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집에 가는 길 방송국에서 출연료 입금 예정 문자가 도착해 잠깐 기분이 나아졌다. 24시간 촬영에 이곳저곳 행사에 부르기까지 하는 걸 생각하면 참 쪼잔한 금액이었지만, 앞으로 우후죽순 쏟아져 나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 듣기로는 아예 무급이거나 교통비만을 지원하는 곳도 있었다. 어디는 오히려 식대를 따로 청구한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이 정도면 방송국에서 꽤 투자를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어쩌면 111명의 출연료를 감당해야 하는 방송국은 허리가 휠지도 몰랐다.
이진은 잠시라도 다른 곳에 신경을 쏟으며 자비로운 기분을 느꼈다. 돈 드는 일도 아니니 버스에 앉은 내내 그렇게 했다.
한참 버스와 지하철을 오간 끝에 집으로 돌아온 이진은 기지개 한번 펴지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현관을 넘자마자 한 발자국만 걸으면 나오는 이불 탓에 귀가 후 곧장 드러눕는 일은 일상이었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그냥 드러눕는 게 아니라 앓아누웠다.
얇은 쿠션의 이불에 몸을 누이자마자 알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알바에, 단체 손님이 잡혔는데 기말 대체 과제도 끝내지 못했던 시기. 무리해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더니 육체가 파업을 했던 적과 비슷했다. 관절은 욱신대고 근육인지 피부인지 모를 곳에 열이 올랐다.
‘어……?’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게 전부인데 시간 감각이 마비된 듯 몽롱하기만 했다. 눈이 뜨거워져서 눈꺼풀이 눈알에 스치는 감각이 소름 돋게 느껴졌다. 기도를 타고 더운 숨이 올라와 기분이 나빴다.
‘왜 항상 마무리는 최악일까.’
비스듬히 이불에 몸을 걸친 채 누워 꼼짝도 못하는 몸뚱어리에 이진이 자조했다. 혼자 무리해서 답 없는 팀원들 등수나 올려 주고, 그렇다고 결과에 만족하지도 못하고 친구들한테 질투하고. 결국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에서 홀로 앓아누워 버렸다.
‘다가올 더 큰 영광을 위해.’ 누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누구였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게 옳은지 그른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이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나? 어느 유명한 책 구절이나 잘난 서양인의 명언이던가?
더 큰 영광. 이진이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고통에 인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큰 영광이 다가온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더 이렇게…….
뜨겁게 올라오는 열 기운에 이진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
꿈을 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색색의 조명이 그림자 하나 생길 틈 없이 온몸을 비췄다. 빛이 닿은 살결은 타들어 갈 듯 뜨거웠고 감은 눈으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닿기 위해 다가오는 손길과 사람의 눈인지 카메라의 렌즈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귀는 이미 멀어 버린 건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속삭임은 귀가 아닌 머릿속에 와 박혔다. 그들은 정체불명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었고, 하찮은 거지새끼였다가 부모를 등에 업은 재벌가 자제가 되었고, 저 혼자 잘난 놈이었다가 잘난 것 하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느 순간, 땅을 제대로 딛고 섰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비현실적인 의문이 피어오르자마자 바닥이 사라지더니 그 아래로 추락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하며 살짝 눈을 떴다. 양옆으로는 하늘이, 아래에는 거대한 어둠이 도사렸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둠에 잡아먹히게 되면 끝이란 걸 알면서도 그는…….
“오빠!”
익숙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허공에서 추락하는 아찔한 감각이 온몸에 달라붙어 팔다리가 저릿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몸뚱어리는 푹신한 베개와 이불에게 단단히 둘러싸였고 발치에는 조그마한 강아지가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오빠, 나 배고파!”
“……네가 좀 해 먹어라, 돼지야.”
중학생 동생이 빽빽대며 승현의 몸을 흔들었다. 승현은 얼굴을 베개에다 푹 묻으며 중얼거렸다. 말은 이렇게 해도 동생에게 요리를 시킬 수는 없었다. 과보호가 심한 가정에서 자란 동생은 아직까지 라면 하나 제 손으로 끓여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라면은 먹는 것도 금지였다.
승현은 조금 더 침대에서 졸음을 만끽하다가 제 몸을 흔드는 손길이 주먹질로 변했을 즈음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 핫케이크 먹고 싶어.”
동생이 졸졸 뒤를 따라왔다. 승현은 그 말을 무시하고 우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부터 틀었다.
“오빠, 나 진짜 배고파! 샤워하지 마아!”
“우유라도 마시고 있든가.”
승현은 동생의 외침을 듣는 둥 마는 둥 샤워를 마치고 머리까지 말리고 나왔다. 그사이 일곱 살 막내도 깨어나 둘이 나란히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푹신한 걸로 해 줘!”
“주는 대로 먹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승현은 계란을 깨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했다. 그 손짓을 보면서도 동생들은 승현이 어떤 질감의 빵을 구워 낼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승현은 부자들의 교육 방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의 조리법도 모르도록 애지중지 키워지는 게 정말 미래에 도움이 될까? 라면의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고급 진 음식에 얼마나 감사할 수 있을까. 아침 한 끼 제 손으로 차려 먹지 못하고 손위 형제를 오매불망 기다려야 하는데.
이 밀가루 덩어리가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것도 아닐 텐데 라면은 안 되고 핫케이크는 된다는 것도 좀 웃겼다.
“돼지들 손 씻었어?”
“형아, 나는 돼지 아닌데…….”
“수현이는 꽃 돼지.”
막내가 몸을 배배 꼬며 좋아했다. 후다닥 손을 씻고 달려온 동생이 막내를 번쩍 들어 의자 위에 앉히고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버터 올릴래!”
“나는 시엽!”
“시럽!”
