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이진이 응급실로 실려와 이목을 끌었다고 승현이 언급하긴 했지만, 그날의 병원행은 꽤 요란하게 기삿거리가 되었다.
이진 개인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서바이벌이란 이름을 건 오디션 프로그램이 얼마나 출연자들에게 가혹한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시사 논평 기사였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끌기 위해 이진을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형 포털 사이트 연예부 기사란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는 것은 아주 신기한 기분이었다.
스튜디오에서 리더가 되었을 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숫자로 전해진 인기도는 머리론 알아도 피부로 와닿지 않았는데, 스튜디오를 벗어난 곳에서 화제의 중심에 있다는 신호를 받자 척추부터 시작된 자극이 등과 허리, 가슴을 지나 머리 꼭대기까지 찌릿하고 울렸다.
“과보호는 무슨. 신경 끄고 녹음이나 하러 들어가.”
승현은 끝까지 미열에게 제대로 된 경위를 밝히지 않았다. 현재 승현이 이진의 집에서 숙박하고 있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이진이 병원에 가게 된 이유 정도는 말해도 좋을 텐데 고집스럽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진은 승현의 뻔뻔한 얼굴을 바라봤다. 굳이 포커페이스를 고수하는 편이 아님에도 그의 표정은 늘 묘하게 천연덕스럽고 차분했다. 승현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이진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잠깐 표정을 살피는 듯하더니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이진은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무릎 위에서 손을 꼼질거렸다.
차례를 기다리며 녹음실 밖 복도에 앉아 있을 때 채일과 주헌이 그들 앞을 지나갔다. 둘은 이진에게 살짝 목례만 하고 스쳐 지나갔는데, 이제는 그렇게 싸우다가 다시 같이 다니는 둘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방송을 보고 알았는데, 칠색찬란 팀의 이름을 복고복고로 바꾼 범인은 바로 두 사람이었다. 새벽 감성에 취해 자기들끼리 울고 짜며 사과하고 화해한 두 사람은, 화해의 증거로 팀 이름을 복고복고로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곧장 지하 연습실로 내려가 정말로 이름을 바꿔 버린 것이다.
둘 사이의 일을 해결하는데 팀명을 바꿀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칠색팔색인지 복고러워인지 뭔지.
이진 팀의 녹음 차례가 되자 목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욕심이 너무 많은데? 혼자만 파트가 이렇게 많으면 어떡해?”
처음 프로듀서는 이진의 파트가 과도하게 많은 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며, 아무리 방송 때 합의를 봤다고 해도 사운드가 이런 식으로 들어가면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며 적당히 기계로 실력을 손볼 수 있는 파트는 다른 팀원에게 넘기라고 말했다. 이진은 녹음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예 모르는 척하며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불러 버렸다.
프로듀서는 이진의 객기를 보고 질린 표정을 지으며 녹음 순서를 마지막으로 바꿔 버렸다. 스튜디오 직원이 녹음 시 주의 사항을 다시 한번 전달하는 동안 이진은 그가 곧 태도를 바꿔 돌아오리라고 확신했다. 그다음 차례가 바로 주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갈게요.”
“아, 어차피 이 파트 이진이 형 파트였었잖아요. 그냥 형 주면 안 돼요?”
프로듀서는 주헌의 말에 이마를 짚었다. 다음 차례는 의욕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태원이었다. 결국 이진의 솔로곡 아닌 솔로곡이 음원으로도 완성되었다.
“형, 오랜만이다! 옆에 승현이 형 녹음 중이야. 구경 가자.”
밖에서 마주친 하늘이 승현과 미열을 구경하러 가자며 이진을 옆 녹음실로 이끌었다. 하늘의 옆에는 나봄이 따라붙었는데 하늘과 봄 둘 모두 이진과는 어색한 사이라 그런지 녹음실로 향하는 다리가 쭈뼛거렸다.
“거기 조금만 힘 빼서 한 번 더 갈게요.”
승현이 부스에 들어가 있었다. 헤드셋을 끼고 얼굴만큼 커다란 마이크 앞에 선 그를 보자 왠지 작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진의 기준으로 승현의 노래 실력은 결코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목소리가 좋아 자신의 음역대에선 제법 근사하게 들리는 데다가 노력한 만큼 발전하는 타입이기는 했다.
1라운드, 아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예리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던 이진은 냉철하게 말해 아직은 ‘그것뿐’이라고 평가했었다.
“와…… 저 형은 진짜 금방 는다.”
