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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총사 외전,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사총사 외전,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사총사가 클라인 왕국의 향항(香港) 차바딘으로 향할 때의 일이었다.
가출한 왕자 월스턴, 마녀라서 배척받은 안즈마네와 고기를 먹다 쫓겨난 요정 율리히는 윤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주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무작정 발길이 닿는 대로,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대륙을 떠돈지 벌써 일 년. 헛소문에 허탕 치길 반복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차바딘으로 향하는 관도를 사륜마차가 달렸다. 화물마차는 뚜껑도 없어서 비가 오는 날엔 쫄딱 젖은 생쥐가 되어야 했지만, 가난한 모험가들에겐 발로 걷지 않아도 되기에 소중한 보물이었다. 마부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발 머리가 인상적인 청년이다.
“기르티쉬 백작가의 가보가 정말 이세계(異世界)의 보석이라는 게 맞아?”
금발의 청년, 월스턴이 고개를 돌려 율리히를 보며 물었다. 푸른 머리카락의 요정은 팔은 머리 뒤에 받치고, 다리를 아무렇게나 꼰 채 껄렁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그래. 내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도적놈들이 그랬다니까. 그 보물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으니까, 백작가를 털자고.”
율리히가 허공을 향해 발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월스턴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바딘의 영주 가문을 털자고 하다니. 그 놈들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었잖아?”
“그러니까 이 몸이 납치당한 거야. 허접 같은 녀석들에게 내가 당했겠어?”
율리히는 자신이 납치당했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 늘 예민해졌다. 요정의 숲 근처에서 고기를 먹다가 들킨 탓에 장로의 후계임에도 불구하고 쫓겨났다. 본인은 늘 출가했다고 우겼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 예. 그렇겠지요.”
월스턴이 깐죽거렸다.
“뭐야. 이 몸을 못 믿겠다 이거야? 한 판 할래?”
율리히가 울컥해서 몸을 일으켰다.
“율리히. 가만히 있어. 마차가 더 흔들리잖아.”
구석에 앉아 있던 안즈마네가 감았던 눈을 새치름하게 떴다. 멀미가 심한 그녀는 마차를 탈 때마다 언제나 심기가 불편했다. 붉은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율리히는 반사적으로 쪼그라들었다가 이게 아니라는 듯 눈을 부릅떴다. 이제까지는 계속 당했지만, 앞으로도 당할 순 없었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월스턴은 마차를 운전하고 있잖아. 위험하게 무슨 짓이야? 그럼 네가 운전하던가!”
“마차를 나무에 갖다 박고 싶으면 날 시키던가!”
이번엔 안즈마네와 율리히가 아옹다옹했다. 정작 싸움의 원인이 되는 월스턴은 “아무나 이겨라!”하고 응원을 하고 있었다.
마차의 가장 뒤편에 앉아 있던 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쭈그려 앉은 다리를 팔로 끌어안았다. 예전 같았으면 싸우지 말라고 끼어들었을 테지만 모두 부질 없었다.
언제나 고맙고 좋은 친구들인데, 하루가 머다 하고 말다툼을 벌였다. 말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 게다가 그들이 차바딘으로 향하는 건 윤을 위해서였다.
차바딘의 영주, 기르티쉬 백작가에서 가보를 공개하는데, 다른 세상에서 온 보석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색으로 빛나는 광채는 보는 사람의 눈을 홀릴 정도라고 했다.
실제 윤의 세상에서 온 보석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멈춰라!”
화살 하나가 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피한 덕분에 머리카락만 약간 잘려 나갔다.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해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열댓 명 정도 되는 사내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월스턴이 마차를 멈췄다. 놀란 말들이 푸르렁 거리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하나 같이 봉두난발에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 조잡하게 만들어 입은 옷, 한 손에는 박도와 검을 꼬나 쥐고 있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흔한 산적 떼였다.
“뭐야, 또 산적이야?”
안즈마네가 구겨진 옷자락을 탁탁 펴서 정리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율리히 역시 시큰둥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5강 16국. 아벨라르 대륙은 난세였다. 무수히 많은 나라들이 생겨났고, 또 사라져갔다. 여행을 하며 강도를 겪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어린 모험가들이라 그들을 만만하게 여기는 도적들도 많았다.
“이 관도는 우리 갈까마귀 단이 관리하고 있으니, 지나가고 싶으면 돈을 내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입을 가린 사내가 말했다. 키가 크고 퉁퉁한 몸매가 어딜 보나 산적 두목 격으로 보였다.
그들을 가장 앞에서 맞이하는 월스턴의 등이 긴장으로 잔뜩 굳어진 게 보였다. 윤은 천천히 허리춤의 검대로 손을 뻗었다.
