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아니야, 갈게.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언제 준비했나 싶어서 물어본 거야.”
“집이 좁아서 한 명씩 불러야 되거든. 미리 배달시켜 놨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던 중 다른 동료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다들 새로 받은 유니폼을 입고 있어 어쩐지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팔에 힘 줘! 으럅!”
함께 사진을 찍자던 미열은 친한 애들을 모아 놓고 우스꽝스러운 구도를 만들었다. 가장 앞에서 카메라를 든 미열이 자세를 취하면 그 뒤에 선 친구들이 이를 따라 하는 식이었다. 미열은 슈퍼맨처럼 팔 근육을 자랑하는 각양각색의 포즈를 취해 댔다. 이진은 빈약한 근육에 힘을 주는 미열을 조금 안쓰럽게 바라봤다.
“마지막은 꽃받침!”
미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금까지 근육을 과시하던 이들이 다소곳이 양손을 턱에 붙이고 한껏 귀여운 척을 했다. 이진도 몇 달 동안 단련한 비즈니스 미소를 띠며 손으로 꽃잎을 만들었다.
사진은 곧 미열의 SNS에 게시됐다.
“나도 보여 주라.”
이진은 찬우의 액정을 보기 위해 고개를 쭉 빼며 말했다. 찬우가 핸드폰을 넘겨주자 미열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진이 너도 계정 하나 만들어.”
“이름 걸고 하는 건 부담스러워서.”
“비밀 계정으로 하면 되지. 친구들만 팔로하고 일상 글 올려. 폰 줘 봐.”
미열의 당당한 손짓에 이진은 핸드폰을 넘기고 말았다.
“아이디는 뭐가 좋지? 2Zin이 좋아 UEZin이 좋아?”
“너무 심심한데. 2zinzzang 이런 건 어때?”
미열과 찬우가 차례로 의견을 냈다. 아직 아이디와 닉네임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이진은 왜 아이디를 저리 복잡하게 만드는지 이해를 못 했다.
“뭐가 다른 거야?”
“그냥 대충 하자.”
미열은 아이디 ‘U2zin’, 비밀번호 ‘2zinzzang!’ 계정을 새로 만들고 자신을 팔로우시켰다. 찬우도 이진의 핸드폰을 뺏어 가 자신의 계정을 입력했다. ‘kicked_woo1’라는 아이디만 봐서는 그의 계정인지 유추하기 어려웠다.
“너도 인스타 했냐?”
“스토리는 하는데 포스팅은 자주 안 해. 그냥 아는 형들한테 연락하기 쉬워서 하는 거지.”
찬우와 미열도 서로를 친구로 추가했다.
핸드폰을 돌려받은 이진은 신기해하며 그들의 계정을 유람했다. 백댄서로 참가한 공연에서, 평소 연습실에 앉아서, 자잘한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찬우의 말대로 윈올에 참가한 이후로는 아무런 게시글이 없었다. 대신 프로필 사진을 누르면 보이는 ‘스토리’라는 기능에서 찬우의 아침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진은 찬우에게 듣지 않고도 그의 일상을 엿보았다. 드디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라도 온 듯 핸드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__yoooonju님, cherry_XD님이 회원님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babo34242님, 2jinloveS2님 외 13명이 회원님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kpop_fans님, winAlllover님 외 24명이 회원님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알림 뭐야?”
“아! 벌써 너인 줄 알고 팬들이 팔로하나 보다.”
“그걸 어떻게 알아?”
“최근 활동 내역 확인 가능하거든. 나랑 찬우가 너 팔로우한 거 봤나 보지.”
핸드폰은 두 사람이 말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진동했다. 대부분은 팔로우 알림이었지만 중간중간 다른 것도 섞여 있었다.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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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확인한 두 개는 가장 초반에 보내온 것이었다. 이것 외에도 팬이 보내온 메시지는 무수히 많았다. 어떠한 말 없이 하트만 적힌 메시지도 있었다. 손이 저릿했다. 이진 자신을 향한 관심이 곧 진동으로 표현되는 것만 같았다.
“줘 봐. 우선 DM 꺼 줄게. 그리고 어지간하면 팬들 댓글에 반응하지 마. 너라면 안 그러겠지만…… 이상한 포스팅 보고 하트 누르지도 말고. 다 확인 가능하다.”
미열이 팔로우 알림에 벌써 겁을 먹은 초보에게 신신당부했다. 그의 손에서 지잉지잉 떨리던 핸드폰은 곧 진동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선승현이랑 정하늘 팔로우 걸어 줄게. 이우진도 팔로우할래? 이미지 상으로는 하는 게 좋겠지? 얘도 뭐 자주 하는 건 아니라.”
“뭐야? 이진이 형 인스타 만들었어?”
미열의 화면을 몇 번 터치하자마자 촬영장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던 하늘이 즉각 반응했다.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아까까진 여기서 사진을 찍다가 어느새 저기 가서 하늘과 놀고 있는 승현이 보였다.
“방금 내가 만들어 줬어.”
“이진이 첫 포스팅 우리가 먹자.”
“사진 한 방 더 찍어?”
그래서 얼떨결에 이진과 친하다 자부하는 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우르르 모였다. 어디든 얼굴을 내밀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곧 생존과 직결 되었기에 같이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미열과 찬우, 하늘이 끼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1라운드 멤버들끼리만 사진을 찍게 됐다.
“귀퉁이에 진영이 형 오려 붙이면 어그로라고 욕먹을까?”
“어후. 김진영 얘기는 꺼내지도 마. 그 의리 없는 새끼.”
