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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소장본 예약 시작 안내)
가리온이 제 사타구니를 윤에게 바짝 붙였다. 인간을 벌레 보듯 혐오하던 놈이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황금색 눈이 흥분으로 흐려졌다. 체구는 호리호리한 주제에 힘은 무척이나 셌다.
“미쳤냐? 야! 이건 수간이거든?”
윤이 몸을 일으키려고 바동거리자 아프도록 어깨를 짓눌렸다. 그리고 손목을 붙잡히자 꼼짝도 할 수 없어졌다. 간단하게 제압당했다. 말도 안 되는 괴력이었다. 아마 자신을 보며 경악한 그란디아 인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레나드, 그놈과 신나게 뒹굴었잖아. 나는 왜 거부하는 거야?”
가리온은 서툰 솜씨로 윤의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레나드가 아니라 아스탄이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꼼짝없이 당하는 거다. 고개를 돌려 입술을 피하자, 턱을 세게 붙잡혔다. 부서질 듯 강한 악력으로 죄어왔다. 가리온이 복수하듯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번졌다. 통증에 눈가를 찌푸리자 달래듯 살살 핥아온다.
문가의 입구엔 아직도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사체가 있었다. 자신은 여장을 한 채로 가리온에게 제압당했다. 아름다운 방과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전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네. 왜 싫어 거야. 그놈보다 내가 더 잘생겼는데?”
가리온이 징징거렸다. 아스탄이 제 욕구를 드러내는 모습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자신이 먼저 동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놈이 제게 성욕을 느낀다고 하자 윤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 있는 편이 아니었는데, 여기 와서 남자들에게 인기 폭발하는 것 같단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싫어? 왜? 윤, 내가 그놈보다 널 먼저 알았잖아. 내가 더 잘생기고, 돈도 많다고.”
가리온의 금발은 마치 태양처럼 아름다웠다. 외모 또한 무척 아름답다. 권력은 없지만, 녀석이 인간 세상에 나온다면 그란디아 못지않은 대제국을 세울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수천, 수만 년을 살아왔으니 그가 쌓은 재력 또한 대단할 터였다.
그러나 윤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왜 가리온은 안 되고, 아스탄은 되는 건지 설명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놈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한때 너의 몸이었다면서. 거기에 동하는 거야?”
“지금은 다르잖아? 상관없어. ……제길,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가리온이 윤의 옷을 벗기려다가 툴툴거렸다. 차 대륙 옷은 쓸데없이 단추도 많았고 꼭꼭 여미는 형태였다. 윤은 처음으로 이 복잡한 옷에 감사했다. 혀가 미끄러져 목덜미를 핥았다. 평범한 사람보다 체온이 낮아서 그런지 서늘한 혀에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게다가 긴 세월을 살아왔으면서 애무는 무척 서툴렀다.
“진작 이렇게 할걸.”
가리온은 혀를 차며 상의를 북 찢었다. 윤은 쓸데없는 반항을 그만두었다. 마치 포기한 듯 몸에서 힘을 뺐다. 완력도, 체력도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차라리 저 녀석의 행동에 응하는 척하며 틈을 노리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반항을 그만둔 거야?”
“쓸데없는 거에 힘 빼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끝내려면 빨리 끝내던가.”
“……흐응. 역시 나이를 먹으니 재미없어졌어. 넌 어려서 팔딱거릴 때가 재밌었는데. 다시 놀라게 해줘야 하나. 윤, 그거 알아?”
“뭔데?”
“용은 남자도 임신시킬 수 있어. 그란디아의 두 번째 왕은 아버지가 둘이었지. 놀랐지, 그치?”
가리온이 능글맞게 웃었다. 미친. 윤은 그 순간 가리온의 턱을 갈겨버릴 뻔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바짝 붙어있었다. 지금 주먹을 날려봤자 솜방망이 같은 타격밖에 되지 않는 걸 안다. 윤은 짜증을 참으며 가리온의 행동에 응하는 척 목을 끌어안았다.
“아! 넌 죽어가고 있었지. 내 아이를 가지면, 여기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마력의 핵이 된다고?”
“……그래?”
윤이 마음이 동한 척 가리온을 응시했다.
“드디어 나를 받아주는 거야?”
천천히 입 맞출 듯 잘생긴 얼굴이 다가온다. 완전히 방심했다. 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친아, 이거나 처먹어.”
