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 (113)화 (113/176)

113.

이반과 둘이 열심히 재료를 찾으러 다녔다.

제니나 마리앤이었다면 멀리서도 이게 무엇이다, 저건 무엇이다 하고 재깍재깍 이름을 알려 줬을 테지만, 이반은 사전으로 외운 지식과 실제로 피어난 풀잎을 비교하는 데에 재주가 없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나보다는 나은 실력을 가지고 있고, 워낙 무던하고 인내심이 강하여 손을 조금 끌어주기만 하여도 높은 바위도 잘 오르고, 얕은 계곡도 잘 넘어 함께 다니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러저러해서 두 시간이 조금 안 되었을 때에 이끼와 가지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채집물을 상자에 그득 담고 나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아이들에게 돌아가 자랑하고 산을 내려가자, 그렇게 정하고 길을 돌아가던 중이었다.

피잉, 저 멀리서 아득한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꽃이 보였다.

잠시 놀라 이반과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피잉, 피잉. 불꽃 두 개가 더 올라왔다.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이반을 그대로 한쪽 어깨에 걸머쥐고 달렸다.

왼손으로 녀석의 허벅다리를 단단히 쥐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가지들을 갈랐다.

급한 마음에 검에 오러가 스몄다. 휘두른 검에 맞은 나무 몇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쓰러지다가 다른 나무에 얽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내공으로 돋운 귓가에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주변을 살피며 걸었기 때문에 떠나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장애물을 모조리 베어 가며 내달리니 금방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상불 소리가 내 신경줄을 갉았다.

아이들과 떨어지지 말 것을 그랬다.

각 조에 무인을 하나씩 박아 넣은 이유를 알면서도 나 편하자고 아이들을 두고 온 것이 불안하여 폐부가 빠듯하게 죄었다.

겁이 났다.

일각을 쉬지 않고 달려서야 짐을 둔 평지를 찾았다.

들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짐승들이 수십이었다.

이반을 내려놓지 않은 채로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그었다. 짐승의 큼직한 몸뚱이의 절반이 갈렸다.

피를 본 것이 무척 오랜만이었으나, 사색에 잠길 시간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 살폈다. 주둥이가 얼어붙은 늑대 둘이 캥캥거리며 그 얼굴을 앞발로 긁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왼손을 허공에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수식을 몇 번이나 덧그리는 마리앤은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 앞에 불붙은 막대를 휘두르는 데미안이 서 있었다.

제니가 짐들을 뒤에 두고 덜덜 떨며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했다. 눈물로 한껏 젖은 얼굴로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미카엘, 하고 달싹이는 입 모양을 보았다.

나는 여전히 이반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 아이를 덩그러니 놓았다가 해를 입을 것이 두려웠다.

나는 검을 높이 들었다. 단번에 내리쳐 늑대 한 마리의 목을 갈랐다.

급한 마음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지 짐승의 목뼈에 칼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빼내어 오른편으로 횡을 그었다. 달려들던 또 다른 짐승이 그대로 주둥이에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개중에 가장 큰 늑대가 길게 울었다.

아우우, 긴 울음소리를 들은 늑대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이것들을 모조리 처죽일 수도 있었으나, 당장 아이들을 구하는 일이 먼저였다. 후퇴하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늑대 무리를 시선으로 훑으며 살기를 내었다.

그런데 그때, 늑대 한 마리가 앞에 서 있던 데미안의 다리를 콱 물어 챘다.

아이가 악 소리도 내지르지 못하고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눈에 불이 튀었다. 단숨에 내달려 그 목을 베었다. 위에서 아래로, 동강이 난 늑대의 목줄기에서 핏물이 튀어 아이를 적셨다.

날이 춥지 않았음에도, 뜨겁게 김이 올랐다.

아우우, 다시 한번 긴 소리가 울렸다. 나는 아이들을 등지고 섰다. 그제야 내 어깨에서 내려온 이반이 우욱, 욱 구역질하는 소리를 귓등으로 흘렸다.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물러나는 늑대들의 꽁지를 노려보았다.

쉐이든은 괜찮을까?

늑대들이 저만치 멀어진 뒤에야, 데미안이 주저앉았다.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떠는 아해를 내려다보았다. 착잡한 기분을 애써 누르며 대가리만 남은 늑대의 주둥이를 양손으로 쥐어 벌렸다.

벌건 핏물이 아이의 것인지 늑대의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흐으, 흑⋯ 으흐으으⋯.”

데미안이 고통으로 흐느끼며 울었다.

마리앤이 히끅히끅 울음을 삼키면서 허공에 물을 부르는 수식을 몇 번이고 덧그렸으나, 픽픽 빛이 되어 흩어졌다. 서클의 한계에 닿아 더 이상 마법을 자아 낼 수 없는 것이다.

제니가 식수를 가져다가 데미안의 다리에 물을 부었다.

나는 차마 괜찮냐고 물을 수 없었다.

피잉. 비상불이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치료를 해야 했다. 이런 외상은 네 시간 안으로만 치유하면 큰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데미안의 낯이 벌써 창백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려갑시다.”

