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서원이 그런 생각으로 말하자, 질투심이 어려 있던 도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는 서원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느슨하게 하며 달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게.”
“흣…….”
도겸은 당장 잘해 주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는 건지, 곧바로 서원의 목덜미
에 입을 맞췄다.
불시에 부드러운 입술이 목덜미에 닿으니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찔움찔 떨렸
다. 워낙 민감한 부위인지라, 간지럽기도 하고 성감이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한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서원을 끌어안고 있던 도겸의 손이 스멀스멀 움직였다. 서원은 무더운
날씨에 얇고 통이 큰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들어온 손이
작은 유두 돌기를 꼬집었다. 뜨거운 숨이 터졌다.
이대로 침대로 직행할 것 같은 분위기에, 서원은 일단 그를 진정시켜야겠다
싶어졌다.
“하아……. 형, 이, 일단 씻고…….”
“그냥 하자.”
“안 돼요……. 땀, 많이 흘렸어요.”
평소 도겸은 서원의 체향마저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 탓에 씻자고 해도 그냥
밀어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원도 그에게서 나는 특유의 체향을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도겸을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가끔은 못 이기는 척 몸을 겹치곤 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하와이는 워낙 더운 곳이었고, 점심부터 저
녁까지 내내 바깥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겼던 터라 땀을 많이 흘렸다. 꼭 섹
스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숙소로 돌아오면 곧장 샤워부터 하고 싶었던 터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원이 성감에 헐떡거리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자, 도겸의 표정이 조금 불퉁
해졌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으로 서원을 빤히 바라보다, 어쩔 수
없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같이 씻자.”
“네? 아뇨,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가자.”
서원이 급할 것도 없으니 차례대로 씻자고 말하려 했으나, 도겸은 끝까지 듣
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가벼운 것을 옮기는 것처럼 서원을 번쩍 안아 들더
니, 그대로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서원이 놔 달라고 무언가를 할 틈도 없이 욕실 앞, 파우더룸에 도착해 버렸
다. 도겸은 파우더룸에 서원을 내려놓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했고,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어 내려지고 나서도
멍했다. 서원이 파우더룸에 서서 가만히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도겸이 웃옷
을 훌러덩 벗어 던지며 서원에게 말했다.
“옷 벗어야지.”
“…….”
“입고 씻을 거야?”
“그게 아니라…….”
“그럼 도와줘?”
“……아뇨, 제가 벗을게요.”
왜 당연하게 같이 씻게 된 거지? 따지자면 할 말이 많았지만, 씻지 않고 흘레
붙으려고 하던 것을 말렸던 참이라 같이 씻는 것까지 거부하기가 뭣했다.
민망하긴 해도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서원이 쭈뼛거리며 셔츠 단추를 위
에서부터 하나둘 풀어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고 보니, 도겸이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뭐가?”
“왜 벗는 걸…… 쳐다보고 있어요. 사람 민망하게.”
서원이 단추를 풀던 것을 멈추고 말했다. 그만 좀 쳐다보라는 의미였는데, 도
겸이 이상한 논리로 대꾸했다.
“내가 내 거 쳐다보는데 이유가 있어야 해?”
“……네? 제가 왜 형 거예요?”
서원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며 대꾸했다. 사람한테 내 거, 네 거가 어디 있
어. 소유물도 아니고.
서원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냐며 되물었지만, 도겸은 아주 당연한 것을
말하듯 진지하게 물었다.
“난 네 거 맞는데, 넌 내 거 아니야?”
“아니…….”
결혼했으니 서로가 서로의 것이라고 하는 거면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왠
지 맞다고 수긍하면 그에게 휘말리는 것 같았다.
서원은 결국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눈썹을 팔 자로 늘어트린 채
헛웃음을 터트렸다.
“형은 좀……, 특이한 것 같아요.”
“내가?”
“그런 말 하기 부끄럽지 않아요?”
“글쎄…….”
도겸은 잘 모르겠다는 듯 말끝을 흐리면서도,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서원이
옷 벗는 것을 도와줬다.
그의 손 아래에서 단추가 토독토독 풀어졌다. 단추가 풀릴수록 셔츠 아래에
가려져 있던 맑고 하얀 피부가 점차 드러났다. 하와이의 햇볕에 팔다리가 조
금 그을렸지만, 옷 아래에 가려진 속살은 뽀얬다.
마지막 단추까지 풀어내고 셔츠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도겸은 작게 웃더니
서원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내 앞에서 옷 벗기를 부끄러워하는 네가 더 특이한 것 같은데.”
“…….”
대놓고 제 몸을 훑어보는 도겸의 시선에, 서원은 은근슬쩍 몸을 돌렸다.
그렇지만 서원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파우더룸의 벽면에 거울이 크게 있는 바
람에 제 몸이 훤히 보였다.
각진 어깨는 부끄러움으로 불그스레 물들어 있었고, 아래로 보이는 젖꼭지는
아까의 성감 때문인지 톡 튀어나와 도드라져 있었다.
