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 (166)화 (166/176)

166.

월요일은 또 심란하여 검을 그으며 시간을 보냈고, 화요일은 마리앤이 홀로 훈련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연무장 다섯 바퀴를 뛰고 회복 주문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더니, 마지막 일곱 바퀴를 다 뛴 뒤에는 거의 바닥에 달라붙은 아이를 떼어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기마자세를 하는 동안 양손에 철검을 들게 하여 무게를 맞출 수 있도록 도왔다. 마리앤은 몇 번 꽥꽥 돼지 잡는 소리를 내더니 곧 수긍하여 열심히 했다.

혼자서 할 때에는 다치지 말아라 하고 이런저런 것을 꼼꼼히 가르쳐 두었다.

아이를 보낸 뒤 나 또한 간단히 수련을 하고 아카데미 정문 앞으로 나왔다.

화요일은 윌턴 로버츠 교수와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했다.

시간 맞춰 나와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윌턴이 나오지 않아 의아해진 찰나, 저쪽에 한참을 서 있던 훤칠한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못 알아보는군.”

“⋯교수님?”

윌턴 로버츠였다.

까만 옷을 입고 오지 않아 못 알아본 것을 깨닫고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목부터 발끝까지 시꺼먼 옷을 입고 다니던 평소와 달리, 오늘의 로버츠는 보통의 시어런 사람처럼 차려입었다.

흰 셔츠 위에 다갈색 베스트, 그 위에 무늬 없고 도톰한 코트를 갖추어 입고 머플러까지 둘렀다. 잘 차려입은 로버츠가 꽤 평범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 놀랐다. 그의 잿빛 머리는 볕 아래에서 보니 회갈색으로 빛났다.

새삼 감탄스러웠다. 변장을 하지 않아도 변장한 것처럼 보인다니, 그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래.”

“죄송합니다.”

“지금 갈 곳은 내 첫 번째 직장이다. 다른 주의할 것은 없고, 내가 먼저 말 걸기 전에는 절대 입을 열지 말아라.”

“⋯예.”

로버츠는 내 사과를 굳이 받아주지 않았으나, 그가 마음 상한 기색은 없었다. 그는 평범하게 마차를 잡아 탔고, 나도 따라서 마차에 올랐다.

윌턴 로버츠의 첫 번째 직장이라 함은 제국귀족연감 관리감찰부서일 터였다. 이 제국의 수많은 비밀 중 제일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내심 먼 길을 떠나야 할까 싶어 긴장하고 있었으나, 마차는 평범하게 시어런 제국의 공기관이 모여 있는 거리에 멈춰 섰다.

시어런 제국의 모든 기관들은 너른 땅에 건물 여럿을 두는 것이 당연했다. 그중에서도 마차가 멈춰 선 곳 앞에는 다섯 개의 큰 건물이 높은 담을 두르고 서 있었다.

마차 여덟 대는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넓은 통로에 오가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사람이 없을 시간인가? 의아한 마음이 들었으나 미리 들은 것이 있어 입을 열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윌턴은 정문으로 향하는 대신 담장을 따라 걸었다. 길 중간부터 은신하기에 따라서 기척을 숨겼다.

그런 나를 한 번 돌아본 윌턴이 흐뭇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 하였다. 그저 숨을 죽였다.

어느 순간 멈춰 선 윌턴 로버츠가 벽을 짚어 몇 가지 손동작을 하니, 담장이 문이 되었다.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겨우 막았다.

앞장서서 들어간 윌턴의 뒤를 따라 소리 없이 걸었다.

길고 검은 통로였다. 들어가는 길에 윌턴은 목에 걸린 아티팩트를 몇 차례 꺼내 보였다. 그럴 적마다 막다른 길에 문이 생겼다.

문은 앞에 생기기도, 오른편에 생기기도, 왼편에 생기기도 하였다. 눈을 가리고 길을 더듬어 걷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네 차례 반복하자 갑작스럽게 큰 공동에 도착했다.

마법사 여럿이 길다란 테이블에 앉아 이켠을 보고 있었다.

주변에는 윌턴과 비슷한 인상을 한 사내와 여인들이 오가고 있었다. 대부분 잿빛이나 다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두건을 써 머리색을 가린 채였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선으로만 그들을 살피며 윌턴의 뒤에 바짝 붙었다.

윌턴은 마법사 중 하나의 앞에 섰다.

“이름, 신분.”

“카일, 검사.”

윌턴 로버츠의 이름이 카일이라고? 그러나 마법사는 바늘침 하나를 꺼내더니 윌턴의 손가락 끝을 찔러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되었습니다. 옆은?”

“견습생.”

“견습생은 출입금지구역에 접근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마법사가 손을 달라 청하기에 윌턴을 보았다. 윌턴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기에 순순히 내 손을 내주었다. 내 손끝에도 바늘침이 닿았다 떨어졌다.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마법사가 내게 네모난 카드 하나를 건네주었다.

견습, 두 글자가 적힌 네모난 종이는 빳빳한 감촉이었다. 망설이다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윌턴 로버츠는 다시 앞장서서 걸었다.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의 뒤를 따르며 불안한 마음을 삭이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긴 통로를 지났고, 다시 커다란 공동에 닿았다.

수많은 책상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도열해 있었다. 커다란 책상 가득히 서류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고, 사람들의 머리 위로 라넌큘러스 수십 마리가 소리 없이 날아다녔다.

새 지저귀는 소리 대신에 펜이 종이 위를 사각사각 긁어내는 소리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중 한 책상으로 다가선 윌턴 로버츠가 책상 위를 똑똑, 두드렸다.