하늘의 농담에 미열이 치를 떨었다. 미열은 진영의 하차를 정말로 싫어했다. 진영이 성공한다면 잘 지내기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이 크게 상한 것 같았다.
데뷔 전 하차도 이렇게 싫어하는데, 3년 뒤 미열은 승현의 탈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친구를 쉽게 사귀고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만큼이나 쉽게 냉정해지는 사람이었다. 이진은 미열의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거리감을 느꼈다.
“그러지 말고 다른 애들이랑도 찍어서 여러 장 올리자.”
“인스타는 한 장 간지가 있는데 구질구질 열 몇 장씩 올리는 게 아니지.”
“이진이가 그러면 팬들은 얘 사진 여러 장 올리는 법 모르는 줄 알아.”
미열의 정확한 지적에 인스타 간지를 주장하던 하늘이 쉽게 수긍했다. 이진은 제 SNS를 관리하려 드는 친구들 덕분에 별로 친하지 않은 이들 하고까지 사진을 찍은 뒤 무려 다섯 장의 사진을 첨부한 포스팅을 완료했다. 그리고 올리기 전 미열에게 검사를 받았다.
[U2zin 안녕하십니까. 유이진입니다. 지금은 촬영 대기 중입니다. 미열이가 계정을 만들어 주어서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종종 이곳에서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이진아, 너 어디 선거 나가니?”
“이상해?”
“좀 더 음성 지원이 되게 써 봐. 원래 말투로.”
“이진이 좀 더 쿨할 줄 알았는데 완전 구구절절하구나…….”
미열의 교정을 받은 이진은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글을 고쳤다. 어깨너머로 수정 중인 이진의 글을 읽은 찬우가 한마디 했다. 하늘도 킥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선승현처럼 사진만 띡 올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승현이 형 해킹당한 거 생각난다.”
“이거 봐 줘.”
누군가 승현의 핸드폰 백업용 클라우드 계정을 해킹해 다운받은 사진으로 그를 사칭한 일이라면 이진도 알고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계정을 만든 승현이 이진의 사진을 올리고자 허락을 구하기도 했고.
그러나 지금 승현의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이진은 세 사람 앞에 화면을 들이밀었다.
[U2zin 안녕하세요. 유이진입니다*^^* 미열이가 계정을 만들어 주어서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지금은 촬영 대기 중인데 보시듯 여름이 다가와 유니폼이 반팔로 교체되었습니다. 시원한 옷차림도 좋지만 아직은 밤바람이 쌀쌀하오니 일교차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종종 이곳에서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화창한 하루 되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진아, 혹시 장래 희망이 기상 캐스터야?”
찬우의 말에 하늘이 뒤집어져라 웃었다. 미열도 ‘화창한 하루 되시고’는 어디서 나온 표현이냐고 딴지를 걸었다.
“이것도 이상해?”
“사실 적시 외에는 할 말이 없는 거야?”
그러고 보니 적힌 말이 죄다 객관적 사실들 뿐 주관적 감상이 들어가진 않았다. 이진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기분 같은 걸 써 봐.”
미열이 만들어 주어서 가볍게 시작한 건데, 첫 포스팅부터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이진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집중하여 포스팅을 고쳤다.
[U2zin 안녕하세요. 유이진입니다*^^* 유능한 친구 미열이가 계정을 만들어 주어서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반가워요. 지금은 촬영 대기 중인데 친구들 덕분에 대기 시간도 지루하지 않아요. 여름이 다가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유니폼이 반팔로 교체되었습니다. 덕분에 익숙한 촬영장이 신선하게 느껴지네요. 시원한 옷차림도 좋지만 아직은 밤바람이 쌀쌀하오니 일교차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감기 걸리시면 슬프니까요ㅠ_ㅠ 감기에 걸리면 만사가 서러워져요. 여러분은 아프지 않고 꼭꼭 건강하세요. 종종 이곳에서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활기찬 하루 되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유이진 올림-]
이진은 마지막 검사를 위해 미열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께 일기를 검사받던 것처럼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미열이 화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엥? 너 벌써 올렸는데?”
미열에게 핸드폰을 넘기다가 실수로 업로드 버튼을 눌러 버린 것이다. 쓸데없이 섬세한 터치 기능을 자랑하는 핸드폰 같으니라고! 어차피 허락만 받고 바로 올릴 예정이었지만, 의도치 않은 상황에 조마조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정이나 삭제할 수도 있긴 한데…… 뭐, 이쯤 했으면 됐다! 잘했어.”
“이진아, 너 너무 웃긴다. 감기 걸리면 서러워?”
“형, 이 정도면 소속사에서 써 준 줄 알아요. 걱정 말아요.”
다들 그렇게 말해 주니 다시 안심이 됐다. 이진의 포스팅에는 순식간에 많은 댓글과 하트가 달렸다. 조금 여유가 생긴 이진은 천천히 알림 창을 확인했다. 포스팅을 작성하는 사이에 온 팔로우 알림들 중에는 이진이 아는 얼굴들도 여럿 보였다.
1라운드에서 같은 팀이었던 윌리엄부터 같이 무대를 한 강재규, 특별한 친분은 없지만 상위권 멤버로 묶이는 박희영, 허동규, 강지흔, 민서호에 하늘의 친구인 나봄. 거기다 원수 같은 임채일, 남주헌까지……?
팔로우 목록을 확인하다가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은 이진은 핸드폰을 고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벌써 오늘 분의 소셜 활동을 끝낸 기분이었다.
그러나 대기 시간을 알차게 사용했을 뿐 오늘의 본 촬영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