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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89화 (89/176)

89.

지난주 초급 검술 시간 내내 체력 단련을 하였으니 이번 주에는 검의 형과 식을 다시 다잡을 차례였다.

나는 초급 검술과 고급 검술 수업을 교차하여 듣는 것이 훌륭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초급 검술 시간에는 미진한 검술을 닦고 고급 검술 시간에는 시야를 넓히는 훈련을 반복하자 내 검술이 상당히 빠른 진전을 보이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이미 전생에 초절정의 경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적이 있던 내 눈은 높은 곳을 보고 있었지만 어린 몸이 그에 따라 주지 않는 일이 많았다.

여러 검술을 뒤섞어 펼치다 보니 중심이 흐트러지는 일도 간간이 있었다. 그럴 적마다 놓치지 않고 지적하여 옳은 검로를 찾아 주는 스승이 있어 길을 잃지 않았다.

전생에서 이런 스승을 만났다면 조석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며 챙겼으련만,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감사의 말이라도 제때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수업을 끝마친 뒤 마엘로 샌슨을 따라가 깊게 읍하였더니, 샌슨 교수는 뿌듯한 기색으로 희끗희끗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네가 정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야 기쁘지. 앞으로도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예. 그러겠습니다.”

“새벽에 연무장에 나오는 것은 괜찮아. 다만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훈련하는 것은 아직 네 몸이 덜 자란 탓에 권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연무장 이용 시간은 꼭 지키도록 하고.”

“예.”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하고 아이들과 식사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 * *

위르겐 카이저의 아티팩트 수업에서는 이전 수업 내용을 간단히 복습한 뒤, 이후 내용을 학습했다. 카이저 교수의 목에 걸린 음성증폭기 덕분인지, 교수의 조리 있는 설명 덕분인지 수업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지난 수업 시간에 폭발형 전투 아티팩트에 대해 배운 것과 것처럼, 이번에는 목표 타격형 전투 아티팩트에 대한 것을 배웠다. 목표 타격형도 폭발형과 마찬가지로 화기, 냉기, 전기, 기타 이렇게 네 부류로 나뉘고 소형, 중형, 대형 세 종류로 나뉘어 총 열두 종이었다.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에 따라 직선형, 호선형, 추적형의 세 가지 종으로 다시 나뉘기 때문에 도표를 그리는 것이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기능에 따라 이름 형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몇몇 특수한 경우만 따로 익히면 되어 편리했다.

아티팩트 수업은 월요일 오후 네 시간이 할당되어 있는 수업이기 때문에 중간에 두 번 정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위르겐 카이저는 멀리 가지 않고 교탁 뒤에 의자를 두고 쉬었다. 교탁에 작은 몸이 쏙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나 같은 공간에 교수가 있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휴식 시간에도 소란스럽게 구는 학생은 없었다.

그저 찌뿌둥한 몸을 펴기 위하여 교실 안을 거닐거나,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물이나 작은 초콜릿 따위의 간식을 먹는 정도였다.

“안녕, 에른하르트 영식.”

“예. 오랜만입니다, 선배.”

“나 기억해? 그러니까⋯.”

“입학식 때 길을 안내해 주셨지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경을 쓴 새앙쥐 같은 녀석이 조심조심 다가와 인사하는 것을 반갑게 맞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데미안과 쉐이든이 의아한 기색을 보이는 것을 보니, 양 뺨이 발간 이 어린 청년과 안면이 있는 것은 나뿐인가 싶었다.

문제는 이 녀석의 얼굴은 기억나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다만 지나치게 기뻐하는 녀석에게 이름을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추후에 다른 이에게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녀석의 몇 가지 물음에 성실하게 답해 주었다.

이 수업은 어떻게 듣게 되었느냐 하는 물음에 내 동무들인 데미안과 쉐이든을 소개하고, 요약정리 노트가 필요하면 주겠다는 말에는 감사히 받겠다 대꾸했다. 내내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던 쉐이든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지는 것이 우스웠다.

카이저 교수가 교탁 옆으로 몸을 빼내면서 다시 수업이 재개되었다.

쉐이든이 내 팔뚝을 깃펜의 깃털 부분으로 톡 건드리기에 시선을 돌리니 제 노트의 제일 뒷장에 이런저런 말을 적어 놓은 것이 보였다. 제일 첫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허시 밀턴이랑 어떻게 알아?

그 아래로 줄줄이 쓰여 있는 것은 이런저런 추측성 발언들이었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기에 손을 뻗어 줄글들 위에 선을 그어 지웠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하는 말을 이해한 쉐이든이 다시 한번 제일 윗줄에 쓰인 문장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그냥.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대꾸하며 쉐이든의 노트에 한 줄 짧게 적었다.

-근로 장학생. 입학생 길 안내.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흑마법으로 수상한 짓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흑마법?

-어. 막 이상한 물약 판다고.

-요약 노트도 받지 마?

쉐이든은 진지하게 고뇌하는 낯을 했다.

나이 어린 아해들 사이에 도는 헛된 소문을 무작정 믿을 내가 아니었다. 요약 노트에 일렁일 의심이라면 굳이 믿지 않아도 된다 여겼다. 생각에 잠겨 있는 쉐이든을 그대로 두고 수업에나 열중했다.

목표 타격형 아티팩트들 중에서도 가장 내 흥미를 끈 것은 제5형 추적온감전기타격기였다.

