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쉐이든의 조언에 따라 미리 준비해 간 노트에 내용을 받아 적으며 수업을 들었다.
배워야 할 아티팩트의 종류가 무척 많아 첫 번째 수업부터 바로 진도를 나가겠다는 카이저 교수의 말에 야유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유인물에는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도식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해괴한 마법 용어 없이 각 아티팩트의 대표적인 생김새와 사용된 마법 수식, 보편적으로 형성된 가격대와 성능 구분법 따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실생활 용도의 아티팩트는 그 수가 많지 않다고 이미 말했지요. 그럼 전투용과 의료용 중에는 어느 것이 더 많이 사용될까요? ⋯그래요, 그쪽에 손든 학생.”
“전투용 아티팩트가 더 많이 사용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마물을 상대하는 데에는 인적 자원보다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정답에 가까웠어요.”
나는 대답을 한 소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당황하며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대답하는 모양새가 똑바르고 당당한 것이 멋져 보여 시선을 두긴 하였으나, 소녀의 반응을 보니 수업 중에 딴짓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다시 카이저 교수의 얼굴을 바로 보았다.
“물론 사람의 생명은 재물보다 우선하는 가치입니다. 다만 이 수업에서는 좀 다른 식으로 표현하기로 하겠습니다. 마물을 상대하는 데 인간의 힘보다 아티팩트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전투용 아티팩트 중 첫 번째, 폭발 아티팩트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풍토에 감격하여 교수가 말한 문장을 필기 노트에 고스란히 옮겨 적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당연한 말을 들었다는 듯, 노트에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교수의 말에 또렷이 집중했다.
폭발 아티팩트라는 것은 벽력탄(*화약을 정제하여 만든 폭탄)과 엇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이었다.
화약은 본래 전쟁 무기이기 때문에 관에서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여 중원에 살 적에는 내 손으로 만져본 일이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비록 그림으로나마 폭발 아티팩트의 구조에 대해 상세히 배우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폭발 아티팩트는 사용하는 마법식의 종류에 따라 화기, 냉기, 전기, 기타의 부류로 나뉘고 화력에 따라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뉘었다.
또 사용하는 거리에 따라 단거리, 중거리, 원거리 부류로 나뉘었다. 나는 열두 가지 구분법 안에 아티팩트들의 이름과 그 아티팩트를 발명한 이의 이름자를 차곡차곡 도표에 적어 넣었다.
그렇게 적고 나니 이 수업이 경영부 수업인 것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학생들이 필기하는 방법이나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면 알았다. 지금 적은 이 도표를 그대로 외워 시험을 볼 때 사용하려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 아티팩트의 사용법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한 카이저 교수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뒤처질세라 열심히 그가 하는 말들을 유인물을 참고하여 받아 적었다.
아티팩트의 이름은 전부 몇 번 형 무슨 기 하는 식으로 적힌 것이 많았다. 카이저 교수는 이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아티팩트의 이름 앞에 붙은 숫자는 해당 아티팩트가 몇 가지 기능을 가졌는지를 표시하는 수식언입니다. 예를 들어 유인물 세 번째 페이지에 있는 2형 전기충격기를 보세요. 사용된 수식은 전기 발산, 전기 흡수 두 가지 종류입니다.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요? 세 번째 줄 두 번째 자리에 앉은 학생이 말해 봅시다.”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좀 더 자신 있게 대답하도록 하세요. 맞습니다, 아티팩트가 겨냥한 상대에게 일렉트릭 쇼크 공격을 쏘아 보내면서 동시에 사용자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발생한 전기를 흡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숫자로 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요. 거기 손든 학생.”
“아티팩트 제작 과정에 필요한 마석의 수를 분명히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답입니다. 학생 이름이?”
“데미안 크리스토퍼입니다.”
“기억해 두도록 하죠.”
데미안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알았으나 이렇게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신기했다. 위르겐 카이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불과 백 년 전에는 모든 아티팩트에 제작한 마법사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사의 수가 증가하고 아티팩트의 종류가 무한하게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한스 사건이지요.”
“한스?”
아이들 중 일부가 학생 하나를 돌아보며 실실 웃었다.
시선이 몰린 학생은 저를 보는 학생의 어깨를 죽 밀며 투닥거렸다. 이름이 한스인 모양이지. 어린 아해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귀여워 나도 짧게 웃었다.
“여기에도 한 명 있군요. 맞아요, 한스는 흔한 이름입니다. 당대에 유명했던 전투 마법사 한스와 의료 마법사 한스도 동명이인이었습니다. 둘 다 고아였고, 마탑에 입양되었으며, 대충 편한 이름을 받았죠.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이름에 자부심이 있어 자신이 만든 아티팩트에 제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스 1호, 한스 2호. 그리고 그들의 아티팩트를 헷갈린 사람들이⋯.”
헉, 아이들 틈에서 헛숨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도 그때엔 아티팩트의 값이 비싸 유일 산맥 토벌에나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시가지에서 한스 1호가 폭발하는 일은 없었어요. 다만 유일 산맥 토벌 작업 중 다 잡아 놓은 거대 리자드맨이 완전히 회복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토벌 용병단 연합이 와해되었죠.”
