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136)

<86화>

서원이 손으로 그의 허리를 붙잡자, 도겸의 질척한 혀가 서원의 안으로 뜨겁게 밀려 들어왔다.

제 것인 것처럼 멋대로 공간을 침투해 혀 아래를 문질러 오는 그에, 서원이 움칠 몸을 떨었다. 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기분 좋은 페로몬이 넘실넘실 넘어와서 정신이 조금씩 혼몽해졌다.

“으응…….”

주변을 감도는 공기마저 자극적이었다. 서원은 맞물린 입술 사이로 여린 신음을 흘렸다. 힘이 빠지다 못해 이제는 페로몬으로 뇌가 절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몸이 녹진녹진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의 허리를 잡은 손에 바들바들 힘을 주고 매달리는 게 전부였다.

숨이 모자라 얼굴이 홍당무처럼 익어 갈 때쯤이 되어서야 뒤늦게 도겸이 입술을 떼어냈다. 그렇게나 길게 입맞춤을 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아쉬운 듯 서원의 얼굴 이곳저곳에 쪽쪽 입술을 맞췄다.

뽀뽀 세례에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인데도 도겸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서원이 몽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도겸이 뿌드득 이를 갈더니 서원의 오금과 허리를 받쳐 불쑥 안아 들었다.

“헉……!”

난데없이 몸이 덜렁 들렸다. 집 나갔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서원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언성을 높였다.

“뭐, 뭐하는 거예요?!”

“…….”

서원이 화들짝 놀라 물었으나, 도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서원을 내려놓은 곳은 푹신한 침대 위였다.

조심스럽게 매트리스 위에 내려진 서원이 여전히 눈을 크게 뜨고 도겸을 바라봤다. 떨리는 눈으로 도겸을 올려다보는데, 그가 뜨거운 시선으로 서원을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짜증스럽게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아…….”

“……?”

그는 뭔가를 깜빡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작게 탄식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뭐지? 저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기길래 혹여나 그런 걸…… 하려는 건 아닌지 긴장했었다. 최초로 마음을 확인한 순간이니 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눕히고 나서 하는 그의 행동을 보니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서원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침대에 앉아 물었다.

“뭐한 거예요……. 지금?”

“……급한가 싶어서.”

“급하다고요?”

“사귀자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러면……, 색마 같잖아.”

“…….”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만……. 마음이 이어졌다는 환희에 바로 몸을 겹치려다가, 순간 성욕의 노예가 된 것 같아 자제했다는 말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서원으로서는 조금 황당했다. 애초에 몸부터 이어진 관계였기 때문에 그런 건 신경 쓰고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입맞춤을 하면서 몸이 한껏 달아오른 참이었다. 점막을 통해 넘실넘실 들어온 그의 페로몬에 아래는 벌써 진탕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몸이 덜렁 들려 매트리스에 눕혀졌을 땐 놀란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게 싫어서라기보다는 긴장돼서 그런 거였는데…….

애타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성격상 그런 걸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당돌하지가 못했다. 안 그래도 소극적인데, 성관계에서는 더 수동적이기만 해서 그런 말이 도무지 나오지를 않았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마음이 서로를 향한 기적적인 순간이었다.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아쉽고 그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싶었다.

돌아가려고 하는 도겸의 옷자락을 붙잡자, 그가 뒤를 돌아봤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의 태도에 서원은 한참을 미적거리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됐으니까……. 해요.”

“……하라고?”

“…….”

제대로 들었으면서 꼭 저렇게 대답을 들어야겠나. 기어가듯 말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서 숨고 싶을 지경이건만…….

서원은 차마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대신, 고개를 푹 숙인 채 끄덕였다. 얼굴에 이어 귓바퀴까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붙잡았는데도 도겸에게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그가 먼저 입맞춤을 했고 침대 위로 옮긴 건데, 이래서야 제가 너무 밝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익어 가는 벼처럼 점점 더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뒤늦게 도겸이 서원의 어깨를 누르며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가 한쪽 무릎을 매트리스 위로 올리자, 끼긱 하고 매트리스 살짝 눌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는 서원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은근하게 속삭였다.

“어머니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목소리 참을 수 있겠어?”

“……아.”

서원이 작게 탄식했다. 지금은 엄마가 장을 보러 나가긴 했지만, 금방 돌아오실 거였다.

