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이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승현은 조금 들뜬 얼굴로 그의 손을 가져가더니 손바닥 위에 주먹을 턱 올려놨다.
“뭐야?”
주인님 손 위에 앞발을 턱 올려놓고 간식을 달라고 조르는 강아지가 연상됐다. 그러고 보니 붕붕이는 잘 지내려나. 요즘은 통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늘과 함께 있을 때는 심심찮게 사진을 보여 주거나 동물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 같았지만, 처음 붕붕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진과 틀어진 기억 때문인지 승현은 그의 앞에서 강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까 저녁시간에 찬우 형이랑 오락실 가서 뽑아 온 거요.”
승현이 주먹을 펼치자 손바닥에 툭 동그란 털 뭉치가 떨어졌다. 찌그러진 얼굴에 못생긴 강아지 인형. 마치 이진이 강아지를 생각할 거란 걸 예상이라도 한 것 같았다. 이진은 작게 놀라며 인형을 바라봤다. 무표정한 이목구비가 멍해 보이기도 뚱해 보이기도 해 왠지 무언가를 떠오르게 했다.
“귀엽죠? 형 닮아서 뽑아 왔어요. 원래는 고양이를 뽑으려고 했는데, 얘는 비록 강아지로 태어났지만 생긴 건 얘가 더 형을 닮은 것 같아서.”
승현이 그답지 않게 긴 설명을 덧붙였다.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런 못생긴 강아지더러 이진을 닮았다고 하는 게 어이없긴 했지만, 놀러 간 오락실에서도 그를 생각하며 선물을 가져오는 마음 씀씀이가 갸륵했다.
‘선승현…… 보다 보니 귀엽네?’
길 가다 준다고 하면 받지도 않을 선물을 어디선가 하나씩 주워 와서는 혼자 뿌듯해하는 게 정말 강아지 같고 귀여웠다. 이진이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한 점도 보이지 않는 것도 자신만만해서 보기 좋았다.
불끈불끈, 가슴에서 이상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었으나 굳이 분류하자면 폭력성이나 조바심과 비슷했다. 꽈악. 손에 힘을 주고 폭신한 인형을 터트릴 듯 움켜쥐었다. 손 안에 가득 차 뭉개지는 솜뭉치가 만족스러운 감각을 선사했다.
아까까지 이진의 피부에 눌러붙어 있던 타인의 악의와 견제, 조롱들이 입김 한 번에 훅 날아가는 솜사탕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 승현의 대책 없는 당당함에 물이 들었는지 철이 들 무렵부터 이진을 괴롭혀 왔던 타인의 시선이 어느새 더는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문제가 되었다.
“나랑 닮았어?”
이진이 인형을 얼굴 옆에 들어 보이며 물었다. 솔직히 이렇게 하면 귀여워 보일 거라 계산하고 한 행동이다. ‘닮기는 무슨.’ 남이 말했더라면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생김새였다.
이진의 계산적인 애교가 통했는지 승현의 고개가 평소보다 빠르게 위아래로 마구 움직였다.
“귀엽다. 사진 찍어 줄게요.”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핸드폰을 꺼내 이진의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 댔다.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골라 전송받은 이진은 난생처음으로 이 사진을 어딘가에 올려서 온 동네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승현이 준 선물에 승현이 찍어 준 사진이다. 잘 확대해 보면 이진의 눈동자로 사진을 찍는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요즘 포스팅이 뜸하기는 했지.’
일부러 이유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비록 보정 하나 안 되어 있는 기본 카메라와 초 근접 샷의 콜라보로 탄생한 결과물이라 이진의 미모가 대폭 하향된 사진이었지만, 자신의 외모에 강한 확신이 있는 이진은 신경 쓰지 않고 사진을 그대로 SNS에 업로드했다.
U2zin 안녕하세요. 유이진입니다^^ 이 강아지 저랑 닮았나요? 선물 받았어요.
업로드 버튼을 누르자마자 연달아 날아온 하트와 댓글이 알림 창을 울렸다.
sori911221 미모 무엇?
mink.yung121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귀야 이진아ㅠㅠ
newworld_23 남친짤ㅠㅠㅠㅠㅠㅠㅠ
kim.kim.jisu 본방 기다리고 있니?
lee_d0h2 옷 서포트 아니에요??
└ abc.qqqqq9 맞는 듯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owo_ovo_owo 데뷔만 해봐 아주 그냥;; 셀카고자 아이돌 명단 1위 먹게 생겼어 아주;;;;
sunnyelize.loveya where can i buy it? so cute
└ annabelle.pettersen what. that little fluffy doll?
└└ sunnyelize.loveya no. that cute baby boy. lol
호의적인 댓글 세례에 이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게시 글에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도 보기에 즐거웠다. 이진이 핸드폰을 보다 웃자 승현이 고개를 기울여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이런 거 읽지 말아요.”
“괜찮아. 욕하는 사람 없어.”
“혹시 모르잖아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손을 쓱 뻗어 이진의 핸드폰을 뺏어가 버렸다. 갑자기 핸드폰을 빼앗기고 빈손이 되었다. 이진이 황당한 표정을 짓자 승현이 작게 웃으며 자기 핸드폰을 쥐여 주었다.
“대신 이거 하고 있어요.”
