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36)

<115화>

“조산……이라고요?”

“그래.”

도겸이 확인차 되묻자 그녀가 눈썹을 팔 자로 늘어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산이라니. 이전에 서원이와 함께 산부인과 진료를 봤다가, 워낙 약한 열성 오메가인데다가 자궁이 약하다는 말까지 들은 전적이 있었다. 저와 함께 있으면서 페로몬을 자주 받아 괜찮아졌었는데, 이 주 동안 떨어져 있는다고 급속도로 나빠진 모양이었다.

서원이가 상태가 확 나빠진 것이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도겸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도겸은 없는 힘을 쥐어 짜내 두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머니. 저 가야 해요.”

“안 돼. 네 아버지가 알면…….”

“제가 없어서 그래요. 서원이 안 그래도 몸 안 좋은데 알파 페로몬까지 없으면 정말 큰일 나요. 아이까지 잃는다고요!”

서원의 상태를 아는 이상,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제가 없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 테다.

서원이가 얼마나 아이를 낳고 싶어 했는데.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이기도 했고, 마지막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간절했다는 걸 알기에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적어도 제가 곁으로 가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줘야 했다.

도겸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드르륵 열자, 그녀가 놀란 눈으로 도겸을 바라보며 저지했다.

“안 돼! 또 뛰어내리려고? 안 돼. 저번에도 다리 다쳤잖아. 네가 간다고 달라질 거 없어. 네가 이럴 줄 알았으면 소식 안 전했을 거야.”

이전에 도겸이 몇 번째 창문 탈출을 시도하다가,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다리를 삔 적이 있었다. 그 탓에 발목이 퉁퉁 부어 반깁스를 했었는데, 도겸이 그런 식으로 다친 것을 생전 처음 본 어머니는 기겁을 했었다.

도겸은 서원이를 볼 수만 있다면 몇 번을 넘어지고 다치든 상관없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서원에게 제가 필요한 순간에는 더더욱.

“달라져요. 서원이한테 지금 제 페로몬이 필요해요.”

“그래서 다쳐가면서까지 보러 가겠다고?”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이기도 하고, 아이를 잃으면 영원히 아이를 못 낳게 될지도 모른다고. 꼭 낳고 싶어 했어요. 제가 지금 안 가면 서원이 인생을 망치는 거예요. 제 몸 좀 다치는 건 상관없다고요.”

“도겸아.”

“엄마, 제발……. 부탁이에요.”

“…….”

도겸이 처음으로 먼저 ‘엄마’라고 부르자, 어머니가 입을 달싹이다 꾹 다물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심하게 동요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도겸은 다급하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약속할 수 있다는 듯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결혼 허락해 달라고 안 할게요. 회사 채연이한테 넘기라고도 안 하고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지금은 서원이 만나게 도와주세요.”

“……하아.”

도겸이 간절하게 부탁하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생각 많은 눈으로 도겸을 바라봤다. 제 하나뿐인 아들의 부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근심이 가득한 시선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거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더니 한참 후에야 결론을 지은 듯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말 잘 따르겠다고 하는 것도 필요 없고, 그 아이, 만난다고 하는 거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

“…….”

허락을 안 해 주시려는 걸까. 사실 부탁하는 게 의미가 없긴 했다. 부모님은 저를 이런 식으로 쭉 가둬 두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포기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몰려오는 실망감에 도겸이 시선을 거두려는데, 그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 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아. 같은 오메가니까.”

어머니는 서원이 상태를 보고 허락하는 거라고 강조하더니,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문고리를 돌리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쉽사리 열렸다. 문 바로 앞을 아버지가 고용한 사람이 지키고 있어 나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머니가 무어라 이야기하자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보였다.

지금…… 어머니가 나가는 걸 허락하신 건가? 도겸이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얼떨떨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뒤를 돌아 도겸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옷 갈아입어. 도겸아.”

무려 한 달만의 외출이었다.

* * *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도겸은 딱 한 번, 외출의 기회를 얻었다.

도겸은 멀끔하게 차려입고 서원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대충 잡히는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 동안 아버지가 고용한 놈들을 몇 마주했지만, 어머니가 명령하는 것으로 해결이 됐다.

그렇게 저택을 빠져나와 어머니가 알려 준 병원의 병실로 달려가는데, 복도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서원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도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는 것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도겸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이 여기는 어떻게……. 갇히셨다고 들었는데.”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보러 나왔어요. 서원이는요?”