그러나 음악이 흘러져 나오고 승현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이진은 그 평가에 검은 줄을 쫙 긋고 온통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봄이 중얼거리는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은 가히 진화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실력이 늘어 있었다. 호흡이 어떻고 발성이 어떻고를 떠나 듣기 좋았다. 몸을 움직일 때도 그가 천성적으로 힘을 조절하는 법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자신의 분야가 되니 소감이 남달랐다.
“야아, 선승현. 용 됐다, 용 됐어.”
소파에 앉은 미열은 저게 다 자신의 덕분이라며 의기양양한 소리를 했다. 그러나 그건 뭘 모르는 소리였다. 이진 자신도 본인의 실력에 큰 확신과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지만, 저런 식으로 순식간에 실력이 느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소름이 쫙 끼쳤다.
타고난 실력이 아닌 건 분명 이진의 눈과 귀로 확인을 했다. 단기간에 꽃피울 만한 잠재력이 승현의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다.
순간 가슴속에서 질투가 스멀대며 올라왔다. 익숙한 열기가 통증을 불러일으켰다. 왜 하필, 왜 너만 모든 걸 그렇게 쉽게 얻는 거야? 억울한 질문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승현이 유리창 너머로 이진을 발견하고 방긋 미소를 지었을 때 그 감정은 이내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추악한 우월감 따위가 아닌 더 긍정적이고 밝은 색을 띠었지만 이진의 경험으로는 쉬이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날 저녁 승현과 이진은 나란히 앉아 윈올의 본 방송을 봤다. 순위 발표식인 4화와 2라운드의 시작인 5화는 건너뛰고 6화부터 봐야 했지만 직접 출연했던 만큼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 헷갈리는 것은 어느새 참가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캐릭터성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하늘의 모든 행동에는 작은 효과음 자막으로 귀염, 뽀짝, 큐티 깜찍 등 시니컬한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가 붙었다. 승현도 그 자막이 우스운지 거대한 강아지 인형을 끌어안고 킥킥댔다.
승현은 그 인형을 멍진이라고 불렀다. 이진은 여태까지 승현이 그를 놀리기 위해 멍멍이와 이진을 합쳐서 한심한 이름을 지어 준 줄 알았다. 그런데 멍진이라는 이름이 화면 속에도 등장했다.
이진이 밥을 먹다 말고 우두커니 멈춰선 장면이었다. 자막은 ‘멍진 또 등장’이라는 식으로 이진을 4차원적 캐릭터로 만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승현의 옆으로 불꽃 아이콘이 한번 번쩍이더니 얼굴이 흐릿하게 클로즈업됐다.
깡깡깡, 승현의 젓가락이 이진의 식판을 두들겼다. 그러자 화면 속 이진은 승현을 한 번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식사를 재개했다.
“나 평소에 저래?”
“형은 안 그러고 멍진이가.”
승현이 인형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충격받은 이진이 그를 물끄러미 처다보자 승현이 그냥 머리를 당겨 인형 위에 눕혀 버렸다. 이진은 그대로 누워 다시 TV에 눈을 가져갔다.
-제이, 한국말 공부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영어로 써 봐. 번역해 보자.
-나 한국어 잘하는데? 형이 힙합을 구닥다리로 배워서 그런 건데?
하하, 호호 사이좋던 진영과 제이슨은 가사를 수정하며 무섭게 싸웠다. 그들의 싸움엔 랩퍼의 자존심 대결이라는 소제목이 붙었다. 누구보다 야성적인 남자들의 어쩌고 하는 자막을 달고 말다툼이 고스란히 방송됐다.
“싸울 거면 랩으로 싸우지.”
승현이 구시렁댔다.
-진정, 진정해요 형님.
-컴 다운, 제이슨!
두 사람을 말리는 팀원들의 모습이 나오더니 이내 개인 인터뷰 영상으로 전환됐다.
-아니……. 이게 싸울 일인가 싶었죠, 저는.
-싸울 순 있어. 싸울 순 있는데…….
-더 좋은 가사를 고를 수는 없죠.
-궁금한 거는…… 다른 팀도 이러나?
중소 기획사 스타로 Go의 연습생 출신 김순한(20)의 말을 마지막으로 화면은 이진 팀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주헌과 채일이 거의 멱살잡이를 하기 직전으로.
-채일아!
-너희 왜 그래!
-그래, 싸우진 말자!
이진이 없는 연습실에서 일어난 싸움에 음산한 효과음과 함께 공포 영화 타이틀용 폰트인 듯한 자막이 떠올랐다.
[과연 이들에겐 무슨 일이……?]
