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잠시 생각하며 살짝 부른 배를 쓸어내리고 있는데, 벌써 막걸리 몇 잔을 비워낸 할머니가 이쪽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배가 아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배를 만져? 사람 놀라게!”
할머니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며 미간을 좁혔다. 별일 없으면 그런 짓 좀 하지 말라는 눈짓은 덤이었다.
놀라게 해 드리려는 건 아니었는데. 서원은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섬에 산부인과가 없잖아요. 그래서 좀…… 괜찮을까 하는 생각 좀 했어요.”
섬마을은 의료기관의 사각지대였다. 비단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병원 자체가 없어서 치료를 받으려면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가야 했다.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감기처럼 사소한 병은 알아서 낫겠거니 그냥 둔다고 했고 심각하다 싶으면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가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가끔 육지에서 의사가 오기도 한다는데, 아주 가끔이라 정작 아플 때는 도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출산하는 것이야 예전에는 집에서 아이를 낳고 탯줄을 끊어 주고 그랬다니 어떻게든 방법이 있는데……. 낳는 것 외에도 걱정할 거리가 많았다. 이제는 안정기가 됐어도, 아이는 아주 예민해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서원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대답하자, 할머니가 잠시 서원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데……. 열성 오메가라고 했던가?”
“네.”
“흠, 그러면 걱정이 될 만도 하지. 가끔 의사 양반이 와서 한 번씩 진료 봐 주긴 하는데, 그래도 섬 밖에 있는 병원에 가 보는 게 낫지 않겠어? 오는 양반이 실력이 없진 않은데, 부인과를 전문으로 보진 않으니까.”
할머니가 진지하게 조언했다. 가끔 봉사 오듯 하는 의사의 실력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전문으로 보는 게 다르니 이왕이면 나가서 잘 보는 사람에게 진찰을 받는 게 어떠냐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긴 했다. 그리고 제 욕심이지만, 임신 오메가 수첩에 태아 사진을 한 번밖에 찍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산부인과도 다니던 곳으로 가야 좋을 텐데……. 그렇지만 아이를 위해 산부인과를 갔다가 도겸에게 붙잡혀 아이를 지우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니 차마 거기는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으니까, 좀 이상하다 싶으면 가야겠어요.”
“그래. 저번에 보니까 멀미 심하게 하더만. 그것도 몸 상해.”
“…….”
음……. 잡히는 것 외에도 다시 배를 타서, 그 지옥 같았던 시간을 다시 경험하는 것도 두렵긴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를 타기 전에 멀미약을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사 올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와 작게 탄식하는데, 문득 궁금한 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때 할머니는 왜 내려가셨던 거예요?”
“나? 나는 뭐…….”
망설임 없이 아무 말이나 다 털어놓던 할머니가 갑자기 딴청을 부렸다.
평소답지 않은 태도였다. 뭔가 말하기 힘든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저도 왜 갑자기 섬마을로 떠났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으니 곤란한 걸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서원이 더 묻지 않고 전을 젓가락으로 잘라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뒤늦게 말을 이었다.
“육지에 딸이 둘 있어.”
“와. 오랜만에 보셨나 봐요. 좋았겠어요.”
미적거리기에 대답하기 껄끄러운 걸 물었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할머니에게서 나온 대답은 별것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내용이었다.
제가 괜한 걸 물어서 분위기가 우중충해지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그런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서원이 환하게 대답하는데, 할머니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좋았지. 한 명밖에 못 봤지만.”
“아……. 따님이 바쁘셨나 보네요.”
“죽었어. 예전에.”
“네?”
예상하지도 못했던 대답에, 서원은 들고 있던 전을 바닥에 떨어트릴 뻔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둘 중 한 명밖에 못 봤다고 하면 당연히 저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역시 제가 처음부터 괜한 걸 물어봤던 것 같다.
위로를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심하게 당황하는 바람에 차마 문장이 만들어지질 않았다. 애꿎은 입만 뻐끔거리며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는데, 할머니가 빈 잔에 막걸리를 가득 채우며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어디서 덜컥 임신을 해 왔어. 웬 이상한 놈을 데려와서 갑자기 결혼하겠대. 임신했으니까 책임지겠다고.”
“…….”
두서없이 시작했지만, 죽은 딸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가 제게 가족에 관한 힘든 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서원은 아빠가 없었고 엄마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공감할 순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특별한 위로를 해 주지 못했었는데, 그 친구는 맑게 웃으며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가슴에 억누르고만 있던 때보다 털어놓으니 개운하다고.
갑자기 그때가 떠오르며, 왠지 들어주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원이 말없이 입속에 있던 것을 삼키자, 할머니가 헛웃음을 지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어이가 없었지. 그런 놈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믿는 것도 바보 같았고. 난 당연히 결혼을 반대했고, 당장 들어오라고 하고 못 만나게 했지.”
“…….”
“애 키우는 거 힘든 거 아니까. 그런 놈의 자식 키울 필요도 없다고 지우게 하려고 했는데…….”