장을 보고 오시면 금방 돌아오실지도 모르니,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지 않도록 신음을 죽일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조심스럽게 묻기에 섹스하지 않는 쪽으로 회유하는 줄 알았는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목소리라……. 평소 신음을 크게 내지르는 편도 아니고 어느 정도 방음이 되긴 해서, 장을 보고 돌아온 엄마가 갑자기 문만 열지 않는다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조심해야 하긴 했다. 서원은 조금 고민하다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번만 하면요.”

“그건 자신 없는데.”

도겸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농염하고 색정적이라,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서원은 멍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자신 없다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한 번만 할 자신이 없다고? 그와 몸을 겹칠 때 한 번으로 끝내는 걸 본 적이 없긴 한데……. 서원은 조금 아연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어, 얼마나 많이 하려고요?”

“서원아.”

“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름까지 부르나. 서원이 한껏 긴장한 채로 눈을 깜빡이자 도겸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날 이후로 세 달이나 지났어. 그런데 한 번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으나, 서원은 직감적으로 어떤 날을 지칭하는지 알아챘다. 그와 미국 출장을 나갔다가, 히트사이클과 러트를 함께 겪은 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원이야, 페로몬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성욕이 아주 왕성한 수준은 아니라 세 달 동안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도겸은 아니었다.

그는 우성 알파였고, 제게 일방 각인한 이후로 다른 오메가는 안지도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욕구불만이 될 정도로 쌓이고 쌓였을 것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할 때도 제 안에 서너 번은 사정하고 나서야 만족하던 그였다. 사정 횟수는 온전히 그의 기준이라, 저는 기진맥진해져서 늘어질 때가 많았고…….

그때도 그랬는데 석 달간 쌓인 페로몬과 성욕을 받을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서원은 제가 그를 붙잡아 놓고선 조금 두려워져, 시선을 은근슬쩍 피했다.

“그, 그럼 다음에…… 하, 할까요……?”

“…….”

“오늘 그렇게 하기는 무리일 것 같은데…….”

상황도 그렇고 마음의 준비도 그렇고, 아무래도 지금 당장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했다. 도망가는 건 아닌데, 왠지 꼭 도망치는 듯한 분위기가 된 것 같았다.

서원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리자, 도겸은 가만히 내려다보다 서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도겸은 그러면서 서원의 몸 위로 제 몸을 겹쳤다. 체중 차이를 알아서 그런지, 아니면 제가 임신한 상태인 걸 고려한 건지 아주 살포시, 무겁거나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닐 정도로 몸을 밀착시켰다.

가, 갑자기 왜 이래? 서원은 궁지에 몰린 느낌이라 당황스러우면서도, 그의 입술과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닿는 것이 간지러웠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자 도겸이 자그마하게 말했다.

“최대한 참아 볼 테니까…… 안에 들어가도 돼?”

“…….”

“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무슨 그런 말을 귓가에 대고 말해…….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 정말 선수였다. 예전부터 저를 좋아해서 다른 오메가는 만나 보지도 않았다면서 어디서 이런 걸 배워 온 건지…….

안 그래도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귓가에 대고 저런 말까지 해 대니 오싹한 기운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쭉 타고 올라왔다.

서원은 아찔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뭐든 좋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지다가도, 엄마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장을 삼십 분 정도 보고 오려나? 그 안에 끝낼 수 있을는지…….

머리로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걸 아는데, 애원하듯 하는 말에 차마 입 밖으로 거절이 나오질 않았다. 서원이 애꿎은 입술만 말아 물며 말을 고르는데, 도겸이 애교 부리듯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응? 서원아.”

“아, 알겠으니까……. 조, 좀 그만해요…….”

결국 백기를 든 것은 서원이었다. 도겸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이길 재간이 없었다.

근데 좀 억울하긴 하네……. 보통 더 사랑하는 사람이 져 주는 거라던데…….

그는 제게 일방 각인까지 한 상태인데 어째서 그에게 계속 지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단호히 거절할 때도 있기야 했지만, 그가 저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드니 그가 하고 싶다고 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도련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그 생각에 조금 침울해지려는데, 도겸이 비비적거리던 머리를 떼더니 시선을 맞추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막아 줄 테니까, 입 벌려 봐.”

“…….”

서원이 머뭇거리다 입술을 벌리자, 도겸은 다시금 입술을 맞춰 왔다.

너무 그에게 휘말리는 게 아닌지 조금 서운해지려고 했었는데, 맞닿은 입술 너머로 그의 포근한 마음이 부드럽게 굽이쳐 들어왔다.

넘어오는 그의 달콤한 페로몬이 저를 좋아한다고 외치는 것만 같아서, 서원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를 깊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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