리자드맨이 무엇인지 몰라도, 꽤 위협적인 몬스터였던 모양이지. 나는 작게 침음했다.
“피해를 입은 용병단 연합은 아티팩트를 판매한 마탑에 거세게 항의했고 마탑은 아티팩트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아티팩트의 이름을 통일하는 지난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스 사건 이후로 모든 마법사는 아티팩트 제작에 사용되는 마석의 수와 해당 아티팩트의 기능을 이름에 명시하게 되었습니다.”
“⋯음?”
“궁금한 게 있으면 손을 들고 질문해도 됩니다.”
나도 모르게 입술 새로 의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이저 교수가 이쪽을 보며 말하기에 바로 손을 들어 발언권을 청했다. 교수는 쉽게 고개를 끄덕여 허락해주었다.
“제가 알고 있는 아티팩트의 이름이 해당 규칙에서 벗어나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아티팩트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방수림의 근원이라고 들었습니다.”
방수림의 근원은 내가 이전 학기에 앤젤라 스팅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아티팩트의 이름이었다.
마물의 시체를 정화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그 아티팩트는 어린애 주먹만 한 크기의 동그란 물건으로, 스물다섯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주문식을 스물다섯 번 새겨 넣은 대단한 물건이었다.
카이저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간혹 이렇게 유용하고 많이 사용되는 아티팩트의 경우 정해진 규격의 이름이 아니라 시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방수림의 근원뿐만 아니라 새벽의 별빛, 대지의 한숨, 어둠의 축복 등이 모두 그렇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아티팩트들의 이름을 받아 적었다. 나도 그렇게 했다.
“이런 아티팩트들은 한스 사건 이전에 발명되어 아주 오랜 시간 꾸준히 많은 이들이 사용해 그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경우로서, 전투 마법과 의료 마법이 아닌 기타 마법을 담고 있을 때에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충분히 넘치는 설명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이해한 티를 냈다. 새벽의 어쩌구 대지의 어쩌구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설명해 줄 것을 알아 궁금해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까 유인물을 나누어 준 소년이 이쪽을 자꾸만 건너다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알았다. 맨 처음 입학식에 왔을 때 보았던 생쥐 같은 소년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얼굴이 쉽게 붉어지던 것은 기억이 났다.
근로 장학생이라고 하더니만 수업 심부름도 함께 도맡은 모양이지. 참 여기 학생들은 별일을 다 한다 싶어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루베르 그놈도 이런저런 수업에서 이렇게 교수를 보조하는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었다. 유인물의 다음 장으로 넘기라기에 그렇게 했다.
* * *
화요일 오전 고급 검술 시간에는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했다.
지난 학기에 봤던 인원 그대로 삼십이었다. 그러나 열 명의 이류무인들 중 둘이 일류의 경지에 발을 들인 것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나 빨리 성장하다니, 보고 겪으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속도였다. 중원에 마엘로 샌슨이 있었다면 가히 일가를 이루고도 남았으리라 생각했다.
루베르와 루실라, 벤자민과 맷이 당연하다는 듯 내 곁에 섰다.
키가 큼직큼직한 놈들 사이에 폭 묻혀 있으려니 지나가던 발터 오르겐이 우스갯소리로 꽃다발이니 뭐니 하는 말을 했다가 루실라에게 크게 혼이 났다.
아해들이 정답게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고 말았다.
이번 학기에도 학생들끼리 대련을 하도록 할 줄 알았는데, 마엘로 샌슨은 학생들을 잘 살펴보며 안부를 묻더니 연무장 바닥에 검집 끝으로 표식을 남겼다.
아해들이 모두 샌슨의 인도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 섰다. 무슨 훈련을 하려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것은 이번에도 나뿐인 모양이었다. 샌슨은 웃는 낯으로 설명했다.
“지난 학기에 대련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겠지. 이제 서로의 검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합공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겠다. 합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옆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태도라고 할 수 있지. 이번 학기에는 동료의 검과 몸이 걸리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내 검로가 방해받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이 아이들과 합격진(*여러 무인이 힘을 합치는 진법)을 이룬다니?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중원에서도 합격진을 이뤄 본 적이 있기는 했다.
여러 인원이 하나의 절대 강자를 상대하거나,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였을 때 대단한 합격진이 있다면 내공의 손실을 아끼면서 서로를 보할 수 있다고 들었다.
개중에는 소림의 십팔나한진, 백팔나한진을 으뜸으로 삼았으나 각 문파마다 비기로 삼는 합격진이 있었다.
합격진은 병정개미 백을 모아 코끼리를 잡아 죽여야 할 때 사용하는 무공이었다. 그만큼 서로의 손발이 잘 맞아야 했다.
각 문파에서는 저들만의 합격진을 위해 엇비슷한 수준과 연배를 지닌 무인들에게 짝을 지워 어릴 적부터 꾸준히 훈련시켰다.
모두 같은 무공을 사용하여 서로에 대해 깊게 알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겨우 넉 달을 서로의 무공을 보아 익힌 것이 전부인 사이에 될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