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응?”
“어…….”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겸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는데 순간 집 나갔던 이성이 퍼뜩 돌아왔다.
그는 진심으로 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가겠다고 한 걸지도 모르는데, 괜히 제가 앞서나간 걸지도 몰랐다. 만일 제가 헛발을 짚은 거면 엄청 무안할 것 같은데…….
게다가 그가 흥분했을 때 많이 흘러나오는 알파 페로몬도 그리 짙지 않았다. 그의 집이라 공기 중에 많이 돌기는 하는데 딱 그 정도뿐인 것 같았다. 제 엉덩이에 닿았던 그의 성기 윤곽은 발기한 것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원래 큰 사람이니까 착각한 걸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감이 훅 떨어졌다. 서원은 말하려던 것을 꾹 눌러 삼키고 미적미적 자리를 비켜 줬다.
“아, 아니에요. 다녀오세요.”
“…….”
서원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도겸은 빤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몸을 일으키질 않았다.
화장실 안 가는 건가. 우물거리며 서 있는데, 도겸이 대뜸 서원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휙 끌려간 서원은 별안간 소파에 한쪽 무릎을 기대고 그를 마주 보고 안긴 자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도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잽싸게 팔로 서원의 허리를 끌어안아 제 품에 완전히 가둬 버렸다. 서원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그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서원을 불렀다.
“서원아. 페로몬 감추는 법. 다시 배워야겠다.”
“……네?”
“야해진 거, 다 들키잖아.”
허리를 끌어안았던 도겸의 손이 아래로 타고 내려가더니, 서원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자극적인 손길에 서원이 헛숨과 탄식을 겨우 삼켜냈다.
“흐…….”
이놈의 페로몬……. 저번에 섬의 좁은 방에 누워 있을 때도 페로몬을 갈무리하지 못해서 야릇한 상상했던 것을 들켰었는데, 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서원은 열성 오메가 체질이다 보니 원체 페로몬이 희미했다. 외모와 체구가 오메가처럼 생겨서 그렇지, 유심히 맡아 보지 않으면 베타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의 야트막한 페로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서원은 평소에 굳이 페로몬을 숨겨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야릇한 생각을 한 적이 없기도 했지만, 아무튼 굳이 숨기지 않아도 주변 사람이 제 생각을 알아챌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도겸의 앞에서는 두 번이나 들켰다. 아무래도 그는 제게 각인을 했다 보니 페로몬의 미세한 변화가 기민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각인한 사람에게는 모든 감각이 곤두세워질 정도로 작은 변화에도 예민해지니까.
야한 생각을 하다 들키다니. 부끄러워서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데, 현실은 그에게 안겨서 엉덩이를 꽉 쥐어 잡힌 상태였다. 이미 잡혀 버려 어디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서원은 우물거리다 변명거리를 내놓았다.
“여, 영화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게 그렇게 야했어? 저거 15세 관람가인데.”
도겸이 피식 웃으며 귀엽다는 듯 말했다. 고작 15세 관람가 영화를 봐 놓고서는 야한 페로몬을 질질 흘릴 정도로 흥분한 거냐고 놀리는 것 같은 말투였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왠지 억울해졌다. 영화 장면에 의식한 건 맞지만, 생각에 기름에 불을 저지른 건 다른 이유였다. 서원은 놀림 받는 것을 참지 못하고 소심하게 반박했다.
“그건……! 혀, 형도 그랬잖아요…….”
“응?”
“아까, 형 거…… 딱딱해진 거 닿았어요……. 그래서 그런 건데…….”
영화가 선정적이기보다 형 때문이라고 이유를 댄 거였는데, 막상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의도치 않게 성희롱한 느낌이었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벗은 몸을 머릿속에 그리질 않나, 성희롱하질 않나……. 아무리 연인이라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아무래도 괜한 말을 한 것 같다. 서원이 난처함에 고개를 숙인 채로 아랫입술을 꽉 말아 물 때였다. 도겸이 엉덩이를 조물거리던 손을 치우고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살짝 벌렸다.
