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 (128)화 (128/176)

128.

초급 검술은 체력을 단련하고 각기 자신이 익혀 온 검술을 다듬어 마엘로 샌슨에게 지도를 받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중급 검술부터는 시어런의 기사라면 익혀야 할 공통 검식을 배우게 된다 하였다.

제국검법. 발렌티아 공작가와 에른하르트 백작가를 비롯한 시어런의 기사 대부분이 주로 사용하는 검법이었다.

일전에 왜 시어런 아카데미에서는 공통된 검식을 가르치지 않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중간 단계를 몰라 그런 소리를 했던 모양이었다.

마엘로 샌슨은 언제나처럼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간단한 설명을 더했다.

“이미 다들 초급 딱지는 떼고 왔으니만큼, 제국검법을 한 번 이상씩은 접해본 적이 있을 거야. 본 적 없는 사람 있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제국검법은 가장 뛰어난 검법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안정적인 검법이야. 불안정한 검법은 더 강해 보이기 때문에, 보다 유혹적이기 마련이지. 하지만 그 반동을 몸으로 받아내다 보면 자연히 어느 순간, 대열에서 낙오된다.”

마엘로 샌슨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았다.

마엘로 정도의 경지라면 아이들의 근골이 뻗은 방향만 보더라도 어떤 검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식과 형이 유려한 창천무애검을 썼다. 손끝과 발끝이 무디지 않고 섬세하여 쭉쭉 뻗었다.

“지금까지 배운 여러 검법을 하나의 검법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제국 검법이 가교가 되어 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오래 인내해야만 하는 때, 여러분은 제국 검법을 찾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연설도 참 잘하는 사내였다. 나는 마엘로의 말에 깊게 감동하여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쳤다.

쉐이든이 더 멀찍한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내 탓인가 싶어 바라보았더니, 쉐이든이 민망한 웃음을 보이며 내 옆을 눈짓했다. 빌 브라운이 손을 크게 휘두르며 울고 있었다.

⋯나 또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샘처럼 솟았다.

허나 빌 브라운은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중급 검술 수업을 듣겠다고 온 1학년들 중에서는 제일 열심히 했다. 제국 검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체가 강인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했는데, 이미 몸이 만들어 진 놈이라 어려움 없이 동작들을 훌륭히 해 냈다.

다만 무엇 하나 할 때마다 내게 쪼르르 달려와 칭찬해 달라 보채는 것이 귀찮았다. 인정이 고플 나이인 것을 감안하여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가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고 졸랐다.

날 기다리고 있던 쉐이든과 벤자민, 그리고 루베르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쉐이든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알아듣고 아이를 다시 제 동무들 사이로 보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네 동기들은 어쩌고.”

“아! 괜찮습니다! 제가 선배들이랑 식사한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 놈들이에요!”

“⋯그게 아니라, 아이들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니.”

“예? 이미 친한데요! 다들 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 곤란함을 눈치 챈 쉐이든이 잠시 생각하다가, 빙긋 웃었다.

그 야살스러운 웃음이 평소의 것이 아니라 예의를 차리는 상대 앞에서야 할 수 있는 가식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고 있어 떨떠름했다.

“대신에, 식사 도중에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예!”

“더 작게.”

“⋯네!”

“좋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벤자민이 내게, 어쩌다 저런 놈을 옆에 붙이고 왔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 입을 닫았다.

식사 시간 내내 빌 그놈이 우렁찬 목소리로 오늘 수업이 무척 즐거웠다 떠들어대는 통에 입맛이 없었다.

루베르가 내가 좋아하는 반찬 몇 개를 챙겨주어 겨우 식판을 비웠다.

* * *

월요일 오후 수업은 세드릭 교수가 맡은 약물 제조 실습 수업이었다.

정확한 과목명은 <연금의 마법, 약물 제조 실습> 이었다.

연금술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물약 따위가 필요하다면 남이 만든 것을 사서 들고 다니는 것이 더욱 편하고 좋을 것이라고 여기는 나였다.

세드릭 교수의 수업이니만큼 시험 대신 과제로 대체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미카엘! 와, 정말 정말 오랜만이에요!”

“방학 잘 보냈어요? 보고 싶었어요~!”

“정말 잠깐 눈 떼면 훅 자라네요. 벌써 이반이랑 좀 비슷한 게 아닌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 제가 훨씬⋯.”

그래도 해맑은 얼굴로 인사하는 동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흐뭇하고 좋았다.

지난 방학 기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을 서로서로 자랑하기에 나 또한 발렌티아 공작가에 다녀온 것을 자랑했다.

눈썰미 좋은 아이들이 내 목에 걸린 로켓을 열어보고 싶다 졸랐다. 초상화 없이 빈 로켓은 그 장식 틈새가 비어있어 밝은데, 초상화가 들어 있는 로켓은 빛이 막혀 어둑한 것을 이때 알았다.

순순히 목에 건 것을 풀어 손에 쥐여 주니 아이들이 그 안을 보며 감탄을 했다.

“정말 예쁘게 잘 나왔어요.”

“미카엘 미모에서 빛이 나는 이유가 여기 들어있네요.”

“눈 감고 봐도 에른하르트.”