제 눈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게 되니 더 쑥스러운 기분이었다. 서원이 입술을
앙다물며 고개를 숙이자, 도겸이 재미있는 걸 봤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 벗은 것도 아니고. 아직도 내 앞에서 옷 벗는 게 부끄러워?”
“처음이 문제가 아니라……. 형 앞에서는 몇 번을 벗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도겸의 놀림조 어린 말에 서원이 작게 항의했다.
파트너로 지낼 때부터 그의 앞에서 옷을 벗은 횟수가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많은데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제가 부끄러움이 많은 편인 것도 그런데, 그것보다도 제가 옷을 벗으면 도겸
의 눈빛이 노골적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살을 다 발라 먹을 것처럼 날것의 시선을 받고 있자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은 것처럼 부끄러워지곤 했다.
도겸이 저런 눈빛을 하는 한,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행위였다. 서원이 남몰
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서원의 생각을 추호도 모르는 도겸은 친절하게 말했다.
“익숙해질 때까지 도와줄게.”
“필요 없는데…….”
서원이 작게 항의했으나 도겸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만 친절하지, 친절한 게 아니었다.
여차여차 옷을 다 벗은 둘은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 간 신혼집도 욕실이
넓은 편이었지만, 이 호텔 또한 만만치 않았다. 꼭 이러라고 만든 것처럼 성
인 남성 둘이 욕실에 들어가도 공간이 여유 있었다.
그렇게 느낀 건 서원만이 아니었는지, 도겸이 욕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은 도하도 같이 씻을까? 도하랑 같이 욕조 들어가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좋…….”
도하랑 같이 씻는다니. 생각만 해도 귀여운 것 같아서 서원은 단박에 좋다고
대답하려다, 급히 말을 삼켰다.
서원이 말을 하다가 말자, 도겸의 의아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왜 그러냐는 물
음이 담긴 눈빛에, 서원은 쭈뼛거리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건을 붙였다.
“형이 안 건드리면요…….”
말하는 와중에도 도겸이 스멀스멀 저를 만지고 있었다.
도하의 앞에서 이랬다가는 큰일이었다. 도하가 워낙 어려서, 그저 부모님이
사이가 좋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간혹 어렸을 적의 일을 커서도 뚜렷
하게 기억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버틸 자신이 없기도 했다.
서원이 도하가 있을 땐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그를 바라보자, 도
겸이 엉뚱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푸핫 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내가 도하 앞에서도 이럴까 봐?”
“네…….”
“안 그래. 도하랑 같이 자야 해서 섹스도 못 할 텐데 달아오르게만 해서 뭐하
려고.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도겸이 치근댈 이유가 없다며 이성적으로 말했다.
평소에 성적인 일에서는 이성적이지 않은 그가 저렇게 말하니 적응이 되질 않
았다. 어처구니가 없어 허탈할 지경이었다.
“아니, 형이……. 하…….”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맨정신이어도 할 말을 잃었을 텐
데, 취기에 논리적인 말이 잘 떠오르질 않았다.
서원이 말 대신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대뜸 도겸이 제 뺨에 입술을
맞췄다.
“이제 씻자.”
“…….”
아무래도 애교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저렇게 도겸이 수를 쓰는 게 훤히 읽히는데도, 백이면 백 넘어가는 게 저였
다. 제가 그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직 신혼이라 마음이 유해
서 그냥 봐주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서원이 딱히 뭐라고 타박하지 않자, 도겸이 손을 뻗어 샤워기 물을 틀었다.
시원한 물이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관광지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렸던 터라, 물을 맞는 것만으로
도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씻겨 내려가는 느낌에 서원이 작게 숨을 뱉는데, 도
겸이 뒤로 바싹 달라붙었다.
“도와줄게.”
도겸이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제 몸을 만져 왔다. 야릇한 의도가 담긴 게
아닌, 빠르게 씻겨 주고 침실로 가려는 듯한 손길이었다.
서원이 씻겨 주는 손길을 받으면서도 조금 불편한 얼굴로 도겸을 돌아보자, 그가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래?”
“…….”
도겸이 저를 씻겨 주는 건 흔한 일이었기에 새삼스럽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서원은 너무 저만 그에게 도움을 받는 것 같다는 생
각이 들었다. 도겸은 매번 저를 씻겨 주는 게 자발적으로 원해서 하는 일이라
고는 말하지만, 성인 남성을 씻겨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오늘이야말로 저도 그에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저도, 형…… 씻는 거 도와줄게요.”
서원이 용기를 내어 제안하자, 도겸이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멈칫했다.
잠시 굳어 있던 도겸은 자신이 헛것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지, 확인하듯 물었다.
“네가, 나를…… 씻겨 주겠다고?”
“네…….”
서원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걸 해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가 해 왔던 것처럼 저 또한 그를
씻겨 주겠다고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도겸은 엄청나게 대단한 이야기를 들
은 것처럼 놀란 눈치였다.
그의 반응에 오히려 더 괜히 민망한 기분이었다. 제가 여태까지 너무 받기만
했나 싶어졌다.
서원이 쑥스러워하며 대답하자, 도겸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흔쾌히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럴까.”
도겸은 그렇게 말하며, 형사한테 고발된 사람처럼 두 손을 가볍게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