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99화 (99/176)

99.

이번 주 아티팩트 수업 시간에는 의료용 아티팩트에 대해 배웠다.

카이저 교수가 손짓하자 수업 보조인 허시 밀턴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아티팩트를 각기 세 개씩 나누어주었다.

위르겐 카이저 교수는 각 가문의 이름 앞으로 청구서가 발송될 예정이며 해당 금액을 확인하고 싶은 학생들은 학사과에 가면 안내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로 서문을 열었다.

크기가 작은 것은 엄지만 한 막대였고, 중간 것은 둥그런 펜던트 형태였으며, 큰 것은 한 뼘 너비의 붕대를 닮았다. 이쪽에 무지한 나는 박혀 있는 마석 덕에 그것들이 아티팩트임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카이저 교수는 오른손에는 예의 백묵 아티팩트를, 왼손에는 작은 크기의 의료용 아티팩트를 든 채 학생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왜소한 몸집을 가진 교수였으나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물론 다른 아티팩트의 사용법을 숙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용 아티팩트, 특히 외상에 사용하는 아티팩트는 빠르고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연습해 두어야 합니다.”

백묵이 절로 떠올라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칠판에 판서를 시작했다.

몇 번을 보아도 신기한 물건이었다. 칠판에 성의 없는 모양새로 그려진 인영 옆에 각 부위가 다쳤을 때 몇 시간 이내로 치료해야 하는지 따위가 적혔다.

나는 노트에 그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원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머리를 다쳤을 때는 세 시간 안에 치료해야 하고, 팔다리를 다쳤을 때는 환부가 감염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하루 안에만 치료하면 된다는 류의 이야기였다.

다소 심드렁하게 듣던 내가 깜짝 놀란 것은 그다음 이어진 교수의 말을 듣고서였다.

“그리고 신체가 절단되었을 때는 열두 시간 이내로 처치해야 접합할 수 있습니다.”

“⋯접합?”

“손가락이나 귀 등 신체 말단의 경우에는 열두 시간 이내에 2형 신체접합기를, 팔꿈치나 무릎 등의 관절 부위 위쪽으로 절단되었을 경우에는 네 시간 이내에 3형 신체접합기를 사용해야 완치가 가능합니다. 다만 허벅지가 절단되었을 경우 주의해야 할 것이⋯.”

리커버리로 뒤틀린 기맥을 치료하였을 때도 이 땅의 의료 기술이 하늘에 닿았다 생각했는데, 이미 떨어진 팔과 다리를 다시 사람의 몸에 붙인다는 건 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전설의 신의나 화타가 아니고서야 가능할 리 없다 여겼던 일이었다.

이 조그마한 아티팩트로 중한 상처를 없는 일로 만든다 생각하니 입이 떡 벌어졌다.

내가 받은 세 가지의 아티팩트 중 가장 크기가 작은 것이 2형 신체접합기라고 했다.

같은 모양을 가진 것에 마석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이 3형인데, 그 값이 비싸기도 하고 2형과 사용 방법이 동일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펜던트 형태의 것은 전체적인 지혈과 회복 속도 증가 효과를 지닌 3형 종합 회복기였고, 붕대를 닮은 것은 화상과 피부 열상을 다스리는 2형 피부복원기라고 했다.

아티팩트를 사용하기 전에는 감염원 제거를 위해 반드시 깨끗한 물이나 도수 높은 술로 상처를 다스려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내 표정을 다스리기 위해 심력을 쏟았다.

이런 것이 중원에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니, 아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끔찍한 잔상을 애써 떨쳐냈다.

이런 신이한 기물을 그 땅에 가지고 갔다면 기연을 훔치려는 도적들로 인해 몸살을 앓았을 터였다. 그 땅의 남궁정연은 이렇게 귀한 것을 지켜낼 힘이 없었다.

세 아티팩트 모두 작동 방지 핀을 제거하고 버튼을 순서대로 눌러야 작동하는 기물이었다.

핀을 제거하지 않은 채로 연습해 보라는 말에 모든 학생이 진지한 낯을 하고 순서대로 버튼을 눌렀다. 상처 부위에 따라 눌러야 하는 버튼이 달랐으나 그 순서에 일정한 규칙이 있어 한번 외우면 여러 아티팩트에 동일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다급한 상황에서 당황하면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할 수 있으니, 눈을 감고도 버튼을 조작할 수 있도록 훈련해 두라는 말에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이들이 몇 차례 조작법을 연습한 뒤, 허시 밀턴이 교실 한켠에 놓여 있던 손수레를 끌며 앞으로 나섰다.

손수레 위에는 흰 셔츠와 감색 바지를 입은 사람 모양 인형이 하나 얌전히 앉아 있었다.

머리, 가슴팍, 복부, 팔다리에 갈라진 틈이 있었다. 피를 대신하여 푸른색의 진득한 액체를 펴 발라 둔 인형의 모양이 괴기하여 미간을 좁혔다.

“여러분의 앞에 놓인 것은 치료 연습용 골렘입니다. 보존 마법을 걸어 상처를 치료한 뒤에도 동일한 방식의 상처가 다시 만들어지도록 세팅해 두었어요. 이제부터 좌측 앞줄에 앉은 학생부터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오늘 배부받은 아티팩트를 직접 사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요일마다 내 심법을 함께 연구하는 메이지 볼더도 골렘에 대한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볼더는 골렘을 흙과 돌로 만든 인형과 흡사하다고 하였으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그보다 더 사람을 닮았다.

