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136)

<19화>

“…….”

취향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도겸에게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윤서원이었다. 제 모든 것에 맞춰 주는 고분고분한 성격도 그렇지만, 어렸을 적부터 대화도 잘 통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반짝거리는 검은 눈동자도, 하얀 피부도, 안으면 한 품에 들어오는 체구도, 열성이기 때문인지 거슬리지 않게 적당히 은은한 페로몬도 전부 제 취향에 맞기도 했다.

‘만일 윤서원이 열성 오메가가 아니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긴 했었지만,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생각해 봐야 바뀌는 것도 없지 않나.

아무튼 굳이 윤서원을 닮은 사람을 찾아올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리스트를 보던 도겸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뭐가 닮았다는 거야……. 눈깔이 삐었나.”

배 비서의 말대로라면 윤서원과 비슷한 사람으로 구한 걸 텐데, 어째서인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윤서원보다 나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리스트엔 이제 막 뜨는 신인 아이돌도 있었지만 도겸의 눈엔 차지 않았다.

도겸은 심드렁하게 종이를 팔락거리다, 감흥 없는 얼굴로 파일을 다시 배 비서에게 넘겼다.

“아무나 불러.”

“어……. 혹시 마음에 드시는 분이 없으시면 다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그냥 페로몬만 풀면 되는데 상대가 중요한가. 아무나 불러. 제일 입 무거운 놈으로.”

“……네. 그럼 퇴근 시간에 맞춰 호텔로 불러 두겠습니다.”

배 비서는 조금 의외라는 눈치를 보이면서도, 토 달지 않고 리스트를 돌려받은 후 허리를 깍듯하게 굽혔다.

배 비서가 잠시 비서실을 빠져나가고, 혼자 남은 도겸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6년간 익숙하게 한 사람만을 안아 왔기 때문인지, 얼굴도 모르는 다른 오메가를 안을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더럽고, 불쾌하고……. 꼭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별다른 의미 없이 그저 페로몬을 해소하는 것일 뿐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낯섦에서 오는 불쾌감일까. 모르는 사람을 안는다는 건 생각보다 불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나간 윤서원을 다시 잡아 올 것도 아니었다.

별것 아니리라. 고작 파트너일 뿐이니까. 도겸은 새로운 오메가도 안다 보면 익숙해지리라고 생각하며 기분을 가벼이 넘겼다.

* * *

퇴근 시간을 훌쩍 넘은 느지막한 시간. 남들보다 늦은 시간에 업무를 마친 도겸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한 호텔 룸으로 향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이 호텔에서 윤서원과 함께 밤을 보냈다. 계열사의 호텔이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편히 올 수 있기도 했지만, 인테리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윤서원도 방이 깔끔하고 특히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야경이 좋다고 감탄했었지. 관계를 끝내고 룸서비스를 불렀을 때의 식사도 나쁘지 않았다.

좋았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침대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

많아 봐야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하얀 가운을 입고 발그레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를 해 왔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도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까 배 비서가 준 파일에 저런 남자가 있었던가?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런지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직접 실물을 마주하니 왜 배 비서가 윤서원과 닮은 오메가를 추려 왔다는 건지 알 것도 같았다.

얼굴은 생판 달랐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머리 스타일도, 키도, 하얀 피부도, 마른 것도…….

그렇지만 역시 달랐다. 이 남자에게는 그것이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부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었다.

윤서원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저기…….”

도겸이 품평을 하듯 남자를 쳐다보기만 하자, 남자는 부담스러움을 느꼈는지 쭈뼛거렸다.

그런 행동 역시 윤서원과 비슷했으나, 도겸은 그의 모습엔 코웃음을 치게 됐다. 돈이나 명예를 위해 페로몬을 풀어 줄 파트너를 자진할 정도인데, 고작 이 정도에 부끄러워하는 척을 하다니.

윤서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을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친 것이었고, 이 오메가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부끄러운 척 연기하는 것 같았다.

배 비서에게 윤서원과 비슷하게 행동하라고 지시라도 받은 걸까? 뭐, 연기여도 상관없다. 페로몬만 풀면 되는 상대니까.

도겸은 목을 옥죄듯 하던 넥타이를 풀어 의자에 대충 걸며 말했다.

“누워.”

“아……! 네!”

남자는 신입사원처럼 어색하게 대답하더니, 빠릿빠릿하게 침대에 누웠다. 그 모습이 야한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꼭 목각인형 같았다.

도겸은 황당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금 묘한 기분으로 남자 위에 올라탔다.

아까 남자를 보고 체형만큼은 윤서원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몸으로 닿으니 확실히 달랐다.

윤서원은 정말 한 품에 들어왔었는데…….

저도 윤서원밖에 관계를 안 맺어 봤으니 비교 대상이 그밖에 없다는 걸 알긴 하지만, 자꾸만 그를 떠올리게 됐다. 모든 게 기준치보다 덜떨어졌다.

