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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18/136)

<18화>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건만, 갑자기 입술을 맞춰 오니 당황스러움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영문도 모르고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입고 있던 널널한 티셔츠 아래로 솥뚜껑만 한 손이 들어왔다.

“읏……!”

티셔츠 아래로 들어온 도겸의 손은 그대로 툭 튀어나온 유두를 꼬집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까지만 해도 서원은 가슴으로 느끼지도 않았건만, 도겸은 고작 작은 알갱이에 불과한 가슴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은 관계를 맺은 탓에 이제는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민감해진 부위였다. 어쩌면 부은 것이 가라앉을 틈을 주지 않아서 느끼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자극도 그렇지만, 입술 너머로 넘실넘실 들어오는 알파의 페로몬에 머리가 몽롱해지고 몸에 힘이 풀렸다.

오늘은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오메가의 본능에 굴복해 이대로 휘말릴 듯했지만, 열기로 휘발되어 가던 머릿속에 순간 ‘임신’이라는 두 글자가 짙게 떠올랐다.

그 두 글자에 서원은 순간 찬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원은 온 힘을 다해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입맞춤을 나누다 방해받은 도겸은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좁히고 눈을 날카롭게 떴다.

“하아……, 왜.”

“저, 도, 도련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요.”

“끝나고 하지 그래. 이 주만에 하는 건데.”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

그가 스위트룸에 들어올 때는 기분이 좋은 듯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 다녀온 이후로 휴가를 쓰고, 그가 배려해 준 덕분에 좀 더 쉬었다 보니 거의 이 주일만에 관계를 맺으려고 한 것이었다. 많으면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관계를 맺다가 이 주일간 꼬박 페로몬 해소하지 못했으니, 쌓일 대로 쌓였을 것이다.

도겸은 한숨을 내쉬며 이성을 다스리더니, 서원과 눈을 마주했다.

“뭔데?”

마주친 두 눈동자에는 말할 거 있으면 빨리 말해라, 왜 귀찮게 하느냐, 별거 아니기만 해 봐라…… 라고 말하는 듯한 몹시 언짢은 기색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의 앞에서 서원은 늘 고분고분했고,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고 했던 그의 충실한 파트너였다.

그렇기에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서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파트너도, 도련님의 집에서 지내는 것도…… 다 그만두겠습니다.”

“……뭐?”

“아파트에 있는 짐은 이른 시일 내에 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원은 도겸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제 뜻을 명확하게 밝히고는,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깍듯하게 사과했다.

병원에서 다녀온 서원은, 깊은 고민 끝에 도겸에게 말하지 않고 그를 떠나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했다.

서원은 평소 딱히 아이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의 아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만 낳는 거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육아가 얼마나 힘든데. 엄마가 서원을 혼자 키웠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를 낳는 쪽으로 더 마음이 기울었다.

몇 달 품고 있지도 않았으니 아직 생명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오늘 알았으니 정이 든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열성 오메가는 임신할 확률도 낮은 데다, 지우게 되면 다음에는 영영 아이를 가지기 힘들 수도 있다는 게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이를 지우는 것도 무서운데 ‘영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 주는 두려움은 몇 배로 더 컸다.

그리고 서원은 늘 도겸과 있다 보면 이러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그의 파트너로 오랜 시간 있다고 해서 그의 마음까지 제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희망 고문을 계속 이어 가느니, 그의 아이를 계기로 인연을 끊어 버리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와 맺은 계약서에 기간이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위약금 없이 둘 중 누구라도 먼저 해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서원이 이래도 일방적으로 해지하겠다고 나와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왜인지, 서원은 그래도 제가 죄인이 된 것처럼 불안에 떨었다.

평소와는 달리 행동하자, 도겸은 조금 놀란 듯 굳어 있다가 서원의 양쪽 팔뚝을 단단히 붙잡으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잠깐, 윤서원. 알아듣게 말을 해야지. 갑자기 왜 그만두겠다는 건데? 그날 일은 실수한 거로 하고 넘어가자면서?”

“…….”

얼마 전, 히트사이클과 러트를 함께 보낸 날에 도겸이 먼저 파트너를 그만두자고 말했지만 서원이 거절했었다.

서원은 서로 실수한 거로 하자며 울며불며 그에게 매달리기까지 했다. 그 탓에 도겸은 갑자기 변심한 이유라도 있냐고 심각하게 묻고 있었다.

이유라……. 단순히 이 일이 안 맞고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그만두기에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해 왔고, 그와 나누는 경험은 여전히 아프고 버겁긴 했지만 그보다 침대 위에서 더 많이 사정하고 울며 비는 건 저였기에 통하지 않을 거였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더 좋은 조건을 줬다고 둘러대기에는 서원은 이미 좋은 조건을 받는 중이었고, 그라면 제게 돈을 한두 푼 더 주는 걸 아까워하지 않을 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조건을 더 높여 가면서 저를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원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뭐?”

