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나 감기 걸렸는데 옮으면 어떡해.”
“전 감기 같은 거 안 걸려요.”
승현은 눈 하나 깜박 안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초등학생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난 감기 같은 거 걸려 본 적 없다’ 하고 자랑하는 것 같았다.
“이불도 없고…….”
“이참에 새로 사요. 살 때 된 거 같은데.”
승현이 납작한 이불을 슬쩍 들췄다. 이진이 반사적으로 손을 찰싹 때렸다.
“아, 죄송해요.”
남의 집 살림살이에 이러쿵저러쿵하면 안 됐다고 승현이 사과했다.
“그래도 몸 쓰는 사람이 딱딱한 바닥에서 자면 안 돼요.”
그건 또 맞는 말 같아서 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걱정을 해 준 사람은 고등학생 때 이진의 입시를 봐 주던 선생님이 전부였다. 그때의 기억이 피어오르는 것 같아 더욱 입을 다물었다.
물론 승현을 재워 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와 한 방을 쓴 날짜만 헤아려 봐도 한 달은 넘었으니 생활면으로 불편한 점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진과 승현 모두 실내에서는 대체로 죽은 듯이 지내는 편이라 별달리 부딪힐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역시 사적인 공간에 타인을 들인다는 게 꺼려졌다. 이 원룸은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근 20년을 살았던 이진이 처음으로 가진 개인 공간이었다. 마음을 여는 것과 집 문을 열어 주는 것. 둘 다 이진에겐 많은 용기로 필요로 하는 일이였다.
“저 지금 지갑이 없어서 그렇지, 모바일 뱅크로 형 계좌로 이체해 줄 수 있어요.”
“그, 그런 문제가 아니라…….”
승현을 쉽사리 들이기에는 이 방에 들어와 봤던 사람이라곤 집주인과 공인 중개사, 장판 도배 기사님들, 대학 시절 근처 술집에 자주 꼴아 있던 동기 한둘 정도였다.
‘왜 이렇게 많지?’
떠올리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드나든 것 같아 이진은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승현을 재울 땐 술 냄새도 안 나고, 잠꼬대도 안 하고, 아침을 차려 줄 필요도 없을 테니 훨씬 나았다.
“정 안되면 모텔이라도 갈게요. 생각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몸 좀 사리려고 한 건데…… 모텔 간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니까, 그냥 무시하죠 뭐.”
그런데 이진이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는 동안 승현도 알아서 생각을 굳힌 모양인지 갑자기 재워 달라는 말을 철회했다. 승현은 달그락대며 다 먹은 뇌물 접시를 들고 왔던 종이 봉지에 담아 수거했다. 어디서 찾았는지 물 적신 행주로 식탁까지 싹싹 닦아 다시 냉장고 틈에 끼워 둔 승현은 미련 없이 현관으로 향했다.
“아, 이건 감기약이요. 어디가 아픈지 잘 몰라서 그냥 종합으로 달라고 했어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려던 승현이 이진을 향해 돌아보고 주머니를 뒤지더니 네모난 상자를 건넸다. ‘감기에 싹! 아프지 말아요!’ 케이스에 적힌 아기자기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승현을 배웅하기 위해 현관 앞에 서 있던 이진은 두 손으로 약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감사 인사를 하며 작게 기침했다. 승현은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고 이진의 집에서 떠났다. 또다시 이진만이 남았다.
‘바보. 생각할 시간 좀 주지.’
잠깐 서 있었다고 관절이 후들거려 이진은 다시 이불 속으로 다이빙했다. 맨바닥이나 다를 게 없는 감각에 눈을 갸름하게 뜨고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렸다. 입금된 돈에서 한 달 치 식비를 제하고 얼마쯤 사용할 수 있을까. 요즘 푹신한 이불은 얼마쯤이면 살 수 있더라.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서 새 이불이라도 사 둬야 하나…….
가끔 이진의 집을 숙박 시설로 썼던 동기들에겐 이불을 내줄 생각조차 안 했고 어쩌다 이불 빨래를 하는 날에는 그냥 담요를 덮고 맨바닥에서 잤다. 어차피 이 이불도 취직하면 버릴 예정이었으니 슬슬 바꿔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은 계기도 없고 상당 기간을 숙소에서 지냈기에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진은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이유들을 만들어 냈다.
그때, 똑똑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형…….”
끝을 늘어뜨린 어투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분명 승현이었다. 이진은 상반신을 번쩍 들고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저 자고 가도 된다고 언제 말해 줄 거예요?”
똑똑똑,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진은 아픈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현관문 앞으로 달려갔다. 벌컥 문을 열어젖히자 이진의 머리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퍽 소리가 나더니 승현의 신음이 들렸다.
“아야.”
“다쳤어?”
“음, 이렇게 금방 달려 나올 줄 모르고…….”
승현이 이마를 쓰다듬으며 현관문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승현은 아직까지 뺨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이진은 본인 때문에 승현이 자꾸 다치는 것 같아 속상했다.
“계속 기다린 거야?”
“불쌍한 척하면 형이 그냥 자고 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자고 가도 괜찮아.”
이진은 승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덥석 대답했다. 자신의 말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자 민망함에 볼이 후끈거렸지만 승현은 놀리지 않고 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고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이진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승현은 이진의 집에 정식으로 빌붙자마자 그에게 감기약을 먹이고 재워 버렸다. 이진은 이불에 누워 편하게 눈을 감았다.
‘자다 죽으면 적어도 얘가 시신은 수습해 주겠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감기약은 그다지 독하지 않을 텐데 이진은 솔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이진은 새 이불 위에 누워 있었다. 침대만큼 푹신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이었다. 이불 위에 그려진 꽃들도 촌스럽지 않고 아주 고급스러웠다.
