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36)

<58화>

‘너도 저 녀석처럼 비정상이야?’ 하는, 날카로운 의도가 실린 물음이었다. 그에 도겸은 미간을 왈칵 좁혔다.

“갑자기 왜 그런 쪽으로 흘러?”

“아니야?”

“아니야.”

도겸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는데, 순간 머릿속에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윤서원이 떠올랐다.

유학을 온 뒤, 지금처럼 종종 윤서원의 앳된 얼굴과 좁은 방에서 함께 지냈던 일과 입맞춤을 했던 일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이 충동적인 입맞춤과 함께여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제가 윤서원을 좋아할 리도 없는데, 그날 입맞춤을 한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정말 제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인가 하고.

그러나 알고 보니 그날 서원이 열성 오메가로 발현했고, 페로몬에 이끌려 입맞춤한 거였다는 결론이 났다. 그렇게 사고로 덮으려 했지만, 그날의 일은 계속해서 꿈에 나타나고 공부하다가도 나타나서 도겸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역시 인정하기 싫었다. 가정부 아들이자 열성 오메가인 녀석을 제가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서 녀석을 최대한 보지 않고자 예정에도 없던 유학을 결정했다. 윤서원을 저택에서 쫓아내도 됐지만, 어린 녀석이라 차마 그런 냉정한 선택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행히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지 미국에 오고 나니 윤서원을 떠올리는 빈도가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보지 않고도 멀쩡히 잘 살 수 있었고.

……그런데 왜 지금 그때의 생각이 나는 거지? 하필이면 왜 지금.

지금 떠오르니까 꼭, 내가 윤서원을 좋아하는 것 같잖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도겸이 미간을 좁히는데, 제이가 도겸을 바라보다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고 어깨를 도닥였다.

“좋아한다고 해도 티는 내지 마. 그런 게 약점이 되는 거야.”

“씨발, 안 좋아한다고. 귓구멍 막혔어?”

“어이구,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욕까지 하고 그래. 의심스럽게?”

제이는 약점 잡은 사람처럼 얄밉게 웃어 댔다. 기분 같아선 확 패 버리고 싶었지만, 화내면 또 화낸다고 더 몰아세울 게 훤히 보여서 화를 눌러 삼켰다.

그렇게 제이와 대화를 나누고 몇 주 뒤, 열성 오메가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제가 다니는 대학교는 고위 자제나 도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학비가 비쌌다. 그러니 둘 다 형편이 안 좋지도 않을 테고 한발 더 나아가 후계자 교육을 받는, 아무나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을 거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더 힐난 받고 구석까지 내몰리는 것은 열성 오메가였다. 그는 자퇴가 아닌 자살을 선택했다.

도겸은 그와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고민하고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부고 소식을 들은 때도 그랬는데, 이후에 그와 사귀기로 했다던 우성 알파가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 졸업까지 하는 걸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열성과 우성은 끌리지 않는 존재라며. 두 녀석 다 똑같은 비정상이라고 했으면서 왜 열성 오메가만 그렇게 힘들어해야 했는지.

만약 제가 유학을 떠나기 전, 윤서원을 좋아하는 거라고 섣불리 결론을 내렸더라면 그도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만일 그랬더라면, 윤서원은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라 더 크게 힐난 받고 괴롭힘당했을 것 같았다. 기댈 사람이라고는 어머니밖에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섣불리 마음을 단정 짓지 않고 유학을 결정한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유학 생활을 마친 스물다섯 살 때까지 윤서원과의 기억은 이따금 떠올랐다. 이쯤 되면 제가 정말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제가 비정상일 리 없거니와, 어렸을 적 함께 추억을 공유한 윤서원 생각을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끝끝내 부정했다.

그것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 * *

“도겸아!”

윤서원에게 고백을 받은 며칠 후.

도겸이 병원의 간이 침대에 누워 쉬는데,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병원에 온 건데 어떻게 알았는지……. 배 비서가 알려 준 걸까? 배 비서한테 따질 생각을 하는데, 그는 잠시 자리를 비운 채였다. 타이밍도 좋았다.

굳이 들쑤시지 않아도 피곤하고 머리 아픈데, 어머니가 와서 더 그러게 생겼다. 도겸이 상체를 일으키며 짜증을 삼키는데, 그녀가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으며 걱정 어린 시선으로 도겸을 내려다봤다.

“우리 아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병원은 왜?”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데 쓰러졌다고?”

“……쓰러진 게 아니라 제 발로 걸어왔어요. 링거 좀 맞으러 온 거예요. 컨디션 안 좋으면 다들 링거 맞고 그러잖아요.”

도겸이 보란 듯이 링거를 보여 주며 말했다. 위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노란 액체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길 가다가 쓰러진 줄 알겠지만, 도겸은 자발적으로 병원에 왔다. 이유는 각인통 때문이었다.

처방해 준 약을 먹었는데도 각인통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점점 상황이 악화됐다. 통증도, 불면도 심해져서 최근 며칠간 잔 걸 합해 봐야 한두 시간일 듯했다.

일방 각인이 워낙 흔치 않은 사례이고 각인통 약도 통하지 않아 할 수 있는 처방이 고작 비타민 주사밖에 없었다. 치료 방법이 없다는 건 심각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단걸음에 달려올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도겸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하자, 미애가 그녀가 우물거렸다.