윤이 가리온의 배를 힘껏 차올려서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세게 찍었다.
“윽!”
용이라도 성기를 맞으면 고통스러운 건 똑같나 보다. 가리온이 눈을 부릅뜬 채 침상의 이불보를 세게 움켜쥐었다. 생각 같아서는 저 흉물스러운 물건을 한 번 더 차주고 싶었지만 도망치는 게 급했다.
구르듯 침대에서 내려간 윤은 벽에 걸린 검을 향해 뛰었다.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제아무리 초월자라 할지라도, 신룡이 그 상대다. 거인에게 어린아이가 이쑤시개를 들이대는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딜 도망가는 거야?”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가리온이 윤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평소였다면 잡히지 않았을 테지만 허리까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다가 억센 손에 잡혔다.
“악!”
앞으로 가다가 넘어진 윤은 바닥에 세게 턱을 박았다.
“레나드 그놈이랑도 잤잖아. 왜 자꾸 나는 거부하는 거야? 내 후손이잖아. 내가 더 잘났잖아. 좋아해야하는 거 아냐?”
“너라면 좋겠냐. 미친아! 그리고 레나드가 아니라 아스탄이야!”
윤이 결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가리온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가리온의 파충류처럼 서늘한 손이 얇은 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제 저 녀석을 속이는 방법은 통하지 않을 거다. 어떡하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윤은 바닥을 구르는 검을 발견했다. 가리온이 제 동료를 죽였을 때 썼던 검이다. 검신은 무척 짧았다. 한 뼘 반 정도. 이 정도면 충분히 역수로 잡아서 심장을 찌를 수도 있다. 인간의 몸이니 잠깐 무력화시키는 정도겠지만 이대로 엉덩이를 내주는 것보단 낫다.
“인간들은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내가 좀 급해서 말이야.”
가리온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녀석이 바지를 내리자 흉흉하게 선 물건이 드러났다. 이제 놀랄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윤은 눈을 부릅떴다.
“왜 놀라? 인간들은 큰 걸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꺼져!”
가리온의 성기는 사람 팔뚝만한 크기에 검붉게 흥분해서 핏줄까지 툭툭 불거져 있었다. 선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물건에서 역한 흥분의 냄새가 풍겨왔다. 저 흉악한 크기가 호리호리한 몸 어디에 수납되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저걸 넣었다간 진짜 죽는다. 윤은 결국 발버둥 쳤다.
“지금은 좀 아프지만, 기분 좋게 될지도 몰라.”
가리온은 윤의 다리를 붙잡았다. 저놈은 진짜 풀어주지도 않고 삽입할 생각이다. 진짜 쇼크사하고 말거다.
벨라드 님. 댁의 자식이 미쳤다고요. 그러니까 좀 구해주시면 안될까요?
평소에 모든 신을 다 찾던 윤은 벨라드에게만 기도를 집중했는데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봐! 미친놈을 세상에 풀어놨으면 책임을 지라고!
윤은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였다.
가리온은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었고, 윤의 손은 자유로웠다. 바지를 벗기기 위해 녀석이 집중한 사이, 윤은 입술을 핥으며 조심스럽게 팔을 뻗었다. 손가락 끝으로 검병이 걸렸다. 검을 역수로 쥔 윤이 단숨에 가리온의 심장을 찔러 들었다. 동시에 마나를 폭사시켰다. 녀석의 내장이 진탕될 수 있도록.
“……너!”
생각지 못한 공격에 가리온이 무방비하게 당했다. 입으로 울컥 피가 쏟아졌다. 크게 부릅뜬 금색 눈동자가 윤의 얼굴에 못 박혔다. 놈의 몸이 천천히 무너지며 윤의 위로 쓰러졌다. 보기엔 말라 보였는데 그 무게가 대단했다. 그에게 깔린 윤은 켁 소리를 냈다.
“미, 미친놈.”
길게 한숨을 내쉬며 윤은 축 늘어진 몸을 밀쳤다.
“…죽는 줄 알았네.”
아니 좀 있으면 죽는 게 맞지만,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진 않았다. 아직도 뇌리에 남은 흉측한 물건을 떠올리며 윤이 진저리쳤다. 그런 걸 달고 다니다니. 정녕 악취미였다.