“선승현?”
“어, 형 깼어요? 끙끙대던데 조금 더 누워 있어요.”
승현은 벽에 기대 양팔로 커다란 인형을 껴안고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승현에게 받은 강아지 인형이었다. 그에게 받아 온 뒤로 어딘가에 처박아 두고 잊고 있었는데 용케 찾아냈다.
“이거 뭐야?”
이진이 이불을 들썩이며 물었다. 먼지가 일어 기침이 나왔다.
“동생한테 지갑 받아오는 길에 장 봐 왔어요. 사는 김에 이불도 샀는데 요는 라텍스예요. 앞에 매장 있길래.”
남의 세간살이를 말도 없이 교체한 사람치고 승현은 태연했다. 뻔뻔한 얼굴을 보아하니 이진이 진심으로 기뻐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말도 없이?”
“어? 나가기 전에 물어봤잖아요. 형이 응, 하고 대답했는데.”
“내가?”
이진은 요란한 삑사리를 냈다. 누가 들어도 잠꼬대일 게 분명한 대답이었을 터다. 버석한 목에 공기인지 먼지인지가 걸려 기침이 나왔다. 승현은 생수를 꺼내 이진에게 건네 줬다. 무릎걸음으로 기는 꼴이 아주 제 집 같아서 이진은 갑자기 열이 확 뻗쳤다.
“이…… 또라이야!”
그러고 보니 승현의 뭘 믿고 문을 열어 줬는지 모르겠다. 이진에게 약을 먹이고 얼른 잠재운 것부터가 수상했다. 잠든 틈을 타 노트북이라도 훔쳐서 달아났을지도 모르는 놈인데! 물론 승현은 도둑질을 하는 대신 집 주인의 잠꼬대를 핑계 삼아 남의 이불을 몰래 바꿔 뒀지만, 지금 이진에겐 도둑놈이나 이상한 놈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네? 형이 괜찮다면서요!”
“정상인인 척 그만해! 이…… 막무가내, 고집불통! 누가 남의 세간살이를 맘대로 바꿔!”
눈 뜨고 코 베였다는 생각에 이진은 승현을 마구 비난했다. 믿었는데 술 취한 채 이진의 집에 마구 쳐들어오던 동기 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도 언제나 이진에게 보답이라며 맥주 안주나 담배를 두고 갔다. 이진은 돈이나 내놓으라는 말을 하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맛있는 걸 먹었다고 방심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승현은 이진의 욕을 듣더니 아주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이진과 싸웠을 때 본 적이 있는 표정이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 무조건 자기가 맞고 이진이 틀리다고 하는 그 표정이었다.
“허, 참. 지금 누가 누구한테 고집불통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승현은 제 잘못도 모르고 이진에게 반격을 가했다. 비쭉대는 말투가 아주 재수 없었다. 이진은 환자인데 말로 얻어맞고 말았다. 몇 시간 전에 감기약까지 먹었는데…… 감히 그 누구도 이진을 비난할 수 없었다.
“너…… 설마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솔직히 고집불통은 형이죠.”
“우, 웃기지 마!”
이진은 승현이 자신을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이유 모를 충격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현은 팔짱을 떡하니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이진을 내려다봤다.
“융통성 없는 사람이 고집불통이지, 그럼?”
“내…… 내가 융통성이 없다고?”
“아니. 무슨 사람이 이렇게 자기 성찰이 부족해요?”
승현이 피식 웃었다. 이진은 여태까지 자신이 성격이 나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기적이고 소심하다는 점에서 내린 판단이었지 결코 스스로를 융통성 없는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대체로 남의 결정에 휩쓸리는 성격이었고 그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의 결심을 굳건히 쌓아야만 했는데…….
“어, 어떻게 그런.”
“나한텐 또라이라고 해 놓고 무슨 고집불통에 충격을 받아요?”
이진은 헐떡이며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요가 얼마나 도톰한지 바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해…….”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왔다. 눈물이 끓는 물같이 뜨거웠다. 눈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속에서 불길이 일어서 그랬다. 그리고 이진의 속에 불을 붙인 건 바로 은혜도 모르고 환자인 집주인 욕이나 하는 멍청한 고집불통 선승현이었다.
이진이 갑자기 쓰러져서 훌쩍이는 소리를 내자 당황한 건 승현이었다. 승현은 아까처럼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이진의 상태를 확인해 보려는 듯 손을 뻗길래 이진은 매몰차게 그 손을 치워 냈다. 휘두르는 손의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진 걸 이진만 몰랐다.
“저리 가!”
“손이 왜 이렇게 뜨거워요? 형? 괜찮아요?”
이진은 아마도 승현이 새로 사 온 것이 분명할 베개에 얼굴을 묻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억울한 소리를 냈다.
“얹혀사는 주제에, 자기는 건강하면서……. 나는 아픈데, 자기가 더 어리면서……. 내가 더 불쌍한데…….”
“몸이 불덩이잖아. 형, 정신 좀 차려 봐요!”
승현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 애절한 부름에 대답하기에는 이진은 꿈속에서 승현을 꼬챙이에 꿰어 지옥 불 위에 구워 먹느라 바빴다. 지옥 불의 열기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게 만들었지만 이진은 아랑곳 않고 잘난 척쟁이 선승현이 매달린 꼬챙이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장난쳤다.
‘어디 살고 싶으면 미안했다고 빌어 봐!’
‘잘못했어요, 형! 미안해요, 형!’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이진의 마음은 도통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다 시켜 봤는데 승현이 너무 순순히 대답하는 바람에 재미가 없어졌다.
“형, 눈 좀…… 형!”
그 무렵 이진은 자신을 굳게 붙든 팔을 느낀 것 같았다. 어디선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