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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곳.
롭은 다소 날씬한 편에 속하는 스완과 반대되는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곰과도 같은 덩치는 보는 사람이 위축될 만큼 위압감을 준다. 평범한 키에 속하는 윤보다 두 뼘 쯤 높은 곳에 머리가 위치해있다. 어림잡아 2메타브(미터)정도 될까. 두꺼운 손으로 한번 후려친다면 평범한 사람은 버티지 못하고 튕겨나갈 게 분명했다.
“나는 회색 늑대 기사단의 단장이란 미명을 가지고 있는 롭 이벨로크라 하오! 윤 하이어드 경! 그대와 검을 나누길 바라고 있소!”
“받아들이지.”
“하하! 시원시원해서 좋군! 이번엔 진검이 어떠하오?”
“좋다.”
시중인들이 재빨리 롭의 검을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무척 크고 두꺼운 검은 평범한 체구의 사람이라면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윤과 롭의 대결은 그 기세부터 대단하였다. 두 사람 다 소드 익스퍼트란 경지에 닿은 검사. 그들이 퍼트리는 기운에 숨이 막혀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스완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이와 검을 나눌 수 있었는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선수는 양보하지.”
“사양하지 않겠소!”
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은 롭은 웃던 얼굴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순식간에 뽑아낸 롭이 윤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거대한 대검을 수수깡처럼 쉽게 다룰 만큼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롭의 특기는 머리 위에서부터 내려치는 거합술이다. 단번에 사람을 반으로 쪼개버릴 듯 강력한 일격! 윤이 양손으로 검을 잡아 그것을 막아냈다.
-카아앙!
검과 검이 부딪히며 발생한 무시무시한 검풍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흔들어놓았다.
“이벨로크 경의 검을 막아내다니…….”
기사들이 감탄을 흘렸다. 보통은 막아낸다 하더라도 롭의 엄청난 힘에 검을 놓치고 나뒹굴기 마련이었다. 윤은 막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비스듬하게 날을 세워 검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역수로 쥔 검은 정확하게 롭의 가슴 위에 멈추어 섰다.
“졌다.”
롭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정말 그대는 괴물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군.”
“오랜만에 듣는 별명이네.”
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롭 이벨로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윤을 바라보았다.
“나쁘게 들렸다면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경의 실력은 정말 무엇으로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까지 강할 수 있지?”
“……시간. 시간이 있으면 돼.”
윤의 대답은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이치였으나, 어쩐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오래된 고서적 속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긴 세월이 청년의 모습 위로 언뜻 드러났다.
“갑자기 그대가 무척 늙은 노인으로 보였다. 그대 같이 어린 홍안의 청년이 노인이라니.”
롭이 말도 안 되는 것을 본 양 하하 웃었다. 다른 기사들도 따라 웃었다.
윤도 미소를 지었다. 무척 쓴 웃음을.
북쪽에서부터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롭의 회색 머리카락을 거칠게 흔들어 놓았다. 험상궂은 얼굴을 지닌 사내였으나 그의 푸른 눈동자는 무척 선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자 윤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나, 롭 이벨로크. 그대의 무용에 경의를 표하오! 참으로 훌륭하오.”
“…보통은 인정 못한다며 난리였는데.”
“나를 그리 졸렬한 자로 보았나?”
“경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추세를 말했을 뿐이야.”
롭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는 일이지. 하이어드 경은 말도 안 되게 강하니까. 하지만 이곳은 노스트라드! 제국의 북벽이며, 검공의 위대한 유산이 남아 있는 곳. 우리는 강자를 숭상하고, 존경하지. 그래서 나는 그대를 존경하오.”
그리 말하는 사내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다른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쿠웅! 롭이 발을 울린 후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다른 기사들도 진지한 얼굴로 발을 구른 후 가슴을 세게 두드렸다.
“노스트라드를 위하여!”
“위하여!”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롭이 선창하자 뒤를 이어 다른 기사들이 후창한다. 공터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외침에 나뭇가지에 기대어 쉬고 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오르고, 시종들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변한다. 어느새 깊어진 겨울 하늘은 눈을 내리고 있었다.
백년이란 시간동안 많은 것이 변해 이곳이 낯설게 느껴졌으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늑대여 울부짖어라.”
회색 하늘을 올려다본 윤이 감회 서린 표정으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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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학장까지 지냈다하여 깐깐하리라 생각했던 맥카터 교수는 생각보다 융통성 있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노스트라드 전역에 폭설이 내리자 “이런 날에는 야외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법이지요.”하고 허허 웃으며 인공적으로 조성된 유리 정원에서 수업을 진행하자고 하였다. 덕분에 시종들의 고생이 늘어났다. 그들은 피크닉 매트를 챙기고 야외에서 먹을 간식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윤과 맥카터 교수, 이레인은 수업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 유리 온실을 거닐었다. 공작성이 자랑하는 유리 온실은 거대한 규모로 구역에 따라 화초부터 시작해 남쪽에서나 키울 수 있는 희귀식물까지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얗게 피어난 장미 한 송이를 꺾어 든 윤이 냄새를 맡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레인은 공작성의 자랑인 유리 정원에 윤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센트리움의 화려함에 익숙해진 이레인 자신조차도 이 거대한 유리 정원에 들어섰을 땐 깜짝 놀라지 않았던가. 그러나 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곳을 거닌다.
“윤은 고국에서 신분이 무엇이었나요?”
“음, 평범한 학생이었지.”
“아카데미에 재학중이셨던 건가요?”
“비슷해.”
이레인은 재잘재잘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윤이 살던 곳에선 이런 유리 온실이 있었나요?”