“나 때문에 흥분했다고?”
“아, 아니에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그럼 내가 책임져야겠네.”
“……네?”
책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서원이 죄인처럼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도겸은 대뜸 서원의 몸을 돌리게 하더니 자신의 다리 사이에 앉게 했다.
그의 이끎에 따라 서원은 영문도 모른 채 영화 볼 때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앉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원은 갑자기 소파에는 왜 앉히나 싶었다.
그런데 도겸이 커다란 손으로 제 부푼 사타구니를 옷 위로 문지르기 시작하면서, ‘책임’의 의미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채고 말았다. 흥분한 걸 제가 해결해 주겠다는 의미였던 것이었다.
“흐……. 손 떼요.”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흐른 거지? 서원은 그의 손길을 받는 게 민망해 허우적거리며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도겸은 가볍게 저지하고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는 한술 더 떠, 서원의 바지 버클을 풀고 속옷 아래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큼직하고 뜨거운 손에 반쯤 발기한 성기가 잡혔다. 끌어안거나 엉덩이를 조물거리던 것과는 다른, 직접적인 감각에 찌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흐윽……!”
고삐를 잡힌 동물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서원이 거친 숨을 들이마시는데, 도겸이 귀두를 엄지로 누르며 섬세하게 만져 댔다. 야릇한 손길에 절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영화 볼 때처럼 편하게 그의 몸에 기대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데, 몸에 힘까지 들어가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성기를 조물거리다 그것을 눈치챈 도겸은, 쓰지 않는 손으로 서원의 몸을 바싹 끌어당기며 제대로 앉도록 자세를 고쳐 줬다.
“긴장 풀고 나한테 기대.”
“흐, 만지지를 않으셔야 힘을 풀죠…….”
“왜, 내가 자지 만져 주는 거 싫어?”
도겸이 은근하게 물으며 성기를 쥔 손을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귀두를 섬세하게 만질 때와는 다르게 직격탄처럼 바로 쏟아져 내리는 감각에 서원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뒤틀었다.
“으응, 싫은 게 아니라…….”
“그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도 사귀는 사이에 제 것을 만져 주는데 싫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 제가 해 주려고 했단 말이에요…….”
서원은 아까까지만 해도 제가 도겸의 흥분을 해결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붙잡은 거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버리고 말았다. 흥분을 달래 주는 건 제가 아니라 그가 되어 버렸다. 15세 영화를 보고 흥분한 사람 취급을 받을 때부터 억울했는데 이것도 억울했다.
서원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항의하자, 도겸이 성기를 놀리던 손을 멈췄다. 잠시간 돌덩이처럼 굳어 있던 도겸은 제가 혹여나 말뜻을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싶은지, 침을 꼴깍이곤 조심스레 물었다.
“……네가 대딸 해 주려고 그랬다고?”
“혀, 형 거가 닿아서……. 화장실 간다기에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잡았던 건데……. 아닌 것 같아서……. 아니, 형이 먼저 그러니까…….”
서원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확 붉히며 횡설수설 대답했다. 그가 흥분한 거면 도와주려다가, 진짜로 화장실을 가려던 걸 수도 있겠다 싶어 물러난 사이에 선수를 뺏기고 말았다.
정작 저는 영화 속 야릇한 장면에 멋쩍기만 했지, 흥분한 것도 아니었고 한 발 빼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도겸의 성기가 발기한 것을 알아채고 아주 조금 야한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페로몬이 좀 흘러나갔어도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거였는데……, 그가 만지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거였다.
그나저나 항의하긴 하는데, 그의 것을 직접 풀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밝히는 게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충동적으로 대꾸하다가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민망해서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들릴 듯 말 듯 작았던 목소리 크기가 거의 소곤소곤 말하는 것처럼 작아지고 말았다. 스스로에게도 들릴까 말까 싶을 정도로 목소리가 줄어들었건만, 도겸은 그걸 또 들었는지 기어코 확인하듯 물었다.
