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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보고서-67화 (6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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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위협

“아… 흐읏…….”

부드럽고 뜨거운 입술을 받아들이며 윤은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큰 손이 옷속을 파고들었다. 오랜 수련으로 손가락마다 굳은살이 배어있었다. 부드러운 살결을 긁듯이 쓰다듬을 때마다 야릇한 소름이 돋았다. 성욕이 뱃전과 그 아래를 달구었다.

잠시 입술이 떨어져나간 사이 호흡을 고르던 윤은 제르센의 경악한 시선과 눈을 마주했다. 솔라는 주먹을 꽉 쥐어보이며 ‘윤님, 이대로 쭉 가시면 됩니다!’하고 응원을 보내었다. 참으로 일관된 녀석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색사를 벌이는 취미는 없는 탓에 윤은 아스탄의 어깨를 떠밀었다.

“자, 잠깐. 제르, 읏. 솔라가….”

“그게 무슨 상관이지?”

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였다. 황족으로 태어나서 단 한순간도 홀로 있어본 적 없는 이가 아스탄이다. 언제나 저에게 따라붙는 시선은 당연했다.

솔라와 제르센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쳐 방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아스탄이 나지막하게 젖은 목소리로 귓전에 속삭였다.

“방해물은 없어졌군.”

“목도리, 목도리도….”

은여우는 털을 바짝 세운 채 이를 드러내고 캥캥 울며 바짝 세운 꼬리를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구슬처럼 까만 눈에 아스탄의 모습이 비치었다. 워낙 체구가 건장한 아스탄이 윤의 위에 올라탔으니 제 주인을 해꼬지한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급기야 여우는 아스탄의 다리를 아프지 않게 물기 시작했다. 발톱을 세워 옷자락을 박박 긁었다. 아스탄은 조금 거치적거린단 생각을 하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애무를 계속했다. 온 몸이 무기나 다름 없는 남자이지만 유두의 끝은 무척 약하고 부드러웠다. 손톱의 끝으로 아프지 않게 꾹 누르자, 움찔 반응이 온다.

“그래도 목도리가아… 흐읏!”

“제르센의 편에 내보낼 걸 그리하였나.”

가슴과 그 정점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윤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분명 자신의 나이가 훨씬 많은데 이상하게 휘둘린단 생각이 들었다.

“하아… 음­.”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다. 섬세하게 문지르고, 쓰다듬고, 때로는 잡아당기고. 이세상 무엇보다 완벽한 악기는 그에 반응해 황홀한 소리를 내었다. 당장이라도 가장 약한 곳에 제 몸을 처박고 싶단 생각을 하였으나 기다림의 순간조차 쾌감이라. 단지 손으로 만지는 것 뿐만 아니라 입술로, 맞닿은 피부로, 온몸을 사용해서 닿고 싶었다. 입고 있는 옷이 거추장스러웠다.

“이, 이상…. 하지마….”

“이상한 게 아니라… 기분이 좋은 것이겠지. 이 곳을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나?”

아스탄이 불쑥 물었다. 애초 남자의 유두는 애무하는 일반적인 성감대가 아니었으니까. 윤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화사하면서도 위험한 미소가 아스탄의 입가에 떠올랐다. 아무에게도. 라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위험하게 들렸다.

윤은 언제나 주는 쪽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애정도, 신뢰도, 그 강함으로 사람을 지켜주는 것도. 받는 기분은 생소했다. 아니 솔직히 좀 좋았다.

‘그런데 누가 위인거지.’

둘 다 남자였기에 이건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튜닉의 매듭이 풀어지고, 슈미즈가 드러났다. 아스탄은 귓전에서부터 목덜미로 이어지는 곳에 끊임없이 입맞춤을 떨어트렸다. 아랫배에 닿는 남자의 성기가 묵직하게 눌러오는 건 묘한 기분이었다. 지금 이상황으로 보아 아래쪽 당첨은 자신인 듯 느껴졌다.

찬물을 뒤집어쓴 양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윤은 손을 들어 아스탄의 입을 막았다.

“자, 잠깐!”

“왜 그러는 거지?”

“우리… 지성있는 현대인답게 좀 더 대화를 가진 후에, 읏! 몸의 대화를….”

“나는 듣지 못하였다.”