“네, 네에. 흐으, 윽, 가요. 가요⋯.”

“시야가 트이는 곳으로 가서 불부터 피우죠.”

제니가 대답했는지, 마리앤이 대답했는지 알 수 없었다. 둘 다 울고 있어서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이반이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짐을 챙기지 않았다. 난 데미안을 앞으로 안아 들어 올렸다. 다친 다리를 제대로 굽히지도 못하는 어린 것을 업고 갔다가 혹여 탈이 날까 무서웠다.

초조하고, 걱정스럽고, 분하고, 괴로웠다.

내가 아이들 곁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마음은 급한데, 지친 아해들과 함께 내려가는 길이라 경공을 펼칠 수가 없었다.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동안 제니가 몇 번 미끄러지는 것을 이반이 붙잡아 주었다.

겨우겨우 등산로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먼저 온 한 조가 불을 피우고 얼굴을 닦고 있었다. 오한이 드는 양 몸을 바들바들 떠는 데미안을 모닥불 곁에 내려두고 세드릭을 찾았으나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크게 놀라 다가왔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제일 먼저 신호탄을 쏜 것이 그 아이들이라고 했다.

세드릭이 아이들을 구해 여기에 두고 다시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기에, 나 또한 채비를 했다.

“미카엘! 어디, 어디 가요?”

“세드릭은 몸이 하나뿐이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조가 여럿이기에.”

“이제 신호탄도 다 떨어졌을 텐데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구요!”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습니다.”

나를 말리려던 아해들은 데미안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다른 아이가 이만한 상처를 입었다면 나라도 구하는 것이 맞을 것을 다들 알았다.

나는 쉐이든 걱정에 눈앞이 깜깜하여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숲길로 세 발짝을 떼었을까.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 우뚝 섰다.

세드릭이 아이들을 이끌고 숲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나는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미카! 괜찮아?”

“나는.”

쉐이든이 나를 보자마자 손수건을 꺼내 드는 것을 보고, 내 양손이 피에 젖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하자고 녀석을 밀어내고 세드릭을 찾아 데미안의 부상을 알렸다.

세드릭은 창백한 얼굴로 상처 입은 아이들을 줄 세워 두고 치료 아티팩트를 꺼냈다.

다른 조 아해들은 검사와 마법사의 협력으로 어찌어찌 세드릭이 올 때까지 잘 버텼다고 했다.

특히나 쉐이든은 마침 옆 조와 이끼를 얼마만큼씩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다투던 중에 늑대 무리를 만나 협력하기 쉬웠다고 했다.

개중에 데미안의 부상이 가장 컸다.

나는 아이의 다리에 새살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드릭은 데미안을 치료해 주고 내가 알지 못하는 마법을 사용하여 치료가 완전한지를 몇 번이나 따져 헤아렸다.

데미안의 손아귀에 손톱자국이 패여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이가 산을 내려오는 동안 고통을 참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흔적이었다.

자잘한 상처까지 전부 아티팩트로 치료해 준 세드릭이 아이에게 당부했다.

“⋯종아리뼈가 완전히 부서졌었기 때문에, 아티팩트를 사용한 뒤에도 얼마간은 통증이 있을 거야. 뼈와 근육은 제대로 붙었고, 찢긴 살도 도로 붙었지만⋯. 마법으로도 상처를 입었던 그 시간을 없앨 수는 없어.”

“⋯네.”

“환상통은 길어야 세 달이니까, 그동안은 다리에 무리가 가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하자. 잘 버텼다. 수고했어.”

데미안이 쓰게 웃었다. 세드릭은 다른 아이들의 상처를 돌봐 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발목이 접질린 아이도 있고, 넘어져 몸에 이런저런 상처가 남은 아이들도 있었다.

아주 작은 상처까지도 전부 다 아티팩트를 사용해 돌봐 준 뒤, 세드릭이 통신 아티팩트를 사용하여 내일 오기로 했던 마차들을 도로 불렀다.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다들 둥그렇게 앉아 세드릭의 설명을 들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엘도스 산에는 원래 늑대가 없었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마탑과 제국기사단에 알려 조사하고, 다음 시간에는 너희들에게도 알려 주도록 할게. 사전에 위험 요소를 제거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

히끅, 작은 울음소리가 여전히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긴장이 풀려 울음이 새는 것을 아무도 놀리지 않았다.

세드릭은 우는 아이에게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마차가 오면, 조별로 탑승해서 이동하자. 다음 달 야영 일정은 취소하고 다른 수업으로 대체할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혹여 후유증이 있거나 진정이 되지 않는 친구들은 아카데미에 도착하자마자 의무실에 들르도록 해. 내가 미리 말해 둘 테니까.”

“네에⋯.”

여기저기서 작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에 올라탔다. 피로한 낯빛을 한 데미안이 다리를 곧게 펴고 앉을 수 있도록 그 앞에 침낭을 쌓아 받침을 만들어 주었다.

야영을 떠나던 길에는 내내 소란스러웠으나,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다들 풀이 한껏 죽어 눈만 깜박였다.

“⋯미안합니다, 데미안.”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데미안이 다친 것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데미안이 내게 시선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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