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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125/136)

<125화>

일 년 뒤.

“하늘 진짜 쨍쨍하다…….”

서원은 통창으로 된 벽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고, 햇볕은 따가우리만큼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아득하게 바다 지평선이 보였고, 모래사장 주변으로는 듬성듬성 야자수가 심겨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국적인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원은 그가 왜 굳이 하와이까지 와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몇 달 전, 평소처럼 함께 식사하는데 우연히 결혼식 이야기가 나왔었다. 상황이 정리되기도 했고 도겸이 생각해 둔 게 있냐고 물어보기에, 서원은 소규모로 올리고 싶다고 의견을 냈다. 어차피 의례처럼 올리는 결혼식이기 때문에 화려하게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도겸도 동의하는 듯해서 단출하게 결혼식을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뜸 도겸이 하와이 결혼식장을 알아 오더니 강력하게 추진했다.

서원으로서는 왜 굳이 먼 타국까지 가서 결혼식을 올려야 하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도겸이 하나 낸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나둘 의견을 맞추다 보니 사람은 몇 안 부르는 소규모 웨딩은 맞는데, 실제 규모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결혼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혼식이긴 했지만……. 하와이는 생전 처음 와 보는 거라 마음에 들긴 했다.

서원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 통창 너머로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전화를 받고 있던 도겸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더니 서원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미안, 기다렸지.”

“아녜요. 통화는 잘 끝났어요?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긴 것 같던데…….”

“응. 하아……. 내가 신혼여행 간다고 휴가 쓴다고 몇 달 전부터 말했는데. 나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질 않나 봐.”

도겸은 답답하고 짜증스럽다는 듯 말하면서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은근하게 드러냈다.

“형이 대표이사님이니까 당연하죠.”

도겸의 말에 서원이 가볍게 대꾸했다.

최근 그가 추진한 프로젝트로 인해 회사가 역대 최고 매출을 갱신하게 되며, 전무이사에서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되었다.

일이 잘되는 만큼 일이 많이 몰려올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시기에 대표이사라는 작자가 결혼식을 올리겠다며 자리를 비우게 됐으니……. 회사가 얼마나 난리 났을지는 안 봐도 눈에 훤했다.

서원은 어차피 형식적으로 올리는 결혼식이니 날짜를 미뤄도 괜찮다고 했으나, 도겸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평생 이날만을 바라 온 사람처럼 그랬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더라……, 아랫사람을 믿어 주는 것도 대표의 일이라고 했던가?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 상황에서는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느껴졌다.

서원이 허탈하게 웃으며 도겸을 바라보는데, 그가 두 눈을 맞추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잠깐만, 서원아.”

뭔가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을 돌아보던 그는, 화장대 위에 올라와 있던 것을 집으며 물었다.

“이건 왜 안 쓰고 있어?”

“아…….”

그가 손에 든 것은 푸르른 잎과 흰색 꽃이 조화롭게 이뤄진 예쁜 화관이었다.

서원은 그것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예식을 위해 흰색 정장도 맞추고 다 준비했는데, 오늘 예식장에 오니 갑자기 화관까지 써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도겸도 화관을 쓰니 그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제 것에는 면사포가 달려 있었다. 이런 걸 써 본 적이 없으니 너무나도 어색하고 이상했다.

“화관까지는 괜찮은데 면사포는 좀, 그렇지 않아요? 어울리지도 않는데…….”

“씌워 줄게.”

서원이 꼼지락거리며 에둘러 거절하려고 했으나, 도겸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도겸이 면사포가 달린 화관을 잡고 눈짓을 보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제 의견을 따르는 편이었지만, 이럴 때는 물러서질 않았다.

쓰기 민망한데……. 서원은 그다지 내키지 않아 에둘러 거절하려 했으나, 마주한 도겸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잔뜩 실려 있는 걸 보고 주춤했다.

……저런 눈으로 바라보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서원은 부부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에게 너무나도 약했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서원은 작게 한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겸이 서원의 머리 위에 살포시 화관을 씌워 줬다.

“예쁘다.”

도겸은 화관을 쓴 순백의 제 오메가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서원이가 예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으나, 객관적으로 흰 정장에 화관을 쓴 서원의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었다. 피부가 하얀 편이라 화사한 옷을 입으면 외모가 백 배는 더 살았다.

웨딩 정장을 구매하길 잘했지. 서원의 말대로 대여를 했더라면 땅을 치고 후회했으리라. 도겸이 그런 생각을 하며 서원의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해 주는데, 서원이 머뭇거리다 귀를 발그스레 물들이며 입을 열었다.

“……형도요.”

“나도?”

“네.”

서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겸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예쁘다는 말이 저랑 어울리기나 하냐는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서원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서원의 눈에 도겸은 엄청난 미남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미인이기도 했다. 마치 숭고한 조각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특히나 오늘은 더욱 그 감상이 강하게 들었다. 도겸은 저와 비슷한 흰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평소 회사 갈 때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평소에는 입지 않는 흰색 정장이기도 했고, 안 그래도 멋진 그에게 전문가가 달라붙어 광칠을 해 주니 후광이 비칠 지경이었다.

