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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119/136)

<119화>

만일 제가 도겸의 입장이 되어, 그와 찰떡이를 둘 다 잃어버릴지도 모를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저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분명 제가 울고 있었는데도 도겸을 위로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원이 팔을 둘러 도겸의 등허리를 꽉 끌어안는데, 도겸은 아직 위로의 말이 남아 있었는지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의사가 그러는데, 찰떡이 먹기도 잘하고 토도 안 하고, 체중도 잘 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대. 2.3kg만 넘으면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수 있다고 그랬으니까 금방이야.”

“……그래요?”

“응, 내가 다 물어봤어.”

서원이 코를 훌쩍이며 묻자, 도겸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2.3kg이라…….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서원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인형과도 같은 체중이었다. 찰떡이는 아직 2kg도 채 안 되던데, 그래도 잘 먹고 잘 자고 한다니 2.3kg은 금방 될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위로를 듣고 나서야, 서원은 그제야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고 눈물을 그칠 수 있었다. 서원의 들썩거림이 잦아들지, 도겸은 자신의 위로가 효과가 있음을 알아챘는지 포옹을 풀어냈다.

얼굴을 마주한 그는 눈물로 엉망이 된 서원의 얼굴을 엄지로 손수 닦아 주며 입을 열었다.

“찰떡이 금방 건강해질 텐데, 너도 빨리 퇴원해서 예뻐해 줘야지. 울다가 상처 터질라.”

“네……, 고마워요.”

도겸의 말이 영 틀린 것도 아닌 게, 어쩌면 제가 찰떡이보다 늦게 퇴원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찰떡이를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하겠지.

어서 기력을 되찾아야지. 서원이 소리 없이 웃으며 울음기를 완전히 거둬내자, 도겸이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며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혹시 찰떡이 이름은 생각해 봤어?”

“이름이요?”

“언제까지고 태명으로 부를 순 없잖아.”

이름이라…….

사실, 생각해 둔 이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찰떡이를 품고 있을 때 여자아이일까, 남자아이일까 하며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이어 가곤 했으니 이런저런 이름 후보들이 머리에 줄지어 있었다.

그러다 아까 찰떡이를 마주했을 때, 마음에 들었던 이름 하나가 떠오르며 찰떡이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의 마음 같아서는 그 이름을 찰떡이에게 붙여 주고 싶은데, 남의 이름을 지어 본 적도 없고 평소 제 네이밍 센스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조심스러워졌다. 어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닉네임을 짓는 것도 아니고, 한평생 불릴 이름 아닌가.

서원은 방금까지 펑펑 울고 있었던 것도 잊고 망설임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긴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괜찮으니까 말해 봐.”

도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용기를 북돋아 줬다. 제가 이상한 이름을 떠올린 게 아닌가 싶어 망설여지긴 했으나, 찰떡이의 이름이야말로 함께 상의하고 신중하게 지어야 할 것이었다. 혼자 고민한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서원이 보기에 도겸은 나름대로 냉철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명확하게 평가해 줄 것 같아서 더욱이 그를 믿고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생각한 이름을 내뱉었다.

“서도하……. 어때요?”

“도하? 좋은데, 갑자기 그 이름은 어디서 나왔어?”

그렇게 짧게 봐 놓고서는 어떻게 이름을 생각했냐고,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오늘 찰떡이를 처음 봤으면서 언제 그리 빠르게 이름을 지었냐는 반응이었다.

누군가에게 말할 만큼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서원은 조금 멋쩍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낳기 전부터 혼자 이름을 생각해 보고 그랬거든요. 그때도 생각했던 이름인데, 오늘 찰떡이 보니까 형이랑 많이 닮아서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별로일까요?”

“아니야. 찰떡이랑도 어울리고 예쁘고 좋기만 한데.”

“정말요?”

“응. 네 이름처럼 어감이 부드러운 것도 좋고. 내가 좋은 한자 있나 알아볼게.”

도겸이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술술 대답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도하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 것처럼 보였다.

서도겸, 윤서원, 서도하…….

서원은 머릿속에 세 가지 이름을 나란히 두고 왠지 모를 따듯함을 느꼈다.

찰떡이로 있을 때도 하나의 가족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이를 보고 이름까지 지어 주니 비로소 완벽한 가족이 된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상상만큼 아름다운 일은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저를 좋아했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저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서원은 도하와 함께 그려 갈 미래가 여태까지 지내 왔던 나날보다 더욱더 행복하고 눈이 부실 거라고……. 감히 확신했다.