“그래서 도련님과 더는 관계 같은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원은 제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는 이유를 들며 이 관계의 끝을 요구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더는 관계를 못 맺는다고 하는 상황이라니. 이 상황이 너무 자조적이고 씁쓸하다는 생각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렇지만 울면 그런 이유로 그만두는 게 아니라는 것을 들키고 말 것이었다. 눈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흐르지 않도록 꾹 눌러 참았다.

서원이 남몰래 아랫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눈물을 참으려 노력하는 동안 도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색할 정도의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도겸이 이상한 질문을 해 왔다.

“누군데?”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제가 누굴 만나든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형 동생 사이로서 궁금해할 수도 있는 거겠지. 서원은 조금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건……, 도련님께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네가 아는 사람이라곤 다 내 주변인일 게 뻔한데, 그걸 숨기겠다고?”

“죄송합니다.”

서원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상대가 없으니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서원이 연속해서 대답을 피하자, 그는 무척이나 이 상황이 불쾌하다는 듯한 기색을 온몸으로 철철 흘려보냈다. 주변을 감싼 그의 페로몬이 가라앉은 것이 그 증거였다.

서원이 생각해도 그에게 자신은 페로몬을 빼기 굉장히 편한 상대였을 거다. 임신할 확률이 드문 열성 오메가에 입단속도 철저히 했고. 무슨 요구를 하든 고분고분 잘 들었으니까. 짝사랑하는 상대이니 들어줄 만한 요구도 몇몇 있었으니 저만한 파트너를 구하긴 힘들 것이었다.

그 탓인지 그는 서원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어떤 좋은 조건이라도 내걸 것 같은 분위기에 서원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도련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파트너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조건이었잖습니까. 저도 그런 상황입니다. 더는 이어 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하.”

도겸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는지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눈으로 서원을 내려다보다,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리며 짜증을 부리듯 말을 이었다.

“네 마음대로 해.”

“……여태까지 감사했습니다.”

도겸의 허락에, 서원은 다시금 그에게 허리를 굽혀 깍듯하게 인사하고 그를 비켜 걸음을 내딛었다.

이제 이곳을 빠져나가면 더는 도겸을 마주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우연으로라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으니까.

그게 가장 아쉬웠지만, 서원은 무거운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왔다.

서원은 호텔 방문을 닫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흑…….”

줄곧 참고 있던 뜨거운 눈물이 눈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젠 정말 남이었다. 그날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도 도겸과의 마지막을 이렇게 급하게 마무리하진 않았을 텐데.

그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이 일이 없었더라면 그의 곁에서 영원히 파트너로 남았을 것만 같아 잘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 * *

“전무님. 새로운 파트너 리스트를 뽑아 봤습니다. 마음에 드시는 분으로 고르시죠.”

이사실에서 다른 업무를 보던 도겸은, 배 비서의 말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파일을 받아들었다.

미국에 다녀온 이후로 한 달이 넘도록 관계를 맺지 않은 탓에, 도겸은 최근 페로몬 체증으로 오는 통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서른한 살이 되도록 이렇게까지 페로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처음이었다.

페로몬 체증을 풀기 위함이라며 윤서원과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관계를 맺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자주 할 필요는 없었다.

주요 일정에 데리고 다닐 만큼 자주 몸을 겹쳤던 것은 순전히 제 욕심이었고,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관계를 맺으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유학에 갔을 때는 그마저도 페로몬을 조절하는 약을 먹어 해소했었고.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페로몬을 조절하는 약을 먹어도 해소되지를 않았다. 진짜 오메가를 만나 풀어야만 이 통증이 사그라들 것 같았다.

도겸은 심기불편한 얼굴로 배 비서가 내민 파일철을 열었다. 안에는 열성 오메가 다섯 명의 정보가 들어 있었다. 엄선해서 추린 것이니 그나마 허튼짓을 하지 않을 안전한 오메가들일 것이었다.

몸을 겹치고 페로몬을 방출하기만 하면 되니까, 볼 것이라고는 얼굴밖에 없었다. 도겸이 별다른 생각 없이 종이를 넘기는데, 지켜보던 배 비서가 은근슬쩍 신경 좀 썼다는 듯 입을 열었다.

“윤서원 씨와 최대한 비슷한 분으로 추려 봤습니다.”

“……윤서원? 왜?”

리스트를 바라보던 도겸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냐는 무심한 물음에, 배 비서는 적잖이 당황한 듯 조금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윤서원 씨와 파트너를 오래 이어 가지 않으셨습니까. 취향도 맞으신 것 같고, 성격도 잘 맞으셨던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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