그리고 곧 그동안 그들의 사소한 갈등 장면이 짧게 편집되었다. 채일이 울거나 주헌이 지호와 진지하게 상담하는 장면도 나왔다. 한숨만 푹푹 내쉬던 수원은 복도 끝에 몰래 숨어 눈물을 흘렸다. 전체적으로 채일과 주헌이 갈등의 주범이고 이진과 우진이 의견 조율자로 나머지는 방관자로 연출되었다.
-솔직히 그때는 ‘이진이 형, 어디 갔어요!’ 이 생각만…….
-리더 형이 와야 뭔 얘기가 진행이 되니까요.
곧 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드디어 왔네.
그 뒤로는 기억대로 흘러갔다. 이진이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 내는 장면이 나오자 승현은 손을 올려 이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이사이 멤버들의 개인 인터뷰가 적당히 편집되어 추가되었다. 개인 인터뷰에서 보여 줬던 영상이었다.
-사실 팀원들이 불만이 좀 쌓이긴 했어요. 리더 분한테요.
-다 같이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하죠. 리더 형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도 응원해 주시는 분이 계신데…….
이진이 USB를 꺼내자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이진의 기나긴 작업이 빨리 감기로 편집된 영상이 삽입되었다. 이어 우진이 눈물을 흘리며 이진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인터뷰가 나왔다.
‘모두에게 상처만 되고 마는…….’이란 자막이 깔리고 곳곳에 흩어져 각각의 감정을 삭히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형 달래 준 건 안 나오나?”
승현이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손으로 이진의 볼을 조물조물해 보지만 딸려 나오는 살이 별로 없어 쓰다듬는 꼴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승현이 보고 싶어 하던 장면도 잠깐 화면을 스쳐 지나갔다.
“기분 이상하네.”
“그래도 초반에 나와서 다행히 큰 이슈는 안 될 것 같네요. 형 고생한 것도 같이 묻힐 것 같아서 짜증 나긴 하지만.”
승현이 이진의 편을 들어 주자 이미 예전에 잊은 줄 알았던 앙금이 어느새 떠올라 다시 눈 녹듯 사라졌다.
승현 팀에서는 분량을 가지고 말이 많았다. 너무 한두 명에게만 몰아주는 게 아니냐는 말에 승현은 방금 말한 것처럼 ‘그렇게 불만이면 실력으로 이겨 봐.’라며 갑자기 개인기를 선보일 자리를 깔아 줬다.
“통 편집 당할 수도 있지만 저런 식으로라도 해야 한번이라도 더 눈에 들죠. 사실 개인이 알아서 잘 챙겨 먹는 게 아니라면 무대에서의 분량은 아직까진 큰 의미가 없거든요.”
이진이 물어보지 않아도 승현은 제 행동을 변명했다.
“근데 쟤는 다음 라운드에선 떨어질 거 같아서 좀 미안해요. 워낙 숫기가 없기도 했는데…….”
확실히 승현에게 이의를 제기했던 팀원은 독점으로 카메라를 차지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쭈뼛대다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대신 다른 멤버가 벌떡 일어나 노래를 채 갔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의 인터뷰가 보이스 오버로 흘러나왔다. 승현과 동갑인 장현규라는 연습생이었다.
-제가 남의 분량을 결정할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이 가질 뿐이죠.
이번엔 승현의 목소리였다. 힐끔 눈을 들어 바라보자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쟤 좀 닥쳤으면 좋겠는데.”
승현이 구시렁거렸다. 이진은 대답하지 않고 화면 속 그를 바라봤다. 승현은 팀원들에게 독선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깨를 으쓱했다.
승현은 거의 쉬지도 않고 연습했다. 잠깐 연습실에서 나간다 싶었더니 한 층 위에 찬우에게 찾아가서 의견을 구하거나 했다. 그러면 찬우는 또 자기 팀 안무를 보여 주며 어떤 게 낫냐고 물어봤다.
-저는 그냥 제가 열심히 하는 거예요. 제가 좋아, 하는 사람들하고…… 함께하고 싶으니까.
승현의 개인 인터뷰 영상이 짧게 나왔다. ‘제가 좋아 하는 사람들’이라는 대사에 승현의 등 뒤로 배경과 어깨 밑이 삭제된 미열, 찬우, 그리고 이진이 떠올랐다. 뾰로롱 효과음과 함께 뺨에 홍조까지 칠해졌다.
“저거 제가 넣어 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누가 뭐래?”
“오해하지 말라고…… 나중에 형이 따질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이진의 머릿속엔 그 이미지가 강력하게 박혀 좀처럼 떨쳐지지 않았다. 비록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한들 남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진은 승현의 좋아하는 사람 명단에 오를 만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이진의 머릿속을 잠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