붉은 눈동자는 흥분에 역력하게 물들어 있었다. 약관의 청년이 내보이는 정욕은 무서울 정도로 뚜렷했다. 이대로 가다간 끝을 볼 작정인 듯했다. 윤은 욕실에서 보았던 남자의 성기를 생각했다. 평균 크기를 훨씬 웃도는 그것은 흉기나 다름 없었다. 그게 자신의 몸에 들어온다고? 윤이 팔다리를 바둥거렸다.

이미 옷자락은 모두 풀어헤쳐져 가슴이 드러나있었다. 뾰족하게 바짝 선 유두를 아스탄은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집요하게 이어지는 애무에 윤의 입에서는 속절없이 신음이 흘렀다. 입을 틀어막았지만 새어나오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아스탄은 이대로 멈출 생각이 없는 듯하였다.

‘……마지막 방법이다.’

천천히 아스탄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파묻었다. 신중하게 손을 움직여 수혈((睡穴)을 짚었다. 천천히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자 곧장 반응이 왔다.

“…이게, 무슨….”

항거할 수 없는 졸음이 몰려오자 눈을 크게 뜬 아스탄이 중얼거렸다. 이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윤의 위로 쓰러졌다. 건장한 체구가 몸을 짓누르자 무겁게 느껴졌지만, 기분 나쁜 무게는 아니었다. 천천히 몸을 굴려 아스탄을 눕혔다.

무협소설 속 고수들처럼 점혈법에 능통한 건 아니었으나 간단한 건 사용할 수 있었다. 비록 사람을 졸리게만드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말이다. 수혈을 짚자마자 잠이 들었다는 건 무척 피곤하단 방증이다. 잠을 자지 않는다는 거에 익숙한거지, 수면을 취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는게 틀림없다. 그래서 일부러 잠을 자지 않는 것일테고. 이렇게 꿈도 꾸지 않게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거라며 자기합리화했다.

“조금 미안하긴 한데, 아스 어쩔 수가 없었다고.”

들을 사람이 없는 핑계를 중얼중얼하며 윤은 천천히 남자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여인의 것보다도 부드럽게 손가락에 감겼다. 기분 좋은 손길에 찌푸려져있던 남자의 미간이 사르르 풀어진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확실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진솔하게 고백해오는 마음을 내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많을까. 윤은 자신이 무척 외롭고, 사람의 마음에 목말라있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했다. 게다가 제 비밀을 알고도 좋다는 사람임에야 무슨 말을 더 보태랴.

혹여 흑룡을 만나도 변하지 않으면, 늙지 않는 괴물임을 확인하게 되면 마음이 달라질까 두려웠다. …다만 레나드의 때처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변심한 이에게 배신당하는게 두려울 뿐이다. 그 기억이 너무도 뼈아팠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떠나자. 그리 결심했다. 후회없이 마음을 주고받고 그 후에 사랑이 식기전에 떠나자고.

‘겁쟁이.’

윤은 스스로에게 냉소를 보냈다. 어쩐지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황룡을 만나고, 흑룡을 만나고, 황위를 되찾고. 아주 많은 일들이 있을 테니까. 그때까지는 제 이기심을 모른체하자고. 마음을 굳혔다.

**

어둑한 동굴의 안, 천정으로 난 구멍에 달이 걸려있었다. 푸른 달은 광휘를 흩뿌리며 세상을 은은하게 물들인다. 구멍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호수의 위에도 푸른 달이 떠있었다.

‘나’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마치 태양의 광휘를 옮겨놓은 듯 환한 금발의 청년이 물 위에 서 있다.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청년은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달빛을 만끽하고 있을 때면,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인간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소름끼치는 완벽한 미.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황금색 눈동자의 동공은 길게 찢어져있다. 그러나 저 외양에 속지 않는다.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청년을 노려보았다.

“좋아! 내기를 하자.”

“…내기 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내’가 눈을 크게 떴다.

**

아스탄은 눈을 번쩍 떴다. 사위가 어두웠다. 그저 무력하게 누군가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 고통스러워하던 이전과 달리 꿈의 내용은 점점 변하고 있었다. 이건 무슨 의미인 것일까.

마치 전생의 꿈을 차례대로 꾸는 것처럼… 아스탄이 제 생각이 우습다는 듯 코웃음쳤다. 전생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 삶이 끝나고 난 후엔 명계의 여왕이 다스리는 곳으로 가 휴식을 취할터였다.