승현이 쥐여 준 핸드폰 화면에는 그래픽이 아기자기한 모바일 게임이 떠 있었다. 비스킷 운동회. 조작 방식이 간단한 횡 스크롤 달리기 게임이었다. 비스킷 캐릭터마다 다양한 생김새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이 캐릭터가 윈올의 누구를 닮았니 하며 비교해 놓은 게시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선승현도 이런 게임을 하는구나. 게임이라곤 시간 때우기용의 단순한 퍼즐 게임만 해 온 이진으로서는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진은 친구 명단 중에서 제법 높은 순위에 자리한 승현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갑작스럽고 또 뜬금없지만 몹시 강력한 생각이었다. 이진은 승현의 얼굴과 제 손 위의 핸드폰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얌전히 게임을 시작했다.
‘그래서 선승현은 단톡 방 들어가 있는 거 맞나?’
당장 확인해 볼 수 있는 증거가 손 안에 있으니 잠시 미뤄 뒀던 궁금증이 샘솟았다. 홈 버튼과 메뉴 아이콘, 메신저 어플. 딱 세 번만 클릭하면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생각이 콩밭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동그란 비스킷 캐릭터를 움직이는 엄지손가락이 자꾸만 홈 버튼을 누르고 싶어 안달을 냈다.
그때 찬우가 다가와 승현을 툭툭 쳤다.
“승현아, 아이스크림 배달 왔대. 같이 가지러 가자.”
“아이스크림?”
“아아. 우리 아까 오락실 다녀왔는데 게임 상품을 지역 화폐로 주는 거야. 그래서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잔뜩 배달시켰지. 너네랑 같이 먹으려고.”
이진의 질문에 찬우가 답했다. 오락실이고 지역 화폐고 결과적으로 잠시간 승현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뜻 같았다.
“어차피 간식 많은데 그냥 받지 말고 나오자니까.”
승현은 귀찮은 듯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찬우는 승현의 어깨에 팔을 턱 걸치고서 함께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이진은 휴게실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쭉 바라보았다.
‘지금이다!’
타이밍이 참. 온 우주가 이진에게 메신저 내역을 훔쳐보라고 허락해 주는 것 같았다.
그냥 찝찝한 것만 해결하자.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 있다 해도 절대 상관 안 할 거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니까. 이진은 정말 대화 내용은 읽지 않고 단톡 방의 존재 여부만 확인하자고 생각하며 꾹 홈 버튼을 눌렀다.
승현의 바탕 화면은 밤하늘에 달이 뜬 사진이었다. 캘린더와 스케줄 위젯 외 다른 아이콘은 보이지 않았다. 메뉴 버튼을 눌렀다. 어플을 기능별로 깔끔히 분류해 놓은 창이 나타났다.
기본 앱, 은행, 게임, 문서, 음악, 기타…….
‘메신저. 메신저는 어디 있지?’
너무 깔끔하게 정리해 놔서 오히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보통은 SNS용 폴더를 하나 만들어 놓지 않나?’ 이진은 폴더를 하나씩 다 눌러 본 끝에 기타 폴더 속에 숨어 있는 말풍선 아이콘을 발견했다. 안 읽은 메시지 개수 알림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찾았다. 이진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엄지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노란색 아이콘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이콘을 클릭하기 직전, 찰나의 양심이 이진의 손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너 인마, 이거 사생활 침해야.’
묘하게 미열 같은 말투의 양심이었다. 이진은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 냈다. 딱 대화 방 목록만 확인하는데 뭐 어때. 정말 싫었으면 잠금이라도 걸어 놓거나 애초에 핸드폰을 맡기지 않았겠지! 이진의 합리화가 양심에게 대항했다.
그사이 잠시 지휘 본부를 잃은 손가락은 방향을 잃고 다른 아이콘을 툭 건들고 말았다. 녹색 아이콘의 인터넷 브라우저였다.
‘안 돼……!’
이진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최신 핸드폰의 반응 속도는 몹시 빨라서 삐끗한 손가락이 액정 위를 스쳐 지나가자마자 어플이 실행되어 버렸다. 놀란 이진이 마구 뒤로 가기 버튼을 연타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승현이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페이지가 화면 가득 들어찼다.
[최근 검색어]
-망상증
-망상장애
-망상증 치료
-과대망상
-과대망상 치료법
-미래 망상
-망상 꿈 미래
이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승현의 최근 검색어 기록이었다.
‘이게 전부…… 뭐야?’
화면에 뜬 글자를 온전히 이해하기도 전, 누군가 거대한 쇠망치로 뒤통수를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이 찾아왔다. 망상과 관련된 수많은 검색 기록.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해도 이 검색어들은 전부 이진을 치료해 보고자 하는 시도로만 보였다.
과대망상이란, 본인이 아주 위대하거나 특별하다 믿는 증상이다. 초능력이나 영적인 능력, 시간 여행 등과 같은 불가사이한 일들과 연관이 되었거나 그런 힘을 지니게 되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자신의 열등감이나 패배감, 불안감 등을 보상받기 위해 노력하다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가 방문한 페이지에는 과대망상을 이렇게 정의해 두었다. 이 설명대로라면 이진의 내면에 열등감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아는 승현이 ‘유이진이 과대망상에 빠져서 헛소리를 한다’고 의심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