홉뜬 눈 안에 박힌 것은 유리구슬이고, 전신의 피부는 사람의 것이 아닌 짐승 가죽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랬다.

이 보존 마법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걸린다면 얼마나 잔혹한 모습일 것인가 생각하니 전신에 소름이 돋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난데없이 눈앞에 놓인 잔혹한 광경이 당혹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였는지, 여기저기에서 아해들이 놀란 숨을 히끅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로 지목된 학생이 주춤대며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을 본 위르겐 카이저 교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이 아티팩트를 사용하게 될 때는 좀 더 잔혹한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처치하는 법을 배운다면 동료의 안전을, 나아가 여러분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세요.”

“⋯네에.”

첫 번째 순번의 아해가 앞으로 나서 펜던트 형식의 아티팩트의 작동 방지 핀을 제거했다.

버튼을 누르는 손끝의 가느다란 떨림이 멀리 앉은 내게까지 빤히 보였다. 교수는 그 모습을 일견하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 중 대다수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먼 상행을 떠날 일이 많을 거예요. 다시 한번 말합니다. 안전은 돈으로 사는 거예요. 힐링 마법을 수준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없다면 모든 상행에서 이동 인원수의 두 배수는 되는 의료용 아티팩트를 소지해야만 합니다.”

곧 첫 번째 아해가 성공적으로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안력을 돋워 살펴보니 골렘의 모든 환부가 움찔움찔 떨리는 것이 보였다. 상처의 단면부가 저들끼리 서로 얽히더니 벌어진 상처의 틈을 메웠다.

상처의 모양새도 그랬지만 낫는 모습도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그 상처가 다시 벌어지자 가까이 서 있던 아해가 꺅 소리를 지르며 제 자리로 달음박질쳤다.

교수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다음 순서를 불렀다.

아이들의 손이 버튼 누르는 순서를 틀리지 않았는지 유심히 살펴보며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럼 실습이 진행되는 동안 합리적인 금액으로 아티팩트를 구입하는 법에 대해 강연하겠습니다. 의료용 아티팩트는 그 사용 목적과 사용처가 분명히 정해져 있다면 제국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품목입니다. 아티팩트를 구입하기 전에 보조금 신청서를 작성하여 관할 세무서에 신고를 먼저 하고⋯.”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교수가 말하는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시어런 제국에서 이렇게 인명을 소중히 다루는 것을 느낄 적마다 늑골 아래쪽이 욱신거렸다. 전생의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칼을 맞은 자리에서 느껴지는 환상통이었다.

우스운 일이다. 이제는 없는 상처를 도로 현생에 끌어오는 것처럼 멍청한 일이 또 없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골렘의 상처를 훌륭하게 회복시켰고, 다시 상처가 벌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쩐지 입 안이 쓰게 느껴져, 수업이 끝난 뒤 바로 양치를 했다.

* * *

화요일 고급 검술 수업 시간에는 계속해서 합격술을 연습했다.

마엘로 샌슨이 휘두르는 검의 각도와 높이가 묘하게 높았다. 몬스터전을 염두에 두고 휘두르는 검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입에 올리자, 마엘로 샌슨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고급 검술을 익히는 여러분은 내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뜯어말려도 생에 한 번은 유일 산맥에 다녀올 것을 이미 안다. 유일 산맥의 모든 몬스터는 체고가 높은 편이야. 지금 내가 휘두르는 바로 이 위치에서 오우거가 몽둥이를 휘두른다.”

동화책에서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고블린, 오크, 오우거, 트롤. 네 가지 몬스터 정도는 나도 알았다. 녹색 피부와 해괴한 얼굴 생김을 한 놈들이 실존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 어려웠다.

괴력난신도 그런 괴력난신이 없었다.

마엘로 샌슨은 같은 종의 몬스터들도 여러 부족이 있고, 그 부족들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다며 직접 그 움직임을 몸으로 묘사해 주었다.

체고가 높은 몬스터를 상상하며 마엘로 샌슨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힘차게 휘두른 철검이 그리는 단순한 궤적을 보아하니 몬스터의 포악한 성정을 알 만했다.

잠시 휴식하는 시간에 마엘로 샌슨을 붙잡고 유일 산맥에 대한 것을 물었다.

마엘로 샌슨은 거리끼지 않고 제가 졸업하자마자 제국기사단에 채용된 이야기를 했다.

여름방학 동안 목련기사단의 부단장인 이안 벤터스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또 감회가 새로웠다.

마엘로 샌슨은 자신이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것이나 졸업과 동시에 제국기사단에 특채되었다 하는 이야기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입가에 미소를 흠뻑 머금고 이렇게 말했다.

“뭐, 하여간 검을 든 놈들이란 다 똑같잖아. 내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고, 뽐내고 싶고. 그리고 더 강해지고 싶고. 그래서 유일 산맥으로 떠났던 거야. 아카데미 동기들과 하는 대련은 다들 실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감이 안 나니까.”

“졸업하자마자 바로 가셨다고요?”

“무모한 방식은 아니었어. 제국기사단은 크게 둘로 나뉜다는 건 다들 알고 있겠지. 황궁을 수호하는 제국수호기사단과 유일 산맥 토벌에 참여하는 특수제국기사단.”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모여 웅성거림이 되었다. 마엘로 샌슨은 굵직한 두 팔을 서로 얽어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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