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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95화 (95/176)

95.

그런 이유로 목요일 고급 검술 시간에 벤자민의 손을 잡고 수업에 들어갔더니, 동무들이 놀라 뒤집어지기에 사정을 설명하느라 시간을 꽤 썼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간간이 손을 잡아 주기로 했다 말하는 동안 벤자민이 묵묵하게 옆에 붙어 서서 고개만 주억거리는 꼴이 어찌나 안쓰럽고 귀엽던지.

그 등을 몇 번 도닥여 주었다.

루실라는 이번에도 숨넘어가게 웃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얼마나 힘이 세기에 그래요? 저도 잡아 봐도 돼요?”

“⋯그게.”

벤자민이 허락을 구하듯 나를 돌아보기에 나 또한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대꾸했다.

“글쎄⋯. 선배는 손이 으스러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벤자민 영식이 아직 힘 조절이 잘 안 되는 중이라서.”

“아니, 이런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사이야?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너무 웃겨!”

호기심을 참지 못한 루실라가 저도 벤자민의 손을 잡아 보겠다고 떼를 써서, 벤자민의 오른손은 내가, 왼손은 루실라가 잡고 동시에 같은 정도의 힘을 주기로 했다.

저도 무인이라고 자존심을 세우며 괜찮은 체하던 루실라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뗄 때, 나는 묵묵히 말을 덧댔다.

“방금 이 정도가 삼분지 일의 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곰이야? 클라우디안 영식,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본 고급 검술 반 아해들이 모두 신기하고 재미있어하며 벤자민의 손을 한 번씩 잡아 보겠다고 나섰다.

벤자민은 난감해했지만, 내가 한 손을 붙잡아 주고 있는 동안은 적당한 때에 멈춰 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아해들의 요청을 모두 허락했다.

그 꼴을 본 마엘로 샌슨도 하하 웃으며 벤자민의 손을 잡는 줄에 끼어들었다.

잠시간 견디던 샌슨이 오러를 끌어올리는 것을 보고 다들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무인의 힘이 강한 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며 샌슨과 내가 몇 번을 거듭 칭찬해 주자 벤자민 또한 기뻐 입매가 씰룩이는 것이 빤히 보였다.

다만 루베르만큼은 겁이 나서 내 손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고 싶다 하기에 그렇게 해 주었다.

녀석은 한참을 버티다가 저도 못 하겠다며 손을 뺐다.

하여간 다들 하는 짓이 귀엽고 어여뻐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 * *

벤자민의 손을 잡아 줄 적에 굳이 그의 오른손을 잡은 이유가 있었다.

목요일 오후 수업은 비도술 수업이었다. 왼손은 벤자민의 손아귀 힘 때문에 아직도 얼얼했지만 오른손은 멀쩡하여 수업을 듣는 데는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오늘도 시꺼먼 옷을 차려입고 온 윌턴 로버츠 교수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수업을 빠진 사람은 없군. 지금 서 있는 자리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호명하겠다. 앞으로의 비도술 수업에서는 늘 이 순서로 진행할 테니 자신의 번호를 잘 기억해 두도록.”

나는 7번을 받았다. 아주 앞번호거나 아주 뒷번호가 아닌 것이 만족스러웠다.

윌턴 로버츠는 이어서, 지난 수업 시간에 단검의 구조와 쥐는 법에 대해 상세하게 배웠으니, 오늘부터는 던지는 방법에 대한 것을 교습하겠다고 하였다.

번호 순서대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총 세 번 단검을 던지는 것이 수업의 골조였다.

첫 번째는 자유롭게 던져 보고, 그 자세를 보고 로버츠 교수가 충고를 하면 그것을 받아들여 두 번째로 던지고, 다시 그 자세를 검토받고 세 번째 단검을 던진 뒤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로버츠 교수는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단검을 시야에 담지 마. 표적만 바라보도록 해라. 단검이 날아가는 방향을 고스란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걸 맞아 줄 멍청한 놈이 어디 있겠나. 고개 똑바로 들고, 검지와 중지에 힘을 집중해.”

그러나 단검을 던지는 순간에는 조언 한마디 덧대는 일 없이 묵묵했다.

“귀도 닫아. 지금은 조용한 환경에서 던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지만, 후에는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서도 정확한 위치에 단검이 꽂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몸의 감각을 차단하고 손끝의 감각에 신경을 써야 해. 던지는 순간 표적에 맞을지, 아닌지 여부를 알아야 해.”

일곱 번째 순번은 금방 왔다. 나는 루베르가 직접 손에 쥐여 준 방식대로 단검을 쥐었다. 윌턴 로버츠 교수의 예리한 눈매가 반짝 빛났다.

아무 설명 듣지 않고 자세를 잡아 던진 첫 번째 비도는 5m의 짧은 거리에서도 제대로 맞지 않고 과녁의 모서리에 박혔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았다.

윌턴 로버츠는 양손을 묵직하게 맞부딪쳐 짝. 짝.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선 처리와 그립이 아주 훌륭했다, 미카엘 에른하르트. 다만 앞발을 디딜 때 힘이 실리는 방향이 불안정해. 그 부분만 고치면 되겠군. 비도를 날리는 순간 어깨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 부분이 특히 괜찮았다. 유의해서 다시 한번 던져 봐.”

“예.”