일곱 살과 열네 살, 나이 차이가 두 배나 나는데도 대화의 수준이 얼추 맞아 보였다. 승현은 예쁜 갈색으로 구워진 케이크를 넓은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렸다.
“버터랑 시럽은 직접 꺼내고. 다 먹은 접시는 싱크대에 넣어 두고.”
“네에!”
동생들의 대답을 뒤로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백만 원이 넘는 청소기로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먼지를 빨아 들이고 물걸레질은 로봇 청소기에게 맡겼다. 동그란 가사 도우미와 분담을 했는데도 집이 넓어 그런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나간 김에 물청소 좀 하고 걸레 빠는 김에 욕실 청소도 했다.
부엌으로 돌아가니 조그만 설거지 감이 물에 퐁당 담가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릇까지 닦아 정리하고 나자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수현. 형이랑 누나 깨워 와라.”
소파에 앉아 어린이용 채널을 시청하는 막내에게 명령하자 폴짝 튀어 올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남동생 방으로 향했다.
“작은 형아!”
우렁찬 목소리에 놀란 건지 복도 맨 끝 방에서 털이 눌린 강아지가 쫑쫑 걸어 나왔다.
“붕붕이 일어났어?”
강아지는 슬금슬금 승현의 꽁무니를 쫓아왔다. 승현은 선반에서 사료를 꺼내 강아지용 밥그릇에 탈탈 털었다. 물그릇까지 채워 줬을 때 남동생이 막내를 옆구리에 낀 채 부엌에 들어왔다. 다리가 허공에서 달랑대는 게 재밌는지 막내가 까르륵 즐거운 비명을 질러 댔다.
“수현. 누나도 깨워 와.”
“누나는 어제 안 들어왔대요오.”
재현이 수현 대신 대답했다. 급격히 피곤이 몰려왔다. 승현은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른 손으론 수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수민, 어디야?”
외박할 때 연락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이러다가 아버지한테 들키면 큰일 나는 게 누구일 것 같냐. 짧은 잔소리를 하는 와중에 막내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바람에 승현은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욕실화가 축축한 걸 보니 강아지가 또 오줌을 갈긴 것 같았다.
“누가 너 연애하지 말래? 연락 좀 하라는 게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또…….”
뚝, 전화가 끊겼다. 승현은 휴대폰 화면이 통화 내역에서 홈 화면으로 바뀌고 나서도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한숨만 나왔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오히려 무감하게 느껴졌다. 목덜미가 지끈 하고 아파져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비틀며 뻐근한 근육을 풀었다. 그러다 정면의 거울에 비친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시선이 얼굴을 조심스럽게 훑었다. 평생을 보고 살아 익숙한 이목구비지만, 거울에 비친 사람은 누구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낯설었다. 고작 스물두 살의 나이에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태연한 표정 속에 감춰진 맨얼굴이 드러났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공허한 물음이 가슴속에 와 박혔다.
무언가 달라져야만 했다. 어린 승현이 꿈꿨던 미래의 자신은 결코 이렇지 않았다. 메마르고 반복적인, 자신의 욕망 하나도 채 내뱉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강한 척 담담한 척 허세만 부리는…….
승현은 그래서 윈올에 참가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 채.
***
“네 멋대로 살 거면 나가!”
귀가 찢어질 듯한 고함소리와 함께 승현은 집에서 쫓겨났다. 3라운드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점심이었다.
평소 TV라곤 일절 보지 않으시니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는 들키지 않을 줄 알았다. 동생들에게 오랜만에 점심을 차려 주던 중 들이닥친 어머니 때문에 휴대폰만 간신히 챙긴 터라 승현의 수중엔 땡전 한 푼 없었다.
‘망했네. 어떡하지.’
미열은 3라운드의 휴식 기간을 이용해 어제 저녁 비행기로 가족 여행을 떠났고, 승현은 미열 외에 딱히 연락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아파트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때웠다. 얼마 뒤 여동생이 자기 용돈을 들고 내려왔다.
“오빠 지갑 가져오지.”
“엄마가 오빠 방 못 들어 가게 해. 나중에 눈치 봐서 빼올게.”
승현은 동생이 쥐여 준 오만 원을 주머니에 넣었다.
“오빠, 미안해……. 내가 어제 다시 보기 보던 거 들켰나 봐.”
“아니야. 엄마 괜찮아지시면 연락해.”
“응…….”
아파트를 빠져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승현은 괜히 주소록만 열 번을 넘게 읽었다. 그래도 갈 만한 곳은 없었다. 이번엔 최근 기록 첫 페이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승현은 정말로 미열을 빼고는 연락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친구가 아니지만 연락해 볼 만한 사람은 있었다.
[유이진]
가족 얘기를 자주 안 하는 걸 보아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승현과 함께 살아 본 적도 있고, 마침 집 근처에 살고, 휴식 기간엔 집에만 처박혀 있고. 또 부탁하면 왠지 거절 못 하고 들어줄 것 같은 사람. 아주 완벽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진은 승현을 싫어했다. 그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휴일에 연락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 뻔뻔한 타입은 아니었다.
‘그냥 찜질방 갈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옆을 지나가던 주민들이 승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 윈올 나오는 선승현 씨 아니에요? 이 동네 산다더니 정말이네!”
승현은 찜질방에 갈 생각을 빠르게 접고 바로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루루’ 통화 연결음이 유난히 길었다.
‘나 설마 차단당했나?’
혹시 샤워를 하거나 잠깐 외출을 하느라 핸드폰을 못 보는 상황일 수도 있으니, 승현은 10분간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기나긴 다시 걸기의 끝에 드디어 이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콜록!]
“형, 아파요?”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한참이나 계속됐다. 부드러워 듣기 좋던 목소리가 사정없이 갈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