할머니는 이제는 아프지도 않다는 듯 덤덤하게 이전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목구멍에 뭔가가 걸린 것처럼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따라붙을 뒷내용이 무서웠다. 서원이 불안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자, 할머니가 깊게 숨을 내뱉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혼자서라도 애 키우겠다고 나갔다가, 애 낳다가 죽었어.”
“…….”
“돈 한 푼 챙기지도 않고 나갔으니 제대로 된 병원 진료를 봤을 리도 없고, 애 아빠라는 자식은 책임진다더니 나 몰라라 하고.……. 너처럼 열성 오메가여서 혼자 버티다가. 그렇게 됐어.”
열성 오메가는 아이를 안전히 낳기 힘들었다. 아이가 어떻게 되거나 열성 오메가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이를 낳기 힘든 체질인 것 외에도 워낙 몸이 허약하고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열성 오메가 체질을 꺼리고, 발현했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딸 한 명을 못 보게 된 거구나…….
비참한 이야기에 서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히 저에겐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저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기에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다가 막걸리를 한잔 쭉 들이켜곤 서원을 바라봤다.
“너 같은 애 본 적 있다고 했지.”
“……네.”
배에서 내려 이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뱃멀미에 구역질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 말에 위로를 받아 처음 보는 사람을 따라온 거기도 해서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딸 생각나서 그런 거야.”
“…….”
“그날, 봉안당에 다녀왔어. 섬으로 돌아올 때 네가 보였어. 처음엔 배가 안 나와서 임신한 지 몰랐는데, 뱃멀미하는 와중에도 배를 소중히 감싸고 있더라고.”
배를 타고 섬으로 오던 때, 멀미가 너무 심해서 헛구역질을 할 때마다 배가 아팠다.
얼마나 심하게 멀미를 했던지, 멀미하다가 애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육지에서 도망을 다녔을 거라고 얼마나 속으로 후회를 몇 번이나 했던지.
“우리 딸 모습이랑 겹쳐 보였는데, 열성 오메가인 것까지 닮았을 줄이야.”
“…….”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에 서원이 아랫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저번에 지냈던 시골 마을에 지내면서 시골이라고, 나이가 많다고 다 착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다른 곳과 다를 바 없고 다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고 만난 할머니는 아무것도 없는 제게 너무나도 잘해 줬고, 마을 주민들도 저를 이방인이 아니라 한 가족처럼 받아들여 줬었다.
이 마을 분위기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섬마을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랬을 리가 없었다. 다들 할머니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저를 받아들여 준 것이었다.
이유 없는 호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면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서원이 뭐라고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고 입술을 우물거리는데 할머니가 후회가 가득 묻어나는 숨을 내뱉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를 지키려고 육지로 못 가고 여기로 온 거지? 태명이 찰떡이라고 했나?”
“……네.”
“우리 딸처럼 아무도 몰라주는 곳에서 일이라도 당할까 봐 돌봐주긴 하는데. 웬만하면 육지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병원은 그쪽에 많으니까. 그리고…….”
갈 곳 없는 저를 받아주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서원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할머니가 뭔가를 더 말하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잠시간 아무 말 하지 않는 사이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가 둘 사이를 가득 채웠다. 실을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에 서원은 일 초라도 할머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항상 아이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해. 네가 망가지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
“…….”
그러고 보면 엄마도, 섬마을 할머니도 제가 품은 아이보다도 저를 더 신경 썼다.
서원 역시 같은 생각이긴 했지만, 다들 저만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찰떡이만 신경 쓸 것처럼 보이는 걸까? 아이를 지키려고 이런 곳까지 내려왔다고 하니 그래 보일 수도 있겠다.
서원이 새삼스럽게 제 행동들을 돌아보는데, 할머니가 막걸리 병을 기울였다. 다 먹었는지 병을 흔들어도 나오는 게 없었다. 할머니는 그것이 썩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다, 부쳐 온 전이 동났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이만 정리할까? 얘기하다 보니까 너무 많이 마셔 버렸네.”
“아, 네!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
“혼자 치울 수 있겠어?”
“설거지만 하면 되는 건데요, 뭘. 먼저 들어가서 쉬셔요.”
“그럼 부탁 좀 할게?”
서원이 살갑게 이야기하자, 할머니는 조금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등허리를 통통 두드리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와서 관절이 쑤신다는 사담은 덤이었다.
툇마루에 혼자 남은 서원은 빈 그릇과 컵을 부엌으로 들고 가 설거지했다. 금방 정리를 끝낸 서원은 다시 툇마루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비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섬마을에 온 뒤로 종종 엄마 생각이 날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할머니와 그런 대화를 나눠서 그런가. 엄마가 더 보고 싶었다.
섬마을에서 가장 힘든 점은 가족을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에 메시지만 달랑 남겨 놓고 왔기 때문에 더 보고 싶기도 했다.
전화 정도는 해도 됐지만, 꾹 참았다. 지금의 생활이 버틸 수 없을 만큼 고되고 쓰러질 것 같지는 않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엉엉 울면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서원은 심장이 서릴 정도로 사무치는 외로움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