뭐가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제가 너무 까다로운 건지, 이 오메가가 진짜 별로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았지만, 아래에 구멍이 달린 것은 똑같겠지 싶어 남자를 안으려고 했다. 그런데…….

“씨발…….”

“네……? 왜, 왜 그러세요?”

“토할 것 같으니까 페로몬 치워.”

남자의 목덜미에 가까이 코를 가져가는 순간, 속에서 토기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쓰레기장에 있어도 이 정도로 역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의 페로몬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도겸의 서늘한 말에 남자가 허겁지겁 페로몬을 갈무리했지만, 잔재가 후각에 남아 있는 것처럼 여전히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가 깨져 버릴 만큼 아프더라도 도저히 이런 남자와 잠자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도겸은 와락 얼굴을 구긴 채 침대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냉랭히 말했다.

“못 해 먹겠으니까 썩 꺼져.”

“네? 무슨…….”

“두 번 말해야 알아들어? 안 꺼져?”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 버릴 것 같은 차가운 말투에, 남자가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짐을 챙기고 나갔다.

그는 가운밖에 입지 않은 채였으나, 저런 상태로 바깥을 나가는 것보다 도겸에게 찍히는 것이 더 두렵다는 몸짓이었다.

씨발, 이런 걸 파트너라고 구해 왔다고? 배 비서가 제 페로몬 취향까지 알아보진 않았겠지만, 이건 너무 역하지 않나.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도겸은 가만히 서 있다가,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인 그는 크게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뿌연 연기를 뱉었다.

“후…….”

뭐가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많은 걸까. 고작 몸을 겹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재고 따지게 되는 걸까.

왜 자꾸 윤서원이 생각나는 걸까.

좋은 상대였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생각이 나는 건 좀 비정상적인 것 같다고. 도겸은 어렴풋이 생각하며 담배를 태웠다.

* * *

윤서원은 부모님의 집을 찾았다.

부모님의 집은 강남권에 있는 한 단독주택이었다. 도겸의 파트너 일을 돈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페로몬을 풀어 주는 파트너라는 평범하지 않은 직업인 탓에 돈만큼은 두둑하게 챙겨줬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서원이 직접 발품 팔아 얻어낸 집이었다.

서원이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자, 인터폰을 받는 것도 없이 금방 문이 열렸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환하게 서원을 반겼다.

“서원아.”

“엄마.”

그녀는 방금까지 식물에 물을 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무도 꽃들도, 마당에 깔린 잔디도 푸릇푸릇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예전부터 엄마가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해서 구한 마당 넓은 집인 만큼, 서원은 마당을 예쁘게 가꾸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 밖에 덥지?”

“네. 그새 많이 더워졌더라고요. 무릎은 괜찮아요?”

서원이 엄마를 걱정스러운 눈치로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는 최근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관절은 쓸수록 닳는 것이라며, 일하면서 무릎을 쓰는 일이 많았는지 수술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탓에 엄마는 퇴직한 지 몇 개월 됐다.

서원의 걱정 어린 시선에 지희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덕분에. 수술하고 많이 괜찮아졌어.”

“……마당 가꾸는 것도 좋지만 쉬엄쉬엄하세요.”

“안 그래도 그러고 있어. 아, 온 김에 콩국수라도 끓여 줄까? 너 그거 좋아하잖아.”

“콩국수요? 음……. 좋아요.”

서원은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워낙 입맛이 떨어져서 먹을 수 있을까 싶긴 했지만, 엄마가 끓여 준 콩국수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마당 뒷정리를 빠르게 끝낸 지희는, 능숙하게 소면을 끓이고 냉장 보관해 뒀던 콩 국물에 면을 담갔다.

허연 국물에 얼음을 동동 띄우고 채를 썬 오이, 그리고 방울토마토를 두 쪽으로 잘라 고명으로 올리니 시중에 파는 것만큼 맛있어 보이는 콩국수가 완성됐다.

“자, 얼른 먹어. 싱거우면 소금 더 넣어서 간 맞추고.”

“네. 잘 먹겠습니다.”

엄마가 해 준 요리라서 그런 걸까? 평소에는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진짜 맛있어 보였다.

시원하고 구수한 콩 국물을 먼저 들이켠 뒤, 소면을 후루룩 빨아당기는데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여태까지 입맛이 없었던 게 거짓말처럼 맛있었다. 입맛이 없는 와중에도 잘 맞는 음식은 또 있는 모양이었다.

서원은 입에 있던 것을 꿀떡 삼키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엄마에게 감탄 어린 투로 말했다.

“진짜 맛있어요!”

“면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더 먹고 싶으면 말해.”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넉넉하게 준비해 뒀다고 하며 자신도 후루룩 면을 빨아당겼다.

차를 타고 왔음에도 햇볕이 쨍쨍해 피부가 그을리는 느낌이었는데, 시원하게 점심을 먹으니 금방 열이 식었다.

지희는 간만에 아들이 왔다고 후식으로 수박까지 준비했다. 부지런히 먹고 있자, 서원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운을 띄웠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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