“당일, 하, 관찰.”

앉아있던 이가 대답도 없이 두루마리 하나를 윌턴에게 넘겨주었다. 윌턴은 내용 한 번 확인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떴다.

내가 말없이 그 뒤를 따르자, 한쪽 옆으로 트인 문으로 들어선 윌턴이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내용을 한 차례 눈으로 훑은 윌턴 로버츠가 내게 툭 말을 걸었다.

“질문.”

“⋯지금 손에 드신 건 무엇입니까?”

“오늘 임무.”

“이곳에선 말을 해도 됩니까?”

“여기는 아무도 엿보지 못 하는 곳이니까.”

윌턴이 벽을 툭 건드리자, 흰 마법식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눈을 끔벅였다. 윌턴이 두루마리를 내게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이름과 사는 곳, 간단한 신상명세가 적혀있었다.

[베넷 로이드, 22세, 수도 21번지 38.

로이드 자작가 B-4 14:28]

“지금 현재 작위 경쟁 중인 로이드 자작가의 네 번째 사생아라는군. 한 번 살펴보러 갈까.”

두루마리의 내용을 확인한 윌턴이 벽에 나 있는 구멍으로 그것을 툭 밀어 넣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또다시 어안이 벙벙하여 입을 닫았다.

도착한 곳에서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오후 두 시 이십팔 분. 21번지 38번 집 앞에 마차 하나가 섰다. 윌턴 로버츠는 아무렇지 않게 그 집의 창문에 붙었다. 나도 그렇게 했다. 고운 얼굴을 한 여인이, 집에 들어선 사내를 향해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몇 번 말해요? 전 작위 그런 거 원하지도 않아요! 날 좀 그만 괴롭혀요!”

“합의금도 필요 없다고? 정말?”

“네! 저는 로이드가 아니라, 베넷 애밀턴이예요! 당장 꺼져요!”

윌턴 로버츠가 무언가를 적었다. 잠시 뒤, 사내는 마차를 타고 그 집을 떠났다.

베넷 애밀턴은 분을 참지 못하고 베개를 내던졌고, 윌턴은 창문 너머로 염탐하는 것을 그만두고 골목길로 내려섰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게 뭡니까?”

“본인 의사로 작위를 포기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 두는 것이지.”

“본인에게 알리지도 않고요?”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사람의 속내를 어찌 읽겠어?”

“당일, 하, 관찰이라는 것은.”

“오늘 하루만 확인하면 되는, 난이도가 낮은, 관찰만 하면 되는 임무를 뜻한다.”

얼떨떨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윌턴 로버츠는 시종일관 담담했다. 나는 지금껏 그를 존경해왔기 때문에,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애를 썼다.

“⋯만약 오늘 이 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요?”

“내 몫의 임무는 마쳤으니, 다음에 같은 임무를 받은 사람이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주었겠지.”

“⋯대체, 대체 저자가 지금 이 시간에 올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윌턴은 나를 똑바로 보고 웃었다. 그 미소에 소름이 돋았다.

“네가 새벽 여섯 시에 보라색 머리 꼬마와 연병장을 도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 그와 흡사한 일이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

말문이 턱 막혔다. 잠시 고개를 털어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물었다.

“⋯교수님은 이 일이 즐거워 보이시는데요.”

“재미있지 않나? 어때, 너도 흥미가 있다면 지원해 보는 것은.”

나는 곧장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윌턴 로버츠가 조금 더 빨랐다.

“지금 당장 하라는 건 아니야, 네가 좋은 인재니 고려를 해 보라는 말이지.”

“⋯예. 생각해보겠습니다.”

따져보면 스승의 말을 곧장 거절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나는 입을 닫았다. 심상이 복잡했다. 이건⋯ 정말로 이상했다. 아주 이상해 보였다.

이런 것이 당연히 용인된다고? 관찰당하는 입장의 사람에게도 이것이 옳은 일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그⋯ 방에 들어선 자가 베넷이라는 여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내가 막았겠지.”

“⋯그렇습니까?”

“그래. 부당한 작위 쟁탈에 속하는 행위니까.”

당장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내 어깨를 툭 건드린 윌턴 로버츠는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평소 그의 목소리와 톤이 다른 목소리는 도리어 두렵기까지 했다.

“나는 아카데미에 없을 적에, 보통 이런 일을 하지.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나?”

“⋯예.”

“넌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놈이야. 제국 귀족 연감 관리부서에서는 늘 훌륭한 인재를 찾고 있지. 네가 질서와 평화를 추구한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 입사를 도와주도록 하마.”

“⋯예.”

나는 곱게 대답했다.

윌턴 로버츠는 소리 나지 않는 피리를 불어 라넌큘러스를 불렀다. 흐린 색의 라넌큘러스는 윌턴이 속삭이는 전언을 듣고 곧장 자리를 떴다.

내가 돌본 귀엽고 파란 것과 이 야멸차고 조용한 것이 같은 종의 마법생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 식사를 하면서 윌턴 로버츠는 귀족 연감 관리부서의 수신호와 암어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일러 주었다.

내가 참지 못하고 내게 이런 것을 알려주어도 되는지 묻자, 윌턴은 다정히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네가 우리 식구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넌 이 정도는 알아도 되는 놈이야.”

“⋯그건, 어째서입니까?”

“언젠가 우리는 협업하게 될 테니까.”

어떤 계산으로 이루어진 말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묵묵히 식사를 했다. 육즙 가득한 고기에서 종이를 씹듯 떫은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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