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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윤은 가리온을 노려보았다. 그는 어째서 이 땅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신이 개입했단 사실만 알았다. 그래서 방황했다. 하찮은 이유라도 알길 바랐다. 가령 러시안룰렛처럼 이세계(異世界)에 갈 사람을 골랐고, 거기에 당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무지보다는 나았다.
늙지도 않았고, 어느 곳에 정착도 하지 못했다. 부평초 같은 삶에 좌절하던 모습을 모두 지켜본 친우들이다. 그들은 진실을 알았고, 자신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고? 어째서? 눈앞이 붉게 변했다.
“참 착한 친구들이지. 네가 죽는 것보단 고통스럽더라도 삶을 지속하길 바랐으니까.”
이성을 잃은 윤은 가리온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는 이런 반응을 짐작했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빙글거리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가리온. 어서 진실을 말해! 어떻게 그걸 네가 아는 거야?”
윤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자, 가리온은 귀가 아프다며 심드렁하게 귀를 틀어막았다. 그 모습에 더욱 화가 치솟았다.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뭐?”
윤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제 귀로 들은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을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든 게 가리온이었다고? 언제는 모른다고……. 멱살을 틀어쥔 윤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아니 가리온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신이 그리했다.’ 고 말했기에 주신 벨라드만 원망했다. 그러나 가리온 역시 신이다.
연달아 밝혀지는 사실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게 가리온이고, 친구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심장이 거칠게 내달렸다. 배신감에 이성이 사라질 뻔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가리온의 장난에 놀아났을 수도 있었다. 친구들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율리히가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였다.
“왜 그러면 안 돼?”
가리온은 진심으로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너무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모습에 윤은 말문이 막혔다.
“너 스스로 버린 목숨. 내가 좀 가지고 놀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네가 그리도 원하니 진실을 알려줄게. 신에게 이야기를 듣는 건 아주 비싼 대가를 필요로 해. 넌 그걸 치러야 할 거야.”
“상관없어. 어서 말해.”
윤이 고개를 저었다. 가리온은 손으로 턱을 괸 채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이를 세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의 세월이 지났을 때 나는 아주 반짝거리는 혼을 만났어. 게다가 잔뜩 약해져 있었어. 육신이 영혼과 분리된 충격으로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세계로 튕겨 나왔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 같았지.”
“요점만 얘기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생명의 은인에게 이러기 있어? 내가 널 구했다고 말하는 거야.”
가리온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 영혼을 만났지. 그는 아주 깜찍한 절망에 차 있었어. 스스로 죽기를 바랄 정도로.”
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고, 털어냈던 일이라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제 팔목에 새겨진 칼자국을 가리듯 움켜쥐었다. 지금은 아주 흐리게 남아 있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자신조차도 잊고 있었던 사실이다.
비가 오던 어두운 밤, 팔목을 그어 죽음을 선택했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단 사실을 이겨낼 수 없어서였다.
고 2가 되던 해였다. 국무총리배 검도 대회 고교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기념으로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떠났다. 금요일 밤에 떠나서 강릉에서 하룻밤 자고 관광을 한 뒤 토요일 저녁에 서울 도착 예정인 빡빡한 일정이었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기에 세 가족의 얼굴은 기대에 들떴다.
맞벌이로 바쁘던 어머니도 시간을 쪼개서 김밥까지 쌌다. 밤늦게 운전을 하는 아버지의 입에 넣어주며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윤은 “두 분이서만 좋으실 거면 나 빼고 가지 그러셨어요.” 하고 투덜거렸지만 싫지 않았다.
사고는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다. 중부 고속도로를 반쯤 지났을까. 빗속을 비틀거리던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윤을 덮쳤고, 몸이 붕 떴다.
눈을 떴을 때는 묘한 냄새가 나는 병실 안이었다. 수액을 갈던 간호사가 가장 먼저 윤이 깨어난 걸 발견했다. 이내 피로한 인상의 청년이 흰 가운을 입은 채 병실로 들어왔다.
“정해윤 씨. 정신이 드신 겁니까? 제 말이 들리고 이해할 수 있으면 손가락을 들어주세요.”
윤은 간신히 손가락을 들었다. 있는 힘껏 목소리를 짜내어 부모님을 찾았지만, 이미 장례식까지 끝난 후였다. 자동차 앞좌석에 앉아있던 그들은 트럭 밑에 깔려서 시신조차 온전히 건지지 못했다고 들었다. 가해자는 음주 운전이었다.
‘내가 우승만 하지 않았어도. 여행만 가지 않았어도.’
윤은 절망에 차서 자신을 탓했다. 모두 너 때문이 아니라고 위로해주었지만, 그런 위로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낯선 영혼이라 레기온에게 물어봤더니 다른 세상의 영혼이라고 하더라고. 영혼을 보호할 육체가 없으니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나? 하지만 그건 싫었어.”
가리온은 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렸다.
“내 심장을 쪼개서 인형을 만들었지. 그 안에 네 혼을 넣었어. 그리고 세상에 던져놓았지. 알 수 없는 세상에 떨어진 녀석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더라고. 제법 재미있었어. 그렇게 재미난 일은 아마 이트라 녀석이 미친 후로 처음이었지.”
