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136)

s<42화>

서원은 힐끗,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지환을 보며 평소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자, 잘생겼잖아. 그리고 옷 입는 센스도 좋고.”

“다 외적인 거네. 그리고 또?”

“더 말해야 해……?”

“그럼 그 이유가 끝이야? 너 얼빠야?”

“얼빠라니…….”

얼빠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만 대긴 했지만,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되나?

지환은 도겸을 속이는 걸 도와주려는 것 같으면서도, 저를 괴롭히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성격이 워낙 얄궂고 장난기 많은 스타일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점……. 사람을 좋아할 때 보통 어떤 걸 좋아하더라? 보편적인 이유를 떠올려 보지만, 딱히 떠올리는 게 없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걸 딱 한 사람밖에 느껴 본 적이 없으니 더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도련님의 어떤 점을 좋아했더라?

어렸을 땐 너무 당연하게 제 곁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릴수록 한 살 한 살의 체감이 커서 말도 통하지 않았을 텐데 매번 좁은 방으로 찾아와 먹을 걸 나눠주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같이 만화책도 보고 그랬다.

대부분이 친구와 할 법한 그런 일들이었는데, 오메가로 발현하던 날 제가 그를 좋아했단 걸 알아챘다. 자각을 그날 한 것이니, 사랑에 빠진 건 더 전의 일일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사랑이었기에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나는 계속해서 도겸이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나도 좋았다.

“멋있기도 하고, 아닌 척하면서 잘해 주고……. 사람 기대하게 만들어.”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흘러넘쳐서 고백하듯 털어놓게 됐다. 마음을 접겠다고 그리 노력해 놓고서는,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마음이 가득했다.

지환은 장난스럽게 던진 질문에 서원이 진지하게 대답하자,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는 목이 타는 듯 달아서 못 먹겠다고 하던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곤 목덜미를 발갛게 물들인 채 물었다.

“내가…… 기대하게 했어?”

“어? 으응, 엄청…….”

“몰랐네. 그렇게 열렬히 좋아하는 줄은 몰랐어.”

“…….”

지환이 어떻게든 받아주려는 듯 멋쩍게 대답했다. 차라리 아까처럼 장난스럽게 받아들이지. 정말 고백받은 사람처럼 저러고 있으니 덩달아 열이 확 올랐다.

부끄러웠다. 정작 도겸은 제가 그의 이야기를 하는 건지도 모를 텐데, 그에게 열렬한 고백이라도 한 것처럼 민망하고 쑥스러웠다.

덥다, 더워. 애꿎은 빵을 포크로 푹푹 찌르며 입에 밀어 넣는데, 순간 욱하고 뜨거운 것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우욱……!”

불덩이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역류하듯 올라오는 토기를 막을 수가 없었다. 서원은 들고 있던 포크를 던지듯이 내려놓고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사고를 칠 것 같았다.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지고 머리가 서늘해졌다. 서원은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원아?”

당황스러운 얼굴로 묻는 지환의 얼굴이 보였으나, 서원은 빠르게 눈을 굴려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히 화장실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안으로 뛰쳐 들어간 서원은 변기 뚜껑을 열고 왈칵 올라온 것들을 쏟아냈다.

“우욱, 우웩!”

왈칵 뱉어낸 것은 방금 먹었던 빵 조금이 끝이었고 대부분이 위액이었다. 입맛이 없어서 지환과 만나기 전에 딱히 먹은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쏟아내고 싶은데 가슴께가 뜨겁기만 할 뿐 올라오는 건 없었다.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새 뒤따라온 지환이 얼른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아니, 아까는 멀쩡하더니……. 으앗!”

등을 두들겨 주던 손길이 갑작스레 떨어져 나가며 지환의 짧은 비명이 들렸다.

“윤서원!”

이윽고 들린 것은 도겸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먹은 것들을 한차례 게워 낸 참이라 온몸에 힘이 없었다. 여전히 속은 울렁거렸고, 눈두덩이가 뜨거웠다.

힘없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니 도겸이 바싹 다가와 서원의 얼굴을 살피며 등을 쓰다듬었다.

“윤서원, 괜찮아?”

“괜찮아요. 보, 보지 말고 나가세요…….”

서원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길을 거절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힘없이 물을 내리고 무릎을 일으키는데, 도겸의 걱정스러운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저를 빤히 바라보는 채로 허리를 감싸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괜찮은 사람이 속을 게워 내? 집에 가자.”

도겸은 이대로 부축해서 바로 집에 데려다줄 기세였다.

그에 서원은 브레이크 밟듯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제대로 증명해 보이지도 못했고, 무엇보다도 지환이 있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 것도 있었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서울로 올라갈 사람이었다. 오늘을 놓치면 언제 기회가 돌아올지 모른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집에 들어갈 순 없었다.

“집이요? 안 돼요. 저, 데이트 중인데…….”

“씨발, 다 쓰러져 가는데 데이트는 무슨 얼어 죽을 데이트야? 이게 감기야? 빨리 병원 가자.”

