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이진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진동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전날 쓰러지듯 잠든 이후 잠깐 깨어나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대로 다시 곯아떨어진 뒤로는 기억이 없었다. 오랫동안 꿈속에 머물던 정신은 안락한 잠 속으로 달아나고 싶어 했다.
이진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이불에 문지르며 팔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었다. 팔을 움직였더니 등 근육이 뻐근하게 아파 왔다. 끄응, 소리를 내려니 목도 칼칼했다. 잔기침을 몇 번 하는 사이 손끝에 얕은 진동이 느껴지고 이진은 촉감에만 의지해 밋밋한 액정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이진은 한마디를 하고 몇 초 동안이나 기침을 했다. 정신이 몽롱해서 핸드폰에 대고 기침을 하는지도 몰랐다.
[형, 아파요?]
“누구세요?”
[저 승현이에요.]
이진은 잠시 ‘승현이’가 누군지 생각했다.
“누구시죠?”
정체를 물었으나 상대방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진은 그 틈을 타 이불 속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꼬르륵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 관절도 지지 않겠다는 듯 으드득댔다.
[……저 선승현이요.]
“음…….”
이진은 순간 자신이 무슨 TV예능 프로 시청자와 대화하기 코너에 우연히 당첨되기라도 했나 고민했다. 그게 아니라면 웬 질 나쁜 장난 전화에 걸렸거나. 혹은 자신의 지인 목록 중에 운 없게도 ‘선승현’과 동명을 가진 사람이 새로 추가되었는지도 생각해 봤다.
[형?]
“아, 이거 혹시 무슨 방송 촬영이에요?”
짚이는 구석이 없어 이진은 우선 첫 번째 가설부터 확인하고자 했다. 베개가 불편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이리저리 꺾어 보는데 수화기 너머로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야? 벌써 들키면 안 되던 건가?’ 이진은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에 머리를 골똘히 굴렸다.
[촬영은 금요일에 끝났잖아요. 이제 월요일도 다 끝나 가는데 아직도 헷갈려요?]
“뭐가.”
이진은 눈을 끔뻑이며 흐리멍덩한 시야를 회복시켰다. 약간 누리끼리한 흰 천장과 익숙한 파란 꽃무늬 이불.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자 누렇게 변색된 벽지와 노란 장판이 보였다.
이진이 대학 시절을 보냈던 과거 자취방과 똑같…….
“헉…….”
[형?]
어디선가 날아온 야구공이 이진의 뒤통수를 세게 갈기고 사라진 것 같았다. 눈앞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그간의 기억들이 눈앞으로 차라락 스쳐 지나갔다.
‘나 진짜 선승현이랑 아는 사이지…….’
놀라 숨을 크게 들이쉬자 기도가 콱 하고 막히며 거센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는 이유가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유명한 연예인이랑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된 게 놀라워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거친 기침에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형 진짜 많이 아픈가 본데 밥은 먹었어요? 죽이라도 사 갈게요.]
“아냐. 쿨럭…….”
[저 어차피 이 근처예요. 집 주소만 찍어 주세요. 금방 갈게요.]
이진은 핸드폰에 찍힌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일요일 4시. 거의 열여덟 시간을 잠들어 있었음에도 몸이 축축 늘어지고 눈이 자꾸만 감겼다.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린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걸 보니 이렇게 자고도 다 낫지 않은 것 같았다. 이진은 이러다 아무도 모르는 채 홀로 죽는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그, 그러면…….”
[주소 문자로 남겨 주세요. 제일 비싼 걸로 사 갈게요.]
승현은 이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진의 머뭇거림이 긍정의 신호라는 걸 곧장 알아들은 것이다. 이진은 그게 어쩐지 이상했다. 누군가가 이진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상황이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아픈 이진을 걱정하고 죽을 사다 준다고 하는 사람을 거절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오히려 이쪽이 꿈처럼 느껴졌다.
“형. 형…… 문 좀 열어 주세요.”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사이 잠이 들었는지 어느새 밖에서 승현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이진은 주섬주섬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로 현관 비밀번호를 전송했다. 언뜻 시계를 보니 마지막 연락에서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문 밖에서 문자 수신음이 들리고 곧 승현이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 많이 아픈 것 같은데……. 계속 아파서 전화도 못 받은 거예요?”
승현이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오른손에 든 종이 쇼핑백이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얼굴이 빨개요.”
이진은 뺨에 손을 올려 봤다. 처음엔 손가락이 차가운 건가 싶었지만 이내 뜨겁게 열이 오른 뺨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잔 거예요?”
승현은 두 걸음 만에 누워 있는 이진에게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바스락대며 쇼핑백에서 포장된 죽 한통과 플라스틱 숟가락을 꺼냈다. 달칵 소리를 내며 죽과 반찬, 동치미 뚜껑을 모조리 연 다음 바닥에 차례로 늘어놓은 승현이 이진을 향해 눈짓했다. 어쩐지 표정에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진은 승현의 눈치를 보며 끙끙대는 신음을 참고 몸을 일으켰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승현은 냉장고와 벽 사이에 숨겨진 접이식 식탁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움직여 식탁을 펼치고 바닥에 놓인 음식들을 고이 올려놨다.
“음…….”
“식기 전에 얼른 먹어야죠.”
며칠을 굶은 데다 아직도 몸살이 가시지 않은 이진은 앉아 있기만 해도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입맛도 돌지 않아 눈앞에 놓인 제일 비싸다는 죽도 그다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 게살 죽이에요. 혹시 싫어할까 봐 전복죽이랑 소고기 죽도 사 왔는데.”