본체와 추적기 한 쌍으로 이루어진 아티팩트였는데, 본체의 크기는 대단히 컸으나 목표추적에 사용되는 기물의 크기는 엄지손톱만큼 작았다. 추적기를 타격 목표에 미리 부착해 두고 원하는 시점에 본체의 마법 수식을 발동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기물이었다.

수식이 발동되는 즉시 추적기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감소하고, 움직임이 둔해진 타격 목표를 향해 전기 공격이 쏘아지는 방식이었다.

추적기를 반드시 부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똘똘하지 못한 몬스터의 거처를 찾아내는 데 유리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온도를 감소하는 감소시키는 방안으로 주변의 수기와 냉기를 끌어오는 덕에 전기 충격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각 원소의 상성에 대해 미리 공부해 두면 아티팩트의 활용에 있어 더욱 효율적인 조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

수업이 끝나고 쉐이든과 함께 벤자민을 찾아가는 길에 허시 밀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했다.

내가 보기에 그저 부끄럼 많이 타고 수줍은 어린 청년으로만 보이는 허시 밀턴은 여러 뒷소문이 도는 놈이라고 했다.

마법부에서 조심해야 할 놈들 중 하나로, 연금술과 아티팩트 제작에 특히나 재능이 넘친다고 했다.

늘 조용하고 말수가 적어 또래 친구가 적은 편이고, 교수들과 가까이 지내어 여러 잔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했다.

내가 근로 장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쉐이든은 그 또한 마찬가지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어런 아카데미의 근로 장학생에 자원하는 학생들은 딱 세 가지 부류야.”

“어떤?”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고위 귀족의 자제거나, 그 고위 귀족의 자제와 인맥 형성을 하기 위해 덤벼드는 상인 집안의 자제거나, 정말로 돈이 없어서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처지의 평민이거나.”

“밀턴의 경우는?”

“두 번째 경우지. 밀턴 가는 비단 무역을 하는데 돈이 부족할 일이 뭐가 있겠어? 우리 같은 경영가들은 상인들을 늘 조심해야 한다고. 친분에 기대어 불편한 부탁을 하는 일이 잦아서 늘 경계해야 한다고 배웠어.”

“음.”

그러나 나는 쉐이든의 말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집안일로 부탁을 한다 하면 얼마나 할 것인가. 그 수줍은 소년이 그저 왕래하며 인사하는 것을 바라는 정도라면 굳이 적대할 필요가 없었다.

무리한 부탁을 하게 되면 그때 끊어 내면 되는 것이니 사서 걱정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백작가 태생의 무인일 뿐이고 경영가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궁금한 것이나 마저 물었다.

“흑마법으로 수상한 짓을 한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이냐?”

“어⋯ 흑마법이 뭔지는 알지?”

“알지.”

어느 세상이든 간에 백색은 밝고 좋은 것에 붙는 색이고, 흑색은 어둡고 사특한 것에 붙는 색이었다.

이곳 시어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중에서도 악독해 보이는 것들을 흑마법이라고 칭했다.

흑마법은 동물의 사체나 인간의 시체를 해부하여 사용하는 것이었다.

어린 아해들이 읽는 동화책에서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풍문에서도 악하고 물리쳐야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허나 마법사들의 호기심이란 대단한 것이고, 의술의 발전에는 실제 인체를 해부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여 꾸준히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기술 중의 하나였다.

때문에 시어런 아카데미에서도 흑마법에 대해 몇 가지 언질을 주는 수업이 있었다.

듣는 학생의 수가 많지는 않았으나 백마법과 흑마법을 비교하거나, 흑마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에 대하여 배우거나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과목의 특성상 흑마법 수업을 꾸준히 듣는 아이들은 손가락질당하기가 쉬워 호기심 많은 녀석들이 한두 차례 교양으로 듣는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그러나 허시 밀턴은 이제 삼 학년인데 맨 처음 입학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 학기 흑마법 수업을 하나 이상은 꼭 듣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취향이 수상한 것이 분명하다 하여 그를 피하는 아이들이 왕왕 있다고 했다.

구태여 티를 내며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곁에 가까이 두고 아낄 사람은 아니라는 평가에 단순히 좋아하는 과목이 좀 다르다고 하여 어린 아해를 따돌리냐며 꾸중했다.

쉐이든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놈이 이제 겨우 아카데미 삼 학년이라 하였는데, 악독한 일을 하면 얼마나 악독하다고. 그저 들으라고 있는 수업을 들은 것뿐이라면 더 피할 이유가 없어.”

“밀턴이잖아.”

“밀턴?”

“제국의 계보 시간에 배운 거 기억 안 나?”

“비단 무역을 한다면서.”

“그래, 플로이드랑! 그리고 플로이드는 1황자랑 엮여 있잖아.”

“아.”

그제야 나는 쉐이든이 까닭 모를 경계심을 품는 이유를 깨달았다.

하지만 1황자가 마음에 차지 않는 것과 그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다리나 건너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소년을 적대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괜한 이유를 들어 또래의 소년을 험담하는 것이 내 눈에 옳게 보이지 않았기에 차분히 내 생각을 밝혔다.

쉐이든 또한 결국 속내는 착하고 순한 놈이라 한참을 듣더니 과연 네 말이 옳다 하며 내게 동의해 주었다.

양순한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여 착하다 바르다 몇 번을 거듭 칭찬하다가 쉐이든이 아이 취급하지 말라며 토라져 한참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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