도겸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듯 으르렁댔다. 감기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저번에 병원에 간 걸 들켜서 감기였던 것 같다고 둘러댄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떻게든 집에 데려가려는 건지, 서원이 손을 씻고 입가를 닦는 것까지 도와줬다. 더러운 것인데도, 그것도 남의 토사물인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능숙한 손길에 서원이 저도 모르게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뒤에 밀려나 있던 지환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둘 사이의 거리를 갈라놓으려 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사람을 밀치는 게 어딨습니까? 그리고 제가 일행이니까, 그쪽은 가던 길 가세요. 예?”

“나는…….”

도겸은 지환의 말에 반박하려는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한마디도 채 이어지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구냐고 물었으니 어떤 사이인지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얼굴에 망설임이 뚝뚝 묻어났다.

하긴, 우리 사이를 설명하자면 참 이상하긴 했다. 어렸을 때는 도련님과 가정부의 아들. 성인이 되고는 페로몬 파트너. 지금은 전 직장 상사 같은 사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에는 마지막이 그나마 평범했다. 서원도 지환에게 비슷하게 설명했었고. 그러나 도겸은 전 직장 상사라고 하면 치를 떨며 싫어했기 때문인지 입을 열지 않았다.

서원이 잠시 생각하는 사이, 주변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도겸의 알파 페로몬이 화장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서원은 그의 페로몬이 익숙하기도 했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라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윽……! 알파 페로몬 좀 거둬요. 머리 깨지겠네.”

지환은 그런 도겸의 페로몬을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 코를 막았다. 얼굴은 다방 커피를 마셨을 때보다 더 일그러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알파끼리는 페로몬을 불쾌하게 느꼈다. 특히나 도겸은 다른 알파도 아닌 ‘우성’ 알파이니 더 심하게 거부감이 일 것이다.

“나한테 페로몬 샤워시킬 거도 아니고, 뭐하는……!”

“나, 윤서원이랑 이십 년은 넘게 알고 살았어. 알아도 너보다 훨씬 더 잘 아는 사이니까 꺼져.”

지환이 버럭 언성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도겸은 그의 말을 끝까지도 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며 사납게 굴었다.

“뭐……!”

지환은 너무나도 이 상황이 황당한 듯 입을 떡 벌렸다. 일행은 저인데 갑자기 나타나선 꺼지라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우성 알파의 페로몬은 여전히 지환을 짓누르고 있었고, 도겸의 말투 행동 하나하나는 협박이라도 하듯 살벌했다. 더 뒀다간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기세였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척 연기를 하려는 거였지, 둘이 싸우는 걸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서원은 겨우 기력을 내어 도겸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 말아요. 제 일행이에요.”

“…….”

정말 싸우기라도 하려던 거였을까. 도겸은 당장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더니, 서원을 내려다보며 그 빛을 누그러트렸다.

내려다보는 도겸의 눈빛이 복잡미묘한 기색을 담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 같아서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그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서원에게 잡힌 손 마디에 제 손가락을 끼우고 힘을 주었다. 두 손이 빈틈없이 꽉 맞물렸다.

“집에 가자.”

“아, 안 가요.”

“고집부리지 마. 넌 환자고, 쉬어야 해.”

“안 아프다니까요.”

“제발 내 말 좀 들어!”

도겸이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터트리듯 말했다. 짜증이 난 것 같기도,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왜일까. 눈앞의 그는 굉장히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의 이마에 툭 튀어나온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불안했다. 마주친 눈에 핏발이 서 있어 화난 것처럼 보이면서도 슬퍼 보이기도 했다.

순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서원이 흠칫 몸을 굳히고 그를 바라만 보고 있자, 그는 숨을 고르며 심신을 안정시켰다.

주변을 누르던 위압적인 페로몬이 조금 거둬졌을 때가 되어서야, 도겸은 지환을 돌아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일행이라는 분.”

“……네?”

지환은 도겸이 갑자기 말을 걸 줄 몰랐던 듯 얼떨떨한 얼굴로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도겸은 평소처럼 정중하고 격식 있게 고개를 숙여 그에게 사과했다.

“페로몬 쓴 건 미안합니다. 그래도 데려다주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제가 하겠다고 했는데.”

“어차피 서원이 집에 옷을 두고 와서 가야 하니까, 괜히 걸음 하지 마세요. 그리고 서원이가 많이 힘들어하니까 걷는 것보다 제 차로 가는 게 더 빠릅니다.”

속이 안 좋을 뿐 못 걸을 수준은 아닌데. 도겸은 저를 아주 환자 취급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옷을 두고 왔다고? 그가 오늘 제집에 왔을 때와 지금의 옷차림새는 똑같았다.

무슨 옷을 두고 왔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가 집에 들렀다가 나오기는 했으니 뭔가를 두고 왔을 수도 있었다.

“옷을 두고 왔다고?”

그런데 지환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그는 꼭 엄청난 말을 들은 것처럼 당황하더니,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서원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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