* * *

서원의 몸 상태는 빠르게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어려서 회복력이 좋은 게 한몫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회장님이 둘 사이를 허락하게 되면서 서원에게 최고의 의료진을 붙인 게 큰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의료진들이 밤낮없이 서원의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남들보다 빠르게 회복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서원이 회복하는 것만큼이나 도하도 빠르게 상태가 좋아졌다. 저보다도 빨리 괜찮아져서 함께 있다가 조리원까지 같이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어느새 조리원에서 나가야 할 때가 왔다. 서원은 도겸의 도움을 받아 짐을 정리하고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저, 당분간은 엄마랑 같이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갑자기?”

“도하를 제가 혼자 보기엔 힘들 것 같아서요.”

서원이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사는 아파트로 도하를 데리고 가서 혼자 돌보기에는 역부족일 듯했다. 육아는 처음이니까 엄마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엄마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대답하는데, 도겸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함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이는 같이 보면 되잖아?”

“저희 집에서요?”

“아니. 신혼집에서.”

“네? 신혼집이요?”

갑자기 뭐라고……? 신혼집이라고 한 게 맞나?

뜻밖의 말을 들은 서원이 확인차 되묻자, 도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신혼집이라고 말한 게 맞는 눈치였다.

도겸의 부모님께 만나는 걸 허락받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서원과 도겸은 결혼식만 안 올렸지 결혼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부가 되면서 살림을 합쳐야 하기에 신혼집이 생긴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희 그런 거 없잖아요?”

문제는 저와 도겸 사이에 신혼집이라는 게 없다는 데 있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신혼집이고 뭐고, 그런 걸 준비할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서원이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묻는데, 도겸이 그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일상적인 어투로 대답했다.

“너 입원해 있는 사이에, 내가 구했어.”

“……네? 신혼집을…… 형이 구했다고요? 혼자서요? 왜, 왜요? 같이 안 구하고 왜 혼자…….”

“퇴원하면 바로 신혼집에서 같이 살고 싶었거든.”

구했다고? 서원이 믿을 수 없다는 어투로 묻자, 도겸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는 저 혼자 신혼집을 구해 깜짝 이벤트처럼 공개하게 된 것이 조금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그렇지만 서원은 이벤트를 받은 사람 같지 않게 아무런 반응도 비치지 못했다. 상황이 급작스럽게 이뤄져서 그런 걸까. 도겸과 제가 함께 사는 집이 생긴다는 것이 어색하고 얼떨떨했다.

싫은 건 아니고 분명 좋은 건데……. 이래도 되는 건가? 다른 것도 아니고 신혼집인데……. 함께 미래를 채워 나갈 공간인 보금자리를 그 혼자 구해왔다는 것이 좀 떨떠름했다.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

잠시 생각하는데, 도겸이 서원의 무릎 위에 올라와 있는 손 위로 제 손을 포개며 말했다.

“가자.”

“…….”

그렇게 말하는 도겸의 표정이며 말투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얼떨떨해하는 서원을 보고는, 제 이벤트가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 눈치였다.

아니, 그런 반응이 아니었는데…….

황당해졌지만, 좋아하는 도겸을 보고 있자니 왜 혼자 구했냐는 타박이 나오질 않았다.

어차피 같이 신혼집을 구했어도 도겸의 주도하에 구했을 것 같기도 하고, 그가 저렇게까지 좋아하는데…….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서원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흘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모습마저 좋아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 * *

“여기가…… 저희가 살 집이라고요?”

“응.”

서원이 당황스러운 어투로 물었으나, 도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도겸이 신혼집을 보여 주겠다며 저를 데리고 온 곳은 한남동의 고급 빌라였다. 서원은 부동산에 대해 문외한이었지만, 워낙 보안이 철저해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곳이라 저까지 알고 있는 곳이었다.

서원은 그를 따라가며 그가 어떤 신혼집을 구했을지 기대했었다. 도란도란한 주택을 생각하기도 했고, 지금 사는 곳처럼 평범한 아파트를 그리며 어떤 집일지 여럿 상상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니……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이었다. 도겸이 구해 온 집은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넓었다.

서원은 그가 이렇게까지 넓은 집을 신혼집으로 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겸이 지금 혼자 사는 집은 이렇게까지 넓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지금으로서는 가족계획이 저와 도겸 그리고 도하밖에 없었다. 욕심 같아서는 둘째도 있으면 좋겠지만, 열성 오메가이다 보니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는 이상 둘째는 힘들었다. 그러니 셋이 산다는 가정하에 봐야 하는 건데……. 여기는 얼핏 봐도 방만 대여섯 개는 넘어 보이는데?

그것도 모자라 뷰도 대단했다. 한쪽 벽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고층에다가 시야가 탁 트여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한눈에 보였다. 멋있긴 한데…… 도대체 이런 집은 얼마나 하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무서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형이 저렇게까지 좋아하니, 그냥 둘까.’하고 신혼집을 혼자 구해 온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막상 신혼집에 도착하니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

……지금이라면 집 계약을 무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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