“아.”
승현이 그렇게 말해도 이진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혹시 먹을 힘이 없어요?”
때때로 이진을 애처럼 다루는 승현은 여기서 고개만 끄덕인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직접 죽을 떠 입까지 배달해 줄 것 같았다. 그건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이상한 광경이었다. 이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오른손을 들어 죽을 휘휘 저었다.
비싼 죽이라더니 확실히 뭔가 많이 들어 있었다. 이진은 한 숟갈을 크게 떴다가 훅 올라오는 허연 김을 보고 반 정도를 도로 덜어 냈다.
후후 불어 입 안에 넣으니 과연 고급진 맛이 났다. 죽도 요리라는 걸 증명하듯,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검증된 레시피는 ‘죽은 그래 봤자 고작 죽일 뿐’이라는 이진의 낡은 인식을 뛰어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줬다. 훈훈한 열기와 온화한 식감이 입 안을 통과해 목으로 넘어가고 가슴에까지 닿았을 때 이진은 큰 감동을 받았다.
분명 이 식당에 가 본 적이 있었다. 당시 고작 죽이 김밥 다섯 줄 가격을 하냐고 황당해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이진은 지금 먹는 죽 가격이 분식집에서 제일 비싼 모듬 김밥 다섯 줄 가격에 버금간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맛있죠. 해산물 좋아해서 다행이에요.”
이진은 해산물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음식이 맛있을 뿐이었다. 이진은 냠냠 빈속을 메웠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배 속을 가득 메우는 기분이 좋았다.
“근데 이 근처에는 왜 왔던 거야?”
기분이 좋아진 이진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을 했다. 어차피 이곳에는 이진을 대신해 질문을 해 줄 다른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대화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라도 물어야 했지만 딱히 계산하고 건넨 질문은 아니었다. 이진의 동네에 올 일이 없는 그가 이곳 주변을 어슬렁거린 이유가 궁금했고, 모처럼 맛있는 식사를 해 기분이 좋았을 뿐이었다.
“음…….”
눈을 살짝 들어 얼굴을 보니 드물게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승현은 할 말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해 버리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입을 다물어 버리는 타입이었다. 이렇게 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건 본 기억이 없었다.
“왜…….”
“저 집에서 쫓겨났어요.”
이진이 왜 그러냐고 물으려고 입을 뗌과 동시에 승현이 충격적인 사실을 고했다.
“뭐?”
이진은 순간 거대한 기와집 대문을 박차고 도망치는 승현과 그 뒤로 소금을 한 움큼씩 집어 뿌려 대는 대감마님을 떠올렸다. 그 상상은 승현이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쓸쓸히 걷다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잠을 청하는 것으로 끝났다.
“어쩌다가?”
“윈올 출연한 거 들켰어요. 비밀이었는데…… 어머니가 저 아이돌되는 거 반대하시거든요.”
승현은 장차 한국 연예계의 샛별 같은 존재가 될 텐데, 그런 가능성을 가진 아들의 꿈을 방해하다니 상상이 안 됐다. 물론 승현의 어머니는 미래를 모르시니 반대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의 앞에 펼쳐질 꽃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진으로서는 가족의 반대와 그로 인한 감정 소모가 아까웠다.
“왜 반대하시는데?”
이진이 겪어 본 부모 세대의 아이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대략 세 가지 원인이었다. 첫째로 들이는 노력과 성공 여부가 확실치 않은 사업이었으며, 둘째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기도 어려웠고, 셋째로 열심히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헛바람이 든 한량이나 아이돌이 되려 한다는 세간의 편견이었다. 그런데 승현은 또 다른 관점을 들려줬다.
“꼴사납대요. 춤추고 노래하고 그러는 거.”
“와…….”
그러면 타협할 여지가 전혀 없는 건가? 낙동강 오리알 옆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은 승현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부모가 없는 이진도 몸 뉘일 방 한 칸은 있는데.
“계속 먹어요.”
어느새 이진이 손을 멈추고 멀뚱히 딴 세상으로 빠지려고 하자 승현이 식탁을 퉁퉁 두드렸다. 이진은 명령어를 전달받은 로봇처럼 다시 열심히 에너지를 공급했다.
승현은 냉장고까지 뒤져 생수병을 찾아내고는 대학교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에 물을 따라 줬다. 대학 총학생회 선거를 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머그컵이 두 개고 수건 세트가 하나, 보온병이 하나였다. 이진은 어쩐지 그게 대학을 자랑하는 꼴 같아 부끄러웠다.
이진이 그릇의 바닥을 비워 갈 때 쯤 승현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백미열은 가족 여행 갔대요.”
“아…….”
“찬우형은 고향 내려갔다고 하고.”
“응.”
이진은 대충 들으며 찬물을 꼴깍꼴깍 마셨다. 승현은 이진이 컵에서 입을 뗄 때를 기다렸다가 마저 말했다.
“그래서 그런데 저 좀 재워 주실래요?”
“응?”
쿨럭, 반사적으로 기침이 나왔다. 물을 마시고 있었다면 사레에 들렸을 것 같았다. 승현은 이진이 숨을 고르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아까부터 긴 말을 빙빙 돌려 하는 것 같더라니 본 목적이 이거였다.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어요.”
승현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진은 침을 한번 꼴깍 삼켰다. 입에 남은 부드러운 음식 맛이 느껴졌다. 설마 이게 뇌물이었나.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