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보통 발은 더럽다는 인식이 강한 신체 부위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간지럼을 타서 민감한 부위이기도 했다. 서원은 깜짝 놀라 그에게 잡힌 발을 버둥거렸다.
“뭐, 뭐예요……!”
“가만히 있어.”
도겸은 움찔거리는 서원의 발을 꽉 잡아채 제 무릎 한쪽에 올려두더니, 베이비핑크색의 보송보송한 수면 양말을 신겨 줬다. 난데없이 왜 발을 만지나 했더니만, 그걸 신겨 주려고 그런 모양이었다.
실내 공기가 따듯하긴 했어도 몸이 허해서 그런지 발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양말을 신으니 부드럽고 따스해지는 것이 좋긴 한데……. 그래도 양말을 직접 신겨 주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제가 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서원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남들이 보는 것도 아니긴 하다만, 도겸이 저를 과잉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내라서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감기 걸려서 기침이라도 하면 봉합 부위 터져. 단단히 입어.”
서원이 항의하듯 작게 중얼거렸으나, 도겸은 단호했다.
면회 시간이라고 해 봐야 고작 몇 분이라, 그 정도 나가 있는다고 감기에 걸릴 것 같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말대로 기침이라도 해서 수술 부위가 터지기라도 하면……. 상상만으로도 등줄기를 타고 오싹하게 소름이 돋아났다. 그의 말을 따르는 게 건강에 이로워 보였다.
서원이 말없이 수긍하며 가만히 있자, 도겸은 서원의 반대쪽 발까지 수면 양말을 단단히 신겨줬다. 그는 자신이 손수 양말을 신겨 준 것이 마음에 드는 듯 서원의 발을 몇 번 만지작거렸다.
맨발을 만지는 것보다는 훨씬 덜 간지러운 느낌이었으나, 낯간지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간지러워요.”
“어떻게 이런 양말도 어울려? 어이가 없네…….”
서원이 자연스럽게 발을 빼내려고 했으나, 도겸은 귀가 막히기라도 한 사람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발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무슨 아가 발도 아니고……. 도겸보다는 발 사이즈도 작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감탄해가며 귀엽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발인걸.
게다가 아무리 대단한 걸 봐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원은 헛웃음을 흘리고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허어, 그게 무슨……. 제가 더 어이없는데요. 이러지 말고 빨리…….”
똑똑똑.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어서 가기나 하자고 재촉하려는데, 병실 문을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원과 도겸이 고개를 돌리자, 하얀 미닫이문이 드르륵하고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휠체어를 끄는 젊은 남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는 서원과 도겸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이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금방 얼굴에 화사한 웃음꽃을 피웠다.
“윤서원 환자분, 아이 보러 가기로 하셨죠?”
“아……, 네!”
“벌써 다 준비하셨네요. 제가 휠체어 끌어드릴게요.”
원래 친절한 병원인 건지, 도겸의 존재 때문인지. 좀 전에 의사가 회진 돌면서 휠체어까지 부탁해 준 모양이었다.
배려는 고마웠지만, 하필 이런 타이밍에 온 건 달갑지 않았다. 도겸이 저를 애 취급하듯이 구는 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 보여 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서원이 민망함에 얼굴을 푹 숙인 채 아랫입술을 말아 무는데, 도겸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제가 끌겠습니다.”
“아……. 그러면 안내해드릴게요.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간호사는 거부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머쓱한 얼굴로 길 안내라도 해 주겠다며 앞장섰다.
아니, 왜……. 끌어 주면 좋은 거 아닌가. 서원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도겸은 휠체어 손잡이를 잡더니 서원을 끌었다.
휠체어 맡기는 게 뭐 어떻다고. 간호사가 저를 어떻게 할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서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병원 사람들이 저와 도겸을 어떻게 생각할지 눈에 훤해서, 다른 의미로 어서 퇴원하고 싶었다.
* * *
신생아집중치료실 앞. 알려 준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하자, 신생아집중치료실 안에 있던 간호사가 나와 서원과 도겸에게 면회 지침을 알려 줬다.
도겸은 이미 한 번 찰떡이를 봐서 알던 내용이었지만, 서원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주의사항은 당연히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 그러려니 싶었는데, 둘이 같이 온 것이 무색하게 한 명만 면회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한 명만 볼 수 있다니. 서원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침이라 놀랐으나, 도겸은 알고 있었던 듯 덤덤한 반응이었다. 그는 지침을 다 듣고는 서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가서 보고 와.”
“형은 안 봐도 되겠어요?”
“나는 저번에 봤으니까 괜찮아. 충분히 보고 눈에 담고 와.”
“……고마워요.”
서원은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그도 보고 싶을 테니까 제가 보는 게 미안하면서도, 양보하기는 싫을 만큼 찰떡이가 보고 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찰떡이의 실물을 눈에 담고 싶었다.