“지금 수술 시간 기다리면서 병실에 누워 있어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도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묻자, 그녀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행히 아직 수술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겸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곧바로 병실로 들어갔다. 닫혀 있는 병실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자, 1인실에 서원이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서원이의 모습에 곧바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만큼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기도 했고, 근 한 달 만에 보는 서원의 얼굴이 무척이나 아파 보였기 때문이었다.

“…….”

안 그래도 하얀 얼굴에 생기가 돌지 않아 더 아파 보였다. 아픈 서원이를 깨울 수도 없었고 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도 했다.

대신 도겸은 침대 옆에 서서 페로몬을 풀었다. 서원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진 건 스트레스나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동안 제 페로몬을 접하지 못해서라는 이유도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제 페로몬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는데…….

도겸이 그런 생각을 하며 잠든 서원의 몸 위로 양껏 페로몬을 쏟아내는데, 잠들어 있던 서원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눈꺼풀을 올렸다.

공허한 눈동자로 깜빡거리더니 금방 초점을 잡았다. 서원은 도겸이 오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듯 손가락을 움찔, 떨더니 가뭄 온 듯 바싹 마른 입술을 열었다.

“으……, 형……? 여긴, 어떻게…… 풀려난 거예요?”

“어머니 도움받아서 잠깐 나왔어.”

“그렇구나……. 형 괜찮아요?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서원은 곧 죽어 가는 얼굴을 하고서는, 도겸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에 도겸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만나지 못했던 한 달 동안 도겸도 상태가 나빠진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 서원이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지금 환자가 누구인데,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어떻게 된 거야. 수술하기로 했다면서.”

“……형.”

“응, 서원아.”

도겸이 곧바로 대답했다. 만나지 못했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무얼 하고 지냈는지, 많이 아픈 건지, 무슨 말이든 듣고 싶었다.

도겸이 그런 기대를 하며 뒷말을 기다리는데, 서원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저 무서워요.”

“…….”

“병원에서 자꾸 무서운 소리만 하는데……. 찰떡이…… 잃으면 어떡해요?”

서원이 눈물을 머금어 올망졸망한 눈으로 도겸과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도겸은 겁을 먹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서원의 모습을 보고 입술을 꾹 다물자, 서원이 마저 말을 이었다.

“수술, 할 건데……. 찰떡이는 어떻게 될지 모른대요…….”

“…….”

조산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의사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안 좋은 상황이었던 모양이었다.

도겸은 서원이가 아픈 것도, 불안할 상황이라는 걸 알고 찾아온 것이긴 했었다. 그렇지만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이렇게까지나 절벽 끝까지 몰려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저는 일방 각인 때문에 고생하는 와중에도 서원이는 제게 각인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런 생각을 해 가며 저만 괴로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제가 봐온 서원이는 마음이 여리기도 했지만, 어떤 면으로는 누구보다 단단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부닥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순수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찰떡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두려워하는 서원의 모습을 보고 저 또한 함께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

도겸은 평소 환자는 최악의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꽃밭인 소리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두려워하는 서원이를 보고 있자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러한 가치관을 다 지워 버리게 됐다. 상황이 안 좋았으니 한 소리겠지만, 망할 의사 놈들이 서원에게 괜히 겁을 줬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럴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렇게 힘들었을 때도 강인하게 살아남았던 아이잖아.”

도겸도 수술로 서원이나 찰떡이가 혹여나 잘못될까 봐 두려웠으나, 최대한 아닌 척 감정을 누른 채 위로했다. 저까지 두려워하면 서원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마냥 좋은 말을 해 주려고 아무거나 말한 것도 아니었다. 저를 피한다고 서원이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힘들게 살고 있을 때도 찰떡이는 잘 있었다. 제 페로몬이 부족했을 텐데도 태명처럼 서원에게 딱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던 아이였다.

그러니까 이번의 고난 역시. 잘 딛고 넘어갈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괜찮아. 좋은 생각만 해.”

……그래야만 했다.

도겸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듯이 말하자, 서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겸과 두 눈을 맞췄다. 서원의 두 눈동자는 여전히 두려움을 지워내지 못한 듯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 어떤 말을 해 줘야 조금이나마 안심시킬 수 있을까. 도겸이 골똘히 머리를 굴려 보는데, 서원이 난데없이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저 안아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