“여동생이 몇 살이라고 했죠?”

“다섯⋯아니, 올해로 여섯 살입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니 탐내지 말라 일렀다가, 크게 야유를 들었다.

내 부모와 동생들이 정말 어여쁘고 아름답고 고귀하다 하는 말들이 입에 발린 것을 알아도, 듣기에 좋아 계속 칭찬하라 했다.

진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아이들이 농담으로 받아 와르르 웃기에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서로 저들의 근황 이야기를 꺼냈다.

마리앤은 이번 겨울방학 내내 글로틴 테너와 붙어 다녔다고 했다.

파트너가 지정되어 있는 덕택에 가지 않아도 되는 모임이 많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것이 참 좋았다며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정인을 만들 것을 권했다.

데미안과 제니는 나를 통해 소개받은 세르벨 백작가 남매가 이래저래 많이 챙겨 준 모양이었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수도 곳곳을 견학한 것을 막 자랑하려던 찰나, 세드릭 교수가 교실에 들어섰다.

“아이고, 다들 얼굴이 반짝반짝하네. 완전 병아리 같아. 이제 후배들도 생겼는데 이렇게 떠들어대서 되겠어?”

테이블을 손으로 탁탁 내리치는 소리에 아이들이 와아 웃으며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세드릭이 눈으로 아이들을 헤아리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았다.

“모두들 알고 있다시피, 약물 제조 실습 수업은 이전에 기초 연금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만 들을 수 있는 과목이지.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은 모두 다 마법 시약을 제조해 본 경험이 있을 거야.”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작은 목소리로 네에, 네. 곱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쉽게 채취할 수 있는 단순한 재료로, 직관적인 약물을 만드는 것이 기초 연금. 그리고 좀 더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효능의 약물을 만드는 것을 중급 연금, 거기에 더 나아가, 일반적인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불규칙과 무질서 사이에서 목표한 물질을 건져오는 것을 고급 연금이라고 부른다.”

세드릭은 씩 웃으며 가지고 온 프린트물 뭉치를 교탁 위에 탁탁 내리치더니, 갯수를 헤아렸다. 가장 앞줄의 아이들이 일어나서 용지를 받아 와 뒷자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세드릭의 방식을 잘 알고 통하는 것이 대견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배울 건 중급 연금이야. 모든 연금이 그러하듯이,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쓸 만한 것이 나온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 둬. 자, 그럼 이번에도 조를 나눠볼까?”

이번에는 학부와 상관없이, 저 원하는 대로 다섯 명씩 조를 나누었다.

쉐이든은 다른 동무들과 경영 관련 수업을 듣겠다고 연금 수업을 수강하지 않았다. 덕분에 친한 아해들 중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함께 조를 짤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을 미리 예상하고 발을 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참 기특한 일이다.

나, 제니, 마리앤 필로덴도르, 이반 홀모스, 데미안 크리스토퍼.

우리는 4조 이름표가 적힌 책상으로 옮겨 앉았다.

한 조당 실험 도구 상자를 한 상자씩 받았다.

야영 수업 때 받았던 것은 임시로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납작한 함에 들어있었고, 그 무게도 가볍고 통통 튀는 재질의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것은 크기도 크고, 묵직하고, 눈금이 뚜렷하고 선명했다. 이전의 것보다 더 귀한 것임이 분명했다.

신기해서 돼지꼬리마냥 꼬불꼬불한 유리관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데미안이 깨지지 않게 조심하라 속삭였다.

내가 벤자민도 아닌데 이런 것을 놓치거나 깨트릴 일이 있겠는가 싶어 그냥 웃어주었다.

처음 한 달의 수업은 각 도구의 명칭을 정확히 알고, 사용법을 익히고, 재료상에게 재료를 구입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했다.

찬찬히 들어보니 대량으로 마나를 들이 부어 양식하는 재료들이 많았다.

우리가 야영 수업을 들으며 직접 채취해 왔던 재료들 또한 노지에 있는 것보다 양식한 것이 더 질이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난번 수업에서 질 나쁜 재료를 구해오면 새로운 좋은 것으로 바꿔주기에, 세드릭이 아이들보다 먼저 가서 좋은 것을 골라다 두었나, 혹은 교수라서 채취하는 실력이 더 좋은가, 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내게는 퍽 억울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전 수업에서 배운 것들이 급하게 사용하는 해열제나 복통 치료제 등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따져 물을 일이 아니었다. 위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더해도 더해도 부족한 법이었다.

첫 시간에는 간단히 인편으로 주문하는 법을 배우고, 다음번 수업시간에는 직접 재료 도매상과 소매상에 찾아 가 본다고 했다.

종이로만 알고 있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고 몇 번씩 강조하는 세드릭의 말에 감화되어 있었고, 또 걸어 다니며 세상을 배우는 일이 즐거웠기에, 나는 내가 이 수업을 좋아하게 될 것을 확신했다.

더 이상 다리를 절지 않는 데미안이 뿌듯한 표정으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건 제 전문 분야입니다. 잘 따라오기만 하세요.”

그 소리를 엿들은 같은 조 아해들이 환호하는 대신 조용히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막았다. 우습고 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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