이트라는 사랑에 미쳐버린 청룡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가리온의 손에 죽었다. 오천년 전의 일이다.
“내 후손을 우연히 만나서 여행을 떠나고, 초월자가 되다니. 내 심장이 많이 도와주었겠지만 좀 놀랐다고? 더 놀란 건 역시 날 찾아왔을 때지.”
윤은 월스턴에게 들은 자신들의 처음을 떠올렸다. 가출한 그는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윤은 자살 시도로 차원 이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반만 맞는 거였다. 육신을 가리온이 만들어주었다고 들었으니, 영혼만 이동한 거다. 그때 자신은 스스로 손목을 그었던 상흔이 없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흉터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미쳤어.”
“맞아. 나는 제정신이 아닐지도 몰라.”
가리온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주신 벨라드는 넓은 세상을 홀로 돌아보기에 힘에 부침을 느꼈다. 그리하여 자신을 보필할 열 명의 대신과 네 명의 신룡을 스스로 낳았다. 사룡 중 황룡 가리온은 태어날 때부터 지고한 영광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권능이 있었다. 바로 생명체를 창조하는 능력이다. 가리온은 보란 듯이 제 심장을 쪼개 육신을 만들었고 그 속에 윤의 영혼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윤을 지켜보았다.
가리온은 오랜만에 흥미를 느꼈다. 아주 오래전에 사그라진 감정이 되살아났다. 오합지졸에 불과하던 꼬마들은 어느새 성장해서 대륙을 쟁쟁하게 울리는 모험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왔을 때… 재미있었다.
“신의 지혜를 빌려주겠다고. 궁금한 것이 무엇이든 대답해주겠다고 선심을 써주었더니, 너를 집에 보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던 네 친구 녀석도 참 재미있었어. 진실을 알 게 되니 충격 받은 표정도 참 걸작이었지.”
“…뭐라고 알려준 건데?”
가리온은 혼자 떠드는 행동에 아주 재미 들린 게 틀림없다. 윤이 대꾸해주지 않아도 진실을 턱턱 털어놓았다. 적당히 박자를 맞춰주면 더 신나했다.
“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거였고, 내가 살려줬다는 거? 그래서 다시 혼이 분리될 정도로 충격을 받으면 네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육신이 썩어 좀비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지.”
문득 짚이는 기억에 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처음엔 자신을 돕겠다고 의욕에 차 있던 월스턴이 어느 순간부터 괴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 월스턴을 보며 친구를 그리도 보내기 싫다며 타박하던 안즈마네와 율리히였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가 어느 순간 바뀌었다. 조심스럽게 “윤. 여기에 남으면 안 되는 거야?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며 물어왔다. 홀로 속병을 앓던 월스턴을 다그친 안즈마네와 율리히가 진실을 깨닫고 태도를 바꾼 게 분명했다.
“네 대자 녀석도 그랬지. 레… 레 뭐였는데.”
“……레나드.”
“그래. 레나드 녀석도 너를 집에 보낼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더라고.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소원을 빌었어. 네 매력이 뭘까?”
윤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레나드 역시 진실을 알고 있었다니. 믿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왜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차라리 당신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죽어야한다고. 하지만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몸이 멀쩡할지 알 수 없다고 말해주었더라면 나았을 텐데. 심장이 욱신거렸다.
“불쌍한 윤.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가리온이 윤을 끌어안았다. 우습게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저자의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었고, 동정과 익애 같은 감정 따윈 전연 모를 텐데.
“그럼 왜 난 늙지 않는 거야? 지금은 원래 몸이라며.”
“……바보냐? 네가 초월자라는 걸 잊었어? 늙고 있긴 해. 아주 천천히 늙는 거라 몰랐던 거겠지.”
가리온은 한심한 어조를 숨기지 않았다. 윤은 저를 끌어안은 가리온을 노려보았다. 살심이 들끓었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현실로 돌아와선 아주 느리게나마 머리카락과 수염이 자랐다. 손톱 역시 길어졌다.
“자, 그럼 대가를 치러야지?”
가리온이 윤을 침상에 밀어 넘어트렸다. 허벅지에 닿는 남자의 사타구니가 불룩했다.
“오랜만에 동했다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가리온의 행동에 윤이 경악했다. 미친 똥색 용 새끼가?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보았다. 이제껏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한 일이 모두 가리온이 저지른 짓이란 충격이 싹 가실 정도였다.
“야, 장난 그만해. 비켜.”
“장난 아닌데?”
가리온이 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카락이 윤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금실로 짠 커튼 같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은 사내의 욕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척 아름다운 미남자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윤은 싫었다. 가리온이 인간을 싫어하는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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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전보도 완결이 코 앞이네요 8ㅅ8.
휴가는 잘 다녀왔습니다. 폭탄을 던지고 다... 다녀왔습죠.
소장본 예약은 아마 담주 월요일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시포요. 그리고 10월 마지막날에 끝나고. 11월초 배송 예정입니다.
소장본 페이지를 후딱 만들어야하는데 제가 컴...컴맹이라....8ㅅ8.... 도우미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