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어린 시절의 꿈을 꿨다. 처음에는 꿈인 줄도 모를 만큼 빠져들었으나 어느 순간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꿈속의 세계와 현실은 아주 작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 이진은 또래보다 작고 삐쩍 말랐었다.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다른 아이들에 비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유독 길쭉한 팔다리와 조그마한 얼굴에 콕 박힌 까맣고 큰 눈동자가 묘하게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꿈속의 이진은 키가 또래만큼 크고 뺨은 뽀얗게 살이 올랐다. 눈 또한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쉼 없이 눈웃음 짓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진에게 친절했고, 이진도 친구들을 상냥히 대했다. 주머니에는 하굣길에 간식을 사 먹을 용돈이 충분했으며 친구들이 다닌다는 학원도 전부 다닐 수 있었다. 매일매일 단순한 일상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어도 딱히 지루하다 느끼지 않을 만큼 즐거운 나날이었다.
이진은 꿈과 희망이 가득해 보였다. 그의 마음에 불가능이란 없는 듯했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그때 어떤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낯선 듯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진은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에 당황했으나 곧 그 정체를 깨닫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눈앞의 광경이 빠르게 변해 갔다.
이제 이진은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커다란 교복은 어색한 듯 풋풋한 매력을 자아냈고 얼추 형태를 잡아 가는 골격은 곧고 날렵한 선을 그렸다. 변성기 때문에 한층 과묵해진 소년에게는 나이답지 않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쟤가 그 연습생이래.’
‘와, 대박……. 얼굴부터가 다르긴 하네.’
같은 교복, 혹은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몰려와 웅성거린다. 이진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했다. 이번에는 헛소문이 아니라 진짜였으니까.
학교에서 목소리 좀 크다 싶은 놈들이 잘 보이고자 알랑대고, 이진은 어렵지 않게 그들과 친해졌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소속사 연습실로 향해 체계적인 환경 속에서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엄하지만 실력 있는 트레이너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이끌어 주는 대표, 그리고 집에 가면 따스한 눈빛으로 그날 하루를 물어봐 주는 부모님. 지켜보는 것만으로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그러면 이건 어때.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다시 목소리가 끼어들어 물었다. 이진은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상하네.’
또다시 빠른 속도로 세상이 뒤바뀌었다. 이진은 어느새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선 나이가 되었다. 이번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이진을 별종 취급하는 학생들, 제자를 공공연히 가십거리 취급하는 선생님, 그리고 무기력한 태도로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님. 무거운 현실에 억눌린 채 숨 한번 편히 쉬지 못하던 시절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진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담히 과거를 지켜보았다. 이내 결정적인 차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아버지. 저 대학 합격했어요.’
‘……그게 정말이니?’
‘네. 정말로 붙었어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이진아, 정말 수고했다.’
‘못난 부모라 해 준 게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평생 본 적 없는 환한 웃음이 주름 진 얼굴에 꽃처럼 피어났다. 마찬가지로 들어 본 적 없는 따스한 말에 심장이 뻐근하게 조여 왔다.
이진은 어쩌면 자신이 쫓겨나듯 어른이 되어 버린 탓에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과거에 미련을 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장 인정을 받고 싶었던 이들은 홀연히 사라졌으니까. 이진을 제대로 책임지지도 않고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이진을 인정해 줄 사람은 없다. 이진이 가장 사랑받고 싶었던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영영 만날 수 없다.
‘어때, 이번에야말로 네가 원하는 거니?’
목소리가 다시금 물어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한 공공연한 사실이기에 더더욱 감정을 숨겨 왔었다. 모두 극복했다고, 이제는 지나간 일일 뿐이라고 초연한 척했다.
분명히 이진의 인생에서 부모님이란 등본상의 보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삶에 지친 부모에게 애정을 갈구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잠깐의 관심뿐이었다. 타인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 모두에 예민했던 시기, 찰나의 시선에서 갈무리되지 않은 귀찮음을 읽은 뒤로는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짧은 식견과 무능함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실망감과 패배감만이 쌓여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분이 살아계시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원한다면 되돌려 줄 수 있어.’
목소리가 유혹하듯 귓가를 맴돌았다.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 물어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하지만 이진은 꿋꿋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필요 없어.’
‘정말? 다시는 없을 기회야.’
‘이제는 과거로 도망치지 않을 거야.’
과거를 곱씹으며 무언가 변하길 바라는 것은 잠깐의 위안은 될지언정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모두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되니까.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자신 뿐.
대체 누가 꿈속에 찾아와 머릿속을 제멋대로 휘저으며 시험에 들게 하는지는 몰라도 이진은 그런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 그렇구나.’
한결 온화해진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나는 이제 괜찮구나.’