서원은 도겸과 손을 잡은 채 기다리다가, 시간에 맞춰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를 따라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찰떡이가 보였다. 도겸이 찍은 사진을 틈만 나면 들여다봤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아이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지만, 의사가 팔에 힘이 빠질 수도 있으니 안지는 말고 눈으로만 보고 오라고 주의한 것이 떠올랐다.
하는 수 없이 서원은 인큐베이터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 찰떡이를 바라봤다. 찰떡이는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다.
“찰떡아.”
“…….”
서원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태명을 불러봤으나, 찰떡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달콤한 잠에 빠져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아기가 잠이 많은 건 당연하고 잘 자는 것도 좋은 거였다. 많이 자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거였고. 그리고 아이의 상태가 남들과 같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어도, 태어난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며 기뻐한 것이 불과 몇 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고 있는, 다른 아이보다 작은 찰떡이를 보니까 언제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냐는 듯 서글퍼졌다. 찰떡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작게 태어나 아파하는 것이 제 탓인 것 같다고 자책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순간 울컥하고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찰떡이 앞에서는 울 생각이 없었는데, 참아야겠다는 생각할 틈도 없이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흐……, 내가, 미안해…….”
눈물로 뿌예진 눈앞으로 지나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임신한 후에 이리저리 도망쳐 다닌 것은 제 나름대로는 찰떡이를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였으나, 결국 그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간 것도 사실이었다.
산부인과에서는 대부분 결과가 좋게 나오긴 했어도 다른 오메가들만큼 꾸준히 병원에 가지도 못했고, 마음고생은 물론이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느라 임신했음에도 도리어 살이 빠진 적도 있었다.
그때 제가 제대로 했더라면, 찰떡이가 날짜를 꽉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열성 오메가가 임신하고 출산한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도, 그러한 아쉬움이 계속 들어서 더없이 슬퍼졌다.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고 비련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남몰래 조용히 울고 있던 것이었으나, 계속 이렇게 찰떡이를 보고 있다가는 저도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주변을 어수선하게 만들기는 싫어서, 서원은 아쉬운 걸음으로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빠져나왔다.
훌쩍거리며 밖으로 나오자, 도겸이 치료실 밖에 있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보며 기다리던 그는 서원이 나온 걸 알아채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걸음에 다가왔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더 보고 오지.”
“아, 아녜요……. 다 봤어요.”
“……울었어?”
휠체어에 앉아 있어 시선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면 울었던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도겸을 너무 간과한 것이었다. 그는 목소리와 분위기만 봐도 서원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기라도 한 듯, 단박에 서원이 울었다는 걸 알아챘다.
도겸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곧바로 허리를 굽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서원을 와락 품에 끌어안았다.
서원은 갑자기 품에 안기게 된 것이었으나, 익숙하고 따듯한 품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분명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눈물을 그칠 생각이었는데, 그의 품에 안기니 감정이 다시금 몰아쳤다.
“흐……. 흐윽…….”
끝내 서원은 넘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샘을 터트렸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울었을 때보다 눈물이 더 굵고 빠르게 뚝뚝 흘러내렸다.
서원이 대성통곡이라도 할 것처럼 끅끅거리며 울자, 도겸은 손바닥으로 서원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도닥였다.
“왜. 뭐가 그렇게 슬퍼서 그래.”
“흐……, 찰떡이가……, 아프게 태어난 게, 으, 저 때문이니까요.”
“아냐, 그게 왜 네 탓이야.”
“제가……, 제대로, 흐으, 관리를, 끕, 못 했으니까요…….”
“찰떡이가 빨리 세상을 보고 싶어서 변덕을 부린 거지, 네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마.”
도겸이 열심히 위로를 해 줬지만, 죄책감을 완전히 덜어내기엔 부족했다.
서원의 기분이 좀처럼 나아질 기색을 보이지 않자, 도겸은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조금 민망함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는 네가 의식을 되찾은 것도, 수술 후 잃을 줄로만 알았던 찰떡이를 보게 된 것도 기적이야. 그러니까…… 울지 마.”
도겸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이 서툴러, 달래는 것을 어색해하면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서원은 방금까지만 해도 제 감정에 매몰되어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도겸의 위로에 마냥 슬프기만 했던 감정이 차츰차츰 가라앉았다.
서원은 평소 타인의 상태가 저보다 더 좋지 않았다고 해서 위로를 받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픈 건 언제나 남보다 자신이 우선시 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도겸이 하는 말은 다르게 와닿았다.
제가 쓰러지고 도겸이 의사에게 찰떡이까지 잃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던 그날. 그가 얼마나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저는 찰떡이가 남들보다 약하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슬픈데, 그는 한순간에 소중한 두 명의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직면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