“무슨 대본이라도 정해져 있어? 항상 똑같은 말을 한담.”
율리히가 투덜거렸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얼른 가진 돈을 내놔! 그렇다면 몸만은 무사히 보내 주지!”
갈까마귀 단은 클라인 왕국의 로하와 차바딘의 경계에서 기승을 부리는 산적 떼였다. 고작해야 십 수 명의 남자들로 이루어졌는데, 작은 상단을 털거나 여행자들에게 통행세를 받아 근근하게 살아갔다.
“씨발. 먹고 뒤질 돈도 없는데, 무슨 돈을 내놓으래.”
율리히가 욕설을 중얼중얼 했다. 목을 꺾자 우드득 소리가 났다.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기고 있던 탓에 근육이 굳었다. 이리저리 관절을 꺾으며 몸을 풀며 시간을 지체하자, 안즈마네가 나섰다.
“뭐야. 율. 네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설 거야.”
안즈마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울렁거리는데, 저런 허접한 이들에게 붙잡혀 시간을 지체하자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저 퉁퉁한 몸매로 보건대, 적당한 타격감을 자랑하며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줄 것이다.
산적 두목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저 어려 뵈는 여행자들은 이제 발발 떨며 돈을 내놓아야했다. 외려 그들이 나타난 걸 반기는 듯 보였다.
“바빠 죽겠는데 이게 뭐람.”
안즈마네가 신경질적으로 후드를 벗었다. 햇빛에 금빛으로도 보이는 연갈색 머리카락의 소녀를 보며 산적들이 숨을 들이켰다.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외모였지만, 꽃이 향기를 감추지 못하듯 화사한 아름다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놓친 부분이 있었다. 안즈마네의 붉은 눈동자였다. 붉은 눈동자는 예로부터 마녀의 상징이다.
“도, 돈이 없다면 저 계집이라도 내놓고 썩 꺼져!”
산적 두목은 때 아닌 횡재에 비열하게 웃으며 외쳤다. 개시부터 허탕이라 잡쳤다고 여겼더니, 돈보다 더 귀한 물건이 굴러들어오게 생겼다.
“너, 몇 살이냐? 당연히 처녀겠지? 저 비리비리한 놈들보단 이 아저씨가 훨씬 좋을 게다.”
“……날 말한 거야?”
안즈마네가 새치름한 미소를 지었다. 장미꽃처럼 붉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반짝였다.
“그래! 네가 말만 잘 들으면 얼마든지 예뻐해…….”
“-지랄도 풍년이네.”
그녀는 산적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욕쟁이인 율리히와 달리, 귀족의 딸로 키워진 안즈마네는 어지간하면 바르고 고운 말만 썼다. 저렇게 욕설을 할 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단 뜻이었다. 윤이 숨을 홉 들이켰다.
“애, 앤지! 저들은 내가 상대할게.”
윤이 다급히 안즈마네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냐, 윤. 속도 울렁거리는데 운동 좀 하지 뭐.”
안즈마네는 생글 웃으며 제 등에 매고 있던 봉을 꺼냈다. 그리고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산적들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나무로 만든 봉은 탄력있게 회전하며 산적 두목의 배를 후려쳤다. 두목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수 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어마어마한 괴력이었다.
“뭐, 뭐야!”
“덤벼.”
초식 동물들 사이에 풀어놓은 맹수나 다름없었다. 마치 부모의 원수라도 대하듯 도적들을 마구 후려치며 때려눕혔다.
“잘한다! 피의 복수를 하자!”
율리히가 응원했다. 그는 마차에서 내릴 생각을 않았다.
“나도 도와야하나?”
월스턴이 머리를 긁적였다.
“…….”
윤은 침묵했다. 마차에서 내려온 그는 유일하게 안즈마네를 도왔다. 아니 윤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순식간에 나무봉에 전신을 두드려 맞은 산적들은 바닥을 뒹굴었다.
“괴, 괴물…….”
“짜식들이 별 거도 아닌 게.”
안즈마네가 손을 탁탁 털었다. 마녀의 피를 이은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배척당했다. 농번기의 농민들이 병사로 차출당하고, 전투가 벌어진다. 그 탓에 발생한 흉년을 모두 약자인 마녀들에게 되돌렸다. 그 탓에 괴롭힘이라면 이골이 나있었다. 스스로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배웠던 호신술은 어지간한 장정들을 상대하고도 남았다.
“야. 너.”
안즈마네가 자신을 희롱한 산적 두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목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안즈마네의 발치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손바닥을 비비며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흐음. 내 말만 잘 들으면 용서해줄게.”
“뭐, 뭡니까?”
안즈마네가 생긋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돈 내놔.”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예상외의 수입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윤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도적들에게 금품을 뜯는 건 자신의 친우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