두 번째 비도는 아예 과녁에 맞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자만한 것인가 싶어 적잖이 실망했으나, 윌턴 로버츠 교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지금 이 비도 연습장이 트여 있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은 동편에서 서편으로 바람이 불고 있지. 검이 떨어진 부분을 보면 일직선 방향에서 15도 치우쳐진 서편인 것이 보이지? 바람을 잘 탔다는 얘기야. 이처럼 바람을 이용하면 더 멀리, 더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 검을 던질 수 있다.”

“아.”

“잘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던져 봐.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조금 전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예!”

그리하여 세 번째 던진 비도는 과녁의 정중앙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잇새로 비어져 나오는 환호성을 참았다. 꾸벅 인사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자 여덟 번째 학생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일견한 윌턴 로버츠가 말을 이었다.

“에른하르트는 지난 학기에 비도술 예습을 했다지. 사람의 손을 떠난 무기는 무척 위험하다. 때문에, 옆에서 봐줄 사람이 없으면 연습장을 열어 주지 않는다. 따로 연습을 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여기 에른하르트처럼 지난 학기 수업을 이미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학생을 동반하도록.”

“예!”

열 명의 학생이 한 몸이 된 것처럼 크고 정확하게 대답했다.

윌턴 로버츠는 피식 웃고 수업을 이어갔다. 다른 학생들에게 하는 조언들도 모두가 피와 살이 되는 것들이라 아주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올리버 컴바인에게 말을 걸었다.

마리앤의 이야기를 묻기 위함이었다.

마리앤은 제가 좋아하는 사내인 글로틴 테너가 단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잘생긴 사내라고 하였으나 그 목소리가 매번 꿈꾸는 듯 황홀하여 미덥지 못했다.

쉐이든이 보기에도 괜찮은 사내라던 글로틴 테너가 그의 가까운 친구의 눈에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컴바인 선배.”

“어? 어어. 에른하르트 영식? 왜?”

“글로틴 테너 영식이랑 친하다고 들었습니다.”

“응? 어⋯ 그렇지?”

“요즘 그분이 연애를 하신다고.”

“⋯엥? 아니, 그걸 왜 에른하르트 영식이⋯. 아.”

올리버 컴바인이 허, 참. 하고 웃음을 삼켰다.

“마리앤 얘기야?”

쉐이든이 마리앤의 이야기를 할 적에는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언질을 준 적이 있어 돌려 말하려고 노력했으나, 애초에 이런 대화에는 재주가 없었다.

곧장 들킨 것이 민망했으나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냥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어⋯. 여기에서 말하긴 좀 그렇고. 나가서 얘기할까?”

순순히 그의 뒤를 쫓았다.

시어런 아카데미 부지 내에 있는 카페였다.

대화가 끝난 뒤 벤자민을 위해 다시 마사에 가야 하기 때문에 멀리 가는 것은 꺼려지던 터였다. 평소 먹던 대로 파르페를 주문하자, 디저트도 없이 커피 한 잔만 주문한 올리버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의아하여 그 까닭을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기에 나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쓸데없는 신변잡기를 조금 늘어놓은 뒤 올리버 컴바인은 양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해초처럼 구불구불한 청록빛 머리칼이 소년의 가늘고 긴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렸다.

“⋯나는 글로틴 그 새끼, 잘 모르겠다.”

“음.”

친한 동무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나는 당혹하여 침음을 삼켰다. 잠시간 마른세수를 하며 말을 고르던 올리버 컴바인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세를 바로 했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두 분이 친한 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친한 내가 보기에 걔가 하는 게 사랑인지 모르겠다고. 마리앤이 귀엽다 예쁘다 소리는 하는데⋯. 사실 걔가 귀엽고 예쁜 건 그냥 맞는 말이잖아. 그 외엔 평소랑 크게 다른 모습도 없고, 결혼할 거냐 물으면 잘 모르겠다 그러고.”

“음.”

“솔직히 내가 보기엔 필로덴도르 양이 너무 아까워. 글로틴이 조건이 나쁜 건 아닌데, 사랑 없는 결혼은 둘 다 불행할 수밖에 없잖아. 특히 마리앤처럼 발랄하고⋯ 뭐 그런 타입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솔직히 말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올리버 컴바인은 차분한 어조로, 가끔 자신의 눈가나 귓가를 매만지고, 제 턱을 손끝으로 꾹꾹 누르면서 여러 소리를 했다.

대부분은 글로틴 테너가 너무 무덤덤하고, 마리앤 필로덴도르가 너무 귀엽게 굴기 때문에, 글로틴이 어린애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는 소리였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마리앤은 귀엽고 발랄하고 어여쁜 소녀였다. 내 눈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이 없는 제삼자의 눈에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 손주 칭찬을 들은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무던하게 구는 글로틴 테너가 정말 나쁜 놈 같기도 했다. 그래서 글로틴 테너가 나쁜 놈이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올리버가 재차 말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다정한 놈인데, 왜 그렇게 마리앤에게만 쌀쌀맞게 구는지 모르겠다고.

마리앤이 걱정스러워 내 표정이 굳은 찰나, 올리버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마리앤이랑 글로틴 사이를 훼방 놓으려고도 해 봤거든.”

순간 뒤늦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파르페 위에 올라간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먹으며 말을 아꼈다. 올리버가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소년의 청록빛 눈이 어쩐지 흐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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