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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81화 (81/176)

81.

8월이 되었다.

지난 학기에도 생각했던 일이지만 아카데미에서는 매일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에 하다 보니 하루를 무척 충실하게 보낼 수 있어 좋았다.

교수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둥그런 회중시계를 품에 지니고 다녔다. 이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이다음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하는 것들이 다 미리 짜여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기만 해도 하루에 여러 개의 할 일을 다 할 수 있었다.

지난 생에는 모두가 공평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갈음하였다. 언제 만나자 약속하여도 사나흘은 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다.

고요한 시간을 홀로 하릴없이 흘려보내며 수련하고 운기하며 기다리다가 상대가 오지 않으면 또 다음 달에 만나지, 하고 저 할 일을 하러 자리를 뜨곤 했다.

날짜를 하나하나 상세히 헤아리는 것은 관원이나 장사치의 일이라 여겨, 그사이에 버려지는 시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허나 이 땅 시어런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물이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큰 무례로 여겼다.

나는 연무장을 돌고 정해진 시간만큼의 수련을 하고 들어와 씻고 운기조식을 마쳤다.

그 후,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쉐이든과 식사를 했다. 흡족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새 학기 첫 수업이 마엘로 샌슨의 초급 검술 수업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검술부의 동기들이 전부 함께 듣는 수업이니만큼 담임 교수인 마엘로 샌슨은 수업 시간이 시작하기 전 간단히 출석을 부르며 학생들의 면면을 꼼꼼히 살폈다.

“오랜만이라고 인사하고 싶은데, 거의 다 수도에 붙박여 있던 놈들이라 반갑지도 않네. 그래도 전원 별 문제 없이 방학을 즐긴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잘 왔어.”

“하하하.”

“⋯그런데, 방학 동안 다들 푹 쉬고 즐겁게 놀기만 했나 봐? 좋은 사람이라도 만났나?”

짝을 찾지 못한 학생들과 수줍은 얼굴을 숨긴 학생들이 한데 섞여 웃음소리 섞인 야유를 보내는 것을 들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나도 그저 웃고 말았다.

샌슨은 내 쪽을 보며 눈을 빛내다가 곧 시선을 돌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그렇게들 웃어. 어깨며 허리며 힘이 쪽 빠져서 검 휘두르는 법도 잊어버린 것 같다는 말인데. 그동안 편하게 먹고 노느라 고생했다. 이제 두 달간 잃어버렸던 근육을 되찾을 시간이다! 전방 기합 발사!”

“악!”

“자, 출발!”

그간 훈련을 해이하게 했으니 기초 체력부터 다시 쌓아야겠다는 호통이었다. 나 또한 아이들을 보며 같은 생각을 했기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향상심이 뛰어난 아해들이다. 그들이 방학 동안 수련을 하지 않은 것은 꾸준히 옆에서 돌봐 주는 이가 없어 그런 것도 아니고, 의지가 없는 탓도 아니었다.

그동안 사교 활동에 힘쓰느라 일정이 분주하여 평소보다 많이 먹고 늦게 잠든 탓일 터였다.

그러니 근육이 풀어지고 늘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척하면 착이었다. 지난 넉 달간 샌슨 교수와 충분한 유대를 쌓은 덕분에 아이들은 칭얼거릴지언정 망설이지 않고 뛰었다.

샌슨 교수가 만족할 때까지 연무장을 돈 뒤 기본 검식을 훈련할 예정인 것을 모두가 알았다.

마엘로 샌슨이 지켜보고 있으니 누가 더하고 덜 하고 하는 것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체력의 안배에 신경 쓰며 저 달릴 수 있는 만큼 용을 썼다.

수업 시간으로 분배된 세 시간을 땀 흘리는 데 쓰고 나니 다들 엎어져 헐떡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 다들 지친 몸을 질질 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일단 먹고 씻자 하여 땀내 폴폴 풍기는 아해들이 식당에 모여 앉으니 중원 생각이 절로 났다.

운동을 양껏 하고 나니 개운하여 밥맛이 좋았다.

“우욱⋯. 너무 뛰었더니 못 먹겠어.”

“와⋯ 나 지금 팔 떨리는 거 보여? 포크질이 어색해, 포크질이.”

“먹자. 살아야⋯ 살아야지.”

칭얼거리는 아해들이 몇 있었지만 식판에 양껏 퍼 온 음식들을 싹 비운 것을 보니 괜한 엄살인 것이 분명했다.

잘 먹고 잘 뛰는 모양새들이 참 흐뭇하였다.

아해들의 떠들어대는 소리를 반찬으로 하여 나 또한 두 그릇을 먹었다.

* * *

쉐이든 로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아티팩트 수업을 한다는 경영부 교실로 향했다.

나름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많은 학생들이 이미 교실에 들어차 있었다.

활동적인 수업을 하지 않아 몸을 씻는 시간이 들지 않는 데미안 크리스토퍼가 나와 쉐이든의 자리까지 미리 맡아 주어 적당히 중간에 앉을 수 있었다.

두 달 만에 보는 얼굴이 어쩐지 낯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참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본디 색이 옅은 편이던 회색 머리칼이 아주 조금 짙어져 있었다.

그새 키도 좀 큰 것 같아 물었더니 티가 많이 나냐며 기뻐하기에 많이 자란 것처럼 보인다 칭찬해 주었다.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채우던 중에, 드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는 사내를 보고 나는 잠시 놀라 눈을 끔벅였다.

청성파 도사인가 곤륜파 도사인가 알 수 없는 차림의 노인이 발을 질질 끌며 걸어 들어와 교단 옆에 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나를 알고 있는 학생들도 있을 테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 많으니 제 소개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위르겐 카이저. 카이저 상단의 전대 수장이었고, 지금은 작은 사업을 몇 개 하고 있습니다.”