서원은 왜 그가 예쁜지 설명해 줄까 하다가, 무슨 말을 하든 농담으로 들을 그의 성정을 알아 그만두기로 했다. 그 대신, 서원은 잠시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뭔가…… 결혼을 두 번 하는 느낌이네요.”

“응? 왜?”

“저희가 혼인신고를 먼저 했잖아요. 저번에 가족 관계 증명서 뗐을 때, 정말 우리가 결혼했다고 느꼈었거든요.”

둘은 도하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혼인신고도 함께 했다.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면 저와 도겸, 도하까지 가족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관계였다.

서원이 출산하고 몸조리를 하느라 결혼식은 이벤트처럼 나중에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도겸과 두 번이나 결혼하는 느낌이었다. 두 번 결혼하는 게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그렇게 느껴졌다.

서원이 말하자, 도겸이 이해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저번에 네가 나한테 각인했을 때 그런 기분이었는데.”

도겸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받은 날이자, 제가 그에게 각인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던 날을 말하는 듯했다.

그날 정신없이 몸을 겹쳤고, 그로부터 며칠 뒤 서원은 배 비서의 페로몬이 거의 무취처럼 느껴진다는 걸 알아챘다.

‘저 형한테 각인했나 봐요!’

서원이 한껏 들떠 도겸에게 제 상태를 말하자, 그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더니 당장 페로몬과에 진료받게 했다.

제대로 각인이 됐는지 확인하려는 의도로 데려간 게 아니었다. 서원이 수술을 받고 몸이 약해진 상태이다 보니 페로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게 더 커 보였다.

그리고 검진 결과는…… 서원의 예상이 적중했다. 제가 그에게 각인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렇게나 원하던 쌍방 각인이 됐다.

서원은 머지않아 그에게 각인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좀 놀라긴 했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도겸은 아니었다. 그는 영영 제가 그에게 각인하지 못할까 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지, 검진 결과를 듣자마자 눈물을 흘렸었다.

제게 고백을 하던 날도 그렇고, 제가 아파 쓰러진 날도 그렇고……. 그를 도련님으로 모시고 지낼 땐 십여 년 동안 우는 걸 한 번도 못 봤었는데, 아주 울보가 따로 없었다.

서원은 그날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날 형 진짜 많이 울었죠.”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놀리는 거 아니에요. 형 귀여워서 그래요.”

서원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놀리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고서야 제가 그를 놀릴 때가 언제 있겠는가.

도겸은 그런 서원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는 속내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하듯 말했다.

“오늘 너 우는지 안 우는지 지켜볼 거야.”

“음……. 방금 제가 했던 말은 잊어 주세요.”

서원은 난감하게 목을 긁다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오늘 울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방금은 여유롭게 말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가 도겸보다 훨씬 눈물이 많았으니까. 그를 보고 울보라고 놀릴 때가 아니었다.

서원이 금방 백기를 들자, 도겸이 귀엽다는 듯이 뺨을 꼬집으며 응징했다.

“아아, 아파요…….”

“아프라고 하는 거야.”

도겸은 더 꼬집을 것처럼 말하면서도, 손을 내렸다.

시간을 힐끗 본 그는, 예식까지 시간이 아직 남았음을 확인하고는 습관적으로 서원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유달리 부드러운 서원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결혼식을 일찍 했으면 좋았을 텐데.”

“또 그 소리예요?”

그는 오늘이 오기까지 몇 번이고 이 말을 했었다.

도하가 생기고 일찍이 결혼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좋았지만, 사실 이리저리 할 일이 많아서 남들과 같은 신혼을 누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제가 조금만이라도 더 일찍 마음을 인정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서원과 연애도 하고, 남들처럼 일반적인 절차를 밟아 가며 결혼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닭살 돋게 연애질하는 기간이 길었을 텐데…….

실상은 제가 머저리 새끼처럼 마음을 부정하느라 서원이를 고생하게 했고. 겨우 연애 좀 하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성격 급한 도하가 이르게 세상 밖으로 나온 탓에 즐길 틈이 짧았다. 도하 탓을 하는 건 아닌데, 상황이 그랬다.

도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서원은, 이해하고 웃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도하가 너무 어려서 신경 써야 할 게 많았잖아요. 저도 몸 회복하느라 바빴고……. 전 지금도 좋아요. 그리고 도하가 없었으면 저희 결혼까지 못 했을지도 모르니까 결혼한다는 거에 의미를 둘래요.”