***
이진은 꿈에서 깨어났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듯 스르륵 자연스럽게 눈이 뜨였다. 눈가가 축축이 젖어 있단 건 한발 늦게 알아차렸다. 이상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면서도 쏟아지는 슬픔을, 그 허탈함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으응……. 형, 안 좋은 꿈 꿨어요?”
옆자리에서 승현이 바스락대며 돌아눕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따뜻하고 단단한 팔이 이진을 감싸 안았다. 이진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이 감정이 흘러가길 가만히 기다렸다.
“괜찮아요. 다 꿈이에요.”
승현이 어린애를 달래듯 이진의 등을 규칙적으로 토닥였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잠에 취해 비몽사몽하면서도 이진을 살뜰히 챙기려 드는 게 기특해 때에 맞지 않는 웃음이 났다. 흘러내린 승현의 머리카락이 이마를 간질이고, 이불에서는 승현의 향이 났다. 이곳이 바로 이진이 선택한 현실이었다.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자 머리에 눌러앉아 있던 꿈이 서서히 흐려졌다. 평범함에 대한 동경도, 우월함을 뽐내고 싶은 오만함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미련도 무의식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아직 아가네, 우리 이진이.”
“또 까불지.”
“윽, 아야.”
괜한 소리를 덧붙였다 이진의 가벼운 응징을 받은 승현이 엄살을 부렸다. 이진이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자 눈을 일자로 감고 베개에 머리를 꿍 눕혔다.
“조금만 더 잘게요…….”
“승현이 너 갈수록 잠이 느는 것 같아.”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자기 전에 미리미리 자 둬야죠. 형도 자요.”
승현이 빼꼼히 들린 이진의 고개를 꾹 눌러 다시 베개에 눕혀 버렸다. 이진은 몹쓸 손버릇을 탓하는 대신 입가에 어이없는 웃음을 달고 잠든 승현의 얼굴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승현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는 하니 지루할 걱정은 없었다.
그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시간은 쉼 없이 밤을 낮으로 바꾸고 새싹에서 꽃을 피우고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그리고 데뷔 전 연습생을 1집 아이돌로 만들기도 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날이 아니라 달이 지나가는 것조차 눈치채기가 힘들다. 월초를 훌쩍 지나 월말에 가까워서야 ‘아니, 언제 달이 바뀌었대?’ 하고 깨닫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진은 비교적 날짜 감각이 바른 편이지만, 그럼에도 몰아치는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사라지고 현실감각이 마비되고는 했다.
‘그래도 계절이 지나고서야 화들짝 놀라는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지.’
이진은 어느덧 앞자리가 8로 바뀐 날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그들이 ‘위드 올’로서 공중파 데뷔를 하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위드 올입니다!”
“우와, 이제 진짜 데뷔하는구나. 응원 많이 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갓 데뷔한 신인 그룹으로서 이진과 멤버들은 대기실을 이리저리 돌며 인사를 다녔다. 알게 모르게 무대 뒤에서의 텃세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이미 방송을 통해 익숙해진 얼굴들이라 그런지 다들 반갑게 맞아 줬다. 위드 올의 데뷔 자체가 이진 못지않게 바쁘게 사는 그들의 시간감각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했다.
“신곡 잘 듣고 있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다들 진짜 훤칠하다. 솔직히 말해 봐요. 손 안 댄 거 맞아요?”
인지도 높은 신인 그룹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도 있었고, 대뜸 예민한 질문을 해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악의가 아니라는 점이 더 곤란했다.
그래도 이진은 최대한 그런 말들에 익숙해지고자 노력했다. 각양각색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모이는 연예계이다. 정식으로 첫 발을 내딛은 만큼 이곳은 앞으로 겪어 나갈 세계의 축소판인 것이다.
“어이!”
대기실 순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비상구에서 한숨 돌리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을 잡아 세웠다.
“강재규?”
“하필 데뷔 시기가 겹치냐!”
강재규와 두주형, 민서호를 선두로 한 무리가 우글우글 다가왔다. 그들은 이번에 루키 엔터에서 새로 데뷔한 9인조 보이 그룹 ‘루키 밤’으로 강재규는 이 그룹에 합류하기 위해 윈올에서의 데뷔를 포기했다.
“우와아, 유이진이다! 안녕하세요, 저 완전 팬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유이진입니다.”
루키 밤의 멤버 중 하나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간혹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들은 윈올 참가자들을 신기한 연예인 취급하는 경우가 있었다. 재규가 민망한 얼굴로 그가 윈올의 열혈 시청자라 설명했다. 잠시 대화를 하고 가겠다며 멤버들을 쫓아낸 재규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그거 들었어? 윈올 시즌2 한다던데.”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오디션 단계긴 한데 우리를 시행착오 삼아 이것저것 보완한다더라고. 이번에는 아예 공중파도 끌어들일까 한다던데…….”