윤은 가리온의 시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후 일을 생각하자 난감해졌다. 신의 자식인 황룡을 공격했으니 천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사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주신에게 받을 벌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가리온이 부상을 수복하고 난 후의 일은 좀 걱정되었다. 아벨라르 대륙에 재앙이 몰아닥칠 것이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
윤은 흐트러진 옷을 대강 수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쓸어 넘긴 뒤 문을 열려던 찰나였다. 다시 머리카락을 잡혀 바닥으로 밀쳐졌다. 바닥을 구르는 윤을 향해 가리온이 웃었다.
“……윤. 날 죽이려고 한 거야?”
아름다운 얼굴은 입과 턱에 흘러넘친 피로 괴기스러웠다. 그는 휘청거리며 제 심장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냈다. 피분수가 윤의 얼굴로 쏟아졌다.
“이번엔 정말 위험했다고? 아, 이건 마셔도 좋아. 용이 피라니. 다시없을 영약이잖아.”
“……넌 뒤지지도 않냐.”
“글쎄. 죽어보질 않아서 모르겠네. 청룡 이트라 녀석은 인간의 몸으로 뒈지긴 했는데.”
싱긋 미소 짓는 얼굴은 아무렇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나 좀 화났어.”
“……누가 할 소린데.”
“역시 그래서 난 네가 좋다니까. 겁도 없이 혀를 나불거리는 게. 하지만 이번엔 좀 도를 넘었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무서운 살기가 터져 나왔다. 윤은 숨을 참으며 살기를 견뎠다. 가리온의 황금색 눈동자 중 동공이 길게 갈라져서 파충류처럼 변했다.
“네게 다시 영생을 줄게. 어렵지 않아. 또 내 심장을 쪼개서 인형을 빚으면 되는 거니까. 거기에 네 영혼을 심어줄게. 너도 이곳에 남고 싶었지? 죽기 싫었지? 그러니까. 일단 죽자.”
가리온이 잔인하게 웃으며 윤의 목을 졸랐다. 컥컥, 숨이 넘어갔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가, 검게 암전되길 반복했다. 녀석은 윤을 가지고 놀 듯 숨을 조절하며 기절할만하면 숨통을 트여주길 반복했다.
“죽여 달라고 빌고, 또 빌게될 만큼 네 영혼을 범할 거야. 영혼이 모두 닳을 때까지 살아있게 해줄게.”
머리가 점점 멍해졌다. 또 다시 죽음이 찾아왔다. 아마 이번엔 영원한 잠일 것이다. 아스탄의 얼굴이 뇌리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진짜 녀석을 진짜 좋아하나보다. 마지막 순간으로 떠오르는 게 녀석의 얼굴이라니. 같이 있고 싶었다. 윤은 제 목을 조르는 가리온의 손을 붙잡았다. 손톱을 세워 긁어 내렸다. 이렇게 죽기 싫었다. 숨이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 제 목을 조르는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윤은 숨을 컥컥 거칠게 몰아쉬었다.
“인간을 겁탈하려는 무도한 자가 신이라니. 그런 이가 내려주는 축복은 필요없을 것 같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눈을 뜨니, 가리온의 가슴 사이로 검 끝이 삐죽 솟아있는 게 보였다. 등에서부터 찔러 들어온 검이었다. 등 뒤로 아스탄이 서 있었다.
============================ 작품 후기 ============================
류웰님,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 코멘트와 추천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99편이네요...! 100편까지 앞으로 한 편!
그리고 표지가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도 팬아트를 주신 적 있는 에고님이십니다. 덕분에 열심히 써서 오늘 낮에 왔습니다!
소장본 선입금 예약을 시작했습니다.그리하여 열심히 소장본홈을 만들었어요. (왕뿌듯 heerae.modoo.at 입니다.
10월 중순에 완결낼 예정이고, 10월 30일까지 예약을 진행합니다. 책 배송 날짜는 11월 초중순경입니다.
소장본 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책을 종이로 꼭 갖고 싶다! 난 이북이 아니라 난 너를 원해. 아이갓츄.아이원츄.아이니쥬.하시는 분들께서 심사숙고하여 함께하여 주세요 8ㅅ8. 저는 여러분의 지갑을 수호하고 싶어요!
오늘따라 작가 후기가 길었네요 ㅠ.ㅠ 길고 긴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