“그래도 넌 워낙 튼튼하니까……. 그런데 진짜 피곤해서 링거 맞는 거 맞아? 다른 문제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검사받아 봐야 하는 거 아닐까?”

도겸이 둘러대자 어머니는 조금 안심한 듯 표정을 풀면서도, 완전히 마음을 편히 놓지는 못했다. 잔병치레도 하지 않는, 게다가 체력도 월등히 뛰어나다는 우성 알파였으니 다른 곳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유난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일방 각인 때문에 각인통을 앓고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아채면 각인한 오메가가 누구냐고 난리 칠 게 훤히 보여서 숨겨야 할 듯싶었다. 도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돌렸다.

“심각한 일이었으면 제가 먼저 연락했겠죠. 요즘 일이 좀 많아서 그래요. 어머니 식사하셨어요?”

“응? 아니?”

“그럼 근처에서 식사라도 할까요.”

“어머, 정말?”

간만의 식사 제안에 미애가 뺨을 발긋하게 물들이며 화색을 보였다.

방금까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구체적인 검사를 더 받아 봐야 하는 건 아닌지 대화하고 있던 건 새까맣게 잊은 얼굴이었다. 냉정하기만 한 아들이 먼저 식사를 제안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거만 다 맞고 가요. 비서한테 근처에 괜찮은 식당 잡아 놓으라고 할게요.”

“좋아, 좋아. 이게 얼마만의 데이트니?”

도겸이 다정다감하게 대답하자, 미애가 흥얼흥얼 미소지으며 가방에서 거울을 들었다.

메이크업을 새로 고치는 모습을 보며 도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의 일은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병원에 잘 오지도 못하겠다. 다음엔 집에서 링거를 맞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도겸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 * *

링거를 맞으니 상태가 좀 괜찮았다. 머리를 꽉 죄는 듯한 통증은 여전했지만 피곤함은 덜했다.

도겸과 미애는 배 비서가 미리 잡아 둔 식당으로 향했다. 그가 예약해 둔 곳은 고급 일식집이었다. 급하게 잡은 점심 약속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독채도 있는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독채에 들어간 둘은 음식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나한 한상차림이 나왔다. 그녀는 나온 초밥 한 피스를 먹더니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배 비서가 센스가 좋다니까. 그 짧은 사이에 어떻게 이런 식당을 잡았대.”

“그러니까 곁에 두죠.”

“하긴, 최고가 아니면 우리 아들 곁에 있을 수 없지.”

미애는 배 비서의 능력이 좋은 것 또한 제 아들이 대단하기 때문이라며 추켜세웠다.

도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젓가락이 그릇에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만 이어지고 있을 때, 미애가 물을 한 번 꼴깍이더니 입을 열었다.

“맞다, 도겸아. 저번에 엄마가 했던 말 기억나? H 백화점 외동딸 말이야.”

“그게 누군데요?”

“왜, 저번에 네가 바쁘다고 못 만났던 오메가 있잖아. 이번에 새로 식사하는 자리 만들었으니까 한 번 가 봐.”

도겸은 별생각 없이 물었다가, 그녀의 대답에 작게 숨을 내뱉었다. 씹고 있던 부드러운 밥 알갱이가 순식간에 돌덩이로 변한 것처럼 까끌까끌해졌다.

입맛이 뚝 떨어지는 느낌에 도겸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안 간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선 자리 같은 거 필요 없다고요.”

“그런 자리 아니야. 그냥 식사만 하는 자리라니까?”

“취소하세요.”

도겸이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미애가 황당하다는 듯 두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그걸 어떻게 잡은 자리인데 취소해?”

“못해요? 그럼 제가 취소하죠.”

“도겸아!”

도겸이 지금 당장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꺼내 들자, 미애가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갑작스러운 큰소리에도 도겸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겁을 먹거나 놀라기는커녕 익숙하다는 듯 그녀의 두 눈을 마주하자,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한탄하듯 물었다.

“이런 자리가 왜 싫은 거야. 작위적인 거? 나랑 네 아빠도 그렇게 만났고 행복하게 살잖아.”

“…….”

그녀의 말에 도겸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켰다.

아까는 선 자리가 아니라고 둘러대더니만, 결국은 맞다고 인정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끝까지 아닌 척을 하던지.

그리고 뭐? 행복? 지나가던 개가 들어도 코웃음 치며 지나갈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함께 자리에 있는 걸 마지막으로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건만, 어찌 저리 당당하게 행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까.

아버지는 가정에는 지독하리만큼 무감했다. 제 나이가 몇인지도 모를 것이라 자부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가 가장이고 큰 기업을 이끌어가야 하므로 집에 들를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머리가 큰 후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버지는 다른 젊은 여자 오메가를 끼고 노느라 바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쥐고 있는 것을 놓기 두려워 모르는 척했다.

사랑 같은 건 하나도 없는 가정이었다. 그렇게 살면서도 행복하다고 하다니. 본인이 그렇다는데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제가 그리고 싶은 미래는 아니었다.

“두 분 행복하신 거랑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야 너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마주한 어머니의 두 눈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제가 하자는 대로 움직여야만 도겸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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