아티팩트 수업 교수인 카이저 교수는 사 척(*120cm)이 겨우 넘는 작은 사내였다.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을 하는 사내의 작달막한 몸에 시선이 갔다.

그가 교탁 뒤에 서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목과 어깨, 허리가 굽어 있어 안 그래도 작은 키가 더욱 왜소해 보였다.

흰 머리는 길게 길러 뒤에서 묶었고, 흰 수염 또한 길게 길러 배꼽까지 늘어트렸다. 머리와 눈썹, 수염이 모두 새하얗게 색이 바래 겉으로 보기에는 백 년은 훌쩍 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렇게 힘없어 보이는 노인의 외향인데도 그의 차분한 목소리는 귀에 대고 말하는 듯 크게 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 오른편에 앉은 데미안이 감탄을 흘렸다.

“⋯와. 음성증폭기.”

“음?”

“교수님 목에 걸린 아티팩트 얘기입니다. 이렇게 음질이 자연스럽고 좋은 아티팩트는 쉽게 구할 수 없을 텐데, 역시 아티팩트 교과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나중에 어디에서 구하셨는지 여쭤봐야겠어요.”

이 단단한 목소리가 그의 본래 목소리가 아니라고.

그의 입 모양의 움직임이나 소리의 울림에서 조금도 이상한 부분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놀랐다.

카이저 교수가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체 몇 가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며, 데미안에게 다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봤습니까?”

“3형 음성증폭기는 전부 저렇게 생겼거든요. 오각형 몸체에 마석 세 개. 주변 소리를 좀 더 잘 들을 수 있게 하고, 자신이 말하는 것을 주변에 잘 들릴 수 있게 하고, 또⋯.”

그때, 교수의 시선이 이쪽에 닿아 데미안이 입을 닫았다. 데미안이 못다 한 말은 카이저 교수가 이어 답해주었다.

“나오는 목소리를 호감 가는 방식으로 변환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학생은 아티팩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이름이?”

“⋯데미안 크리스토퍼입니다, 교수님.”

“앞에 나와서 수업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쉽네요. 좋은 기회였는데.”

들리는 목소리가 하도 담담하여 비꼬는 것인지 진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곤란해하는 데미안을 흘긋 보고, 나 또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카이저 교수를 향해 간단히 묵례했다.

교수는 빙긋 웃더니 자신의 옷깃 앞에 달린 오각형 모양 브로치를 톡톡 두드려 시선을 집중시켰다.

“좀 더 나중에 설명하려고 했는데, 예습해 온 학생이 있어서 안 되겠군요. 여기 모인 학생들 모두가 이런 마법 아티팩트에 관심이 많아 이 자리에 왔을 겁니다. 지금 제가 착용하고 있는 음성증폭기는 가장 유명한 아티팩트지만 쉽게 보기 힘들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학생이 있나요?”

“⋯.”

“저쪽, 노란 머리 학생.”

“⋯비싸서요?”

처음 보는 아해 하나가 어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몇이 픽 웃는 소리가 들렸으나, 위르겐 카이저 교수는 진중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비싸기 때문이죠.”

카이저 교수는 느린 걸음으로 칠판 앞에 섰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려도 칠판의 위쪽에는 손이 닿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카이저 교수의 손에 들린 작은 막대기가 움직일 때마다 백묵 하나가 저절로 떠올라 칠판 위에 글씨를 남겼다.

안법을 사용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백묵을 휘감은 마나가 보였다.

카이저 교수의 몸을 휘감는 마나가 일천하니, 이것도 그의 손에 들린 막대기의 효능일 터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감탄을 삼키며 집중하여 교수를 바라보았다.

“마법 아티팩트를 큰 범위로 묶으면 세 가지 용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투용, 의료용, 그리고 실생활용. 전투용 아티팩트는 크게 공격과 방어로 나뉘고, 의료는 외상과 내상을 다스리기 위한 것으로 나뉩니다.”

여기저기서 노트 펼치는 소리가 났다. 사각사각 필기하는 소리가 곧 뒤따랐다.

“그중에서도 실생활에 사용되는 아티팩트는 그 값이 비싸고 희귀하며,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보니 아주 적은 양만 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분필처럼요.”

과연 맞는 말이었다.

일반적인 키를 가진 사람이라면 분필을 들어 자신의 손으로 판서를 할 터였다.

키가 조금 작더라도 발 받침대를 딛고 서면 충분히 판서가 가능했다. 카이저 교수처럼 늙고 왜소한 사람이 아니라면 저런 분필이 필요할 이유가 없었다.

위르겐 카이저 교수가 눈짓하자, 앞자리에 앉은 학생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 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었다.

어딘지 얼굴이 익숙한 듯했으나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얌전한 얼굴 생김새를 한 소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웃었다.

카이저 교수는 학생들이 유인물을 다 받은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중간고사 이전까지는 아티팩트의 종류와 분류에 대해서 배우고, 그 이후에 직접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법을 배울 겁니다. 강의 계획서에 적혀 있듯이 해당 수업에는 약간의 재료비가 들 수 있습니다. 재료비 납부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은 따로 학과 사무실에 문의하도록 하세요.”

강의 계획서에서 그런 내용을 읽지 못했던 나는 잠시 멈칫했으나 쉐이든과 데미안의 표정이 평온한 것을 보니 내게 큰 부담이 아닐 것을 알고 안심했다.

가난하던 전생의 기억이 남아 마음이 빈곤한 것이 멋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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