그때 한 무리의 여자들이 계단을 우르르 내려왔다. 외부인을 본 이들은 반사적으로 입을 꾹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그녀들은 윈올 멤버들과 눈이 마주치자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놀란 기색을 감추려 했다. 연예인은 아닌 듯하지만, 방송국 스태프도 아닌 느낌에 어딘지 기시감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그룹답게 예의 바른 태도로 다 같이 인사를 하자 얼굴에 활짝 미소를 띠고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는 게 분명히 일반인이었다. 일반인들이 방송국에는 단체로 무슨 일이지? 아리송한 얼굴로 그들이 완전히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이진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 강혜리?”
“헐. 선배님, 저 기억하세요?”
이진은 무의식중에 그녀의 이름을 입 밖으로 냈다. 이진의 학교 후배이자 한때 이진의 직장이었던 스튜디오 비긴의 막내인 강혜리였다. 물론 이진이 취직을 하지 않은 지금, 두 사람은 교정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인 삭막한 선후배 관계일 뿐이었지만.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야?”
“저 오늘 여기서 오디션 있었어요. 선배님 출연하셨던 윈올 시즌2요!”
이진이 묻자 혜리가 밝게 답했다. 그제야 강혜리와 함께 떼 지어 내려가는 여자들이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진의 기억 속 강혜리는 천상 작곡가였다. 그녀가 갑자기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전한다고 하니 얼떨떨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 이진을 눈치챘는지 혜리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배, 사실 선배 보고 저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냈어요. 과 활동 안 해, 정기 공연도 안 해. 보컬과 교수들 뻥뻥 걷어차고 작곡으로 졸업해 버린 마이웨이. 천하의 유이진이 아이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방금 굉장히 흥미로운 정보가 지나간 것 같은데.”
“하하, 선배가 절 기억하시는 것도 굉장히 의외예요. 영광이라고 해도 되나요?”
혜리의 거침없는 발언에 이진의 미소가 딱딱히 굳어 갔다. 옆에서 찬우와 미열이 몹시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통에 정신이 혼미했다. 그녀는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며 웃었다.
“하여튼, 선배 덕분에 저도 미뤄 뒀던 제 꿈을 쟁취하러 갑니다. 선배도 힘내세요!”
미련 없이 떠나는 뒷모습은 어딘지 후련해 보였다. 보이는 게 전부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숨기는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속에 이런 꿈을 품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도 과거에 알았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참 한결같은 모습에 존경심이 일었다.
그들이 모두 지나가고 재규가 말을 이으려는 찰나, 이번에도 방해꾼이 나타났다.
“강재규 씨 어디 계세요! 루키 밤 올라갑니다!”
“아차, 저 여기 있어요! 그럼, 다음에 시간 되면 다시 만나자.”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이름에 재규가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밝게 웃으며 훗날을 기약하지만, ‘다음에 시간 되면’이 결코 쉬운 조건이 아님을 모두 알았다.
“자, 그럼 우리도 갈까?”
찬우가 비상구 문을 열며 말했다. 지금이 루키 밤의 차례라면 위드 올의 차례도 머지않았다.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대기실로 돌아가자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에 오를 순서가 되었다.
익숙한 무대 밑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영문 모를 그리움이 물씬 느껴졌다. 고작 한 달 하고 며칠 지난 게 전부일 텐데, 아주 오랜만에 무대에 돌아오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앞으로는 질리도록 돌아올 텐데.’
앞으로 지금껏 경험했던 무대의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배나 많은 무대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이곳 무대 뒤에서 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할 것이다. 모든 연예인이 마찬가지다. 머무르는 시간이 짧건 길건 어떤 어둠은 빛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위드 올의 멤버들이 이진을 주축으로 동그랗게 얼굴을 맞댔다. 얼굴에는 한껏 결연히 다진 각오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이진은 몇 번 해 봤다고 제법 능숙해진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기념비적인 첫 데뷔 무대…….”
이진은 동료들과 한 번씩 시선을 마주쳤다.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 주고 오자!”
이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큰 목소리로 답했다. 혈기 왕성 한 신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찬우가 먼저 이진의 손에 손바닥을 맞부딪히고는 계단을 올랐다. 미열, 하늘, 우진, 제이슨이 그 뒤를 이었다. 마지막은 승현이었다. 그는 손뼉을 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진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고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진은 제일 끝에서 그들을 쫓아 올라갔다.
“형.”
이진이 막 한 계단을 올랐을 때, 승현이 뒤를 바라보고 이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진은 싱긋 미소 지으며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오며 온몸을 전율시켰다.
긴긴 터널을 지나 드디어, 밝은 빛 아래 출발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