“오늘따라 궁금한 게 많은 것 같네. 많은 건 아니었어. 그 대신 다른 형태의 온실은 많았어.”
비닐하우스도 온실로 쳐준다면 말이다. 윤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레인이 얼굴을 붉혔다. 아이는 손까지 휘저으며 횡설수설 말했다.
“그, 그냥요. 저는 신기한데 윤은 아무렇지 않아보여서…….”
“나도 신기해.”
그저 이런 것에 일희일비하기에 자신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던 윤은 한걸음 옮길 때마다 어린 아이처럼 감탄하는 맥카터 교수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취소했다. 그냥 한국에도 비슷한 것이 많아서 놀랍지 않은 게 분명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투명한 유리 위로 잿빛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가느다란 진눈깨비 같은 눈을 흩뿌리고 있건만 온실 안은 봄처럼 온후했다.
시간의 위력은 대단해서 마력을 이용해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백년이 되자 세상이 변한다. 이런 유리 온실도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했던 거다. 아마 삼사백년 후에 오면 이곳에도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윤은 통화권 이탈로 쓸모없어진 자신의 스마트폰을 생각하며 킬킬 웃었다.
“윤 님은 고국에서 귀족이었나요?”
“글쎄. 우리나라엔 귀족이나 평민 같은 개념은 없어서…. 그리고 난 평범한 대학생이었어.”
이레인의 질문에 윤은 귀찮아하지 않고 착실하게 대답했다.
“하이어드 경, 대학생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맥카터 교수가 끼어들었다. 그의 눈은 새로운 개념에 대한 흥미로 빛나고 있었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뜻합니다. 대학은 음…. 전 설명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경께서 한글이란 문자를 가르쳐주실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니 괜찮습니다.”
노교수는 웃는 얼굴로 날카롭게 지적했다. 며칠 전부터 윤은 노교수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윤이 해석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는 학구열의 발로였다. 그러나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윤은 체육계 청소년이었고, 학창 시절엔 고된 훈련에 지쳐 엎드려 자기에 바빠 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도 대학 진학 이후였으니 배움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지 못했다.
노교수에겐 불행이었지만 윤에게는 행운이다. 그동안 자신이 남긴 쪽지들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거짓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골몰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성과는 없었지만.
“제가 다니는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일반적으로 12년 간 공부를 하게 됩니다. 아무리 가난하거나 힘들어도 초등학교, 중학교 9년은 의무 교육이라 하여 반드시 이수해야 합니다. 그 후 3년간 고등학교라는 곳을 배우게 되는데, 보통은 여기까지 이수하게 됩니다. 그러고나선 이후 2년에서 4년, 또는 그 이상을 대학이라는 곳을 다니며 자신이 깊게 배우고 싶은 학문을 공부하게 되고요.”
노교수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나라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상도 못할 부유함을 가진 나라임에 틀림없었다. 정말 대단한 구조라 생각되었다. 윤을 붙잡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 놓으라 재촉하고 싶었으나 생각에 그칠 뿐이다.
“그럼 대학 이전에는 무엇을 배우는 겁니까?”
“아카데미와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언어, 산수, 예절 등 사람이 살아가며 필수로 알아야할 것을 가르치지요. 이후 대학에서 좀 더 심화된 학문을 배우는 개념인데.”
“그렇다면 대학이란 곳은 아카데메이아와 같은 곳이군요.”
“예, 비슷합니다. ……설명하려니 어려워서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선생님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윤이 한숨을 내쉬자 맥카터 교수가 껄껄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알아들으면 될 터이니. 하이어드경, 당신이 살던 곳에 대해서는 추후 좀 더 심도 있는 대화를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슬슬 문자도 다 익혔으니 해석하는 법도 배우는 것을 겸해서요.”
“…그렇게 하지요.”
윤은 떨떠름함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것을 모른 체하며 맥카터 교수는 조용히 따라오던 이레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황자 저하. 이제 준비도 다 된 것 같으니 돌아가서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네, 스승님!”
흰 조약돌을 밟으며 걷는 이레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뛸 듯 경쾌한 걸음에 이레인의 금발이 눈부시게 흔들렸다. 늘 어둡고 무거운 황궁에서 위축되며 지내다가 공작성에 온 지금은 무척 행복했다. 아마 자신 혼자 이곳에 왔더라면 이렇게 충만한 나날을 보낼 수 없었을 터였다. 이레인은 윤에게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가냘픈 체구를 지닌 청년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듬직하게 느껴졌다. 때론 노인처럼 침착하고, 때론 장난꾸러기 친구 같은 알 수 없는 남자. 라야는 그가 위험하고 무섭다고 했지만, 이레인은 그가 좋았다.
이레인은 고개를 들어 윤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윤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해왔다. 까만 눈동자가 마치 보석 같다.
“요즘 지내는 건 어때?”
“정말 좋아요.”
“다행이네.”
윤이 씩 웃으며 이레인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쓰다듬었다. 라야는 질색했지만 이레인은 윤의 스스럼없는 손길이 좋았다.
“형님도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뵙고 있어요. 그때마다 불편한 건 없는지, 물어보며 신경써주시고요.”
“아스탄이?”
“네, 모두 윤 님 덕분이에요.”
이레인이 수줍게 웃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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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기념으로 연참!!!
이 소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과 참새꽃님께 감사드립니다!
Q. 윤의 몸은 어떤 상태인가요?
A. 불로불사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심한 상처를 입으면 몸에 흉이 남기도 하고,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생리 현상을 느끼지요.
늙지 않고, 노화로 인해 죽지 않는다는 상태로 이해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이 이상은 뒷내용 유출이라서 죄송합니다 ㅠ0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