갔을 때도 엄마의 요청으로 한두 번 함께 식사를 했을 뿐 내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딱 한 번,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엄마가 없는 자리에 나를 따로 불렀다.

‘이제 너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모든 걸 공짜로 해 줄 생각 없다. 지금까지 남인 네게 이만큼 해 준 것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앞으로 네가 쓰는 건 전부 내 앞으로 진 빚이라고 생각해라. 언젠가 다 갚아야 할 게다. 다시 말하지만, 난 널 절대 내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회사 서류를 넘기며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엄마를 봐서 어쩔 수 없이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는 자신이 투자를 하겠지만, 그동안 편한 마음으로 유학할 생각은 하지 말라며 자신이 베풀 수 있는 호의는 딱 거기까지라고 말했다.

보통 고등학생이 들으면 상처받거나 화가 날 만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나는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내 것으로 생각한 적도 없었고, 내가 그 사람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알겠다고 대답하자 그는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부모 욕 들을 정도로 구질구질하게 살 생각은 말아라.’

내가 쓰는 모든 돈이 빚이라고 해 놓고 어디 가서 남에게 꿀릴 정도로는 살지 말라니. 내게 쓰는 돈은 아깝지만, 자신의 체면도 신경 써야 하니 알아서 적당히 하라는 뜻이었다. 새아버지라는 사람은 정말로 잔인한 사람이었다.

- 요즘도 돈 보낼 때 그 사람 비서가 전화해서 얼마 보낼지 묻냐?

“어.”

- 설마 매달?

“어.”

- 미친……. 나라면 귀찮아서라도 그 짓 못 하겠다. 있는 사람이 더 하다더니……. 한 만 불쯤 불러버리지 그러냐.

“그거 다 갚아야 하는데?”

- 언젠가 갚으라고 했지, 그게 언젠지는 말 안 했잖아. 그냥 막 쓰고 나 몰라라 해버려. 솔직히 그 인간이 너 아들로 인정 안 한다 해도 너희 엄마한테 죽고 못 사는데 설마 그런다고 널 버리기라도 하겠냐?

만약 그게 아니래도 그냥 내가 싫었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내 돈이 아닌 돈을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돈이 반으로 줄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요구하는 만큼, 언제나 조금의 여유도 둘 수 없는 금액만 들어왔다. 빠듯한 생활비 정도의 돈만 받고, 부족한 용돈은 주말까지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 메꿨다.

처음에만 어려웠지 막상 익숙해지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 상황은 그들보다 나았다. 돈에 대한 부담은 늘 안고 살았지만, 새아버지는 본인의 체면 때문에라도 사는 곳과 차만큼은 그럭저럭 괜찮은 걸 선택하게 해 주었다.

그렇듯 당사자인 나는 괜찮았지만, 내 사정을 잘 아는 소라는 예나 지금이나 나 대신 이렇게 짜증을 내곤 했다. 뉴욕에 있는 하나뿐인 형이 일주일에 몇천 불을 쓰는 동안 나는 손님들이 주는 팁을 헤아려야 했으니까.

“너 안 자? 너네는 내일부터 시작이잖아.”

- 어차피 첫 클래스 10시 시작이야. 그리고 코앞이 학굔데 누가 이렇게 일찍 자. 새벽 6시에 스쿨버스 탈 때도 12시 전에 자 본 적이 없구만.

“하긴. 그러니까 네가 맨날 아침마다 카페테리아에 그렇게 엎어져 있었지.”

- 야. 씨, 너…….

투덕대는 말이 오가도 편한 상대와의 통화는 그저 즐거웠다. 원래라면 혼자 발코니에서 궁상을 떨게 아니라 같이 마주 앉아있을 텐데.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괜히 한참 지난 일처럼 느껴졌다.

- 아, 우리 성하. 너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것도 저것도 다 싫어졌어. 학교는 또 무슨 낙으로 다녀야 하냐.

“언제는 네가 나보는 낙으로 학교 다녔냐?”

- 어. 잘생긴 권성하 보는 재미로 학교 다녔는데 왜.

퍽이나. 본인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다녀도 절대 가기 싫을 거라고 매번 그렇게 말했으면서.

“어쨌거나 잘 다녀와. 대학은 어떤지 소감도 좀 말해주고.”

- 그래. 이 누나가 먼저 경험해보고 캠퍼스 생활이 뭔지 말해 주마.

개강이 겨우 일주일 빠르다는 이유로 별 생색을 다 낸 소라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 다리가 뻐근하다 싶어 핸드폰 액정을 보자 한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태우던 담배가 아까워 일부러 몇 분 동안 더 서 있었다. 벌써 세 번째 담배였다.

이것도 끊어야 하는데.

담배야말로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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