설령 현제 레나디온이 새로 태어났다하더라도 황가의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저주로 인한 광증이 옳았다. 누군가의 기억을 덮어씌우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목덜미를 짚는 순간 항거할 수 없는 수마가 밀려왔었지.’

아스탄은 제 팔을 베고 잠들어 있는 청년을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수를 쓴 게 분명했다. 그러나 같은 수법에 두 번다시 속지 않을 자신있으니 다음부턴 목덜미를 지키겠노라고, 이를 득득 갈았다.

윤의 배 위로 은여우가 몸을 말고 잠이 들어 있었다. 불편해보여서 아스탄이 옮기려하자 반짝 눈을 뜬 여우가 경계의 시선으로 저를 쳐다본다. 자그마한 이까지 드러내고 아르릉거렸다.

“고얀, 황태자에게 이를 드러내고도 무사한 미물은 너 녀석 뿐일 게다.”

아스탄은 혀를 찼으나 불쾌한 기색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제게 선물하겠다고 잡아온 짐승에겐 충분히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목덜미와 다리 밑으로 손을 넣은 아스탄은 윤을 안아올렸다. 잠귀가 무척 밝은 청년은 자그마한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제 앞에서는 무방비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무척 기분 좋았다.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졌다. 아니 그걸론 부족해졌다. 첫사랑을 하는 소년처럼 몸과 마음이 달떴다. 갖고 싶었다. 아니 가지고 싶다는 말로 부족했다.

한동안 아늑한 눈길로 윤을 지켜보던 아스탄은 소리 없는 종을 울렸다. 제르센이 발걸음을 죽여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몇시간이나 지났지?”

“네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가.”

약을 먹고 억지로 잠을 청했을 때와 달리 몸이 무척 가벼웠다. 아스탄이 자신의 턱을 슥슥 매만졌다.

“아직도 윤이 싫은가.”

제르센은 입을 다무는 것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미워할만큼 저는 막되먹은 놈이 아닙니다.”

소리죽여 가만가만 이어지는 대화에도 윤이 반짝 눈을 떴다. 아직 졸음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아스탄은 “쉬이-.” 하고 달래주며 천천히 눈 위에 손을 덮었다. 무척 다정한 손길이었다.

“윤님이 도움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황룡의 인장을 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북부로 쫓겨난 터라 황태자의 기반은 무척 약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기사라, 여타 무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검공의 후예, 윤이 등장하며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무력과 검공의 후예라는 이름은 시황제와 검공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제멋대로의 어린 청년을 보며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던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게다가 광증이라 할 수 있는 악몽과 그 연장인 불면증을 해결해준 사람임에야 더더욱 쌍수를 들고 받아들임이 옳다. 우울한 마음과 별개로 말이다.

“그렇군. 제르센, 이 녀석을 당장 밖으로 내보내도록 해. …너무 위험한 곳에는 두지 말고.”

아직도 윤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아스탄을 경계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여우의 목덜미를 달랑 들어내밀었다. 은여우가 캥캥 울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째서!’하고 억울해하는 눈빛을 무시하였다. 제르센은 여우를 조심히 품에 안아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서 어린 짐승은 구슬프게 끼잉끼잉 울었다.

“윤.”

아스탄은 손을 뻗어 연인을 끌어안았다. 윤이 가물가물한 눈을 뜨더니 아스탄의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관자놀이에 입을 맞춰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자 목덜미를 움츠린다. 아스탄이 웃음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폭풍이 몰아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이 여유를 즐길 수 있기를.

============================ 작품 후기 ============================

평량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추천과 코멘트를 남겨주신 모든분들께도 감사드려요 ^_^~!

죄... 죄송합니다 (몰매를 피한다.) 씬은 정말 70화 안에 나오긴 나옵니다!!

남자다운 할배에겐 이것도 중요한 문자라구요? (식은땀)

오탈자는 차마 드릴 말씀이... 제가 워낙 성질이 급해서 생각의 속도를 타자가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오탈자가 심합니다. 계속 고치는 데도 틀리는 거니, 제가 미욱한 탓이겠지요 ㅠ_ㅠ 곧장 수정할 터이니 언제든지 지적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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