도겸은 도하 탓을 하며 말한 건 아니었으나, 서원은 도하를 탓할 것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말로 서원에게 도하는 축복의 아이였다. 미국에서 히트사이클이 터지는 바람에 덜컥 아이가 생겼고, 도겸과 이어질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무작정 도망쳤고, 도겸이 쫓아오다가 제가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고, 오해하고, 질투하고……. 수많은 고난이 있긴 했지만, 그날 미국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도겸과 이런 식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아마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서원이 그런 생각으로 말하자 도겸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가만한 눈으로 서원을 바라보다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설령 도하가 없었어도…… 너랑 만나게 됐을 거야.”

“…….”

그는 꼭 도하가 아니었어도 우리는 만났을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의 눈동자를 보니, 듣기 좋은 소리로 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서원은 ‘만약’을 가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건 알지만, 도겸의 말에 과연 그랬을지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도하가 없었더라면 영원한 짝사랑으로 마침표를 찍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무의식중에 저를 좋아해서 다른 오메가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어떻게든 저와 엮이려 들었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하를 지키겠다고 그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일이 있긴 했지만, 애초에 임신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그를 떠날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페로몬 파트너를 그만둘 생각도 안 하고 계속해서 명분을 찾고, 그렇게 그의 곁을 지켰겠지.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든, 우리는 사랑하게 됐을 거야.

결론은 같았을 거라는 생각에 서원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도겸이 마주 웃으며 서원의 손을 꼭 잡았다. 맞잡은 손 너머로 그의 마음만큼이나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순간 똑똑 하고 대기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원과 도겸이 동시에 시선을 그쪽으로 옮기자, 문을 연 직원이 둘에게 말했다.

“윤서원 씨, 서도겸 씨. 식장으로 이동하실게요.”

드디어, 결혼식을 올릴 시간이 되었나 보다.

식을 위해 하와이까지 왔고 이때만을 기다려 왔으나, 막상 때가 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서원이 침을 꼴깍이며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는데, 먼저 일어난 도겸이 서원에게로 손을 뻗었다.

“서원아. 가자.”

제 손을 잡고 일어나라는 의미였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제는 서원도 몸이 멀쩡하니 굳이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서원은 저를 돌아보며 손을 뻗는, 하얀 턱시도를 입은 도겸의 모습이 너무나도 반짝거려서 그의 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요.”

서원이 그의 손을 꽉 맞잡고 몸을 일으켰다.

직원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커다랗고 하얀 문이 나왔다. 그리고 닫힌 문틈 사이로 웅장한 결혼식 특유의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닫혀 있던 문이 덜커덩, 하고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내렸다. 정면으로는 주례가, 그리고 양쪽으로는 객석이 보였다.

객석에는 양가의 친인척과 지인이 모여 수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서원의 눈에는 도하가 엄마의 무릎에 앉아서 이쪽을 해맑게 바라보고 있는 게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도하는 낯선 땅에 온 것도 처음이고 서원과 도겸이 낯선 모습을 하고 있어 울 법도 한데, 오늘이 둘에게 가장 특별한 날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저 또한 행복하다는 듯이.

“신랑, 신부. 입장!”

잠시 도하에게 시선을 빼앗겨 있는데, 사회자가 현실을 상기시켜 주듯 결혼식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결혼식에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 명씩 입장하지만, 아버지를 일찍 잃은 서원을 배려해 함께 입장하는 것으로 바꿨다.

서원은 도겸의 손을 꼭 잡은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펫 위를 성큼성큼 걸었다. 객석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저희를 축복하고 손뼉 쳤지만, 심장이 너무나도 세차게 뛰어서 귀가 먹먹해 들을 겨를이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주례 앞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주례가 시키는 대로 도겸과 마주 보고 서자, 주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혼인 서약을 읊었다.

서원은 평생 지켜야 할 약조를 듣다, 조금 정신이 들어 천천히 그를 올려다봤다.

결혼식은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도겸이 진지하게 혼인 서약을 듣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저를 마주하고 있었다.

제가 봐 온 그의 모습 중에 가장 밝고, 순수한 얼굴이었다.

서원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도겸과 함께할 앞날을 그렸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고난과 역경이 없으리라고도 단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려울 건 없다. 우리는 늘 그래 왔듯이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이고, 정답을 찾으리라.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굳세게 마음을 다잡으며 도겸을 바라보는데, 그가 주례에 맞춰 입을 열었다.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축복하기라도 하는 건지, 때마침 천장에서 하얀 꽃가루가 비처럼 하늘하늘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얀 정장을 입은 채 꽃비를 맞고 있는 도겸의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했다. 그 탓에, 잠시 서원은 대답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그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아름다웠는데, 배경까지 완벽하니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명화를 찢고 나온 듯한 모습에 멍하니 있는데,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의 그는 제가 대답하지 않으면 혹여나 마음이 바뀐 게 아닐까 하며 불안에 떨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제 입에서 나올 말을 확신하고, 어서 빨리 대답해 달라며 능구렁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를 사랑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한 가지 확신이 더 들었다.

당신이 나를 원하신다면,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영원히 변치 않을 미래에, 서원은 꽃비를 맞으며 환하게 웃었다.

당신이 나를 원하신다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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