“내 자지 만지고 싶어?”
“마, 만지고 싶다뇨! 그런 거 아닌데…….”
“응, 그랬어?”
“아니라니까…….”
도겸이 묘하게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가 ‘그랬어?’하고 묻는 거야……. 하나도 알아들은 눈치가 아니건만…….
말이 통하지 않은 것 같아 입술을 삐쭉거리는데, 도겸이 갑자기 하반신을 파고들었던 손을 쑥 빼냈다. 감질나게 하다 말아서 그런지, 묘하게 허전하고 아쉬웠다. 절로 탄식이 나왔지만, 손을 떼라고 했던 건 저였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엉덩이를 달싹거리며 도겸에게 어정쩡하게 기대고 있던 몸의 거리를 벌리는데, 도겸이 멀어지는 서원을 잡더니 대뜸 소파에 눕혔다.
상황을 파악할 새 없이 푹신한 소파에 눕혀졌다. 시야가 천장으로 돌아가는데, 도겸이 재빠르게 제 속옷과 바지를 동시에 벗겨냈다. 후두둑 소리와 함께 허물을 벗겨낸 것처럼 옷이 볼품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겸은 서원의 음부에 제 하반신을 바싹 가져다 대더니, 바지 버클을 풀어헤쳤다. 그가 서원의 무릎을 단단히 붙들어 바싹 끌어안자, 자연스레 제 음부에 속옷을 입은 도겸의 것이 닿았다.
“흣…….”
그의 것이 맨살째로 닿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의 것이 구멍에 닿자 아래를 파고드는 감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욕망에 충실한 몸은 당시 제 몸에 쏟아지던 쾌감을 떠올리며 뒷구멍을 애액으로 빠끔거리게 됐다. 위치상 그의 눈에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아래로 느껴졌을까 봐 수치심이 들었다.
서원이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허벅지에 힘줘 봐.”
허벅지……? 뜬금없이 왜 그런 거지?
묻고 싶었지만, 열기를 담은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서원은 호랑이를 앞에 둔 토끼처럼 바싹 겁나서는, 저도 모르게 그의 말을 따랐다.
“이, 이렇게요……?”
“응. 그러고 있어.”
어정쩡하게 허벅지에 힘을 줘서 바싹 붙이는데, 도겸이 잘했다며 칭찬하고는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을 반쯤 끌어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몽둥이처럼 단단하게 발기한 도겸의 성기가 구렁이처럼 퉁 튀어나왔다. 어떻게 저런 걸 달고 다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흉흉한 크기에 굵직한 핏줄까지 선 성기였으나 올곧게 뻗은, 그답다는 생각이 드는 우람한 것이었다.
이제 삽입을 하려는 걸까? 침을 꼴깍이는데, 도겸의 성기 끝이 닿은 곳은 구멍이 아닌 사타구니였다.
‘왜 거기에……?’
서원이 의아함 반 두려운 반의 눈으로 도겸을 지켜봤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허벅지에 비비적거리더니 사타구니 틈새로 쑤욱 밀어 넣었다.
허벅지 안쪽, 가장 여린 살을 스치며 사이로 그의 것이 불쑥 들어왔다. 허벅지 사이는 물론이고 회음부와 음낭, 성기 기둥을 스쳤다.
“흐읏……!”
생각지도 못한 마찰에 서원이 무방비하게 신음을 흘렸다.
서로의 성기가 비벼지는 것은 손으로 만질 때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미끄덩거리며 비벼지는 것이 오싹해서 서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전신이 바르르 떨리며 손끝, 발끝이 곱았다. 아랫배가 팽팽하게 당겼다.
“하……,”
의도치 않게 서원이로 허벅지로 그의 것을 단단하게 조이자, 도겸에게서 야수가 그르렁대는 것 같은 만족스러운 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